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24화 (124/217)

# 124

37장 불길한 징조(2)

-어둠의 불꽃에 휩싸여 죽어라!

플레임의 앞에 생성된 마법진이 검은 화염을 토해냈다.

“끼에에에엑!”

“쿠어어어어!”

엘더 가고일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추락했다. A급 마수 수십 마리를 일격에 정리하는 모습은 흑염룡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끝이 없군!

흑염을 쏟아내서 한 무리를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수가 남아 있었다.

마치 날파리 떼처럼 플레임의 주위를 맴돌며 화염을 토해냈지만, 현준에게 닿지는 않았다.

-형님. 이제 노원구입니다.

플레임의 말에 현준은 지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대한 게이트가 보였다. 그것을 중심으로 다수의 마력 반응이 확인되었다.

전투가 한창인지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게이트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접근할 수 있다면 노원구를 불바다로 만든 레이드 상황을 순식간에 끝낼 자신이 있었지만.

-역장 결계 때문에 공중에서의 접근이 힘듭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데?”

-구조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내려줘.”

플레임이 지상을 향해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엘더 가고일들이 앞을 막아섰지만, 저돌적인 흑염룡을 저지하기에는 무리였다.

쿠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용의 몸이 착지했다. 현준이 지옥참마도를 뽑으며 뛰어내리자 플레임 또한 인간의 형체를 갖췄다.

-A급 열다섯. B급 여섯.

지옥참마도가 마수 무리의 접근을 알렸다.

쿵! 쿵! 쿵!

“골렘이네.”

A급 마수, 아이언 골렘과 B급의 스톤 골렘의 등장이었다. 동급의 마수 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골렘 계열이었지만 현준은 여유로웠다.

“형님! 저 하찮은 창조물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플레임이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든가.”

실전에서 플레임의 능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 현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하하하! 타올라라!”

플레임이 광적인 웃음과 함께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자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던 골렘들이 일제히 검은 화염에 휩싸였다.

골렘의 몸을 구성하는 암석이 박살 나고 강철이 녹아내렸다.

“형님! 어떻습니까?”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달려오는 플레임. 다 큰 남자만 아니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강하네.’

하늘에서 비행 마수들을 상대할 때도 그렇고, 무력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다.

그가 본신의 힘을 가지고 제대로 소환되었다면 굴복시키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훌륭해.”

“하하하! 감사합니다!”

칭찬이 기분 좋은 모양. 첫 소환수다. 마음 같아서는 더 신경을 써주고 싶지만 구조 신호까지 들어온 상황이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가자.”

“예! 형님!”

시간이 없으니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구조 신호는 레이드 게이트 근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수들의 저항도 강해졌다.

“플레임.”

“예, 형님.”

“하늘을 맡기겠다. 정리해라.”

적들의 진형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난전을 유도하는 스타일의 현준에게는 플레임의 검은 화염이 조금 거슬렸다.

그래서 그는 플레임을 아예 하늘로 보내버리기로 했다. 이게 더 효율이 좋을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형님!”

“내가 신호탄 쏘면 바로 날아오고.”

“예! 형님!”

본체로 변한 플레임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현준은 지옥참마도를 뽑아 든 채 전방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흩뿌렸다.

또다시 웨이브가 몰려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중무장한 오크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봉은 오크 검성인가…….’

S급의 수는 다섯. 무리의 규모는 300. 현준은 땅을 박차고 전방을 향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커, 커헉!”

지옥참마도가 선봉에 있던 오크 검성의 몸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의 곁에 있던 다른 오크 검성 둘이 무기를 겨눴을 땐 이미 현준은 그곳에 없었다.

“제사장!”

“알고 있다!”

오크 제사장이 주술을 펼쳤다. A급 마수, 오크 전쟁 군주들을 학살하고 있던 현준의 몸에 녹색의 마력이 엉겨 붙었다.

‘마력 속박인가? 고위 주술이군.’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이기어검.”

굳이 마력 방출이나 질드레의 가호를 사용해 주술 술식을 파괴할 필요도 없었다.

시동어를 내뱉기 무섭게 검집에서 빠져나온 도살자 단검이 오크 제사장의 목에 꽂혔다.

“끄르르르륵!”

“죽어라! 인간!”

피 끓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오크 제사장을 뛰어넘어 달려오는 두 마리의 오크 검성.

하지만 현준의 몸을 속박하고 있는 고등 주술은 사라진 뒤였다.

“늦어!”

“으악!”

휘둘러진 지옥참마도가 오크 검성의 목을 쳤다. S급 마수 중에서도 하위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일격을 버티지 못했다.

뒤이어 달려드는 다른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300이 넘는 오크 무리가 전멸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 SS급 헌터라는 괴물 같은 이름에 어울리는 기록이다.

토벌을 끝낸 현준은 단말기를 꺼내 구조 신호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가깝다.’

전속으로 이동하면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다.

‘5분 안에 간다.’

전력을 다해 뛰었다. 웨이브가 끝난 직후라서 그런지 마수 무리와 조우하지 않았고 구조 신호가 발생한 지점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다고?”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력 반응도 일단은 느껴지지 않는군.

지옥참마도가 덧붙였다. 현준은 날카로운 시선을 흩뿌렸다. 그는 곧 구조 신호 단말기 하나를 발견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단말기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구조 신호를 남기고 전멸했다면 시체나 전투 흔적이라도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주변은 무너진 건물 잔해들을 제외하면 레이드 영역 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주인. 느낌이 좋지 않다.

