# 209
62장 마지막 희망(3)
현준이 지휘하는 연합 함대와 두안이 이끄는 19번 부대의 비행선단은 서로 거리를 좁히며 마력 광선에 의한 포격을 주고받았다.
찬란한 빛을 머금은 마력 광선이 검은 공간을 뚫고 전투선에 꽂힐 때마다 크고 작은 폭발이 터져 나오며 검붉은 연기가 흩어졌다.
“전투선단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상륙선단은 이미 전멸했고 미확인 함대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황을 보고하는 부관의 모습을 보며 두안은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교전이 길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몇 번 포격을 주고받을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는데 벌써 이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니, 물러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강습정을 준비합니까?”
가디언의 제1함교에서는 레비앙이 현준을 보며 질문했다.
백병전을 펼쳐서 19번 부대의 지휘선을 장악하려면 단순히 강습정만 준비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우선, 지휘선 주변의 전투선을 모조리 제압해야 하고 강습정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가디언과 지휘선 간의 거리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레비앙은 그 모든 준비를 시작해도 되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다.
짧은 생각의 정리를 마친 현준은 이윽고 레비앙을 향해 차분한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강습 작전에 대한 최종 승인이 끝났다.
“지금부터 적 지휘선을 강습하여 백병전을 펼치겠습니다.”
어느새 레비앙의 오른손에는 통신장비가 들려 있었다.
“순양함 전단은 가디언을 적극적으로 엄호하라.”
순양함 일곱 척이 따라붙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공전형 골렘 편대가 적의 전투선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동안 순양함들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마력 광선의 집중 공격에 당한 전투선들이 검붉은 연기를 토해내며 폭발했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었습니다. 직접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레비앙이 물었다. 현준은 대답 대신 옆에 놓여 있던 지옥참마도를 허리띠에 걸고 격납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드장님!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직속 수행원을 두고 플레임과 태민이 치열한 시선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태민이 승리했다.
이윽고 격납고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강습정에 올라탔다.
연합 함대를 움직이는 일반 승무원들과 달리 강습정에 탑승한 공격 부대는 대부분 UN 소속의 강화 헌터들이었다.
더 정확히 분류하자면 침략사령부에 의해 나라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 국적이 많았다.
“강습정을 사출하겠습니다!”
격납고에 녹색 신호가 들어왔다. 가디언에서 5대의 강습정이 사출되어 지휘선을 향해 날아갔다.
지휘선의 선체에 설치된 대공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화망을 형성했지만 강습정의 조종사는 현란한 비행 솜씨를 발휘하여 탄환 세례를 돌파하여 지휘선의 선체에 접근했다.
선체에 구멍을 뚫는 강습정 특유의 기술이 발휘되었고 도개교가 연결되었다.
“앞으로!”
적의 지휘선 안으로 강화 헌터들이 쏟아져 나갔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그래도 지휘선이라는 건가? 대응 준비를 끝낸 적의 수비 병력이 쏟아낸 마법들이 넓은 통로를 가득 채웠다.
비명이 터져 나왔고 선봉으로 달려나간 강화 헌터들이 쓰러졌다.
맹렬한 반격에 잠깐 전진이 멈추는가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고향을 불태운 침략자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무장한 강화 헌터들은 강렬한 마법 화력을 뚫고 달려가 인베이더들과 솔저들을 죽였다.
현준은 태민과 함께 유유히 통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들은 강화 헌터들이 뚫어놓은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강화 헌터들의 전투력을 가까이서 확인하고자 정면에 서지 않은 것인데, 그들의 전투력이 생각보다 높아서 현준은 속으로 감탄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어느 순간 그들의 전진이 멈췄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장 강력한 방어를 자랑하는 함교 앞이었다.
“함교의 방어 태세가 너무 강력합니다!”
현준이 도착하자 지휘를 맡고 있던 강화 헌터가 황급히 보고했다. 지금 그들의 전력으로는 함교 앞의 방어선을 뚫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연합군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현준에게 기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가자.”
“예, 길드장님.”
이제는 SS급 최상위의 무력을 가지게 된 김태민이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다가와 뒤에 섰다.
현준은 깊은 곳에서부터 마력을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단숨에 돌파한다.”
“뒤처지지 않겠습니다.”
태민의 대답에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마력을 발산하며 황금의 검을 뽑아 들었다. 신격의 힘이 해방되면서 찬란한 금빛의 광휘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등 뒤에는 황금의 날개가 생성되었다. 황금의 물결에 잠시나마 홀린 태민이 정신을 차렸을 때 현준은 이미 앞으로 총탄처럼 튀어 나가고 있었다.
“으아아악!”
“커헉!”
그저 지나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인베이더들의 몸에서 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인베이더들이 함교 앞에 구축한 방어선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현준은 태민과 함께 쓰러진 인베이더들의 시체를 넘어 함교 안으로 진입했다.
“온다!”
