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93
일요일이 되고 수현은 이른 오전에 연희를 배웅하고 서래마을로 향했다. 빨리 헤어지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업적인 부분으로 작은 외할아버지들께 조언을 듣기 위해 점심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
수현은 조용한 고급빌라촌을 걸었다. 새소리 정도와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소리를 제외하면 잔잔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집값을 생각하면 매수가 꺼려지는 곳이었지만, 자신의 취향은 강남에서는 차라리 이쪽이 맞았다. 그는 잠시 돈을 벌고 강남 아파트를 매수할지 아니면 그냥 집은 이런 곳에 마련할지를 고민했다. 행복한 고민이었다.
수현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작은 할아버지 댁에 도착해 경비원의 확인을 지나쳐 집으로 올라갔다.
“우리 수현이 왔구나!”
작은 외할머니가 밝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잘 지내셨어요?”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작은 외할머니를 안았다.
“노인네들이야, 뭐 항상 똑같다. 종종 할미네 집에 이렇게 놀러와. 얼굴 보니까 좋다!”
“알겠습니다. 아예 이사를 올까요?”
수현이 넉살 좋게 말하자, 작은 외할머니는 그러면 더할 나위가 없다며 웃으셨다.
“서재로 들어가 봐라. 삼촌이랑 다 거기 있다. 네가 대단한 일을 했나 보더라.”
작은 외할머니는 내심 내용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이따가 말씀 드릴게요.”
수현이 가볍게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점심은 아직이지?”
“네. 그러고 보니 맛있는 냄새 나는데요?”
수현이 주방 쪽을 살짝 기웃거리며 말했다.
“할미가 너 온다고 솜씨 좀 발휘했다. 이야기 나누고 나와서 점심 같이 먹자.”
“네. 그럼 들어가보겠습니다.”
“오냐~.”
수현은 몸을 돌려 서재로 향했다. 고급스러운 원목 문을 열자, 세 사람의눈이 그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수현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래! 들어와라! 녀석...참...”
둘째 작은 외할아버지는 그를 보자마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현이 너 저거 진짜야?”
정현삼촌은 그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하하. 네. 놀라셨죠?”
수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 놀랍다. 놀라워.”
정현은 그를 끌어 자리에 앉히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아... 이 할아버지가 네 계좌를 보고 진짜 놀랐다!”
수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막내 외할아버지가 대뜸 말하셨다.
“그래, 거기다가 사업도 한다고 하고... 올해는 아주 놀랄 일들만 보여주는 구나.”
이제는 갓 20살이 투자로 벌어들인 20억원에 달하는 금액은 대기업과 은행권에서 요직을 차지 하셨던 두 할아버지나, 중소기업 대표로 있는 삼촌에게도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특히 그 수익률은 미래라도 보는 듯한 수준이었다.
“참... 이걸 보니, 사업한다는 말이허언은 아닐 것 같고... 솔직히우리끼리도 말리지는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이 녀석... 저희가 말릴 수도 없게 이미 법인 설립도 하고... 완전 진심인 것 같은데... 사업이나 구체적으로 들어보죠.”
정현이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판을 깔아주었다. 수현은 코인노래방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흠...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요즘 애들한테 잘 먹힐 것 같아?”
수현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은 둘째 외할아버지는 정현에게 물었다.
“네... 요즘은 애들이 혼자도 많이 다닌다고 하고... 나쁘진 않을것 같은데요? 커플끼리도 사용하기 좋을 테고... 대신 수현이 말처럼 프랜차이즈 런칭 하고 공격적으로 시장 개척을 해야 후발 주자가 들어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세 어른 중 제일 젊은 피인 삼촌의 긍정적인 대답에 수현이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흠... 그래, 그럼 우리한테 궁금한 부분이 뭐니? 들어보니 사업 확장하는 방식도 구상해둔 것 같고...”
막내 외할아버지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내부인적 구성을 하고 경영하는 건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요...”
수현은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사람을 뽑고 적절하게 경영하는 것은 그가 아는 지식으로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음, 그렇긴 하지... 넌 나이도 어리니 더 어려울 게다.”
둘째 외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서재의 문이 두들겨졌다.
“아직이우? 점심 다 됐는데. 음식 다 식기 전에 식사들부터 해.”
작은 외할머니의 말에 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그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보자꾸나.”
식사 자리는 즐거웠다. 작은 외할머니는 수현의행적들을 듣고는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축하해주었다.
“수현아.”
식사가 마무리 되고 과일을 먹을 때였다. 둘째 외할아버지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수현을 불렀다.
“네.”
“할애비가 사업 좀 도와줄까?”
“네?”
“너희 회사에 들어가서 일 좀 해주겠다는 거다.”
다른 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버지...”
“이거 은퇴하고 영 심심했어. 골프도 요즘 영 칠 맛이 안 나고... 한 일년만 소일거리 하듯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작은 외할아버지는 진심인 표정으로 말했다.
