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207화 (207/217)

# 207

62장 마지막 희망(1)

“제2집단군 사령관, 레일스 경.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구석진 곳에서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다크 엘프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부관 제복을 입은 남자를 향해 차분한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침략 사령관님께서는?”

“응접실에서 레일스 경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둘러야겠군.”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부관의 말에 레일스는 침략 사령관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부관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급한 마음에 부관을 두 번이나 재촉했다. 레일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부관은 응접실까지 느긋하게 걸었다.

“이곳입니다.”

“수고했다.”

부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침략 사령관의 부관 중 한 명에게 과한 언사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

레일스는 머릿속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는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섰다.

모선의 응접실은 군단 지휘선의 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넓었다. 하지만 자주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에 온다는 건 침략 사령관과 대면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침략사령부 내에서도 침략 사령관, 코펜하겐의 공포 정치와 엄격함은 유명했기 때문에 그와 대면하는 걸 극히 꺼리는 지휘관들이 많았다.

“왔는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스산한 목소리에 레일스는 일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어둠 속에서 시작된 검은 안개는 레일스의 정면에 모여 들어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조금 늦었군.”

“죄송합니다.”

눈앞의 침략사령관은 변명이 통하지 않는 존재다.

레일스는 즉시 잘못을 시인하며 고개를 숙였고 그제야 침략 사령관, 코펜하겐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귀신같이 창백한 얼굴과 붉은 눈동자 때문에 미소를 지었음에도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제13침략군단이 지구에서 몰살당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게 사실이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코펜하겐은 침략사령부의 정보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재확인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예, 저도 전달받았습니다.”

레일스가 대답했다. 제13침략군단은 제2집단군 예하에 편성된 군단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보고가 전달되는 건 당연했다.

지금까지 제13침략군단장, 인저블의 부정적인 보고를 누락해 온 탓에 그는 침략 사령관의 시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보고 누락에 대해 당장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코펜하겐이 모를 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무려 군단 하나가 증발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 대한 조사가 행해졌을 것이라 레일스는 생각했다.

“우선, 보고를 누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책임도 질 필요 없다.”

코펜하겐이 잠시 말을 멈췄다. 레일스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수습에 미흡한 점이 있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제10침략군단이 차원 동맹과의 전선에서 물러나 재정비에 있습니다. 지구의 차원이 안정화되는 순간, 진군하라는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굳이 제 13침략군단장처럼 위험한 리스크를 떠안고 침략할 필요 없지. 우리는 때를 기다려야 한다.”

“단언컨대, 지구의 차원이 안정화되는 순간, 그곳은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레일스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구를 공격했던 제13침략군단은 차원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차원 도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다.

제2집단군 사령관, 레일스는 지구에서의 패전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온전한 상태의 침략군단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침략 사령관님께서는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믿겠다, 제2집단군 사령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침략 사령관, 코펜하겐은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는 것으로 축객령을 내렸고 레일스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응접실을 떠났다.

자신의 군단 지휘선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제10침략군단장과의 마법 통신을 연결하여 정비가 끝나는 대로 출정 준비를 서두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저블 경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 10침략군단장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제 2집단군 사령관, 레일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두 개 군단을 동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차원 동맹의 동태도 신경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너무 많은 병력을 전선에서 뺄 수 없었다.

-군에 동원령을 내려두겠습니다.

통신용 수정구 속, 가슴에 손을 얹고 힘차게 대답하는 제10침략군단장의 모습을 보며 레일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침략사령부, 제13침략군단의 지구 공격으로 인한 전쟁 상태에 돌입하면서 UN과 위원회의 위치는 더욱 높아졌고 권한은 강력해졌다.

UN 위원회는 연합 함대의 전력 강화를 위해 전 세계에 대한 총동원령을 요청했고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이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UN과 위원회는 지구를 공격한 제13침략군단을 저지한 영웅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론은 그들 편이었고 사실상 요청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지만 응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다.

세계 각국의 정부들 또한 지구에서 강대국으로 유명한 중국과 러시아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침략사령부의 군세가 언제 다시 차원 도약을 해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연합 함대를 향해 지원을 아끼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연합 함대가 준비되었습니다.”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천천히 걸어 들어온 레비앙이 차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중요한 내용이라 그런지 ‘인형’이 아닌 ‘본체’가 직접 찾아왔다.

“편성된 순양함의 수는?”

