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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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터졌다. 소향이 정말로 수현의 테이블로 놀러온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수현은 소향을빨리 보내고 싶었지만,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 정현은 누님 소리를 해가며 잘도 소향을 따랐다.
사실, 소향이 그렇게 오래 그들의 테이블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20분은 있었나 싶은 정도. 상대 쪽의 남자들이 시비를 걸러 올만큼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건 마음에 들어 하던 소향의 관심을 빼앗아 간 수현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너 미쳤어? 왜이래?”
소향이 당황한 얼굴로 남자에게 외쳤다.
“나와 봐.”
남자는 소향을 툭 쳐내며 말했다.
“새끼가 뭐 대단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뭐 좀 있냐?”
남자가 밖으로 불러낸 수현을 툭툭치며 말했다.
“야!”
소향이 외치며 남자를 잡았지만, 남자는 그녀를 밀쳤다. 소향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수현은 한숨을 쉬며 소향과 친구들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친구들도 저쪽의 친구들과 대치 중이었다. 골이 아팠다. 특히 이런 놈들은...
수현이 슬쩍 오른발을 뒤로빼고 있을 때였다.
“뭐 좀 있냐고새꺄!”
남자가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소향이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
“야, 움직이지 마!”
수현이 남자의 별볼일 없는 주먹을 피하며 친구들한테 외쳤다. 튀어나오려던 친구들이 멈췄다. 패싸움으로 번지면 양쪽 다 답이 없었다.
남자가 휘청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하, 시발...”
남자는 몇 번의 주먹을 더 휘둘렀고, 수현은 몇 번의 풋워크로 주먹을 피했다. 돌아가는 광경에 사람들이 몰렸고, 양쪽의 대치 상황은 우습게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씨발 새끼가! 피하지만 말고 들어와악!”
남자가 악을 지르며 외쳤다. 수현은 말을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그들을 찍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sns가 활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이런 개새끼가!”
수현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깨진 소주병을 들어올렸다. 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수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며 경찰관들이 그들의 사이로 뛰어 들어왔다.
“뭐, 뭐야! 시발!”
남자는 경찰관들과 대치했다. 멍청하게도 그는 소주병을 여전히 들고 있었다. 수현은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않고 대치 상황을 지켜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제압이 완료된 남자는 소리를 질러댔지만, 경찰관의 마음도, 민심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수현은 가벼운 박수를 받았다.
“야... 너 언제 그런 거 배웠냐...”
술이 깬 듯한 상훈이 물어왔다. 상대측은 양아치들답게 상황을 인지하고 얌전해져 있었다.
“형의 현란한 풋워크 봤냐?”
수현이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마지막에는 그래도 지릴 뻔 했다.”
대흥이 끌려가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고는 소향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수현이 묻자 소향이 고개를 힐끔 들어올렸다. 놀란 눈이긴 했어도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응... 넌?”
소향이 수현을 위아래로 쓸어보며 물었다.
“멀쩡해요.”
수현이 팔을 벌려 보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저기, 서까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경찰관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수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향이 수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현은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켰다. 소향이 살짝 휘청이며 수현에게 기댔다. 수현은 마지못해 그녀를 부축했다.
경찰서에서 수현은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골이 아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소향의 전화로 달려 온 그녀의아버지는 빠르고 확실하게 일처리를 해냈다. 그의 옆집 형님이라는 로스쿨 교수가 함께 와서 일처리가 더 수월했다.
“미안하네... 우리 딸들이... 참 빚을 많이 졌어.”
소향의 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아닙니다...”
수현도 피곤했기에 달리 말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이번 일로 더 귀찮은 일은 내가 없게 하겠네. 술집 쪽도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그쪽도 신경 쓸 필요 없고.”
소향의 아버지가 수현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야, 덕분에 경찰서도 다 와 본다...”
상훈이 수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미안하다...”
“새끼, 다 잘 끝났으면 됐지. 그나저나 그게위빙인가? 휙휙.”
다들 분위기를 띄우며웃었다. 수현도 그제야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아으, 또술 먹기는 좀 그렇고, 피방이나 갈 사람?”
