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48장 SSS급 헌터 강현준(2)
남미의 필드 진입 계획이 세워지고 출발을 이틀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출입 허가가 나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한민국의 다이아몬드 티어 길드 몇 군데에서 동행 요청이 들어왔다.
허가가 나온 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UN에서도 기밀 자료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 입수 자체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다이아몬드 티어 길드들이 왜 그러는지는 궁금했다.
‘한국에 던전도 충분할 텐데, 왜 굳이 위험한 필드까지 가려고 하는 거지……?’
마정석이 목적이라면 청탁을 넣으면서까지 필드에 진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최근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생성되는 던전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국내 던전 경쟁이 치열해졌고, 해외로 나갈 여유가 되는 최상위 길드들부터 새롭게 마정석을 얻을 수 있는 ‘필드’로 시선을 돌린 것 같습니다.”
마침 자리에 있던 태민이 설명했다.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레비앙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레비앙. 네가 볼 때는 어때? 이게 긍정적인 변화인가?”
일반적으로 생성되는 던전의 수가 적어지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준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레비앙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자료가 부족해서 확답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는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
“제가 있던 차원에도 던전이 존재했습니다. 제가 설명했었지요? 던전은 침략의 선봉이었다고.”
레비앙의 물음에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분명 그렇게 말했지.”
“지금 이곳은 제가 있던 차원과 같은 단계를 밟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던전은 침략의 선봉, 균열을 여는 데 필요하지만, 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봉지휘부가 세워지고 2단계가 시작되면, 비효율적인 던전 생성은 줄어들게 됩니다. 침략사령부의 자원도 무한한 건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더 효율적으로 균열을 열 수 있는 수단이 확보되었으니, 기존의 비효율적인 방법을 폐기한다는 건가?
“그 2단계가 설마…….”
“예, 바로 필드의 생성입니다.”
이미 남미에 필드가 펼쳐졌다. 침략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럼, 필드를 완전히 토벌할 필요가 있다는 거네?”
“예.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레이드 게이트에서 소환되는 마수의 수가 적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많은 수가 소환된다는 건 분명하니까요.”
“그럼…… 3단계는?”
“바로 본대가 오지는 않을 겁니다. 본대의 규모를 받아낼 정도로 큰 차원 균열이 열리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침략사령부 본대의 전투력은 아직 정확하게 가늠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은 그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마, 분견대가 먼저 상륙할 겁니다. 최악의 경우, 하나의 전투 부대가 내려올 수도 있지만, 현재 진행 상태와 차원 균열의 크기로 볼 때 정말 무리하지 않으면 힘든 수준입니다.”
레비앙은 전투 부대 하나가 상륙하는 건 발생할 확률이 낮은 최악의 수라고 말했지만, 현준은 그런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현준의 시선이 태민에게 향했다.
“남미행을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 내일 출발합시다. 일정 조정해 주세요.”
“예. 길드장님. 바로 조정하겠습니다.”
태민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태블릿 PC를 꺼내 현준의 일정을 조율했다. 중요한 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수정은 쉬웠다.
“끝났습니다. 내일 바로 남미 대륙으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소진이 누나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괜히 미리부터 걱정하시니까.”
“예, 알겠습니다.”
내일이 되면 어차피 알게 될 텐데, 미리부터 사서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소진이 그런 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현준은 그녀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병력은 어떻게 준비를 하는 게 좋겠습니까?”
“최소한으로 하죠. 주 수행원도 플레임이랑 레비앙이면 충분합니다.”
두 사람은 SS급의 실력자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남미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인원도 최소한으로 하는 이유가 자리를 비운 동안 길드 사무소 단지가 공격을 받을 때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유사시에는 친위대나 무한의 군단을 소환하면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병력으로 이동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다음 날, 현준은 플레임, 그리고 레비앙과 함께 공중항모에 올랐다. 승무원들은 최소 인원으로 편성되었고 별도의 전투원들은 탑승하지 않았다.
소진에게는 따로 알리지 않았다. 공중항모가 비행장에서 이륙하면 눈치채고 서운하게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륙하겠습니다.”
현준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레비앙은 고정되어 있는 술식에 마력을 주입했다.
술식 마법진이 빛을 내뿜어내면서 공중항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마도학자답게 술식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현준은 질드레를 통해 관련 지식을 배웠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진짜 전문가가 술식 마법진을 조정해서 그런지 공중항모의 움직임도 더욱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보고타로 가자.”
