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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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과 연희는 선발대가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 모텔을 나섰다.
“역 두 개만 가면 되고 좋다.”
연희가 수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교복은 수현의 더플백에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대신 둘은 과잠바에 간단한 후드티를 커플로 맞춰 입고 있었다.
“2학기에 아예 이쪽으로 이사 오면 좋을 텐데...”
수현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 아빠는 안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은 눈치기는 하셔. 엄마도 고민 중이고...”
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 너도 이번에 알바 괜찮으니까, 옮기는 게 낫지 않을까? 차비 아낀다고 생각하면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내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수현이 얼른 설득했다.
“음, 일단은 보증금도 있고... 1학기는 여기서 다니려고. 당장은 방 구하기도 어렵고.”
연희가 고개를끄덕였다.
“그래. 방학 때 같이 알아보자.”
수현이 연희를 감싸며 말했다.
수현과 연희가 선발대 모임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둘이 인사를 하며 다가가자, 반 회장과 부회장이 그들을 반겼다.
인원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회장인 미현이 인원표를 들고 점검을 시작했다.
“오케이! 이제 김병훈, 김민형, 천강민 요 놈들만 오면된다!”
미현이 인원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언니! 얘들 10분 늦는다는데요!”
소영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니, 걔들은 무슨 한 몸이야? 어제 뭐 했대?”
미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또 어디 미팅 나갔겠죠. 제 생각엔 또 퇴짜 먹고 같이 어디서 구르다가 오는 것 같아요.”
소영이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걔들도 대단하다. 대단해. 거의 주말 마다 미팅 한 번은 나가는 거 아니야?”
누군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내 말이... 서울에 있는 대학은 다돌아보려는 것 같다니까.”
소영이 툴툴거렸다.
얼마 후, 벤츠 S클래스 한 대가 그들 옆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차가 멈춤과 동시에 조수석과 뒷문이 동시에 열리며 남자 세 명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아오, 저것들 봐라... 쟤들은 엠티를 어제하고 온 몰골이다.”
미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쟤들은 저러고도 술 잘 마시더라구요. 좀비스타일이에요. 일도 많이 시키세요.”
소영이 뾰족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씨라도 된 것처럼, 목적지에 도착한 선발대의 인원들은 한가득 짐을 들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북한산 자락에 있는 팬션을 빌려 진행되는 행사는, 특히 1학년 남학생들에게는 초반부터 힘을 쓰게 만들었다. 그들이 걸을 때 마다 간간히 술병들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안 무거워? 나도 술 좀 들까?”
연희가 수현의짐을 보며 물었다.
“아냐, 괜찮아. 넌 안 무거워?”
“야, 뒤에 커플! 앞에 솔로 힘 빠지게 하는 소리 하지마라! 다 들린다!”
약간 뒤처져 걷는다고 했는데도, 그들의 속삭임이 들렸는지 강민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저거, 몰골은 아직 좀비인데 귀는 밝네... 쟤 덜 무거운가보다, 연희야, 내꺼에서 술 좀 꺼내서 쟤 줘라.”
수현이 지지않고 말했다.
“꺼져, 미친놈아!”
강민이 후다닥 걸음을 빨리 하며 도망가며 외쳤다. 연희가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게 얼마쯤 걷자 하루 묵기로 한 펜션 간판이 보였다.
“자, 다 왔다! 이리로 올라가면 돼! 가서 다들 짐 풀고 있어. 좀 쉬었다가 간단하게 게임이나 하면서 놀고 있자!”
슬슬 지치려던 아이들에게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방은 숙소 중에서 제일 큰 곳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짐을 풀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연희야.”
“응?”
“잠깐 나와 봐.”
수현이 조용히 연희의 손을 잡고 끌었다. 연희도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그를 따라 나섰다.
“왜?”
연희가 문을 나서며 뒤를 힐끔 보며 물었다.
“그냥... 걷자구. 다른 사람들 눈, 아직 신경 쓰여?”
수현이 피식 웃으며 연희의 손을 잡고 옆의 완만한 산책로로 이끌었다.
“음, 그래도 모였을 때 너무 티 나면 조금 그렇잖아.”
연희가 약간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상한 소문 퍼뜨리는 것 때문에? 놔둬. 어차피 그런 애들은 우리 가만히 있으면 또 그걸로 꼬투리 잡아서 사이 나빠졌다고 소문낼 애들이야.”
수현이 연희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런...가?”
“그래.”
둘은 그렇게 잠시 몸을 붙이고 걸었다.
“여기 꽤예쁘다. 좀만 더 따듯할 때 왔으면 꽃도 피고 예뻤겠다.”
연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약간 아쉬운 듯말했다.
“음, 그럼 우리 5월에 여기로 동아리 엠티 오자고 하자.”
수현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될까?”
“말이나 해보는 거지. 내가 보기엔 석경이형이나 혜정이누나나 정신없어서 엠티 계획 못 짠 것 같던데...”
