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18장 검은 의도(3)
“이런 미친!”
“회수!”
한석은 욕설을 내뱉었고 현준은 도살자 단검을 회수했다. 이기어검이라고는 하지만 단검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표면이 갑각류의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오러 아머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강력한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방어력이 보통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었다.
“인간이 마수로 변했다고?”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믿기 힘들었다. 한석은 충격받은 표정이었지만 현준은 침착했다.
“진정하세요. 일단 처리하고 특수경찰국에 넘기면 해결될 일입니다.”
“차분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군요. 죄송합니다.”
“이제 집중하세요.”
현준은 짧게 핀잔을 주고는 땅을 박찼다. 한석이 캐스팅과 함께 마력을 끌어 올리는 동안 그는 순식간에 괴인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 힘만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운명이겠지요?
괴인이 한때 인간의 팔이었던 집게 다리를 들어 올리자 검은 불꽃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현준은 오러를 머금은 방패를 들어 올려 몸을 보호하며 괴인에게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이럴 수가!
불꽃의 폭풍을 돌파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인지 괴인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묻어 나왔다.
현준은 검을 휘둘러 괴인의 왼쪽 집게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끄아아아악! 이게 무슨 짓입니까!
괴인의 ‘피’로 보이는 꺼림칙한 체액을 흩뿌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플라이!”
한석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파이어 캐논!”
커다란 화염구가 괴인을 노렸다.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 남은 집게 다리를 흔들자 검은 마력의 창이 생성되어 쏘아졌다.
화염구를 꿰뚫고 계속해서 날아간 그것은 한석의 몸을 꿰뚫었다.
“크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한석이 추락했다. 피격 직전에 몸을 비틀며 회피를 시도한 덕분에 흉부가 아니라 어깨가 관통당하는 데 그쳤다.
A급 헌터인 그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운 마법 공격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뒤편에서 한석이 외쳤다. 현준은 걱정을 떨쳐내고는 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아악!
괴인도 집게 다리에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여 맞섰지만, 현준을 검술에서 밀어붙일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상체에 검이 꽂히자 괴인은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현준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다시 뽑아 들어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방패를 휘둘러 괴인의 안면을 타격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괴인의 흉측한 머리통이 박살 났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머리를 잃은 괴인은 비틀거리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죽었나……?”
혼잣말과 함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었지만 머리가 박살 났는데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괴인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다고 생각한 현준은 곧바로 한석에게 달려갔다.
어깨를 관통한 검은 마력의 창은 소멸했지만, 상처는 깊어 보였다.
“괜찮습니까?”
“지혈은 해두었습니다.”
마법계 헌터가 만능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 중 하나가 지혈 마법이었다.
회복 계열의 마법은 배울 수 없지만, 지혈만 할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특수경찰국에 연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석의 물음에 현준은 고개를 저었다.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이 정도로 난리가 났으니 벌써 신고가 접수되었을 겁니다.”
특수경찰이 부패했다고는 하지만 일단 신고를 받으면 출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현준이 말을 끝맺은 순간이었다. 괴인의 시체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시체를 집어삼켰다.
현준이 황급히 다가갔을 땐 이미 시체가 완전히 ‘소각’된 뒤였다. 혹시나 싶어서하는 마음에 다른 복면인들을 살폈지만 그들의 시체는 멀쩡했다.
“강현준 씨. 저기 뭔가가 있습니다.”
현준이 복면인들의 시체를 살피는 사이에 천천히 다가온 한석이 방금 전까지 괴인의 시체가 있던 곳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곳에 마정석으로 보이는 작은 수정이 남아 있었다. 일반적인 마정석과 달리 칠흑을 머금은 검은색이었고 미약하지만, 불길한 마력이 새어 나왔다.
“검은 마정석……?”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곧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진리에 닿은 미치광이, 질드레가 눈앞에 있는 이형의 물질에 강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현준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검은 마정석을 집어 들었다.
보상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특수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현장을 벗어나야겠습니다.”
“하긴, 귀찮아지는 건 저도 질색이라서요. 저희 증언이 없더라도 특수경찰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죠.”
현준의 말에 한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경찰과 얽히면 귀찮은 일이 적지 않게 생기기 때문에 일부러 진술을 피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 있었다는 흔적은 지우는 게 좋겠지.’
마력을 끌어올려 하사신의 가호 중 하나를 발현했다.
-하사신이 사악한 계략을 시작합니다. 배후의 그림자가 당신과 관련된 흔적을 지웁니다.
검은 그림자들이 현준과 한석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 특수경찰이 도착해도 두 사람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흔적을 지운 적이 있었으니 효과만큼은 믿을 만했다.
“술이 확 깨네요.”
한석이 말했다. 현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기분 좋게 젖어 들었던 적당한 취기가 단번에 사라지고 불쾌한 감각만 남았다.
