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85화 (185/217)
  • # 185

    55장 접촉(2)

    고위 집정관, 필리아드는 차원 동맹의 이름으로 집정관 1명과 고위 기사들의 지원을 약속했지만 당장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침략사령부 때문이었다.

    -우리 쪽에서 지구로 향하는 균열이 인위적으로 봉쇄되어 있습니다. 제13 침략 군단에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소수 인원도 건너오기 힘들 정도입니까?”

    -저희는 침략사령부와 차원 도약을 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침략사령부에서는 저희 동맹의 차원 도약을 막을 수 있는 억제기라는 걸 개발했지요. 그게 기동 중이라면 그 방향으로는 지원 병력을 1명도 보내지 못합니다.

    필리아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침략사령부의 공격을 받는 지구로 소수 인원이라도 좋으니 지원 병력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억제기가 가동 중이면 차원 도약을 한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지구에는 억제기가 몇 개나 있을까요?”

    최악의 경우, 다수의 억제기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을 수도 있다.

    -기껏해야 하나 정도일 겁니다. 강현준 경께서 우리와 접촉한 걸 모를 테니……. 예방용으로 하나 정도를 설치해둔 게 전부일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현준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필리아드의 형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억제기의 위치를 탐지할 방법이 있습니까?”

    없으면 곤란하다.

    지구는 넓다. 억제기 하나 파괴하겠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친위대와 집행부 병력이 강화 술식을 부여받았다고는 하지만 현준은 백두산 방어선을 오래 비울 수 없는 입장이었다.

    -억제기를 탐색할 수 있는 술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탐색이 가능한 술식이 있다니……. 다행이네요.”

    -고등 술식이긴 하지만, 적격자가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억제기를 파괴하면 저희 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좌표 재설정과 안정화가 끝나면 즉시 당신을 지원할 인원을 편성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통신이 종료되었다. 현준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레비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비앙. 들었지?”

    “예, 지금 막 술식이 건너온 걸 확인했습니다.”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야?”

    분명 필리아드가 고등 술식이라고 말했었다. 기껏 술식을 받았는데 정작 운용할 수 없다면 곤란해진다.

    “상당히 수준 높은 고등 탐색 술식입니다. 하지만 운용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레비앙이 다룰 수 있는 것 같았다. 운용이 가능하긴 했지만, 그 방식이 귀찮고 복잡했기 때문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현준은 말없이 레비앙이 술식을 운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조금 전에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공격받을 일이 없었다. 또 교전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경보음이 안 들릴 정도로 지하실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끝났습니다.”

    3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끝에 레비앙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현준은 그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레비앙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대충 닦고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술식이 복잡하고 탐색 범위가 넓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저는 단순히 주변을 탐색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지구 전체를 탐색하는 것이더군요.”

    ‘행성 하나를 통째로 탐색하는 마법 술식이라…….’

    차원 동맹의 스케일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차원 동맹의 말대로 억제기가 있던가?”

    “예, 억제기 1대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위치는?”

    “러시아 시베리아 쪽 산맥에 있습니다. 정확한 좌표는 기억했습니다.”

    레비앙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서 좌표를 기록했다.

    “바로 이동합니까?”

    “그게 좋을 것 같다.”

    현준은 대답과 함께 장비를 점검했다.

    다음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다녀올 필요가 있었다. 폭풍의 드레이크가 유럽에 있는 상황이니, 백두산 방어선에서 SSS급 이상의 전력은 현준이 유일했다.

    게다가 군단 직속 부대까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니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노릇이다.

    “동행하겠습니다.”

    “레비앙, 너는……. 나한테 좌표만 알려주고 플레임이랑 방어선 지켜.”

    SS급 전력이라도 최대한 남겨둬야 했다.

    “알겠습니다.”

    레비앙은 군말 없이 따랐다. 문제는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마침 백두산 방어선을 살피기 위해 유럽에서 듀크가 잠시 파견 온 상황이었다. 현준은 그에게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시베리아에 있는 산맥까지라…….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협조하겠습니다.”

    다행히 듀크는 협조 요청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최대한 빨리 유럽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라……. 모셔다드리는 것밖에 못 할 것 같습니다. 올 때는 혼자 귀환하셔야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의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다.

    “바로 가시죠.”

    듀크가 뽑아든 검을 휘두르자 허공이 갈라지면서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되었습니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듀크는 현준의 팔을 붙잡고 어두운 공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일순간 의식의 흐름이 끊겼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시베리아의 산맥 깊숙한 곳이었다.

    “도약 한 번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말씀해주신 좌표는 북쪽으로 3km 정도 더 가야 할 겁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헌터들에게 3km는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현준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듀크는 갈라진 균열 틈으로 물러섰다. 균열이 닫히면서 듀크도 모습을 감췄다.

