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6장 지키지 못한 자(1)
“주형석 팀장님과 연락이 안 됩니다.”
다급한 노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는 집행부의 부하 헌터에게 향하는 성민의 시선이 차가웠다.
“지금 뭐라고 했어?”
“큭!”
성민이 대뜸 살기를 내뿜자 부하 헌터는 신음을 삼키며 비틀거렸다. A급 헌터의 살기는 고작 C급에 불과한 그가 감당할 만한 게 아니었다.
“후우!”
성민은 깊은 한숨과 함께 살기를 거두었다. 인제 와서 화풀이를 해봤자 해결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연락이 끊긴 건 주형석 팀장뿐이야? 다른 애들은?”
레이스 길드와의 비공식 길드전에 동원된 집행부 헌터들에 대해 묻는 것이다. 성민은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했지만, 부하 헌터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연락이 안 됩니다.”
“전부?”
“예…… 그렇습니다.”
부하 헌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객이 요구한 물건의 확보 때문에 1군 대신 2군을 동원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한데…….’
성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에코 길드의 정보부가 파악한 내용에 의하면 레이스 길드의 집행부 1군은 에코 길드의 2.5군 정도의 전력이라고 판단되었다.
에코 길드는 실버 승급을 앞두고 있는 길드였다. 그들의 집행부 2군은 웬만한 브론즈 티어 길드의 1군보다 강력한 걸로 유명했다.
“레이스 길드에서 이번에 용병 하나 영입했다고 했지?”
“예, 정보부에서 보고한 적 있습니다.”
레이스 길드와 달리 에코 길드의 눈과 귀는 사방에 퍼져 있다.
“그 용병 새끼가 누군지 한번 알아봐. 할 수 있지?”
“저희 길드의 정보력이면 금방 알아낼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부하 헌터를 보며 성민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뒤에 계신 분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지? 똑바로 처리해.”
“아, 알겠습니다!”
* * *
비공식 길드전 한 번으로 1억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얻었다.
목숨을 걸기는 했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금액을 보수로 받아버린 것이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애들이 좋아하겠네.’
고아원의 동생들에게 선물을 잔뜩 사줄 생각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어렸을 때 고아원에 버려졌다.
그래서 피로 이어진 가족의 행방을 몰랐지만 고아원의 식구들과는 진짜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다.
지친 몸이었지만 자취방에 들러 샤워를 끝마친 그는 옷을 갈아입고 마트를 찾았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과자를 잔뜩 산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낸 고아원을 방문했다.
“현준이니?”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환한 미소와 함께 현준을 반겨주는 여성이 있었다.
어깨에 가볍게 닿는 웨이브 진 갈색의 머리칼에 앙증맞은 보조개가 인상적인 그녀를 보며 현준도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원장님은요?”
그녀의 이름은 한소진으로 같은 고아원 출신이다. 또한, C급 회복계 헌터이기도 했다.
“요즘 몸이 안 좋으셔서, 내가 돕고 있었어.”
“던전 공략도 바쁠 텐데…….”
“괜찮아.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소진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현준은 고아원 일을 돕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잘 알고 있었다.
6명 정도밖에 없는 작은 규모였지만 일거리는 생각보다 적지 않다.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고마워.”
소진은 싱긋 눈웃음을 보냈다.
“그런데 그건 뭐야?”
그녀의 시선은 현준이 들고 있는 장바구니로 향했다.
“아…… 애들 선물 좀 사 왔어요. 과자랑 이것저것.”
“정말? 다들 좋아하겠다. 그런데, 우리 현준이 무리한 건 아니지?”
“괜찮아요. 이번에 C급으로 승급하기도 했고, 보수도 후하게 받았어요.”
“C급 헌터가 된 거야? 우리 현준이 대견하네.”
“운이 좋았어요.”
대답과 함께 소진의 옆에 장바구니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너…….”
소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긴 했지만,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 것이다.
“현준아. 위험한 일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가득 묻어나왔다.
“괜찮아요. 누나 별일 없을 거예요.”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웃어 보였다.
“마당에 애들 불러줄래요?”
“하아, 알았어.”
소진은 고개를 저으며 원장실을 나섰다. 그녀는 언제나 현준의 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리광을 받아주고는 했었다.
“별일 없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장난감과 과자 등을 챙겨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현준이 형이다!”
“와아! 로봇이다!”
아이들은 현준보다 장난감에 더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이렇게 맑은 웃음소리를 얼마 만에 듣는 건지 모르겠다.
입가에는 자연히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하사신이 배후의 존재를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가호가 발현되었다. 하사신이 뭔가를 경고한 것이다. 즐겁게 웃고 있던 현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현준아?”
“엎드려요!”
아공간 주머니에서 방패를 꺼내 들고 소진의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굉음과 함께 방패를 통해 충격이 전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정철로 만들어진 B급 방패의 표면에 검은 그을음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
오러 실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B급 방패가 손상을 입을 정도라면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마법계 헌터가 동원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카르타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카르타고의 정의로운 방패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위대한 수호가 함께하는 한,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카르타고가 응답했다. 오러가 방패를 뒤덮었다.
“시든밀러!”
다시 한번 마력을 끌어 올렸다.
-시든밀러의 용맹한 검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정의로운 용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검은 부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시든밀러도 함께했다. 오러가 칼날에 깃들었다.
“서포트할게.”
그제야 소진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고 양손에 마력을 집중하며 아이들을 보호했다.
회복계지만 C급의 헌터이니, 약간의 무력은 갖추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내가 지켜야 해…….’
이를 악물고 방패와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사실상 전투원은 혼자다. 혼자서 거대한 위협에 맞서야만 했다.
