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3화 〉53 (53/94)



〈 53화 〉53

*



4월1일. 만우절.

신입생들이라면 다시 한 번 흐릿해져가는 기억을 끄집어내서 교복을 입는 날이었다. 수현은 기대를 가득 안고 교복을 입었다.

사실, 바지는 아예 새로 구매를 했다. 전 것은 도저히 맞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대를 하며 눈을 빛내는 연희에게 교복을 못 입고 온다고 할 수도 없었다. 자신도 연희의 교복 입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으니... 그 마음을 알았다.

수현은 조금 일찍 역에 도착해 연희를 기다렸다. 수현 말고도 이미 교복을 입은 사람들은 많았다. 수현은 뭔가 부끄럽던 것을 조금은 놓을 수 있었다.

아래에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라오는 무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연희의 얼굴이 빼꼼히 보였다.

“연희야!”

수현이 손을 들었다.

“자기야!”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연희의 교복 입은 모습은 역시나  풋풋하면서도 청순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적당히 몸의 라인에 맞게 줄인 교복도 핏감 좋게 예뻤다.

연희는 얼른 개찰구를 나와 수현의 앞에 섰다. 그녀도 수현의 교복차림을 보며 방긋 웃었다. 그녀도 수현과 비슷한 심정인  같았다.

연희가 갑자기 그를 끌어당겨 거울 앞에 섰다.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 되게 신선한 기분이다. 진짜 고등학생 커플 같아.”

연희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사진 찍자. 우리 사실 고딩 때부터 사귄 거로 하자.”

수현이 얼른 폰을 꺼내며 말했다. 연희가 크게 웃었다.

“이게 증거?”

연희가 수현의 핸드폰 화면에 나온 자신들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 교복입은 커플이면 고딩 커플이지.”

수현이 말하며 연희의 어깨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둘은 그렇게 거울을 보고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모두 그림처럼 나왔음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수현과 연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잡고 걸었다. 여기저기 교복을 입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은 유독 눈에 띄었다.

수현과 연희가 정말 고등학생처럼 발랄하게 깔깔대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안의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평소에도 그런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상큼함이 더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크흠, 앉자.”

연희가 약간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수현은 연희를 보며 여전히 미소 지으면서도 그녀의 말대로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둘은 서로를 보며 풋 웃음을 다시 터뜨렸다.

수현은 수업이 시작하고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물론 평소에도 그런 편이지만, 유독 연희에게 시선이 자주 갔기 때문이다. 교수와 칠판에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로 고등학생 때의 그녀 같아서 새로운 느낌이었으니, 수현으로서는 어쩔  없었다.

“황수현 학생.”

안 그래도 눈에 띄는 학생들이었는데, 오늘 따라 유독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수현을 기어코 교수가 부르고 말았다.

“넵!”

수현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자친구도 좋지만, 여기 칠판도 좀 좋아해주면 좋겠네.”

교수의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왔다. 수현과 연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교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현이 밉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쪽지 시험을 여태까지 만점을 받고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신입생이.

“자, 이 질문에 대답만 잘 하면 한 번은 넘어가 주겠어요. 임대료와 임차료 계정이 어떻게다르죠?”

교수가 가볍게 물었다.

“음, 임대료 계정은 수익 계정으로 대변에 나오고, 임차료는 비용 계정으로 차변에 나옵니다.”

수현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음, 좋아요. 이젠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겠죠?”

교수가 가벼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넵.”

수현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곧게 폈다.

“자, 그럼 다음은...”

수현이 연희를 힐끔보자 연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수현을 노려봤다. 수현이 작게 혀를 빼물자 그녀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둘은 책상 아래로 손을 잡았다.

*

연희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수현이 조금은 괜찮지 않겠냐고 했지만, 연희는 수현 혼자만 학식을 기어코 먹게 했다.

“이러나저러나 예쁘구만.”

수현이 툴툴거리며 연희의 손을 잡았다.

“그냥, 기분이긴 한데, 그래도.”

연희가 자신도 안다는 듯이 웃어보이자 수현도 더 할 말은 없었다.

“끝나고는 고기 먹자. 그거 갈아입는 것도 일이겠는데. 너 배고플걸?”

수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러자! 오늘은 내가 쏜다!”

연희가 밝게 웃으며 잡은 손을 흔들었다. 수현도 그 밝음에 같이 웃어버렸다.