“참, 형님도...”
“네녀석도 은퇴하고 집에만 있어봐라. 또 일 찾아 나갈 거다. 우리 같은 사람은 쉬면 쉬는 게 또 불편해.”
두 할아버지가 서로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근데, 전 할아버지 페이 못 맞춰드리는데요...”
전 일류 대기업 등기 이사의 몸값은 상상 초월이다.
“누가 그거 달라고 하던? 스톡옵션으로 줘. 스톡옵션은 알지? 파생으로 돈을 그렇게 벌었으니...”
“그렇긴 한데...성공 못하면 완전 꽝인데...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아깐 성공 그렇게 자신하더니?”
“그렇긴 한데...”
수현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이야... 우리 아버지... 아들한테는 맨땅에 헤딩하게 하시더니...”
정현이 괜히 섭섭하다는 듯이 농담을 했다. 다들 그 엄살에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직 20살 밖에 안 된 조카한테 질투가 나냐?”
그들은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들어가자, 고용주랑 나는 협상 좀 해야겠다!”
둘째 외할아버지의 말에 다들 소파에서 일어났다.
“전 그럼 수현이 편에서 협상 좀 봐야겠습니다.”
“형님, 저도 수현이 좀 도와줘야겠네요.”
두 사람의 농담에 둘째 외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수현은 어른들의 배웅을 받으며 빌라에서 나왔다. 그와 함께 나온 정현은 레인지로버의 운전석으로 향하며 수현에게 손짓을 했다.
“가는 길에 데려다 줄게. 타.”
“아뇨... 친구네 집이 이 근처라...”
“거기까지 데랴다 줄게. 덥잖아.”
정현은 손을 까딱였다. 수현은 결국 조수석에 올라탔다.
“참내... 아주 우리 조카가 대단했네! 여자친구도 절세미인에... 돈도 잘 벌어! 내 조카지만 참 질투가 난다!”
정현은 수현을 툭치며 말했다.
“진짜, 삼촌, 연희가 알바자리 감사하다고 식사 대접 꼭 해드리고 싶다던데... 왜 맨날 빼세요.”
“야, 그럼 이 나이에 코흘리개들 돈 뜯어먹어야겠니?”
정현이 주차장을 나서며 말했다.
“어느 쪽으로 가면 돼?”
“여기서 나가셔서... 잠시만요.”
수현이 얼른 지도를 켜서 그에게 보였다.
“오, 친구도 제법 사나본데~?”
정현이 지도를 확인하고 말했다.
“태양 법무법인 창업주 손자에요. 여기서 혼자 살아요. 저희 아지트 다 됐죠.”
수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와... 친구도 잘 사귀었고?”
정현이 다시 감탄하며 말했다.
“제가 인복이 있나봅니다.”
수현의 말에 정현이 크게 웃었다.
“거기에 나도 포함이지?”
“그럼요.”
“그럼, 너 사업 잘 나가면 그때 네가 여친 대신 밥 사. 알았지?”
정현이 수현에게 약속하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그럴게요.”
수현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았어! 비싼 곳 간다?”
“네. 이번엔 빼지 마세요.”
둘은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민형의 집으로 향했다.
“잘 놀고, 젊다고 술 너무 먹지 마라.”
수현을 내려준 정현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수현은 민형의 집으로 능숙하게 들어갔다. 자주 모여서 놀다보니 이 과분한 집도 자취방과 다를 게 없는 대접을 받았다.
“야, 집안 꼬라지 봐라... 넌 아주머니 돈 더 드려야해... 주말 이틀 만에 대단하다. 소영이 주말엔 안 왔었구만?”
수현이 소파 위의 옷가지를 치우고 앉으며 말했다.
“아오, 뭐 너까지 잔소리냐... 그 할아버지 댁은 잘 갔다 왔냐?”
민형이 배를 긁적이며 물었다.
“응. 잘 풀렸다. 사업도 도와주신다고 했어.”
“야... 너도 대단하긴 하다...”
민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뭘, 넌 근데 왜 갑자기 운동을 하재?”
수현이 하품을 하며 소파에 몸을 푹 기대며 말했다.
“아, 요즘 하도 먹으러 다니고, 복싱도 많이 안 가니까... 살이 올라서. 좀 뛰자고.”
“이 형님의 지도를 받고 싶다는 거구만?”
수현이 거만하게 말했다.
“미친 놈... 뛰고 내려와서 지는 놈이 술사기?”
민형이 자신을 보였다.
“살 뺀다는 놈이 술?”
수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먹을 거 뛰고 먹자는 거지.”
“콜. 운동복 내놔.”
“저기 가봐.”
둘은 그렇게 운동으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하루를 보냈다.
수현은 손님방의 푹신한 침대에서 즐거운 꿈을 꾸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