지옥참마도가 말했다. ‘함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순간!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 은신? 대체 어디서…….’

하사신의 가호가 위험을 경고했으니 암살자가 근처에 있거나 이미 살수를 펼친 게 분명하다.

0.01초,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눈동자는 쉬지 않고 움직이며 주변을 훑었다.

‘대체 어디서…….’

-주인!

지옥참마도의 경고에 본능적으로 몸이 옆으로 움직였다. 왼쪽 어깨를 꿰뚫고 튀어나온 검은 연기는 한참을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

“위, 위험했다…….”

반응이 늦었다면 심장이 관통당했을 정도의 일격이었다. 완전 은신의 보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SS급 헌터인 현준이 제때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암습이었다.

하사신의 가호 덕분에 미리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심장을 내어줬을 것이다.

‘최소 SS급 상위다.’

SS급 중위 수준까지는 무리 없이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상위부터는 레벨이 다르다.

왼쪽 어깨에 심각한 관통상을 입었지만, 현준의 입가에선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이겼어.’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어이, 암령.”

현준은 최소 SS급으로 평가받는 타락한 영웅의 혼이자 마수인 암령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너는 두 가지 실수를 했어. 하나는 기습 후에 바로 은신 상태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력을 일으켰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듀렌달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찬란한 광휘가 정의로운 검에 깃듭니다.

동시에 모든 마력을 운용하여 신체를 ‘강화’했다. 질드레의 지식 덕분에 술식의 이해도가 높아서 어렵지 않게 신체를 강화할 수 있었다.

-데우스의 절대적인 의지가 운명에 간섭합니다. 신체 강화가 통상 3배의 효율을 발휘합니다.

“나를 일격에 죽이지 못한 것이다.”

폭발적인 마력의 유동에 암령은 당황하여 급히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를 보며 현준은 씨익 웃었다.

“늦었어.”

모든 마력을 집중시킨 상태로 땅을 박찼다. 일순간에 초음속을 돌파하면서 소닉 붐이 터졌다.

암령이 전투태세를 갖췄을 땐 이미 지옥참마도가 그의 가슴팍을 꿰뚫고 있었다.

-……!

암령의 얼굴 또한 칠흑으로 물들어 있어서 표정을 살필 수 없었지만 필히 허망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일격에 ‘핵’이 파괴된 암령은 검은 가루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주인. 이런 비장의 카드를 숨겨놓고 있었던 건가? 대단하군.

“자주 쓸 만한 기술은 아니야. 운이 좋았어. 솔직히 이 정도로 고효율이 나올 줄은 몰랐어.”

현준은 솔직하게 말했다. 마정석은 어차피 회수반이 루팅할 거니까 놔둔 채 주변을 살피려는 찰나.

-인간의 몸으로 초음속을 돌파했습니다. 섬광의 창기병이 관심을 보입니다.

또 누군가 깨어났지만, 이제는 익숙해졌기 때문에 현준은 큰 반응 없이 지옥참마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마력 반응 느껴져?”

지옥참마도는 생체 반응과 마력 반응의 탐지 능력이 현준보다 조금 더 뛰어났다.

-희미하지만 마력 반응이 느껴진다. 살아 있군.

마력 탐지를 방해하던 암령이 사라지면서 숨죽이고 있던 마력 반응이 감지된 모양.

“안내해.”

-내비게이션 취급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협조하도록 하지.

지옥참마도의 말에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츤데레라니깐.

-전방 500m 앞에서 우회전.

안내받은 곳에 도착했다. 반쯤 무너진 3층 상가 건물이었는데 입구가 무너져 있어서 치울 필요가 있었다. 귀찮은 표정을 감추고 잔해를 치웠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아득히 초월한 SS급 헌터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잔해를 치우기 무섭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헌터 여럿이 눈에 보였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회복계 헌터가 전멸하거나 마력이 바닥난 것인지 죄다 피투성이였으며 팔이나 다리 한쪽이 없는 자도 있었다.

“혀, 형님…….”

그중에는 한석도 있었다. 다른 헌터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지만 멀쩡하다고 하기는 힘든 모습.

찢어진 녹색 로브 사이로 깊은 상처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회복계 헌터의 지원이 필요한 모습이었다.

현준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단말기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여긴 게이트와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지원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플래티넘 티어 길드 2곳과 함께 공격대에 편성되었습니다. 레이드 게이트 근처까지 수월하게 전진한다 싶었는데 SS급 수준의 암령에게 기습을 받았습니다. S급 헌터 2명을 포함한 30여 명의 공격대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희는 암령이 구조 신호 단말기를 조작하는 동안 간신히…….”

한석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도망쳤다는 사실이 분하고 부끄러운 것이다.

“레이드 게이트는 분명 근처에 있다는 거네요?”

“예. 형님. 그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암령이…….”

“암령은 처리했습니다. 안심해요.”

“여, 역시 형님이십니다!”

한석이 감탄했다.

‘게이트 닫아야 하는데…….’

그러나 레이드 영역, 그것도 마수들이 가장 극성적으로 날뛴다는 게이트 근처에 한석과 에이스 팀원들을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플레임을 불러야겠다.’

비행이 가능한 플레임이라면 한석과 생존자들을 무사히 저지선 너머로 데려가 줄 수 있을 것이다.

생존자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플레임이 본체로 변한다면 충분히 이송이 가능할 정도. 현준은 밖으로 나가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흑염룡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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