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45화 (45/217)

# 45

13장 트러블 메이커(1)

소식은 전해졌다. 안데르센 길드의 집행부장을 맡은 A급 마법계 헌터 이규환은 메시지를 받기 무섭게 움직였다.

길드 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곧바로 길드장 집무실로 향했다.

“집행부장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길드장 집무실 앞을 지키고 있던 집행부 헌터가 거리를 좁혀오며 질문을 던졌다.

“길드장님은 안에 계시나?”

“예, 5분 전에 출근하셨습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오늘 길드장 안성진은 평소보다 출근이 빨랐던 모양이다.

“길드장님께서 집무실 출입을 통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조금만 기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나중에 이상한 책임지기 싫으면 지금 비켜라.”

규환의 경고에 집행부 헌터는 대답 대신 옆으로 물러났다. 그에게 있어서 규환은 직속상관이기도 했다.

“길드장님!”

규환은 노크도 없이 힘차게 문을 열었다.

가까이 붙어 있던 길드장 안성진과 여비서가 황급히 떨어졌다.

성진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고 여비서는 안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자네는 나가보게.”

“예, 길드장님.”

여비서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점검하고는 서둘러 집무실을 떠났다.

길드장이 출근하고 5분 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규환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집행부장. 이렇게 이른 아침에 노크도 없이 대체 무슨 일인가?”

재밌는 시간을 방해받은 탓일까? 성진의 목소리에서 불만이 살짝 묻어나왔다. 하지만 규환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성진이 탐욕스럽고 여자를 밝힐 뿐만 아니라 자기 사람을 챙길 줄 모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에 레이스 쪽에 보낸 팀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4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뭐라고?”

“레이스 쪽에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지시한 일이라는 걸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규환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포로로 잡은 4명을 고문해서 알아냈을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고문을 견디는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레이스 측에 뛰어난 고문 기술자가 있다면 정보의 통제를 장담할 수 없다.

“메시지? 그래…… 레이스 쪽에서 뭐라고 하던가?”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 여과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규환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포로들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집행부를 보냈다는 사실을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인정해라. 거절하면 팝콘이랑 콜라 준비하고 관 뚜껑 닫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욕설 같은 게 섞여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바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강도 높은 협박이었고 불같은 성격의 성진을 크게 자극했다.

“지금 겨우 브론즈 티어에서 놀고 있는 레이스가…… 실버에 있는 우리 ‘안데르센’을 협박하고 있는 건가?”

안데르센은 실버 티어에서도 중견급이었다.

“길드장님?”

“어이가 없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규환은 성진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 냉정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30명을 보냈지만 실패했습니다. 저희가 예상하지 못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규환의 말은 옳았지만, 잔뜩 흥분한 성진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당장 집행부 전원 소집하고 2차 공격을 준비하게나.”

“잡힌 제 부하들은 어떻게 합니까?”

흥분해서 날뛰는 성진을 보며 규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행부장. 자네가 남들보다 부하들을 아낀다는 건 알지만…… 때로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고 집행부 헌터들은 그런 일이 생기면 길드를 위해 누구보다 먼저 나서야 한다네.”

포로로 잡힌 이들을 포기하고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겠다는 뜻이다.

규환은 마음이 아팠지만, 길드장인 성진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알겠습니다. 대기 중인 집행부 헌터들을 소집하겠습니다.”

“자네,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전력을 다해야 할 때라네. 모든 임무를 중단하고 현 사안을 최우선 목표로 잡게!”

“하지만 그러면 중요한 업무 일부가 마비될 겁니다.”

티어가 높은 길드일수록 비밀이 많고 어두운 일을 많이 벌인다는 말이 있다.

안데르센은 실버 티어에서도 중견급이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벌인 일들이 많았고 그 대부분을 집행부가 처리하고 있었다.

“상관없네. 지금은 이 새끼들을 다 죽이는 게 최우선이야.”

좀처럼 화를 다스리지 성진의 모습에 규환은 고개를 저었다.

‘강현준…… 나는 너를 모르지만, 만약 이게 의도한 거라면…….’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규환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너는 정말 무서운 놈이다.’

적으로 돌리면 안 되는 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 * *

“크어어어!”

휘둘러진 검이 리자드맨 주술사의 복부를 베었다.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튀었다.

가까운 곳에 있던 리자드맨 철갑병이 괴성을 지르며 창을 내찔렀으나 현준이 들어 올린 방패에 가로막혔다.

“홀리 스피어!”

뒤편에서 소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색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창이 날아와 리자드맨 철갑병의 흉부를 꿰뚫었다.

“길드장님! 기사 하나가 그쪽으로 갑니다!”

백한수였다. 그는 A급 마수인 리자드맨 기사 둘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놓친 모양이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소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지만, 현준은 침착했다.

“제가 처리할게요.”

현준은 방패로 상체를 가린 채 리자드맨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철그럭.

소진을 향해 거리를 좁히던 리자드맨 기사는 빠르게 다가오는 현준의 기척을 감지하고는 몸을 돌렸다.