남미 대륙의 대부분은 마수들이 지배하는 ‘필드’가 되어 있었지만, 콜롬비아를 포함한 북부의 소수 국가들은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었다.
필드가 북미로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연합 토벌대가 주둔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했다.
“비행은 제가 맡겠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시지요.”
“부탁할게.”
레비앙이 공중항모 조종을 맡게 되면서 휴식 시간이 생겼다. 현준은 함교 근처에 마련되어 있는 개인실로 들어가 영상 통신 장비를 켰다.
이윽고 모니터에 에릭의 얼굴이 나타났다.
“위원장님. 지금 콜롬비아 보고타로 가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출발하셨군요.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위원회의 병력 동원 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얼마 전에 만났을 때 현준은 에릭에게 침략사령부의 위협과 그들을 조기에 진압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었다.
에릭도 대부분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 같았고 UN 위원회의 병력 동원을 추진해보겠다고 했었다.
-위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출입 허가를 승인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지만 대규모 병력 동원은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드’까지 생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정부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에릭이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각국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오면 SSS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에릭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에는 기대를 걸어 보고 싶었지만.
-미국의 사정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더 좋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지금 남미 대륙에 거대한 필드가 형성된 것 때문에 미국 내부의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아마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어도 공격에 편성할 병력이 없을 겁니다.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듯했다.
“위원장님. 남미의 ‘필드’를 방치하면 안 됩니다.”
-저도 필드가 위협적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몇 고위층은 던전 생성이 줄어들고 있는 현시점에서 지속적으로 마정석을 수급할 수 있는 일종의 채굴장으로 보고 있어요.
에릭의 말에 현준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위층이 돈만 밝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당장은 좋은 소식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계속 부탁하겠습니다.”
-강현준 위원의 부탁인데,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영상 통신이 끝났다. 현준은 술병을 꺼내 술잔을 절반쯤 채우고 입가로 가져갔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뿐, 고민을 해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침략사령부의 위협은 점차 선명해질 뿐만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대책이 떠오르지 않으니까.
* * *
제 13침략군 소속 281번 부대의 책임 지휘관을 맡고 있는 6급 인베이더, 로스칼은 제 13침략군단장, 인저블의 호출을 받고 급히 부관과 함께 군단지휘선으로 향했다.
“군단장님께서…… 직접 호출할 줄이야…….”
로스칼은 불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마음속으로 턱 걸려 오는 문제가 몇 가지 있었기 때문에 좀처럼 쉽게 안정할 수 없었다.
“부관. 이번에 13침략군단장님께서 무슨 일로 날 불렀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균열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륙을 시도하여 다수의 병력을 잃은 것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게 문제였나…….”
로스칼이 부관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동정이 군단지휘선에 착함했다. 문이 열리자 마중 나온 군단지휘부 소속의 인베이더가 보였다.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트롤’ 종족이었다.
“13침략군단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가겠다. 부관은 여기서 대기하라.”
“예, 알겠습니다.”
인베이더의 안내를 받아, 13침략군단장, 인저블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긴장을 애써 떨쳐 내고서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3침략군단장, 인저블 경을 뵙습니다! 281번 부대 책임 지휘관! 로스칼이 부름에 응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번뜩였다. 인저블이 고개를 들어 올린 것이었다.
차가운 시선이 닿는 것을 느낀 로스칼은 몸을 살짝 떨었다. 시선에서 살기가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로스칼 경.”
“예. 침략군단장님. 하명하십시오.”
“적격자에 대해 조금 전에 보고 받았다.”
인저블의 말에 로스칼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지금까지 공적을 독차지하기 위해 적격자, 강현준의 무력을 축소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기에 처치하지 못하고 이렇게 일이 커져 버린 것이었다.
“왜 적격자의 성장 속도를 은폐했지?”
날카로운 질문에 로스칼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왜 그랬는지 짐작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귀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저블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로스칼도 281번 부대 책임 지휘관으로서 보고 들은 것이 있었기에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 실수를 반드시 만회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실패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 실패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 어떤 피해를 입어도 상관없으니, 적격자를 제거하라.”
“모든 것은 침략사령부의 뜻대로! 침략사령관님! 만세!”
로스칼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차원 동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저블이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다시 이동정으로 복귀한 로스칼은 부관의 옆에 앉으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책임 지휘관님……?”
“부관. 준비해라. 지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