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8장 길드전(1)
현준은 에코 길드 배후에 대한 보고를 받기 위해 레이스 길드 사무소 내에 위치한 태민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오셨습니까?”
“새로 들어온 정보라도 있습니까?”
질문을 던지자 태민은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최근 정보부에 자금을 추가로 투입해서 조사를 했지만 강현준 씨한테 보고할 만한 소득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알아낸 게 없다고 하니 씁쓸했다.
하지만 길드의 배후를 알아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만약 쉬운 일이었다면 이미 에코 길드의 배후는 그들이 다른 길드를 본격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을 때 만천하에 알려졌을 것이다.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으니까 계속 보고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부동산 업자한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바로 입주하셔도 좋다고 합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좁은 원룸과도 안녕이다.
소진과 동생들의 안전을 위해 급하게 집을 사기는 했지만 3층짜리 단독 주택을 구입한 건 개인적인 욕망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용무를 끝낸 현준은 태민의 사무실에서 나와 소진과 동생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레이스 길드 사무소 내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형아다!”
임시 숙소로 들어서기 무섭게 작은 키의 남자아이가 몸을 던져 왔다.
꽤 묵직했지만 현준은 신체 능력이 우수한 헌터였기 때문에 거뜬히 받아냈다.
“잘 지냈어?”
“응, 헌터 아저씨들이 과자도 사주고 그랬어.”
“좋았겠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남자아이는 이내 싫증이 난 것인지 현준의 손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숙소를 활보했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왔어?”
복도의 끝에 소진이 서 있었다.
“누나,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응…… 나는 괜찮아.”
“저기 비어 있는 방으로 가서 이야기하죠.”
현준이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뒤이어 소진이 들어오면서 방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야?”
소진이 물었다. 현준은 이사 계획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정말 괜찮아?”
고아원에서 집행부 헌터들의 공격을 받았던 게 여전히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인지 소진은 바로 거절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현준의 의중을 떠보았다.
“네. 3층짜리 단독 주택이니까, 불편하지는 않을 거예요.”
이미 계획은 세웠다. 레이스 길드에서 보내줄 인원과 곧 고용할 경호원들은 1층에서 지내게 하고 소진과 동생들은 2층에서, 그리고 현준 자신은 3층에서 거주할 생각이다.
“정말 같이 있어도 되는 거야?”
소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또 습격을 받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현준이 같은 집에서 지내자고 제안한 순간 안도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무인 경비 시스템이랑 경호원들도 고용할 생각이에요. 레이스 길드에서도 집행부 헌터를 보내주기로 했어요.”
“고마워. 현준아.”
그녀의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지켜준다는 한마디만 선명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아직도 그날 무수히 많은 적들의 앞을 막아섰던 현준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거예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소진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도움이 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나 약한 존재였다.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전 이만 가볼게요.”
“가지 마…….”
소진은 시계를 확인하며 방문을 열려는 현준을 붙잡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레이스 길드 사무소의 숙소는 넓었다. 현준이 자고 갈 방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태민에게 확인했는데, 다행히 그는 숙소에 비어 있는 방이 하나 더 있다고 말했다.
“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게요.”
“고마워, 현준아.”
소진은 정말 오랜만에 보조개를 드러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웃는 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소진의 옆방에서 잠을 청하려던 현준은 하사신의 경고를 듣고 황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방금 전까지 그가 누워 있던 곳에 단검 2개가 날아와 꽂혔다.
“윈드 커터.”
어둠 속에 누군가 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마법을 완성했다.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하위 마법인 파이어볼과는 차원이 다른 양이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어느새 왼손에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B급 장비, ‘원한이 깃든 방패’가 들려 있었다.
카르타고의 가호가 발현되면서 오러 실드가 펼쳐졌다. 공기를 찢으며 날아온 윈드 커터가 오러 실드와 충돌했다.
“오러 사용자?”
의외라는 목소리였다. 다시 마력이 움직이는 걸 보니 2차 공격을 위해 마법을 캐스팅하는 모양이다.
‘검을 뽑으면 늦어!’
검을 뽑는 대신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눈앞의 마법계 헌터를 향해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법계 헌터는 캐스팅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현준은 다른 일행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흐읍!”
아니나 다를까? 절제된 기합과 함께 우측에서 칼날이 목을 노려왔다.
기습을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물론 회피에서 끝나지 않았다.
콰앙!
“커헉!”
