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66화 (166/217)
  • # 166

    49장 대격변(5)

    “허억, 허억…….”

    입 밖으로 거친 숨결이 터져 나왔다.

    오른쪽 진형으로 파고들면서 지휘관을 처치하는 것과 동시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체감상으로는 5시간 이상 흐른 것 같았다.

    지쳤다.

    지옥참마도의 흡혈로 마력을 회복하고는 있었지만 체력이 문제였다.

    SSS급 헌터라고 해서 체력이 무한하지는 않았다.

    특히 전투력 수준이 높은 적들을 상대하면 체력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었지만 적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부터 상륙선 하나가 추가로 더 합류하면서 5천의 병력을 더 쏟아냈다.

    전생의 방에서 키운 정신력이 없었다면 현준은 이미 체력의 고갈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주인, 이렇게 마력을 많이 소모하면 흡혈로 보충하는 속도가 못 따라간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적들의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마력의 소모도 커졌다.

    지옥참마도의 흡혈로 인한 마력 흡수에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침략사령부의 인베이더들은 교묘하게도 마력을 얼마 보유하지 않은 솔저들을 먼저 내보내서 체력과 마력의 지속적인 소모를 유도했다.

    “적이 너무 많아! 마력을 아끼다가는 죽는다!”

    현준이 날이 선 목소리로 지옥참마도에게 말했다.

    하늘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플레임이 결국 한쪽 날개를 잃은 채 지상으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단치히의 의지가 깃듭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한, 당신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추락하는 플레임을 지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 것인지 단치히의 가호가 발동되었다.

    이걸로 플레임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현준은 전투 중에 체력이 바닥나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부상이 심하면 전투가 끝나고 확실하게 쓰러진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건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은 이 전투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크윽!”

    왼팔이 창에 찔렸다. 권능까지 사용한 것인지 끔찍한 고통이 밀려 왔다.

    하지만 전생의 방에서 구른 경험이 풍부한 현준이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지옥참마도를 휘둘러 창을 내찌른 인베이더의 목을 쳤다.

    ‘적이 너무 많아.’

    벌써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럿이었고 옷은 피범벅이었다. 입고 있는 S급 방어구, ‘얼음 흉갑’도 손상이 심했다.

    “폭풍검!”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크아아악!”

    “커헉!”

    여기저기서 핏줄기가 솟구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100명이 넘는 솔저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현준은 피투성이가 되어 적의 진형을 뚫고 플레임의 곁에 도착했다.

    “혀, 형님…….”

    플레임은 인간 상태였는데 전신이 피투성이었고, 상체와 하체도 날카로운 것에 깊게 베여 절단되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상태가 말이 아니군.

    지옥참마도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현준은 플레임을 노리는 적들의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플레임이 추락한 곳이 언덕 쪽이었기 때문에 전장을 한눈에 담는 게 가능했다.

    ‘상황이 좋지 않군.’

    소환된 군단의 병력 절반 이상이 쓰러져 있었다.

    총지휘를 맡아 선봉에서 싸우고 있던 얼음 검성, 하이펠 역시도 피투성이가 되어 힘겹게 얼음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이대로는 안 돼.”

    검은 마정석을 더 써야 할 것 같았다. 아끼는 것도 좋지만 그랬다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현준은 검은 마정석을 3개 더 사용하여 소환을 한 번 더 진행했다.

    국민 무장 돌격대와 높은나무 저격 여단이 소환에 응했다.

    국민 무장 돌격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 정예화가 덜 되어 있지만 대신 소환되는 수가 많아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높은나무 저격 여단은 적의 비행 전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해 줄 수 있다.

    소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물러나고 있다?’

    두 번째 소환 이후, 공세가 약해졌다. 덕분에 플레임에게 회복 술식을 사용해 줄 여유가 생겼지만 갑작스러운 전술의 변화에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베이더…….”

    솔저들이 차례대로 물러나고 검은 제복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언제나 침략사령부의 선봉에서 싸우는 ‘인베이더’들이었다.

    ‘SSS급만 3명이라…… 많이도 몰려왔네…….’

    SS급까지 합치면 16명이었다. 적지 않은 수였다.

    ‘부대 단위로 내려온 건가?’

    현준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레비앙은 차원 균열이 불안정해서 당분간 부대 단위의 대규모 침략은 없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지만, 마지막에 차원 균열을 억지로 여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덧붙였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이동 중에 절반 이상의 병력이 차원에 표류하는 미아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했었다.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구를 점령해야겠다는 건가?’

    아니면 99만 전생의 의지를 이어받은 현준을 하루라도 빨리 제거해서 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었다.

    데우스는 99만 전생의 가호가 함께하는 환생이야말로 강대한 세력을 가진 침략사령부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현준을 죽이기 위해 침략사령부의 전투부대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억지로 차원 이동을 해도 말이 안 되는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 버텼군, 적격자여.”

