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23장 음모의 파편(1)
특수경찰국에서 파견한 인원이 현장을 정리했고 현준과 진아 등은 태식과 만나기 위해 특수경찰국 고양 지부를 방문했다.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태식이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고양 지부에 먼저 와 있었다.
석현과 규환이 밖에서 대기하는 동안 현준은 진아와 함께 태식을 만났다.
현준은 현장에 있었던 대악마 길드의 집행부장 최근우를 넘기면서 상황을 설명했고 그것을 듣고 있던 태식은 곧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설마 대악마 길드가 연관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태식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악마 길드는 골드 티어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이었다.
“특수경찰국의 병력을 동원해서 쓸어버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지 않은가? 병력을 동원해서 쓸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현준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태식의 표정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지금 전국에서 특수경찰국의 병력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상부에서는 검은 마정석을 사용하는 세력과의 연관성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저는 이걸 양동작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태식이 말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검은 마정석을 사용하는 세력이 이미 대한민국에 깊숙이 침투했다는 게 된다.
“특수경찰국의 병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네요.”
“강현준 씨의 말이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특수경찰국은 병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송태식 씨의 표정을 보니까 다른 문제도 있는 것 같은데…….”
현준의 말에 태식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강현준 씨는 예리하시군요. 맞습니다. 병력 부족 말고도 공식적인 명분이 부족합니다.”
아직 그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었다. 즉, 레이드를 강제 유도하려고 했던 혐의를 공식화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대악마 길드에서 먼저 공격을 해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아뇨,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들어둔 보험이 있었다. 다른 말로는 히든카드라고도 하지.
‘미안하지만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야.’
현준은 악마처럼 사악하게 웃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수원에 위치한 대악마 길드 사무소 앞.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무장 경비들의 시야에 가녀린 체형의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붉은 로브를 입은 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떨고 있었다.
“으아아아앙!”
한참 동안 주변을 방황하던 그녀는 이내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무장 경비들과 함께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집행부 헌터는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부, 부길드장님……!”
실종되었던 부길드장 주혜리가 돌아온 것이었다. 이 사실은 곧장 길드장 주형근에게 보고되었고 그는 한걸음에 1층까지 달려 내려왔다.
“혜, 혜리야!”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그토록 찾아왔던 여동생의 얼굴이었다.
형근은 전력을 다해 달려가 혜리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보는 여동생이다. 그녀도 반가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형근의 품속에서 벗어나려고 발악을 하는 게 아닌가?
형근은 충격을 받으면서도 혜리가 다칠까 싶은 마음에 두 손을 풀고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끔찍한 충격은 끝나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제,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끄으윽!”
환자처럼 경련하며 몸을 뒤트는 그 모습에 형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따라나온 집행부 헌터들도 형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나 말을 아꼈다.
“히, 히히. 그, 그만…… 제발…… 아, 아픈 건 시, 싫어.”
하나밖에 없는 팔을 휘저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혜리의 모습에 형근은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것만 같았다.
“길드장님. 부길드장님의 로브에 뭔가 붙어 있습니다.”
혜리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있던 집행부 헌터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근은 감정을 추스르며 혜리의 로브를 살폈다. 집행부 헌터의 말대로 뭔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떼서 눈앞으로 가져왔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드나?]
형근은 이성을 잃었다.
“당자아앙! 동원 가능한 병력을 소집해라! 레이스 길드를 친다!”
쪽지의 구석에 레이스 길드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그 문장은 형근이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하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졌다.
“지, 집행부를 소집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레이스 길드를 공격한다니…… 그게 또 무슨 말입니까?”
집행부 소속의 간부 한 명이 반발했다. 길드 사무소를 공격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형근은 벌떡 일어나서는 반발한 간부를 향해 다가갔다.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냐?”
“그, 그게 아니라…… 커헉!”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어느새 형근의 오른손에는 대검이 들려 있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지금 당장 동원 가능한 모든 집행부 병력을 소집해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장 경비들도 동원해라.”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겁니다.”
다른 집행부 간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신도 목이 날아갈까 싶은 마음에 반발은 소극적이었다.
“상관없다. 무장 경비를 앞에 세우고 길드 집행부가 뒤에 선다. 그러면 도망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도 않을 겁니다.”
“괜찮다. 어차피 방패로 쓸 생각이었으니까. 살고 싶으면 알아서 하겠지.”
형근을 말을 끝맺으면서 대검을 어깨에 걸쳤다.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면 당장에라도 목을 베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집행부 헌터들과 무장 경비들이 동원되는 데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집된 무장경비들의 수는 20명 정도였고 집행부 헌터들의 수는 70명 정도였다.
대악마 길드 집행부에는 더 많은 집행부 헌터들이 소속되어 있었지만 많은 인원이 외근 중이었다.
