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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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과 연희는 마구 흐트러진 침대에 나란히 누워 해가 완전히 사라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나른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둘은 서로의 몸을 가끔씩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천국이 있다면 딱 이럴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연희는 약간 멍한 기분으로 바다를 보다가 자신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는 수현의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운동하는 사람치고는 꽤나 섬세해 보이는 손이었다. 연희가 슬쩍 손을 들어 그 손에 깍지를 살며시 끼며 잡았다. 뒤에서 수현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는 것이 들려왔다. 연희의 얼굴에도 나른한 미소가 지어졌다. 수현이 반대 손으로 연희를 살며시 토닥였다. 연희는 편안한 한숨을 흘리며 그의 손길을 즐겼다.
“흐음-.”
한동안 말없이 수현의 손길을 즐기던 연희가 작게 콧소리를 흘리며 그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수현의 몸이 아주 든든하게 느껴졌다. 연희는 그 느낌을 좀 더 즐기고싶어 그의 알몸에 자신의 알몸을 바짝 붙이고 꼼지락거렸다.
"그러면 내가 더 못 참는데..."
수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더 못 참으라고 하는 건데?"
연희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그만 외치던 게 누구더라?"
"걘 과거의 김연희야."
수현이 그 앙큼한 말에 웃으며 연희의 위로 올랐다.
"오늘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좋으면서."
"좋지."
"그럼 어서 안 오고 뭐해."
그 말을 끝으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방의 공기는 금세 다시 뜨거워졌다.
*
수현과 연희는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며 느긋하게 일어났다. 밤늦게 까지 서로를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치고는 몸도 별로 뻐근하지 않고 개운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커튼 틈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마주 웃었다. 연희가 수현의 맨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몸을 더 바짝 붙였다.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흠-. 연희야, 커튼...열까?”
“아니...”
나른하게 물어오는 수현에게 연희는 작게 고개를 저어 말하고는 그의 맨가슴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 토닥임이 워낙 나긋해서 마치 그를 다시 재우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나 다시 재우는 거야?”
수현이 작게 킬킬거리며 아직 덜 깬 목소리로 속삭였다.
“흐음-. 더 잘래? 재워줄게...”
연희가 정말 더 재우려는 듯이 조곤조곤하게 말하며 더 나긋하게 수현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희는 감고 있던 눈을 떠 수현의 가슴을 토닥이는 자신의 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둘이 나눠 낀 자그마한 반지가 거기에 있었다. 작게 박혀있는 큐빅이 약한 빛에 살짝 반짝이며 움직였다. 다시 눈을 감은 연희의 미소가 짙어졌다.
“연희야, 나 진짜 졸리려고 하는데... 못 나갈지도 몰라...”
수현이 눈을 감고 졸음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연희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제일 바라는 바였다. 그를 여기에 가만히 재워놓고 얼굴을 보는 게 그 어느 것 보다 더 즐거울 것 같았다.
“응. 더 자. 나 안 나가고 싶어...”
연희가 작게 속삭였다.
“음-.”
수현이 팔베개를 한 손을 들어 연희의 몸을 살짝 감쌌다. 연희는 어깨에 닿은 수현의 나긋한 손길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진짜...자...”
수현이 거의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응. 자.”
연희는 곁눈질로 슬쩍 시계를 바라보았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어제의 일을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 잔 것도 아니었다. 연희의 토닥임이 조금 더 느릿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현의 팔에 힘이 풀렸다. 그에게서 느릿하고 안정적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연희는 조금 더 토닥이며 사리사욕을 채웠다.
“헤헤.”
연희가 완전히 잠에 빠진 수현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웃었다. 틈새로 들어오는 빛에 보이는 얼굴이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자신에게 집중할 때는 따듯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지만, 사실 다른 곳에서는 대체로 이런 느낌의 얼굴을 했다.