둘은 저번에 들렀던  스튜디오로 향했다. 항상 그곳에서만 하는 것은 아닌 듯 했는데, 어쨌든 이번에는 동일한 곳에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 도착하자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 일찍 왔네요! 어, 왠 교복? 아... 만우절...”

사장은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그들을 보고 놀라다가 피식 웃었다. 저번의 협상 때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교복 입은 것을 보니 갑자기 나이답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이쪽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줄래요? 화장은... 그대로 가고, 후반부에만 컨셉이 달라서 약간 수정할게요.”

사장이 조금 풀어진 표정을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현과 연희는 옆쪽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하나씩 들고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만우절이라 교복이구나! 교복도 예쁘네요! 있다가 나갈 때 교복 입고 둘이  장 찍어줄까요?”

지난번의  포토그래퍼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연희와 수현을 반겼다. 순수하게 사진을 즐기는 타입인 것 같았다. 수현과 연희도 마주 인사를 했다.

“오늘 입을 옷들이에요. 쭉  번 확인해두고, 느낌이랑 포즈 같은 것도 좀 생각해봐요. 저번에 보니까 센스는 있는 것 같던데.”

사장이 몇 가지 사진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연희가 의욕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현은 그녀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기에 옆에서 차분히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준비가 완료 되었는지 스텝이 연희를 불렀다. 연희는 설레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녀를 따라 뒤쪽 탈의실로 사라졌다.

“좀 지루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사장이 수현 옆으로 와서 물었다.

“매번 다른  입고 나올 텐데요?”

수현이 되묻자 사장이 피식 웃었다. 좋을 때라는 느낌이었다.

촬영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사장도 초보치고 굉장히 빠릿하다며 칭찬을 했다. 수현은 연희가 새로운 모습으로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든 예뻤고 새로웠다.

“와, 연희씨, 진짜 이 정도면 보정 10초면 다 할 것 같아요. 최곤데?”

포토그래퍼가 사진들을 확인하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진짜요?”

연희가 발랄하게 물었다.

“거짓말.”

포토그래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촬영장이 웃음으로 가득찼다.

“아, 근데 정말 보정 거의 필요 없긴 해요. 솔직히  장은 그냥 올릴까 싶은 정도야.”

포토그래퍼는 피식 웃어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촬영은 나름대로 훈훈하게 종료가 되었다. 사장의 오케이까지 받아낸 촬영이 끝나고 연희가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자 수현이 가볍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커플들! 연애는 밖에서! 여기 다 쏠로야!”

사장이 외쳤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언니,  남자친구 생겼는데?”

포토그래퍼가 놀리듯 말했다.

“뭐? 언제?”

“거짓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수현과 연희는 포토그래퍼의 손에 이끌려 교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고서야 스튜디오를 나설  있었다.

다들 밝게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 조금 지쳤다!”

연희가 수현에게 체중을 기대면서 말했다. 수현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거 봐.  먹으라니까.”

수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희를 조심스럽게 다뤘다.

“음, 그래도 재미있었어. 예쁜 옷도 여러 벌 입어보고.”

연희가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말했다.

“음, 그건 나도 인정.”

수현이 동의하며 연희를 토닥였다.

“어쨌든 내가 쏜다!  잡자!”

연희가 기분 좋게 외쳤다.

“내일 엠티니까 오늘은 고기만 구워먹을까?”

수현이 연희를 이끌며 물었다.

“저번에 못 들었어?”

“뭘?”

“고기에 술이 없으면 뭐다?”

연희가 수현의 허리를 쿡찌르며 물었다.

“...빅맥에 패티가 없는 거다?”

수현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렇지!”

연희가 기분 좋게 외쳤다.

“이거 누가 이렇게 술고래로 만든 거야...”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글쎄... 여자친구  되게  듣는 사람 하나 있는데...”

“적어도 난 아니겠네.”

둘은  말이 맞다 아니다로 무의미한 논쟁을 하며 고기집 안으로 들어섰다. 둘은 소주 대신 맥주로 합의를 보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연희는  촬영기념으로   잔은 하고 싶은 기분이었던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연인이 함께인 공간이 즐겁지 않을 없었다. 수현과 연희는 웃음과 함께 즐거운 식사 시간을 즐겼다.

둘은 적당히 기분 좋은 취기와 든든하게 부른 배로 밝게 웃으며 길거리로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