제7침략군단 소속, 19번 부대의 책임 지휘관을 맡고 있는 6급 인베이더, 두안은 굳게 닫혀 있는 함교의 문 너머로 거대한 마력을 지닌 존재가 접근하는 걸 감지하고 휘하 인베이더들에게 경고했다.
인베이더들의 경계 속에서 굳게 닫혀 있던 함교의 철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자욱하게 일어난 검붉은 연기를 뚫고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의 검을 손에 든 현준이 난입했다.
“크아아아악!”
인베이더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6급 인베이더에 속한 두안조차도 재난급 신격의 힘을 꺼낸 현준을 상대로 얼마 버티지 못했다.
호기롭게 칠흑의 오러를 머금은 검을 들고 달려들었지만 3번의 검격을 다 받아내지 못했다.
그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것으로 함교는 완전히 장악당했다.
“함교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확인 사살 작업까지 끝낸 태민이 보고했다.
그의 몸에도 인베이더들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레비앙한테 ‘인형’ 하나만 보내라고 해.”
현준이 말했다. 그도 질드레의 술식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함교 내의 주요 문서 탐색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레비앙만큼 효율적인 일 처리를 기대하는 건 힘들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그의 ‘인형’을 호출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이윽고 완전한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 레비앙의 인형이 친위대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등장했다.
전투 마도학자인 레비앙과 다르게 ‘인형’은 불완전한 존재라서 전투에 술식을 활용하지 못했다.
전투 능력이 전혀 없고 술식 보조만 가능했기 때문에 언제나 호위가 붙어 있어야 했다.
“제가 할 일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군사 자료의 탐색을 맡기려고.”
차원 동맹의 집정관, 이시리아가 정보를 주긴 했지만 부족했다.
여전히 현준과 연합 함대는 리딘 차원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지형부터 특징까지 여러 면에서 정보가 부족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리딘 차원에 주둔한 침략자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 자료가 필요했다.
“파기 절차가 중간 정도 진행 중이었군요.”
“함교를 장악하면서 기능을 정지시키는 했는데……. 얻을 수 있는 게 전무할 정도야?”
“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중요 정보는 이미 완전히 파기된 상태라, 복원할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형의 보고에 현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내심 좋은 정보 하나쯤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레비앙의 인형이 말하는 걸 보니 그건 힘들 것 같았다.
“리딘 차원의 정밀 지도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낮은 등급의 군사 지도라면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기밀 등급이 높지는 않을 테니, 우선 파기 목록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좋아, 진행해.”
탐색에 소요된 시간을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1시간 만에 모든 작업이 끝났고 그쯤에는 19번 부대와의 전투도 완전히 종료되어서 뒤처리 단계에 돌입했다.
“탐색이 끝났습니다.”
인형이 다가와 보고했다. 현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과는?”
“일부 자료를 확보했지만, 손상이 심해서 복원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필요한 시간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길어야 하루에서 이틀 정도입니다.”
인형의 말대로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료의 복원에 걸린 시간은 하루였다.
가장 먼저 복원된 자료는 리딘 차원의 군사 지도였다. 침략사령부의 주둔 병력이 표시된 높은 등급의 군사 지도는 아니었지만 리딘 차원의 지형과 구조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료의 복원은 계속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리딘 차원에 주둔하고 있는 침략군이 제2집단군 소속의 제7침략군단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정보를 더 입수했지만 크게 도움이 될 만한 건 없었다.
* * *
“19번 부대가 전멸했다고?”
부관이 전한 비극적인 소식에 통제단 앞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제7침략군단장, 하스웰이 깜짝 놀라서는 벌떡 일어났다.
“확실한 것이냐?”
하스웰이 물었다.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으며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미확인 함대와 교전을 시작했다는 게 마지막 보고였습니다. 그 이후로 통신이 연결되지 않을 거로 보아, 전멸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 교전 중일 확률도 있지 않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부관은 단호했다.
“어쨌든, 적이 나타난 건 확실하다는 것이렷다?”
“예. 미확인 함대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게 19번 부대가 마지막으로 남긴 보고였습니다.”
“제기랄! 하필 이 시기에!”
욕설을 내뱉는 하스웰, 그럴 수밖에 없다.
불과 며칠 전에 리딘 차원의 경계에 차원 동맹의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으니까.
이렇게 되면 미확인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부대의 숫자에 제한이 붙는다.
‘기동요새도 탐색해야 하고……. 정말 미쳐 버리겠군.’
전생들이 남긴 유물 중 가장 강력하다고 전해지는 기동요새를 수색하는 일은 제2집단군 사령관이 하스웰에게 내린 명령 중 하나다.
차원 동맹을 견제하고, 기동요새를 수색하며, 미확인 함대까지 저지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임무를 한정된 병력으로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라 하스웰의 머리는 벌써 고민으로 터져 나갈 기세였다.
“현재 미확인 함대의 위치는?”
“파악 불가합니다. 현재 고속정을 보내 위치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위치를 파악하고 나한테 보고해라. 그래야 예하 부대에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부관이 대답했다. 그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경례와 함께 떠났고 함교에 남은 하스웰은 정면의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검은 공간을 향해 한숨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