연희가 손을 들어 약간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얼굴을 만지면 그가 다시 깰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래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결국 잠시 갈등하던 연희는 그의 턱을 슬쩍 쓸어보았다. 밤사이 수염이 조금 자라기 시작해 살짝 까끌까끌한 느낌이 있었다.
“푸흣.”
연희가 웃음을 짓고는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그녀는 수현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시고 눈을 감았다. 그녀도 그렇게 천천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결국 몇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난 그들은 아침 겸 점심으로 복국을 따듯하게 먹고는 태종대 정도만 다녀오기로 결정을 했다. 둘 모두 아쉬운 기색은 별로 없었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몇 시간 더 잠을 청한 것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태종대에 도착해 도로를 따라 걸으며 숲과 바다를 즐기고 사진을 남겼다. 또한 해안의 거친 바위와 파도를 보며 시원한 기분도 느꼈다. 날씨가 좋은 편이라 멀리 대마도도 볼 수 있어서 그들은 매우 즐겁게 웃었다.
“연희야. 여기서 회 먹고 갈까? 소주 한 잔에.”
수현이 예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절벽 아래 횟집을 찾고서 말했다.
“여기서?”
“응. 저기. 해녀분들이 파는 거래.”
수현이 멀리 보이는 작은 천막 같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진짜? 그런 곳이 있었어? 나야 완전 좋지!”
연희가 활짝 웃으며 어서 내려가자는 듯이 수현의 손을 끌었다. 그들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각종 해산물이 대야에 들어차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싱싱한 해산물들을 보자 수현과 연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와... 뭐 먹지? 자기는 뭐 먹을래?”
연희가 대야를 보며 군침을 삼키고 물었다.
“음, 난 광어나 산낙지 먹고 싶다.”
“다른 건? 해삼도 있고 소라랑 멍게도 있어! 맛있겠다!”
연희는 조금 혐오스럽게 생긴 것들까지도 눈을 반짝이며 보았다.
“어? 다른 거? 그...글쎄?”
수현이 애매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연희가 어색하게 구는 수현을 바라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멍게 해삼 이런 거 못 먹는구나?”
연희가 놀리듯 물었다.
“어? 아니... 뭐... 너, 넌 먹고 싶어?”
수현이 우물거리더니 연희에게 넌지시 물었다.
“꺄하하하! 자기 진짜 하나도 못 먹어? 뭐야아! 완전 애기였네! 꺄하하하!”
연희의 웃음에 수현이 괜히 볼을 긁적였다. 연희는 생긴 거랑은 다르게 가리는 음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수현은 은근히 못 먹는 것들이 있었다.
“크흠흠! 시켜 봐! 내가 안 먹어 본 거지. 못 먹는 게 아니거든? 뭐, 이번에 먹어보면 되지...”
수현이 뭐 별 거냐는 듯이 말했다. 연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여전히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로 주문을 했다. 주문량이 꽤 되다보니 가격도 제법 나왔지만, 서비스로 준 것들도 제법 많았다.
연희와 수현은 해산물이 가득한 접시를 놓고 앉아 바다를 보았다. 호텔도 바닷가 바로 앞이긴 했지만, 이렇게 절벽 아래서 보는 느낌은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호텔에서 본 장면이 탁 트여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바다의 거친 느낌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다.
“와아-. 좋다아!”
연희가 챙이 넓은 큼직한 모자를 벗어두며 말했다. 땀에 살짝 젖은 머리에 바람이 불어 살짝 날렸다. 그 장면이 흰 피부와의 어우러져 청량하게 느껴졌다.
“그러게... 호텔에서 보는 거랑은 또 다르네... 좋다.”
수현도 연희에게서 눈을 떼고 바다를 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연희가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건네주었다. 수현이 젓가락을 받아 내려 두고는 소주를 돌려 땄다.
“일단 잔부터 채우자.”
“근데 애기가 술 마셔도 되나?”
