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만 전생이 날 도와줘-9화 (9/217)

# 9

3장 죽고 싶으면 와라(1)

꿈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렸을 땐 좁은 원룸에 누워 있었다.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꽤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인지 벌써 저녁 7시였다.

‘하루가 다 날아갔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짧은 한숨과 함께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벨소리가 울렸다.

[관리국 꼰대.]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니, 전화를 건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친구인 안석규였다.

현준은 그와 술을 마시기로 한 날이 오늘이라는 것을 깨닫고 스마트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오늘 한잔하기로 했는데, 까먹었냐?

“아냐. 지금 챙기고 있었어.”

-장소는 알지? 삼겹살이랑 소주. 우리가 늘 가는 거기.

“20분 안에 간다.”

-야, 너 챙기고 있었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빠르게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원룸을 나서려는 찰나에 그의 시선에 헌터가 되면서 지급 받았던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하사신의 충고가 떠올랐다.

현준은 황급히 단검을 챙겼다. 헌터의 무기 휴대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단검 하나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룸을 나선 그는 약속 장소를 향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정확히 15분 만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석규의 모습이 보였다.

“왔냐?”

“많이 기다렸어?”

“15분 정도.”

“얼마 안 기다렸네. 들어가자.”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현준을 보며 석규는 고개를 한 차례 저은 뒤 뒤따랐다.

주문한 삼겹살이 나오자 석규가 먼저 집게를 집어 들었다.

“내가 구울게. 너 고기 잘 못 굽잖아.”

뜨거운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먹기 좋게 익어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이번에 C급 헌터 된 거, 축하한다.”

석규가 먼저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헌터과도 아니잖아.”

“지금 너 던전 관리국 안에서 유명인사야. 짐꾼으로 따라간 F급 헌터가 C급 정예 던전에서 혼자 생환하는 일이 흔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C급 이상 던전에서 F급 헌터가 ‘혼자’ 생환한 경우는 별로 없어. 그나마 있는 경우도 2차 각성자들이야. 대표적인 경우가 지금은 SS급 헌터인 한진우고.”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의 SS급 헌터인 한진우에 대해서는 현준도 알고 있었다.

그도 각성 후, F급 헌터 판정을 받았고 B급 던전에 짐꾼으로 따라갔다가 혼자 생환했다. 그것도 상처 하나 없이.

“결국 2차 각성으로 판정되고 던전 관리국에서는 스카웃하려 했지만 이미 한진우는 당시 플래티넘 티어였던 아수라 길드에 들어갔다더라.”

“지금은 아수라 길드가 다이아몬드 티어지?”

“그래. 들리는 소문으로는 한진우 그놈도 여자 밝히고 성격도 더럽다는데, 아수라 길드 안 나오는 거 보면 케어를 잘 해주나 봐.”

‘아수라’는 현재 대한민국 길드 랭킹 1위였다.

“던전 관리국에서 연락 안 왔냐? 전속 헌터 스카웃 제안 들어왔을 텐데?”

던전 관리국의 전속 헌터가 되면 귀찮은 일도 생기지만, 고정적인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마정석을 매각할 때 정산이 유리해진다.

강력한 헌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곧 권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 기관인 던전 관리국조차 전속 헌터의 수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거 안 왔는데…….”

“어이가 없네. 그쪽에 팀장 한 명이 낙하산이라서 완전 트롤이래. 원래 너 정도면 연락이 와야 정상이거든?”

석규는 답답한 마음에 소주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가득 찬 소주를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은 그는 현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볼 때 2차 각성이다. 최소 S급 헌터가 될 만한 재목이라고. 던전 관리국에서는 널 이렇게 취급하면 안 돼. C급 헌터가 뭐냐? 한진우는 생환하고 바로 A급 달았어.”

현준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석규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어찌 보면 2차 각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가까운 친구에게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석규가 평소보다 빨리 취해버리는 바람에 술자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너, 너는 잘 될 거야…… 이제 C급 헌터가 되었으니까, 돈 모아서 아공간도 사고 해야지.”

C급 헌터들은 작은 아공간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구입하려면 5천만 원이라는 자금이 필요하지만, 결코 비싼 값은 아니었다.

“이제부터라도 잘 되어야지. 네가 어떤 고생을 했는데…….”

