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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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
수현은 오전 수업을 조금 일찍 나와 노트북을 켜고 HTS를 확인하고 있었다. 수현의 생각에 STX는 충분히 주가가 오른 것 같았다. 그는 고민을 하며 책상을 두드렸다. 현재 그의 자산은 3천5백만 원이 조금 넘었다.
수현은 STX ELW 풋옵션에 얼마를 넣을지 고민이었다. 이번엔 5월물에 넣을 생각이었다. 4월은 1일이 목요일이었기에 둘째 주 목요일이 너무 빨리 왔다. 잘못하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고, 떨어진다고 해도 자신이 산 행사가만큼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장이 좋아서 그런지, STX의 5월 만기인 행사가가 낮은 풋옵션은 20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거래가 형성되어 있었다.
“좋아...”
수현이 다짐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공책에 500만 원을 적었던 것을 지우고 1천만 원을 적었다. 사업 시작을 여유롭게 하고 투자도 하려면 기초 종자돈이 커야 했다. 5월에는 확실히 대폭락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이정도라면 충분히 적은 위험으로 고수익을 먹을 기회였다.
수현은 기아차 주식을 일부 처분하여, STX ELW 풋 중에서 행사가 20,150원인 것을 15원에 1천 50만 원 어치 구매하였다.
뭔가 자신이 한 번도 만져 본 적 없던 금액의 돈들이 너무 쉽게 한 번에 오가는 것이 여전히 믿겨지지 않았다. 그냥 숫자가 왔다갔다 할 뿐이라서 그런지... 그래서 주식에 빠지면 빚을 내서도 하는 것 같았다. 큰 돈 같은 느낌이 별로 안 들었다.
수현은 그래도 무언가 기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시간을 확인한 수현은 노트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연희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점심부터 오후수업은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연희야! 여기!”
수현이 연희가 나오는 건물 앞에서 손을 들며 말했다.
“어? 자기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왔어?”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교수님이 오늘 좀 일찍 끝내주셨어. 심심해서 여기까지 걸어왔지.”
수현이 가볍게 거짓말을 했다.
“그래도... 뛰어왔구나?”
연희는 뭔가 약간의 오해를 한 듯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현은 그걸 깨고 싶지는 않아서 씩 미소를 지었다.
“가자!”
연희가 기분 좋게 손을 잡으며 말했다. 둘은 즐거운 얼굴로 길을 걸었다.
“오늘은 나가서 파스타 먹을까?”
수현이 제안했다.
“음, 오랜만에 그럴까? 아니야... 내일 촬영인데...”
연희가 밝게 말했다가 얼른 고개를 저으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프로필 사진은 뭐 전날에 맛있는 거 안 먹고갔나? 가자. 사줄게. 나 먹고 싶다.”
수현이 작게 애교를 부렸다.
“그...그런가?”
연희가 솔깃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전날까지 어머니랑 이모랑 놀면서 맛있는 거 많이먹고 와서 찍었는데 합격이었잖아.”
수현이 얼른 연희를 유혹했다.
“가서 조금만 먹으면 되겠지?”
연희가 다 넘어온 듯 중얼거렸다.
“그럼. 나 배고파서 많이 먹을 거야. 그리고 오늘 우리 복싱도 가면 되잖아.”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싱은 월수금 중 2일은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수현은 딱 마치고 과외를 가면 되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수현은 얼른 연희를 처음 둘이 식사를 했던 곳으로 이끌었다.
“여긴 올 때마다 기분 좋은 것 같아.”
연희가 자리에 앉으며 맑게 웃었다.
“그치?”
수현도 웃으며 동의했다.
“응... 처음 생각이 막 다시 떠올라.”
연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도 그래서 음식 아니더라도 여기 이렇게 종종 오고 싶더라.”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둘은 첫날 시켜먹었던 그 메뉴 그대로를 시키고 잠시 오래지나지 않은 추억들을 꺼내 이야기 했다.
“음, 뭔가 이번 주도 엄청 빠르게 가는 것 같아...”
연희가 파스타를 삼키고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는 듯이 말했다.
“하긴... 월요일부터바빴지?”
수현이 반지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연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응. 반지도 찾았고, 알바 면접도 통과했고, 첫 촬영도 있고, 엠티도 있고.”