묵직한 철 갑옷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하앗!”

“크어어!”

힘찬 기합과 함께 내찌른 검이 리자드맨 기사의 검을 흘리며 파고들어 심장에 꽂혔다.

리자드맨 기사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현준은 시체에서 검을 뽑아내며 입을 열었다.

“처리!”

“여기도 처리했습니다! 하수인 전원 처치!”

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A급 마수를 일격에……?”

“역시 길드장님이야.”

뒤에서 보조하고 있던 B급 마법계 헌터 2명이 쏟아낸 감탄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현준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검을 집어넣었고, 한수는 동행한 짐꾼에게 마정석을 루팅할 것을 지시했다.

짐꾼이 마정석을 루팅하는 동안 현준과 한수를 포함한 길드 공략팀의 인원들은 음료를 마시면서 짧은 휴식을 취했다.

“루팅 끝났습니다.”

짐꾼이 보고했다.

“휴식 끝.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현준이 말했다. 공략팀의 헌터들이 다시 진형을 갖췄다.

이미 공략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스방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철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30분만 쉬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보스방 전투는 던전 공략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현준은 문을 열기 전에 공략팀 헌터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줬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30분이라는 휴식 시간은 금세 사라졌고 보스방 공략이 시작되었다.

보스는 A급 중에서도 상위 정예 마수로 분류되는 ‘리자드맨 정예 기사’였지만, 한 명도 죽지 않고 무사히 사냥했다.

2명이 상처를 입었지만, 소진의 강력한 힐 덕분에 금방 회복되었다.

그들은 보스가 쓰러지고 활성화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던전 밖으로 이동했다. A급 던전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공략이 끝났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A급 던전 공략 일정을 더 잡는 게 좋을까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A급부터는 위험도가 높아지는 만큼 드랍되는 장비나 마정석의 품질이 좋아서 길드 간의 예약 경쟁이 치열합니다. 이것도 겨우 일정을 잡은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한수의 말에 현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F급 헌터 출신이었기 때문에 상위 던전에 대한 정보를 많이 몰랐다. 최근 조사를 시작했지만, 단기간에 모든 것을 배우기에는 부족했다.

“정산 절차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주겠습니까?”

현준은 한수의 제안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호의를 받아들였다. 현준은 오늘 안데르센의 공격 문제로 특수 경찰국의 조사를 받아야 해서 바빴다.

소진도 심사에서 A급 확정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갑작스러운 각성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현준은 소진과 함께 차를 타고 길드 사무소로 돌아갔다.

소진은 간부 휴게실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현준은 길드장 집무실에서 특수 경찰국에서 보낼 조사관을 기다렸다.

조사관을 위해서 굳이 응접실까지 사용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 것이다.

[정산 및 분배가 끝났습니다. 길드장님 계좌로 입금될 금액은 13억 원입니다.]

한수의 메시지가 먼저 도착했다. 공략팀이 움직였는데, 개인에게 13억 원이 분배될 정도면 성과가 괜찮았다.

“길드장님. 특수 경찰국 조사관이 도착했습니다.”

비서실의 직원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보고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기에 현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와도 좋다는 의미의 손짓을 보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제복을 입은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특수 경찰국에서 나왔습니다. 연락은 받으셨죠?”

“네, 앉으시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조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형식적인 절차에 가까웠다.

중간에 조사관이 배후 세력으로 의심되는 곳을 묻기는 했지만, 현준은 짚이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다.

조사관의 태도로 볼 때 안데르센 길드를 지목하더라도 특수 경찰국은 제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조사는 끝났습니다. 정당방위 선정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 그리고…… 혹 생존한 이가 있으면 저희 쪽에 인도해 주시면 관련 부서로 보내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모두 사살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조사관이 떠나고 태민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제가 알아보라고 한 건 조사해 봤습니까?”

“예, 길드장님의 예상대로 누군가 특수 경찰국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던전 레이드 시대가 찾아오면서 대한민국의 치안은 심각하게 나빠졌다.

그와 함께 공권력이 힘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부패했고, 그 빈자리를 길드와 최상위 헌터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누군지는 알아냈습니까?”

현준의 물음에 태민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정보력으로는 ‘압력’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안데르센’은 아닙니다.”

“하긴, 실버 티어에서도 중견이라고는 하지만 특수 경찰국에 압력을 넣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죠.”

“최소 골드 티어 이상이 움직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길드조차 최종 배후가 아닐 겁니다. 더 거대한 흑막이 게임판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안데르센은 어떻습니까?”

“반응이 없습니다. 오히려 집행부를 소집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예의를 지켰으니…… 슬슬 잔인하게 나가야겠습니다. 포로들은 계속 입을 안 열고 있지요?”

“예, 지금까지는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었지만 이제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좋습니다. 집행부장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적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현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오늘은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집행부장도 좀 쉬어요.”

“감사합니다.”

자택으로 돌아간 현준은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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