    “격이 떨어지는 잔챙이들을 상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의 최후는 우리가 장식해 줄 테니까.”

    어느새 인베이더들이 무기를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창과 칼날의 끝이 현준에게 향했다. 일부는 마법에 주력할 생각인지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양측은 서로에게 마력을 흘려 보내며 탐색적을 펼쳤다.

    위협적인 기세를 띤 마력이 허공에서 충돌하면서 작은 파편이 튀었다.

    일반인에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초월의 경계를 넘은 현준과 인베이더들의 눈에는 보였다.

    노골적인 탐색전이 계속 이어졌다. 겨우 3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체감상으로는 3시간이 넘는 것 같았다.

    “놈은 지쳤다.”

    “쳐라.”

    인베이더들이 먼저 움직였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친 절반, 나머지 절반은 단거리 공간 이동으로 현준의 전후좌우를 장악했다.

    “속박되어라!”

    “얼어붙어라!”

    권능이 쏟아졌다. 원거리 지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태프를 든 이들이 마법까지 사용했다. 마력 강화의 권능까지 더해지자 SSS급 수준의 대마법이 동료 인베이더들을 피해 정확히 현준의 급소를 노렸다.

    권능을 피하는 것만 해도 벅차다. SSS급 대마법 2개까지 회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질드레의 마력이 마법 술식을 침식합니다. 어두운 진리의 이름으로 마력의 강제 해산을 명령합니다.

    현준을 노렸던 단일 SSS급 대마법 2개가 허공에서 마력 단위로 흩어졌다.

    “제기랄!”

    그리고 현준은 욕설을 내뱉었다. SSS급 대마법이라서 그런지 파괴에 소모된 마력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전투가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적들의 수준 또한 약하지 않았다. 마력의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대마법이 파괴되었다고?”

    “멈추지 마라! 공격!”

    인베이더들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그나마 무력이 부족한 SS급 인베이더들이 가장 먼저 피를 보았다. 3명이 피를 쏟으며 물러났고 1명은 머리통이 날아갔다.

    SS급의 인베이더들이 도륙당하는 동안 SSS급 인베이더 셋은 10m 정도 거리를 벌리고 현준의 동작을 분석했다.

    그들 중에는 공격지휘관을 맡고 있는 일리나도 있었다. 뭔가를 발견한 것인지 현준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내가 그 기술을 쓸게요. 교란을 부탁합니다.”

    일리나의 말에 부하 인베이더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준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이번에는 현준이 먼저 움직였다. 동시에 SSS급 인베이더 둘도 좌우로 흩어지며 권능을 사용했다.

    ‘보인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

    “잊어라!”

    일리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현준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짧은 순간이지만 싸우는 방법을 ‘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전투 중에는 그 찰나의 순간도 치명적이다.

    “이런…… 개 같은…….”

    망각의 권능이라니, 이건 반칙이야.

    “컥?”

    뒤늦게 접근한 마력의 존재에 아차 싶은 순간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극심한 고통이 쏟아졌다.

    어느새 좌측으로 접근한 다른 인베이더가 대검을 휘둘러 현준의 왼팔을 잘라냈다.

    이것이 힘의 차이인가? SSS급의 격이라는 건가? 동급인 블라디미르를 이겼다고 해서 너무 방심한 모양이다.

    ‘남은 마력이 얼마 없다…… 이걸로는 여기 있는 적들을 전부 처리할 수 없어.’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돼. 데우스의 가호를 사용할 때다.’

    자연 발생이 될 경우 마력 소모가 크지 않지만 그걸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데우스의 가호는 발동 조건이 명확하지 않았다. 차라리 남은 마력 대부분을 소모하여 강제적으로 데우스의 가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데우스의 가호는 운명에 대한 간섭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이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거라고 현준은 생각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준은 회피와 방어를 포기하고 모든 마력을 끌어모았다.

    “포기한 것이냐!”

    “죽여라!”

    인베이더들은 현준이 포기한 줄 알고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달려들었다.

    “지금부터 나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마지막 마력 한 방울까지.

    -절실한 요청에 따라,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간섭합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주신격의 12전생 중 한 명에게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 순간.

    소모한 마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 현준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마력의 기둥이 하늘로 솟구치자 구름이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무, 물러나라!”

    인베이더들 또한 현준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읽고 거리를 벌렸다.

    -광기의 전신, 아레스가 당신의 옆에서 함께 싸우기를 희망합니다. 응하시겠습니까?

    이걸 기다렸다. 현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기의 전신, 아레스가 당신에게 강림합니다. 신격이 몸에 깃드는 것으로 인해 모든 부상과 소모된 체력 및 마력이 회복됩니다. 전신의 의지가 일시적으로 당신을 신격화시킵니다.

    하늘에서 강대한 마력의 빛줄기가 현준에게 내려꽂혔다. 충만한 마력은 충족감을 넘어서 고통을 가져다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이 꺾였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꿋꿋히 서서,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현준이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전신에게 맞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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