연희가 하나하나 꼽으며 바쁘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힘든 기색은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래도 즐거운 것 같은데?”
“응. 그래도 다 좋은 일들이니까. 기분은 좋아. 좀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일 촬영장 같이 가자. 보고싶어.”
수현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심심하지 않겠어?”
연희가 약간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김연희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수현이 말도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음... 그렇긴 하지?”
연희가 약간 도도하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현이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었다.
“응. 그러니까 같이 가. 그리고 혹시 이상한 남자가 있는지 감시도 해야 돼.”
수현이 사실은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엔 연희가 웃었다.
“그게 사실은 진짜 목적이구나?”
연희가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음, 둘 다 진심이지. 이게 1석2조라는 거 아닐까?”
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흐음. 지켜보겠어. 졸면 혼날 줄 알아?”
연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무 예뻐서 나 사생팬처럼 달려들면 어쩌지?”
수현이 굉장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말하자 연희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
연희는 영화관 알바를 그만둔 후로는 월요일과 수요일은 복싱이 끝나고 수현을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돈 많이 벌어와.”
연희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수현을 안았다.
“이젠 나보다 네가 더 많이 벌지 않나?”
수현이 작게 웃으며 연희를 토닥였다.
“음, 그러네... 누나한테 장가올래?”
연희가 품에 안겨서 작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지금 동사무소 열었나?”
수현이 냉큼 말했다. 연희가 깔깔거렸다.
“이제 차 온다. 나 가볼게.”
수현이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연희를 놓았다. 연희는 조금 천천히 수현을 놓아주었다.
“응... 과외 끝나면 전화 해. 기다릴게.”
연희가 수현의 가슴을 토닥이며 말했다.
“응. 전화할게.”
수현이 연희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말했다.
“간다! 조심히 가!”
수현이멈춰선 버스로 뛰어가며 말했다. 연희가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수현은 버스에서도 연희를 바라보았다. 둘은 시야에서 서로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일산에 도착한 수현은 조금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차가 밀렸는지 조금 시간이 빡빡하게 도착했다.
“저기...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오늘은 좀 늦었는데요.”
수현이 시간을 보며 말했다.
“그냥, 가, 같이 가자고...”
소향이 약간 말을 절었다.
“네. 뭐. 가요.”
수현이 빠르게 대답하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소향이 얼른 그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저, 저번엔 미안했어.”
소향이 어물거리며 말했다.
“네...”
수현이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가볍게 대답만 했다.
“... 진짜야.”
소향이 슬쩍 눈치를 보며 다시 말했다.
“네, 저희도 문제없고 괜찮아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럼 우리 나쁜 거 없는 거다?”
소향이 약간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했다.
“네. 당연하죠.”
수현이 대충 말했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었다.
“오늘은 뭐하다 늦은거야?”
소향이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버스 때문에요. 뭐 좀 막혔는지.”
수현이 걸음의 속도를 조금 더 올리며 말했다. 소향은 그의 걸음을 잘 따라오며 재잘거렸다. 수현은 적당히 상대해주며 일터로 향했다. 이것도 일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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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이 떠나고 난 뒤, 소향이 소현의 방문을 두드렸다.
“...웬일이래? 문을 다 두드리고?”
소현은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일단 문을 열어주었다.
“야, 너 아직도 선생한테 마음 있냐?”
소향이 대뜸 물었다.
“뭐, 뭐?”
소현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마음 있냐고?”
소향이 귀찮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게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
소현이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제대로 꼬셔보려고.”
소향이 선언하듯 말했다.
“여태는 안 그랬다는 것처럼 들리네?”
소현이 비웃듯 말했다.
“여태는 그냥 반 장난. 근데, 좀 마음에 들었어. 진짜 제대로 엄친아더라. 약간 반했어.”
소향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무슨... 반지 못 봤니? 여친도 있으셔.”
소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난 말했다. 그래도 넌 동생이라 말 해주는 거야. 자라.”
소향이 자기 할 말만 마치고는 뒤를 돌아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소현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그 뒤를 바라보았다. 자기 언니지만 진짜 미친년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자신은 그 반지만 보고도 벌써 포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월요일에는 사실 충격이 컸다. 소현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방문을 닫았다.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