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123화 (123/217)

# 123

37장 불길한 징조(1)

제 13침략군 소속 281번 부대 책임 지휘관, 로스칼은 부관으로부터 12급 인베이더 하렌의 전사 소식을 전달받았다.

“적격자의 마력이 감지되고 반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12급 인베이더가 당했다는 말이냐?”

로스칼이 혐오스러운 촉수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외지에 파견해서 버리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하렌의 소속이 변하지는 않는다.

휘하의 인베이더를 큰 성과도 없이 잃었다는 사실이 로스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죄송합니…… 커헉!”

촉수가 부관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그는 붉은 피를 내뱉으며 쓰러졌다.

“똑바로 서라, 부관. 어째서 지원을 보내지 않았지?”

날카로운 질타에 부관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입이 달라붙었나? 왜 말을 못 하지?”

“죄, 죄송합니다. 균열이 불안정해서 차원 관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게이트라고도 불리는 차원 관문은 균열을 이용한다. 균열만 안정되어 있다면 다수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소수의 이동만 가능하다.

균열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섣불리 다수가 이동하다가는 차원 폭풍에 휩쓸려 대부분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관의 판단은 옳았지만 로스칼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부관은 아직도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인지하고 있습니다.”

“‘적격자’가 나타났고 인저블 군단장님께서는 내게 관련된 전권을 일임하셨지. 부관, 자네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건가?”

부관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을 해도 로스칼을 진정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

“내 운명이 여기에 걸려 있다는 말이다.”

로스칼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물들었다. 적격자를 사살한다면 군단 직속 간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적격자를 처리하지 못하고 키운다면?

‘좌천으로 끝나지 않는다.’

식은땀이 흘렀다. 전생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적격자’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수준이다.

시스템을 이루는 전생들은 모두 침략사령부에 의해 멸망한 곳의 강자들. 그 원한은 고스란히 적격자에게 전달되어 침략사령부를 적대하게 만들었다.

“적격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침략사령부 최대의 적은 ‘차원 동맹’이 아니라 ‘적격자’다. 적어도 로스칼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구에 병력을 보내서 선봉지휘부를 세워라.”

“책임 지휘관님. 균열이 불안정해서 9할 이상의 병력 손실이 예상됩니다.”

“적격자만 사살하면 병력 손실 따위는 문제없을 거다.”

“채, 책임 지휘관님…….”

부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확실할 수 있었다. 눈앞의 촉수 괴물이 미친 게 분명하다는 것을.

* * *

쉐이드 출신으로 친위대장의 직위까지 오른 S급 전투계 헌터, 사혈. 현준은 그에게 플레임의 상식 및 개념 탑재를 위한 교육을 맡겼다.

“황제 폐하께서 내게 ‘특명’을 내리셨다. 나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보름달이 뜬 밤하늘 아래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중2병 감성을 자극할 정도였지만 사혈, 본인은 진지했다.

“절대로 황제 폐하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이건 내 사명이다.”

궁서체. 현준이 이 모습을 봤다면 친위대 술식의 위력에 박수를 쳤을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사혈의 눈이 빛났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획이 완성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실행뿐.

“문제는 플레임을 찾는 것이군.”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어둠 속에서 플레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 보고 있었던 건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불을 발로 거하게 찰 만한 상황을 들킨 것이었지만 사혈은 현준에 대한 충성심을 제외하면 감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플레임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보냈다.

“물론이다. 보름달을 향해 다짐하는 그 모습은 정말 멋졌다.”

“황제 폐하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동감한다. 나 또한 형님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플레임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바로 시작해도 되겠군.”

“아아. 물론이다.”

뭔가 통한 것일까? 두 사람은 결의에 찬 표정을 한 채 어딘가로 향했다.

“일단 드라마부터 시작하지.”

현대 사회에 대해 배우려면 드라마나 인터넷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혈이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흘러 12월도 끝나고 새해가 밝았다.

“지인들 불러서 식사나 같이할까요?”

새해 해돋이는 같이 보러 가지 못하더라도 모여서 식사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야.”

소진도 미소를 지으며 찬성했고 새해 첫 만찬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수에게 초대장이 전송되었고 마침내 만찬 당일이 되었다.

“제가 1등인가 보네요.”

개인 헬기를 타고 진아가 먼저 도착했다.

“형님께서 이렇게 초대해 주신 건 오랜만이군.”

“흠!”

한석과 태식, 그리고 선우도 도착했다. 정식으로 초대된 외부인은 이렇게 전부였고 나머지는 레이스 길드의 식구들이었다.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한석 씨도 별일 없었죠?”

“실은 얼마 전에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좋은 술을 하나 가져왔지요.”

일본어가 적힌 나무 보관함을 들어 올리며 한석이 말했다. 이 시기에 일본을 갔다고?

“일본의 상황은 어때요?”

“빠르게 안정되고 있습니다. 도쿄 쪽을 다녀왔는데, 다행히 예전 분위기를 찾았더군요.”

