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12장 비열한 그림자(1)
현준과 태민이 길드 사무소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길드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4층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길드장 집무실에 들어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길드장님,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알고 있어야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태민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현준이 공략을 함께했던 길드원들에게 던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함구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에 태민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정말 히든 던전이었습니까?”
B급 던전이 최종적으로 S급 최하위 판정을 받았으니 ‘히든 던전’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정예 등급의 던전 역시 공략 도중에 난이도가 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던전처럼 변동이 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워낙 희귀한 던전이기 때문에 태민은 던전 관리국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전달받고도 쉽게 믿지 못했다.
“집행부장은 히든 던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간단하게 말해서 숨겨진 보상이 있는 던전이 아닙니까? 분명 던전 관리국에서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던전 공략을 진행하는 중에 난이도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사전 조사에서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태민도 헌터였다. 던전 공략을 주로 하지는 않지만, 기초 교육도 받았고 여기저기서 듣는 정보가 있었다.
“입장할 때만 해도 B급이었던 던전이 최종적으로는 S급 최하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오면서 내사과에서 움직였다고 했죠? 제가 여기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했다. 현준은 물론이고 태민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분한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상은 뭐였습니까?”
“소진이 누나가 2차 각성을 했습니다.”
현준은 솔직하게 말했다.
태민이라면 비밀을 유지할 거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던전 관리국의 재심사를 받고 승급이 결정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니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2차 각성이라…….”
태민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당분간 자택 경호를 강화했으면 합니다. 히든 던전에서는 간혹 희귀한 장비가 드랍되는 경우도 있어서 ‘배후’ 쪽에서 공작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태민이 말했다.
“그쪽에서 먼저 움직일까요? 은밀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데…….”
“직접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고의로 소문을 흘려서 다른 비열한 세력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겠죠. 그럴 경우 간접적인 지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히든 던전에서 드랍되는 장비는 일반적인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 때문에 소문이 퍼지면 비겁하고 잔인한 수단을 써서라도 확보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믿을 만한 무장 경비 업체를 고용하겠습니다.”
던전 레이드 시대의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치안은 악화되었다.
무장 경비 업체들은 공권력의 치안이 닿지 않는 곳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였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최고를 고용하세요.”
“믿고 맡겨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집행부의 주력 헌터들 또한 길드장님의 자택 주변에 배치해 두겠습니다.”
“주력을 배치해도 되겠습니까?”
현준이 물었다.
레이스는 지금 흡수합병으로 커진 덩치를 안정화하면서 천천히 확장하는 중이었다. 그로 인해 집행부의 업무가 많아진 상태였다.
“길드장님의 주변을 안전하게 지키는 게 최우선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태민은 소진과 고아원 동생들이 납치되어 현준의 발목을 잡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경호 책임자를 새로 임명해야겠네요. 집행부장이 맡을 생각입니까?”
“제가 맡고 싶지만, 집행부의 업무가 많아져서 힘들 것 같습니다. 대신 다른 이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부하입니다.”
“그렇습니까? 일단은 얼굴을 보고 싶네요.”
“호출하겠습니다.”
태민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리고 뱀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태민의 직속 부하이자 레이스 길드 정보부장을 맡고 있는 하종서였다.
“하종서입니다.”
종서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를 보며 현준은 기억을 더듬었다.
예전에 그를 정보부장으로 임명할 때 한 번 본 적이 있는 듯했지만, 로마노프의 가호를 사용하여 진명을 확인한 기억은 없었다.
현준은 종서를 향한 시선을 고정한 채 두 눈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일순간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로마노프의 눈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절대적인 통찰을 담은 시선은 모든 존재를 꿰뚫어 봅니다.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종서의 머리 위로 진명이 떠올랐다.
[하종서 : 행동하는 그림자.]
정보부장다웠지만, 정확한 성향을 짐작하기에는 어려운 진명이었다.
“제 직속입니다. 앞으로 길드장님의 자택 경호를 지휘할 겁니다. B급 헌터고 실전 경험도 풍부합니다.”