“총 82척입니다. 이 중에서 20여 척을 방위 함대로 편성하여 지구에 남겨두고 60여 척 정도를 연합 함대에 편성 및 운용하여 기동요새 수색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레비앙이 보고했다. 기존의 연합 함대가 순양함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소규모에 불과했다.

사실상 6개월 만에 주전력을 갖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간에 진행 상황을 보고 받았다고는 하지만 막판에 이 정도로 작업 속도에 가속을 붙일 줄은 몰랐기 때문에 현준은 조금 놀랐다.

“수가 적지는 않네.”

“속도를 조금 올렸습니다. 저희가 기동요새 탐색을 위해 리딘 차원으로 이탈해도 제가 가르친 마도학자들과 ‘인형’들이 순양함 건조를 지속할 겁니다.”

레비앙은 지구의 차원이 안정되고 침략사령부가 공격을 시작할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순양함 전력을 남겨두는 것과 동시에 건조 또한 할 수 있게끔 안배를 마련해 두었다.

“훌륭해.”

“감사합니다.”

“출정은 언제 쯤 가능할까?”

현준이 질문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정이 가능합니다. 승무원들과 승선할 전투 부대들은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연합군 소속도 있었지만, 승무원의 대부분이 제13침략군단과 전투 중에 확보한 검은 마정석을 사용하여 영구 소환한 무한의 군단 소속이었다.

그들은 훈련받은 정병들이었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내일, 출발한다.”

현준은 결정을 내렸다. 나름 비밀리에 출정할 계획이었지만 어디서 새어 나간 것인지 그날 밤 소진이 찾아왔다.

“나도 갈 거야.”

“너무 위험해요.”

“아니, 위험하지 않아.”

소진이 마력을 일으켰다. 선명한 백색의 기운이 그녀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이건…….”

현준은 그답지 않게 당황했다. 분명 S급이었던 그녀가 SSS급 수준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레비앙…….”

그에게서 강화 술식을 각인 받은 게 분명했다.

당장 따지고 싶었지만 애초에 소진은 강화 술식의 제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언제 받았어요?”

“어제.”

현준의 물음에 소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제 받았다면 아마 고급형 강화 술식을 1회에 걸쳐 받은 게 분명했다. 그런데 S급에서 한 번에 SSS급의 경지까지 올랐다고?

‘역시 재능이 있었어.’

2차 각성을 이뤄낼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재능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뛰어난 편이었다.

강화 술식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재능과 잠재력이 없으면 SSS급의 경지에 오르는 게 쉽지 않았다.

보통 A급 헌터들의 한계가 S급이거나 재능이 조금 있는 편이라고 해도 SS급 정도였다.

현준은 고개를 들어 소진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차분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현준은 깨달았다. 말린다고 해도 그녀는 어떻게든 따라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곁에 두고 지켜보는 게 나았다.

“좋아요, 대신 함교에 있어야 해요.”

제1함교에만 있으면 안전하겠지, 현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응, 그렇게 할게.”

소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만 현준이 크게 다친다면 그 약속을 기꺼이 깨고 달려갈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현준 또한 그녀의 그런 마음 가짐을 눈치챘지만 별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출정 당일이 되었다.

거창한 출정식은 없었지만, 영국의 SSS급 헌터, 드레이크와도 같은 UN의 고위 위원들이 모두 모여 승전을 기원했다.

그들의 바람을 품에 안은 채 전함, 가디언을 기함으로 삼고 순양함 60여 척을 주전력으로 갖춘 연합 함대가 지구를 떠났다.

* * *

“차원 도약 완료, 리딘 차원에 진입했습니다.”

제 1함교에서 레비앙이 보고했다.

전함, 가디언에는 현준도 탑승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휘는 레비앙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이건 효율적인 전투 지휘 체계를 갖추기 위해 현준이 직접 승인한 사항이었다.

“연합 함대의 모든 순양함을 경계 태세로 전환하겠습니다.”

질드레의 일기장에 적힌 무제한 차원 도약 술식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양산 과정을 거치면서 마력 소모가 커졌다. 그래서 자연히 차원 도약 직후,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공격받으면 가장 위험한 시기였기 때문에 레비앙은 모든 함선에 경계 태세를 발령했다.

“이시리아 집정관, 리딘 차원을 지키고 있는 군단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까?”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자세한 정보는 없어요.”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는지 물어본 겁니다.”

“아쉽게도 없네요.”

이시리아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차원 동맹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침략사령부의 후방에 있는 리딘 차원을 늘 주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점점 차원 동맹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현준이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내 승전했을 때, 그들의 활약이 적을수록 자신의 위치가 빛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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