“아키하바라?”

끄덕.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이 된 한석을 보며 현준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하바라’라는 지명이 나온 이상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

“다들 앉아요.”

주방 지휘는 소진이 맞았다. 그녀는 현준이 학생일 때 가끔 도시락을 챙겨줄 정도로 요리를 즐겨 했었다.

여러 요리가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김장 김치가 담긴 접시가 식탁마다 올라왔는데, 그걸 본 플레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얼마 전에 사혈이 교육용으로 보여준 드라마에서 본 충격적인 장면이 떠오른 모양이다.

“김치 맛있겠네요.”

현준이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어 들자 플레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형님.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진 기억 탓인지 김치로 싸대기라도 때릴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재밌는 반응에 현준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먹어.”

플레임의 입에 김치를 넣어주었다. 그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진아였다.

‘부럽다.’

여러모로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만찬이 시작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한석이 가져온 사케를 오픈하려는 찰나. 태민과 한석, 그리고 태식과 선우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벨소리를 내뱉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중요한 전화인 것 같습니다.”

4명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들은 5분의 시간이 지나서 거의 동시에 돌아왔다.

“길드장님. 서울에서 적어도 4곳 이상의 대규모 레이드 발생이 예측되었다고 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저희도 준비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민이 먼저 말했다.

“4개 이상의 레이드 예보가 발생했다는 말입니까?”

현준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레이드 상황이 예측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예측된 게 4곳이라면 실제로 발생하는 레이드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상황국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비 인원을 남겨두려는 것이다.

“한석 씨도 같은 전화를 받았어요?”

“예. 형님. 레이드 상황국에서 긴급 지원 요청을 보냈습니다. 조건이 좋기도 하고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건 보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노원구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어서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형님.”

한석은 진심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한 뒤, 서울로 향했다. 어차피 식사는 거의 끝을 보이고 있었고 현준 역시도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대기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고용인들이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현준은 태민과 함께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의자에 앉아 TV를 켰다. 뉴스에서는 레이드 예상 지역의 대피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 중이었다.

“혈맹일까요?”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전생과의 동조율이 오르면서 침략사령부와 혈맹에 대한 적대감도 자연히 커졌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여러 면에서 인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양동 작전일 수도 있어요. 무장 경비대에 연락해서 길드 사무소 단지의 보안을 철저하게 신경 쓰라고 해두세요.”

“예, 알겠습니다.”

다행히 얼마 전에 길드 직속의 무장 경비대 편성이 끝난 상태였다. 5백 명 규모에 C급 이하이지만 전원 헌터로 구성된 최정예였다.

“추가 정보를 입수하는 대로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태민이 나가고 현준은 창가의 의자에 앉아서 밖으로 시선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태민이 들어왔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1시간 만이었다.

“노원구를 포함한 서울시 7개 지역에서 레이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현재 수도 방어를 위해 ‘신기전’을 발동했다고 합니다.”

‘신기전’은 던전 레이드로부터 수도를 지키는 방어 체계다.

“현재 오픈된 레이드 게이트의 난이도는 SS급 1개, S급 3개, A급 3개입니다. 저희 레이스 길드에는 SS급 레이드 게이트가 오픈된 노원구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노원구라면 한석 씨가 간 곳이네요.”

“예. 정규 공략팀 ‘에이스’는 현재 웨이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라고 합니다.”

“길드 주력을 소집하세요. 저는 먼저 노원구로 가겠습니다.”

말을 끝내며 습관처럼 장비 점검을 시작했다.

“노원구 상공에는 비행형 마수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헬기 이동은 위험합니다.”

“헬기보다 더 좋은 이동수단이 있죠.”

점검이 끝났다. 아공간 주머니에 잡다한 장비를 집어넣고 도살자 단검을 허리의 검집에 꽂아 넣었다.

“플레임.”

“네. 형님.”

플레임이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나타났다. 창백한 피부를 제외하면 온통 검은색이었다.

“본체로 돌아갈 수 있지?”

“크큭. 더 이상 예전의 저를 생각하지 마시길. 지금은 마력이 충분합니다.”

“좋아. 가자.”

“괜찮으시겠습니까?”

현준은 플레임과 함께 서재를 나섰다. 뒤에서 태민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렸지만, 현준은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옥상의 헬기착륙장에 도착한 두 사람. 플레임은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에 대고 손을 뻗었다. 그에게 검은 마력이 모여들었다.

“형님. 물러나세요! 지금 제 안의 흑염룡이!”

본체로 돌아가려면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참 어렵게 한다.

“형님! 어서요!”

“알았어. 빨리해.”

“그아아앗! 어둠의 힘이여!”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불필요한 캐스팅 비슷한 것이 끝나자 눈앞에 전투기 크기만 한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작네.”

-그거 실례입니다. 형님.

“미안.”

플레임의 지적에 현준은 바로 사과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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