    -주인아, 북쪽으로 3km 정도 되는 지점에 다수의 마력 반응이 느껴진다. 은폐 술식을 사용한 건지 정확한 숫자 파악은 힘들지만, 침략사령부가 분명한 것 같다.

    북쪽으로 3km 지점이면 억제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좌표였다. 침략사령부의 병력이 주둔 중인 것 같다는 지옥참마도의 말에 현준은 사실상 저곳에 억제기가 있다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북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억제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형 거점을 발견했다.

    현준이 차원 동맹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그런지 파수꾼으로 배치된 인베이더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바보 같은 놈들, 이걸 예상하지 못했다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적들의 전력을 살피며 현준은 혀를 찼다.

    다른 차원으로 신호를 보내는 술식이 잠들어 있는 유적이 공격당했을 때 이 정도는 예상해야 했다.

    ‘어쩌면 초조해서 외면했을지도 모르지.’

    한시라도 빨리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백두산 방어선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으니, 오히려 초조해져서 공격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보고가 누락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나한테는 잘된 일이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점 중심에 착지했다. 근처에 있던 인베이더들이 한발 늦게 반응했지만 이미 현준의 손에는 지옥참마도가 들려 있었다.

    “폭풍검.”

    차분하게 시동어를 내뱉으며 지옥참마도를 휘두르자 거리를 좁혀 온 인베이더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멀리 있는 이들은 이기어검으로 도살자 단검을 날려 보내 처리했다.

    -주인아, 저 건물 안에서 마력 반응이 느껴진다. 생명체는 없고 억제기가 저기 있는 것 같은데…….

    ‘방어 병력은 전멸한 건가?’

    현준은 기척 감지를 끌어 올렸지만 지옥참마도의 말대로 건물 안에서 생명체 특유의 마력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현준은 중세 시대의 요새 같은 모양새를 한 건물 안으로 차분히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대로 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대신,

    -그어어어!

    검은 갑옷을 입은 데스나이트가 있었다. 침략사령부의 가호를 받은 것인지 일반적인 데스나이트와 달리 SS급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준의 상대가 될 리는 없었다.

    나름대로 자신 있게 매복 중이었던 모양이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아아앗!

    휘둘러진 지옥참마도에 데스나이트가 토막 났다. 언데드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족속이라고는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 차이가 있으면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흩어진 데스나이트의 잔해를 넘어 건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보통 이런 곳에 뭔가가 숨겨진 곳이 있다면 그건 지하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랬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희미한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하, 지하에 있다.

    지옥참마도의 말을 들으며 지하실로 내려갔다.

    “빙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앞에 거대한 검은 마정석이 꽂혀 있는 정체불명의 장치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차원 동맹에서 말한 억제기인 것 같았다.

    억제기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법은 레비앙에게 들었다.

    동력원이 되는 검은 마정석을 제거하면 된다고 했었다.

    “이거, 굳이 파괴할 필요는 없겠지?”

    현준은 검은 마정석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른 검은 마정석에 비해 크기가 거대했다.

    억제기로 사용 중이라고는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저장 중인 마력이 많을 것 같은 모습이다.

    ‘이걸 가져가면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아공간 주머니가 있으니까, 일단 가져가 보는 게 좋지 않겠나?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현준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그의 말에 동의했다.

    분해가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고정 장치 몇 개를 부수자 검은 마정석이 쉽게 떨어져 나오면서 억제기의 기능이 정지했다.

    검은 마정석의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지만,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여 악몽급 신격에 오른 현준에게는 그저 장난감 수준에 불과했다.

    억제기를 파괴한 것 외에도 특대 검은 마정석을 얻게 되어서 그런지 돌아가는 길은 멀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 * *

    “이건 쓸 수 있습니다.”

    레비앙이 특대 검은 마정석을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현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남은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자세히 살펴봐야 알 것 같지만, 일반적인 검은 마정석보다는 훨씬 많은 마력이 남아 있을 것 같군요.”

    조만간에 이걸 사용해서 군단을 소환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조금 비효율적이라도 영구 소환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회성 소환은 마력 면에서 효율적이지만 군세가 주둔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많은 수를 소환해놓고서도 다음 전투에 활용할 수 없다.

    ‘적절하게 조절해가면서 쓰는 게 좋겠지.’

    지속되는 전투로 검은 마정석의 수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가 남아 있었다.

    특대 검은 마정석은 아공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현준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지하실 구석의 신호기가 반응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레비앙이 신호기를 향해 달려갔다.

    술식을 한 차례 점검한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 좌표로,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누군지 알 것 같다.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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