그나마 주변에 있는 이들을 임무를 중단시키고 복귀시켜서 이 정도였다.
“좋군.”
적지 않은 인원이 모였다. 형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강제로 동원된 무장 경비들에게서 전투력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서 싸울 테니 최소한의 방패 역할은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이대로 전진한다.”
형근은 무장 경비들의 바로 뒤쪽 대열에 충성심이 가장 강한 집행부 헌터들을 배치했다.
그들은 길드장인 주형근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이들이었는데, 최근 들어 어떤 의식을 치르면서 인간성을 상실할 정도로 잔혹해졌다.
“살려주십시오! 제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제, 제발!”
무장 경비 2명이 소총을 내려놓고 무릎까지 꿇었지만, 의식을 치른 집행부 헌터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검과 창으로 무장 경비들의 목을 베고 심장을 꿰뚫었다.
“커, 커헉!”
“허억!”
두 사람은 저항도 못 하고 쓰러져 피를 쏟아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다.”
“멈추지 마라.”
서슬 퍼런 목소리로 말하며 무기를 겨누는 집행부 헌터들. 무장 경비들은 자동소총을 앞으로 겨눈 채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스 길드 사무소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며 30분 조금 넘게 걷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거슬린다. 모두 죽여.”
의식을 치르면서 인간성을 상실한 집행부 헌터들에게 형근이 명령을 내렸다. 그들이 칼을 뽑으며 튀어나가 시민들을 죽였다.
“꺄아아악!”
“사, 살려 줘!”
시민 여럿이 목숨을 잃은 뒤에서야 구경꾼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행진은 계속되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던 집행부 헌터가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모퉁이를 돌기 무섭게 나타난 레이스 길드 사무소는 입구를 지키는 무장 경비조차 없었으며 모든 층에 불도 꺼져 있었다.
심지어 지나다니는 시민들조차 없었다.
“하, 함정인가……?”
“함정이라도 상관없다! 건물을 박살내 버려!”
형근은 이미 이성을 상실했다. 그가 말도 되지 않는 지시를 내리는 사이, 장갑차 10여 대가 나타나 퇴로를 모두 차단했다.
“기, 길드장님!”
“함정에 걸린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1시간 넘게 걸어서 이동했다. 그 정도면 공격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장 경비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집행부 헌터들 중에서도 유난히 충성심 높은 이들만 굳은 얼굴로 제자리를 지켰다.
“이 겁쟁이 새끼들이? 당장 공격하란 말이다!”
거친 목소리로 외치며 형근이 대검을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오러 참격이 건물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방의 건물들의 창문이 열리고 총구가 튀어나왔다. 대부분 자동소총이었지만 거치형 기관총과 로켓포도 있었다.
“사격!”
총격이 시작되었다. 총성과 함께 오렌지 색의 빛줄기가 주형근과 부하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악!”
“방어 마법을 펼쳐라!”
“반격해!”
마법계 헌터들이 마법으로 반격했다. 무장 경비들도 허무하게 죽기는 싫었는지 위로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위치가 너무 안 좋았다.
불과 10초 만에 무장 경비들은 전멸했고 집행부 헌터들도 여럿이 쓰러졌다.
최소 C급 이상의 헌터들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중화기까지 동원한 집중 총격을 버티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 건 또 아니었다.
“플라이!”
“윈드 커터!”
“라이트닝 스피어!”
하늘 위로 마법계 헌터 여럿이 솟구치면서 마법으로 반격했다. 회복계 헌터가 부상자들을 회복시켰고 전투계 헌터들도 봉쇄된 출입구를 박살 내고 건물 안으로 진입하여 레이스 측의 무장 경비들을 제압했다.
“대악마 측의 무장 경비들은 전멸했습니다.”
태민이 보고했다. 현준은 길드 사무소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대악마 길드 집행부 소속의 헌터들도 3분의 1이 전투 불가능 상태지만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측 무장 경비들과 특수경찰관들의 피해도 늘고 있습니다.”
주형근은 폭군이었지만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그는 이성을 잃었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탁월한 지휘로 상황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합니다. 이규환 씨한테 신호를 보내세요. 집행부가 나설 차례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규환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윽고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이 움직였다.
“감히 길드장님을 노리다니! 가서 모두 죽여라!”
처음 합류했을 때와 달리 지금의 규환에게서는 현준을 향한 진한 충성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합류하자 다시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대악마 길드의 병력이 10명 남짓 남았을 때였다.
“혈맹의 힘을 사용해라! 허가한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형근이 외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검은 마력……?”
규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대악마 길드의 다른 헌터들의 몸에서도 검은 마력이 흘러나왔다.
“마, 막아!”
심상치 않은 기세를 읽은 규환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늦었다.”
형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