불시에 휘둘러진 방패가 습격자의 몸통을 강타했다. 굉음과 함께 습격자가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크으윽…….”
전신의 뼈가 박살 났다. 숨이 끊어지진 않았지만, 그는 신음을 흘릴 뿐 일어나지 못했다.
그제야 마법계 헌터는 캐스팅을 중단하고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전문 기술이 없어도 다루기 쉬운 소검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준이 휘두른 방패가 마법계 헌터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 위해 위에서 내리꽂히고 있었던 것이다.
“제기랄!”
하지만 늦었다. 마법계 헌터가 반응하기엔 방패가 휘둘러지는 속도가 빨랐다.
욕설과 함께 소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이미 현준의 방패는 마법계 헌터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퍼억!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졌다.
시전자가 죽으면서 인식 저하 마법이 해제된 것인지 흐릿하게 보였던 그의 겉모습을 이제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에는 로브를 걸친 모습이다.
‘다른 놈은?’
무너진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손된 건물 조각에 파묻힌 남자는 숨이 끊어진 것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현준은 그의 심장에 검을 밀어 넣는 것으로 확인 사살까지 끝낸 뒤에서야 안심했다.
방을 나온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소진이 잠들어 있는 옆방이었다.
문을 열기 무섭게 진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과 함께 잠들어 있는 소진의 목에 단검을 찌르는 암살자가 보였다.
“그 손, 치워!”
리퍼가 남긴 단검, 도살자를 꺼내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단검은 암살자의 허벅지에 꽂혔다.
“여, 옆방이 당했나?”
암살자는 공격 목표를 바꿨다. 현준은 도살자를 회수하는 대신 아공간 주머니에서 장검을 뽑아내며 정면으로 몸을 던졌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검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피어올랐다. 휘둘러진 검이 암살자의 목을 노렸다.
그는 시든밀러의 신묘한 검술을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목을 허용하고 말았다.
재빨리 뒤로 몸을 빼긴 했지만, 상처는 깊었다. 살갗이 갈라지고 피 분수가 솟구쳤다.
“크, 크흑!”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암살자의 심장을 향해 현준이 검을 내찔렀다.
푸욱!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을 관통당한 암살자가 힘없이 쓰러졌다.
현준은 그의 몸에서 검을 뽑아낸 뒤, 주변을 경계했다.
하사신의 가호까지 활성화시켜 보았지만, 다행히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목표가 아니군.’
조명등도 켜지지 않았다. 전력 장치가 제압당한 것이다.
전력 장치를 제압할 정도라면 움직인 암살자가 고작 3명일 리가 없다.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없다는 건 다른 목표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다른 목표는 누구지?
‘설마 길드장인가?’
소진이라면 몰라도 현준이 오늘 여기에 있다는 건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에코 길드나 그 배후에서도 알아낼 길이 없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일 짜증 나는 방해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현준이 목표가 아니라면 레이스 길드장에 대한 보복성 테러일 확률이 높았다.
‘김태민은 전투 중인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소진과 동생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현준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특수 경찰국에 신고하는 거지.’
스마트폰으로 특수 경찰국에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던전 레이드 사태로 치안이 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기습을 눈치채고 그 내용을 신고했으니 에코 길드의 경우와는 다르게 신속하게 출동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여기를 지킨다.’
오러가 깃든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며 다짐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지키고 있는 이 복도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 * *
간밤의 습격으로 레이스 길드는 난리가 났다.
현준이 신고를 한 덕분에 근처를 순찰하고 있던 특수 경찰관들이 일찍 도착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레이스 길드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특수 경찰의 조사가 끝나기 무섭게 현준은 태민을 찾아갔다. 마침 그도 조사를 끝내고 나오고 있었다.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태민은 초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길드장님께서 사망하셨습니다.”
태민의 목소리에서 깊은 슬픔이 묻어 나왔다. 그는 레이스 길드장과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길드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음 길드장은 누가 이어받는 겁니까?”
가능하면 그나마 친분이 있는 태민이 레이스 길드장을 이어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실은 저희 길드 쪽에서도 생각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게 누굽니까?”
말하는 걸보니 태민, 자신은 아닌 것 같았다.
현준은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어 눈살을 살짝 찌푸렸으나 다음 순간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강현준 씨. 저희 레이스의 길드장이 되어주십시오! 길드 내부의 간부, 전원이 찬성했습니다! 반대 의견은 없었습니다! 부디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레이스가 생각한 마지막 희망, 그것은 강현준이라는 헌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