수현이 가볍게 말했다.
“음, 그래. 근데 살짝 흘리는 정도로만 하자. 신입생들이 너무 대놓고 하긴 좀 그렇잖아.”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러자. 올라오면서 보니까 계곡도 있던데 5월이면 발 정도는 담글 수 있지 않을까?”
수현이 동의하며 연희의 앞머리를정리해주었다.
“아! 나도 봤어! 그럼 진짜 좋겠다. 지금은 다 말라있긴 했지만...”
연희가 수현이 머리 정리하기 쉽게 고개를 움직여주며 말했다.
둘은 조금 더걸어 작은 벤치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눴다.
“어이, 커플! 깨 그만 볶고올라가자! 단체 사진 찍을 거야!”
올라오며 그들을 발견한 회장과 부회장이크게 외쳤다. 그들은 즐거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길을 오르고 있었다.
“네!”
“넵!”
연희와 수현이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수현이 연희에게 손을 내밀며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연희가 냉큼 수현을 당겨 다시 앉혔다.
“응?”
수현이 왜 그러냐는 듯이 연희를 바라보자, 연희가 꾸러기 웃음을 지으며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올라가는 회장과 부회장의 뒷모습을 슬쩍 살피고는 가볍게 수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기껏 나와서 왜 제일 중요한 걸 빼먹어.”
연희의 말에 둘은 서로를 보며 웃어버렸다.
“어이! 커플!”
미현이 그들을 다시 한 번 부르자, 둘은 깔깔대며 빠르게 산책길을 올랐다.
수현과 연희까지 모이자, 단체 사진을 몇 장 찍은 그들은 게임을 시작했다. 사실, 게임은 별 것 없었다. 간단한 닭싸움이나, 노래방 기계를 가져와 점수내기를 하는 정도였다. 다만, 나름 치열하게 참여를 했다는 것 정도.
그렇게 가벼운 놀이들이 진행되고 잠시 쉬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무렵, 후발대가 그들이 쉬고 있던 문을 열고 들어오고 진짜 엠티가 시작되었다.
“올! 황수현이! 고기 좀 굽나?”
수현이 집게를 들고 드럼통 앞에 서자 미현이 그를 툭치며 말을 걸었다.
“어? 누나... 저 레어, 미디움, 웰던 굽기 조절까지 가능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수현이 소지부터 검지까지 엄지와 맞대며 말했다.
“진짜지? 누나 믿는다? 근데 이거 다 돼지고긴 건 알지?”
미현이 깔깔대며 수현을 쳤다.
“넵! 걱정마세요! 누나만 특별히 삼겹살 레어 대접하겠습니다!”
“뭐? 야!”
미현이 웃으며 수현의 팔을 쳤다.
다들 신이나서 웃었다. 수현도 오랜만의 엠티에 주책 맞은 느낌임에도 들떠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방금 그 장면을 본 연희만 빼고는 다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인데, 괜히 팔을 툭툭 치는 모습이 거슬렸다. 연희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리고 괜히 상추를 세게 털었다.
“연희야!”
“응?”
연희는 부루퉁하게 있다가도 수현이 부르자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수현이 잠깐 오라는 듯이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마침 야채 준비를 마친 연희가 소쿠리를 들고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 과잠 좀 입고 있어. 열기 때문에 덥다.”
수현이 연희에게 자신의 잠바를 덮어주며 말했다.
“아, 아냐. 내꺼도 안에 있는데, 자기 좀 있다가 추우면 입어.”
연희는 괜히좋으면서도 어깨를 살짝 피했다.
“남친 있는 티내라고 입히는 거야. 그리고 좀 있다가 나 쌈 싸주기다?”
수현이 연희의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야아!”
연희가 민망하다는 듯이 수현을 툭쳤다.
“왜... 고기 굽느라 잘 못 먹는 남친 챙기는 여친 정도면 사람들 욕도 안 먹고,우리 사리사욕도 챙기고. 좋잖아. 내가 괜히 집게 잡은 줄 알아?”
수현이 능글맞게 슬쩍웃고는 연희를 토닥이며 밀어 보냈다. 연희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와, 미친놈... 존나 계획적이었네?”
같이 고기를 준비하며 안 들리는 척하던 민형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닥쳐. 너만 조용히 하면 돼.”
수현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쩐지... 왜 나랑 굽자고 하나 했다...”
민형이 혀를 찼다.
“고맙다, 친구야.”
수현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김연희가 지 남친 무서운 걸 몰라... 젤 위험한 놈인데... 그저 좋단다...”
“어이, 김민형이. 조용히 하고 있어. 다음 주에 링 올라가기 싫으면.”
수현이 집게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친구 협박까지 하는 놈인데... 우리 연희 불쌍해서 어떡하냐.”
민형이 중얼거렸다.
“누가 너희 연희야? 집게로 맞을래?”
수현의 말에 민형이 토하는 척을 하고는 불판에 고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수현도 웃는 낯으로 고기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