횡설수설이었지만 진심은 전해졌다. 현준은 오랜 친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윽고 도착한 택시를 타고 석규가 떠났다.

“나도 가서 쉬어야겠다.”

많이 잤지만, 여전히 피곤했다. 원룸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잠들고 싶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 조금은 으슥하지만 직선으로 이어지는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하사신의 음험한 웃음소리가 당신에게 위험을 경고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기척이 느껴졌다.

“나와라.”

밤공기가 얼어붙을 정도의 싸늘한 목소리였다.

그러자 현준의 앞과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헌터가 분명했다.

‘한 명은 B급이고, 나머지 하나는 C급 정도인가?’

하사신의 가호 덕분일까? 저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깐 우리랑 같이 가줘야겠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현준도 반말을 내뱉었다.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 경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너 하나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몰라.”

“그래, 죽기 싫으면 얌전히 따라와라. 여기서 칼빵 맞으면 개죽음이야. 목격자도 없어.”

거친 태도를 보니, 어느 길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집행부 소속의 헌터들이 분명했다.

“목격자가 없다고?”

“……!”

“무, 무슨 살기가 이렇게……!”

현준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 순간 터져 나오는 깊은 살기에 두 헌터는 본능적으로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났다.

“너무 좋은데? 지금 니 새끼들 다 칼빵 맞고 시체가 되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거 아냐?”

뽑아 든 단검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경철아! 무기 뽑아! 이거 괴물 새끼다!”

집행부의 B급 헌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의 C급 헌터, 강현준은 위험하다!

그는 같은 집행부의 부하 헌터에게 위험을 경고하며 날카로운 단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아, 알겠습니다! 형님!”

경철이라고 불린 C급 헌터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헌터들이 사용하는 작은 아공간에서 거대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온다!’

경철이 먼저 움직였다. 대인전 경험이 많은 집행부 헌터답게 현준의 품으로 파고드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현준은 그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단검을 처음 잡아 본 초보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란한 움직임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경철아!”

잘린 팔이 붉은 피를 흩뿌리며 시멘트 바닥에 나뒹굴었다. 경철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현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너무 느려.”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뜩인 순간 경철의 목에 단검이 꽂혔다. 죽어가는 경철의 눈동자에서 허망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겨, 경철이가…… 뭐, 이런…….”

B급 헌터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F급이었다가 갓 C급이 된 헌터가 동급의 헌터를 압도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금도 현준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평범한 C급 헌터의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대인전에 특화된 암살자의 전투 자세였다.

‘이, 이건 괴물이다…….’

그는 B급 헌터였지만 눈앞의 C급 헌터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도망칠까? 아니야, 집행부 사전에 도망은 없다. 게다가 실전 경험은 내가 더 위일 터!’

그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단검을 든 양손을 들어 올렸다. 곧은 시선은 현준에게 향했다.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현준이 다가오려는 순간 먼저 땅을 박차고 그에게 몸을 던졌다.

“쉽지는 않을 거다!”

기합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접근해 오는 B급 헌터를 향해 현준은 무심한 시선을 던지며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B급 헌터답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태에서 기형적으로 몸을 꺾었다.

뼈가 부러졌지만 현준이 휘두른 단검을 피할 수 있었다.

“어떠냐!”

“너도 느려.”

현준이 단검을 들고 있는 팔을 비틀었다. 순식간에 그 끝이 B급 헌터의 왼쪽 어깨를 노렸다.

완전히 피했다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은 계산되어 있었다.

“크아아악!”

왼쪽 어깨에 단검이 꽂혔다. B급 헌터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 순간 현준은 꽂아 넣은 단검을 비틀면서 힘을 주었다.

B급 헌터의 몸이 현준을 향해 끌려 왔다. 그 순간 현준의 손이 B급 헌터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그는 숨이 막혀오는 상황에서도 두 자루의 단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반격을 꾀했지만, 현준이 조금 더 빨랐다.

어느새 뽑혀 나온 단검이 현란한 칼춤을 추자 B급 헌터의 양팔에 힘줄이 끊어지면서 두 자루의 단검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다.

“누가 보냈냐?”

“내가, 그걸 말할 것 같냐?”

“그럼 죽어.”

현준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날카로운 단검을 B급 헌터의 심장에 밀어 넣었다.

“커, 커헉!”

그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이내 힘없이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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