태민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종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현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을 추구하는 태민이 직속으로 둘 정도면 실력은 믿어도 될 것이다.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공격당하는 건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태민이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치안은 좋지 않은 편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길드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게다가 레이스는 브론즈 티어 길드였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최소 실버 티어에서 공격이 들어올 것이다.
“집행부장. 공격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겁니까? 아니면 특수 경찰국에 보호를 요청한다든가…….”
“길드장님. 특수 경찰국에서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먼저 움직이게 하기에는 우리의 영향력이 부족합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권력을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나 봅니다.”
현준이 한탄하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태민과 종서가 고개를 숙였지만, 현준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마음을 먹었으니까, 조만간에 우리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로마노프의 가호를 받으면서 그와의 동조율이 올라간 영향 탓일까?
현준의 마음속에서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야망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가 될 겁니다.”
그 한마디가 태민과 종서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목소리에 알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현준조차도 몰랐지만 사실 그건 로마노프의 영향이었다. 태민과 종서의 떨리는 시선을 받으며 현준은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격이 시작되면 본보기를 보이세요. 철저하게 전멸시켜서 우리의 무력을 전국에 알리세요.”
“집행부는 전력을 다할 겁니다.”
태민이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은 마치 중세 시대의 기사 같았다. ‘맹신하는 눈먼 기사’라는 진명에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종서는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명심하세요. 이번 기회로 그 누구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 * *
똑똑똑.
“의원님, 저 집행부장입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뭔가를 읽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집행부장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곧 의원 옆에 다른 이가 있다는 걸 깨닫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께서도 계셨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회장이라고 불린 남자가 말했다. 어두운 조명 아래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오늘은 정기 보고가 있는 날이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건가?”
의원이 물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집행부장이 ‘직접’ 찾아오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정기 보고 때 얼굴을 비치거나 급하고 비밀스러운 보고가 있을 때만 일정 외에 찾아오고는 했다.
“조금 전에 던전 관리국에 심어둔 정보원한테서 긴급 보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집행부장이 이렇게 직접 찾아올 정도면 꽤 급한 정보인 것 같구먼.”
“그렇습니다, 의원님. 레이스 길드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어서 말해보게.”
레이스와 관련 있다는 말에 의원과 회장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재촉했다.
레이스는 브론즈 티어 주제에 두 사람의 계획을 방해한 길드였기 때문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얼마 전에 길드장 강현준이 포함된 길드 공략팀을 전멸시키기 위해 S급 최하위 던전의 조사 결과를 누락시켜 B급으로 만들었던 걸 기억하십니까?”
“기억난다. 그래서 레이스 길드 공략팀은 전멸하고 강현준은 죽었겠지?”
두 사람은 강현준의 죽음과 레이스의 몰락을 원했다. 하지만 집행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레이스 길드 공략팀의 피해는 전혀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S급 던전을 클리어까지 했습니다.”
단숨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집행부장. 내가 알기로는 최하위라고 해도 S급 던전은 클리어가 상당히 힘들다고 하던데……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의원이 물었다. S급 던전의 악명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는 편이었다.
동급의 헌터가 동행하는 경우에도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한민국은 던전 레이드 시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S급 던전의 던전 아웃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이 죽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S급 던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다. 최하위라고는 해도 S급 던전이 분명했습니다. 겨우 A급 한 명이 동행한 소규모 길드 공략팀이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심지어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상황이라는 말인가?”
이번에는 회장이 물었다. 집행부장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강현준의 무력이 생각 이상인 경우. 두 번째, 던전 내부에서 한 명 이상의 2차 각성자가 발생했을 경우. 마지막으로 저희가 파악하지 못한 조력자가 함께했을 경우입니다.”
“그 어떤 경우가 되어도 위험하군.”
의원의 말에 집행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호랑이 새끼들입니다.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짓밟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수면 위로 나오면 오성 그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집행부장이 강력하게 의견을 말했지만, 회장은 고개를 저으며 반대 의견을 어필했다.
“이보게.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겠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고 해서 레이스를 공격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의원은 싸늘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정보를 흘리면 돼. 레이스가 히든 던전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말이야.”
그는 인간의 탐욕을 무기로 사용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