수현의 말에 연희가 귀엽다는 듯이 놀리며 잔을 들었다. 수현이 작게 눈을 찌푸리자 연희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어보였다. 수현이 결국은 피식 웃으며 잔을 채웠다.
“흐음-. 짠?”
“응. 짠!”
둘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술을 들이켰다. 소주는 약간 미지근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와 함께 들어가니 청량한 기분이 한껏 몰려왔다.
크~!
둘은 첫잔을 원샷으로 마무리 하며 인상을 쓰고 잔을 내렸다.
“자기... 이거 먹어봐. 흐흐흐.”
연희가 아저씨처럼 웃으며 제일 거부감이 덜하게 생긴 소라를 젓가락으로 집어 수현에게 주억거렸다. 수현이 약간 멈칫하다가 결국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괜찮지?”
연희가 방긋 웃는 얼굴로 물었다.
“...응. 맛있네.”
수현이 조금 더 씹어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도 하나 줘!”
연희가 다행이라는 듯이 피식 웃으며 그에게 입을 벌리고 말했다. 수현은 일단 광어회를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연희도 기분 좋게 웃으며 받아먹었다.
둘은 마주 보며 웃고는 서로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들은 몇 차례 더 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경치를 즐겼다. 둘에게서 기분 좋은 웃음이 번져 나왔다. 결국 분위기에 취한 그들은 소주를 한 병 더 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 우리 애기! 마지막으로 요거 먹자아!”
연희가 제법 취기가 오른 얼굴로 그의 입에 마지막 남은 해삼을 주억거리며 말했다.
“으휴... 그래, 놀려라. 놀려.”
수현이 말을 말자는 듯이 해삼을 받아먹으며 말했다. 싱싱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먹을 만했다. 연희는 그 모습을 뿌듯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웃었다.
“아-! 잘 먹었다!”
연희가 빈 접시와 빈 술병들을 보고는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켜며 외쳤다. 붉어진 얼굴이 꽤나 귀여웠다.
“이제 갈까?”
“응. 가자!”
둘은 가볍게 손을 잡고 일어나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수현은 취기가 조금 오른 연희의 상태가 걱정되어서 조심스럽게 그녀를 잡아 주었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서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음, 우리 애기가 조사를 잘 해 와서 좋은 경치 보면서 잘 먹었다!”
연희가 발랄하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나 아까 해삼 먹는 거 못 봤어? 잘 먹거든.”
“으이구, 우리 애기 해삼도 먹을 줄 알아요? 오구 오구.”
연희는 취기를 빌려 킬킬거리며 말했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연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연희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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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해운대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서쪽으로 많이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얼마 안 있으면 노을이지고 어두워질 시간이었다.
“하아-! 오늘 완전 즐거웠다!”
연희는 길을 오르며 수현을 보고 뿌듯하게 말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뭘 했다고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수현이 그 표정이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으며 말했다.
“왜~ 오늘 우리 큰 애기 멍게도 먹어보고 해삼도 먹어본 날인데!”
연희가 수현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주.... 김연희, 가지고 놀 거 하나 생겼어...그치?”
수현이 그녀의 손을 잡아 살짝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헤헤. 귀여워서 그러지... 혹시 맘 상했어?”
연희가 살짝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오면서도 몇 차례 애기라고 놀린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어차피 조금 있으면... 진짜 큰 애기 될 거거든.”
수현이 연희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이고는, 귀를 살짝 깨물었다. 연희가 그의 말뜻을 눈치 채고 얼굴을 확 붉혔다.
“흐흐흐. 있다가 큰 애기한테 밤새 한 번 당해 봐.”
수현이 악마처럼 웃으며 입술을 떨어뜨렸다.
“크흠, 흠. 하여튼 변태야...!”
연희가 작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가슴을 양팔로 가리고 살짝 수현을 노려보았다. 수현이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연희도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뭐, 사실 그녀도 싫은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즐거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