‘제발 나에게 힘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어딘가로 속삭임을 보냈다. 부디 적들의 수가 적기를 기원하며.
“오러 사용자였나? 최소 B급의 실력자라는 정보부의 보고가 사실이었네.”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정보부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바람은 무참히 짓밟혔고 기도는 무시당했다. 은신의 장막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헌터들의 수는.
‘C급 헌터 하나 잡는다고 20명을 동원해? 이 미친 새끼들…….’
더군다나 그들 중 절반 정도가 B급 헌터로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전투계와 마법계, 보조계와 회복계까지 고루 갖춘 완벽한 공격조였다.
“C급 헌터 강현준. 네 정보는 이미 다 파악했다.”
현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힘을 얻었다고 돈 좀 만지려고 했나 본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지?”
“찌질하게 굴지 말고 와라. 다 죽여주마.”
“오호라? 우리 길드 팀 하나 썰었다고 아주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네? 걔들은 2군이고 우리는 1군이다.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혀가 왜 이렇게 길어! 닥치고 와라!”
언성을 높이자 팀장으로 보이는 헌터는 한 차례 고개를 젓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공격 신호였다. 현준은 단검을 뽑아서 던졌다. 그와 에코 길드의 집행부 헌터들 사이, 중간 지점에 단검이 꽂혔다.
“지옥문이다. 넘으면 살아서 돌아가진 못할 거다.”
“뭐라는 거야? 죽여.”
그들은 경고를 무시했다. 그렇다면 죽일 수밖에.
“헤이스트!”
버프를 담은 마력이 퍼졌다.
“파이어볼!”
“윈드 커터!”
뒤이어 공격 마법과 함께 전투계 헌터들이 전진했다. 현준은 방패로 공격 마법을 방어하며 앞으로 총탄처럼 튀어 나갔다.
“무, 무슨…….
콰앙!
“커헉!”
굉음과 함께 선두의 헌터가 도로에 처박혔다. 방패치기에 당한 것이었다. 시멘트 도로에 금이 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당연히 공격을 허용한 헌터는 멀쩡한 꼴이 아니었다. 전신의 뼈가 박살 나는 치명상을 입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미, 미친!”
일격에 1군 집행부 헌터 한 명이 당했다.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었다. 다른 헌터들은 황급히 현준과 거리를 벌렸고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화염구가 포물선을 그렸다.
“이런 개새끼들이!”
현준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비열하게도 뒤에 있는 소진과 아이들을 노리는 것이다.
‘늦어!’
달려가기엔 늦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짧은 고민 끝에 힘든 결정을 내렸다. 방패를 포기하기로.
“하앗!”
기합과 함께 힘차게 던진 방패가 화염구를 요격했다.
“제법이군! 하지만 이걸로 너는 방패가 없다!”
노림수였다. 알고 있었지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분한 마음에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지만, 후회는 없다.
‘카르타고’의 이점을 잃었지만, 아직 ‘시든밀러’가 남아 있었다.
“놈은 방패를 잃었다. 가서 죽여.”
“쳐라!”
팀장이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헌터들이 굶주린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었다.
현준은 시든밀러에게서 배운 고등 검술을 펼쳤다. 수준 높은 전투 기술이었지만 적의 실력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수도 많았다.
“크아악!”
“커허억!”
오러 블레이드에 당한 헌터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공격에 동원된 헌터의 절반이 차가운 시멘트 위에 쓰러졌지만, 현준의 상태도 심각했다.
“히, 힐!”
소진의 힐이 몸에 닿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C급 회복계 헌터의 마력으로 치료하기엔 상처가 너무 깊었다.
“제, 제발…… 제바아알!”
희미한 백색의 빛이 피어올랐지만, 현준의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자 소진은 애원하듯 절규하며 마력을 더욱 끌어 올렸지만 소용없었다.
“쿨럭!”
마력 과부하로 인해 피를 토해내면서도, 손을 덜덜덜 떨면서도 소진은 현준을 향한 힐을 멈추지 않았다.
전신을 감싸는 따스한 마음을 느끼며 현준은 차가운 시선을 흩뿌렸다.
‘11명 남았나……?’
모두 강자들이다.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리퍼어어어어!”
남은 마력을 최대한 긁어모았다. 마지막 찬스다.
-살육의 피가 잠들어 있던 리퍼의 살의를 깨웠습니다. 치명적인 살기의 일부가 해방됩니다.
쿠웅!
“크, 크윽?”
“이게 무슨!”
“끝이다.”
일순간 방출된 살기는 헌터들의 몸을 잠깐이나마 마비시켰다. 그 틈에 현준은 그들의 진형으로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크아악!”
3명의 목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죽여!”
“윈드 커터!”
바람의 칼날이 옆구리를 스치자 붉은 피가 튀었다. 팀장 녀석이 내찌른 검이 복부에 꽂혔다. 다른 이가 휘두른 도끼가 허벅지를 베었다.
“커, 커헉…….”
시야가 흐릿해졌다.
털썩.
차갑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켜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목소리 대신 검붉은 핏물뿐이다.
“힐! 힐!”
꺼져가는 의식으로 소진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녀는 쓰러진 현준을 향해 쉬지 않고 힐을 쏟아붓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해졌고 입가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직 현준을 살려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힐을 쏟아부었지만, 현준의 의식은 점차 사라진다.
-반드시 지켜내라.
누군가의 목소리.
-싸워라. 소중한 사람을 지켜라. 후회를 만들지 마라.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힘을 주겠다.
그 말을 듣는 걸 마지막으로 의식이 끊겼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꿈속이었다.
눈앞에는 피로 얼룩진 나무문이 있었다. 중앙에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번에도 읽을 수 있었다.
[지키지 못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