검은 마정석이 조금씩 흘리는 싸늘한 마력 탓이었다.
“최한석 씨. 일단 저희 길드 사무소로 가죠. 그게 제일 안전할 것 같습니다.”
밤이지만 무장 경비들과 소수의 집행부 헌터들이 순찰을 돌고 있으니 유사시 그들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택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소진과 동생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 같네요.”
한석도 동의했다. 두 사람은 차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팀장님! 그렇지 않아도 찾아가려고 했었습니다!”
“빨리 시동부터 걸어요.”
“아,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차에 시동을 걸었고 현준과 한석은 주변을 경계하며 뒷좌석이/(에)/ 탑승했다.
“출발하세요.”
한석의 말에 수행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이며)/ 운전대를 잡았다. 세 사람을 태운 차량이 출발했다.
레이스 길드 사무소까지는 3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기 때문에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사신이 경고했다. //그리고.//
“미행이 붙은 것 같습니다.”
한석의 수행원 역시 검은 세단 여럿이 따라붙은 걸 눈치채고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
“차량이 갖춘 무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것 같은데 대한민국에서 차량에 어떻게 무장을 탑재합니까!”
한석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좌측에 따라붙은 세단의 창문이 열리더니 길쭉한 총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시, 실드……!”
방어 마법이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총격이 시작되었다. 방어 마법은 총탄에 뚫리지 않았지만, 차량 전체를 보호하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뒷좌석과 운전석을 막는 게 전부였고 총을 든 사수는 곧 타이어로 목표를 바꿨다.
탕! 타앙!
총성이 울렸다. 연이은 총격을 버티지 못하고 타이어가 터졌다. 한석의 수행원은 당황한 마음에 급히 운전대를 옆으로 틀었다.
현준은 방패로 정면을 막고 마력으로 몸을 보호했지만 거센 충격이 몸을 휩쓰는 것을 느꼈다.
가로수와 충돌하면서 차량이 멈춰 서자 현준은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차 문을 뜯고 나왔다. S급 헌터에게 차량의 문을 뜯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간신히 빠져나온 그의 주위로 기척이 모여들었다.
‘일곱 명.’
눈동자를 움직여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3대의 검은 세단에서 7명의 남녀가 내렸다. 2명은 자동소총으로 무장했고 나머지는 C급 이상의 헌터인지 검과 창을 들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무장한 이들이 모습을 보이자 행인들은 살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주위에는 극히 일부의 구경꾼만 남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도외시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을 시작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전이 가져온 폐단이었다. 지금 당장 구경꾼들의 머릿속에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이걸 인터넷에 올려서 관심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더 강했다.
“아이고…… 머리야…….”
총탄을 막느라 충돌할 때 방어 마법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인지 뒤늦게 한석이 머리를 붙잡은 채 불타는 차량에서 몸을 빼내었다.
그의 옆에는 정신을 잃은 수행원도 함께였다. 그는 포위를 펼친 채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복면인들을 보며 화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형님을 노려?”
호형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형님이란다. 현준은 어이를 상실하여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으나 한석은…….
“제 목숨을 구해줬으니!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며 임전 태세를 갖출 뿐이었다. 아무래도 정체불명의 괴인과 전투에서 한석은 목숨을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현준은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장 악영향은 없을 것 같으니 놔둬도 될 것 같았다.
“우리들의 ‘물건’을 가지고 있지요? 좋은 말로 할 때 이쪽으로 넘겨주는 게 이로울 겁니다.”
리더로 보이는 여성이 말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다른 복면인들이 현준과 한석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검은 마정석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흉흉한 분위기로 볼 때 그걸 넘겨준다고 해도 아무 일 없이 빠져나가는 건 힘들 것 같아 보였다.
“이 새끼들이? 이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관심 없어요. 우리는 ‘물건’만 돌려받으면 됩니다.”
“무려 이번에 S급으로 승급한 레이스 길드장 강현준 님이시란 말이다!”
리더는 물론이고 복면을 쓴 이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렸다.
한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S급이라는 단어가 그들을 동요하게 만든 것이다.
“조, 조장님…….”
“S급 헌터라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짓말하고 있는 거예요. S급 헌터가 흔한 것도 아니고 여기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부하들이 두려움에 떨자 조장이라고 불린 여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기어검.”
허리춤에 걸려 있던 단검이 하늘로 떠올렸다. 마력을 주입하자 단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깃들었다.
“사, 사격!”
“실드!”
뒤늦게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은 조장이 총격을 지시했지만, 한석이 조금 더 빨랐다.
그의 방어 마법이 총탄을 막아내는 동안 현준이 이기어검으로 단검을 날려 보냈다.
“지금부터 정당방위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