대흥이 말했고, 대부분 콜을 외쳤다.
*
월요일의 수현과연희는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반지를 찾으러 종로에 들러야 했고, 곧바로 홍대의 한 스튜디오로 향해야했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구해졌다...”
연희가 수현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기분 좋게 말했다. 촬영이 조금 길어져서 30분 정도만 기다려달라는 연락을 받은 둘은 근처의 카페에 들어와 있었다.
“네 사진 보고는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했대.”
수현이 피식 웃으며 연희의 손에 깍지를 꼈다. 연희가 싱글거리며 눈을 맞춰왔다.
“자기도 같이 스카웃 되면 어떡하지?”
연희가 커피를 조금 빨아들이며 말했다.
“여자옷만 파는데?”
수현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응. 여자 옷만 파는데도.”
연희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현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수현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척 하며 말했다. 이번엔 연희가 빵터져 웃었다.
둘이 잠깐 그런 유치한 말장난을 하고 있을 때, 수현의 전화가 울렸다.
“아, 지금이요? 네. 알겠습니다.”
수현이 전화를 끊자 연희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지금 나가자. 촬영 끝났다네.”
“아, 진짜? 나 화장 조금만 고치고!”
연희가 얼른 가방을 뒤지며 말했다. 수현은 고칠 필요가 있는 지 궁금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어때?”
연희가 화장품을 가방에 정리하고 물었다.
“예뻐.”
수현이담백하게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평소보다?”
연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평소처럼.”
수현이 씩 웃으며 말하고는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연희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잡았다.
“가자! 으, 긴장 된다.”
연희가 몸을 살짝 떨며 말했다.
“긴장하지 마.”
수현이 연희를 토닥였다.
둘이 도착한 스튜디오는 의외로 정리가 어느 정도 된 느낌이었다. 수현과 연희가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어서와요. 와, 정말...”
그들을 반긴 사람은 연희와 수현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탄성을 질렀다.
“언니, 사진부터 바로 찍어보면 안 돼?”
포토그래퍼로 보이는 여자가 재빨리 물었다.
“어... 일단, 프로필 사진이라고 생각하고 찍어 볼래요?”
사장이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연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진기는 열심히 특유의 찰칵 소리를 내며 연희의 모습들을 담았다. 몇 가지 포즈와 몇 가지 표정들을 담아낸 사진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얼굴 가득 지었다.
“보정도 별로 필요 없겠다...”
사진가가 중얼거렸다.
“유리야...”
사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 아...”
사진가가 그제야 상황파악을 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협상 상대에게 너무 마음에 든다는 표시를 다 해버렸으니, 협상할 사장에게는 꺼낼 카드가 별로 없게 된 것이다.
“일단... 이쪽으로 앉을래요?”
사장이 그들을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로 불렀다.
“뭐... 방금 봤듯이 마음에 들어요. 조금 전 모델이 착장한 것도 다시 찍고 싶을 만큼.”
사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서 괜한 밀당을 하기보다는 그냥 터놓고 말하기로 한 것 같았다.
“데이 40으로 해드릴게요. 얼마나 알아보고 왔는지 모르지만, 이쪽 업계에서는 초보로 이정도면 최고 수준이에요.”
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수현과 연희가 알아본 바로도 40이면 상당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걸로 만족 할 수는 없었다. 모델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가능한 상황이지 않은가?
“다른 곳에 안 가는 걸로 하고, 50까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전속계약인거죠.”
수현이 얼른 말했다.
“50이요?”
“자기야?”
사장과 연희가 동시에 물었다. 이건 잽이었다. 수현은 어그래시브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네. 들어보니까, 사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오르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큰 이슈 하나 있으면 더 크게 뜨지 않을까요? 솔직히 제 여자친구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학교 커뮤니티 내에서도 연희 벌써 유명합니다. 연희가 모델이라고 하면 일단 저희 학교 인원들만 해도 상당히 접속 많이 할 겁니다. 고대나 이대 쪽에도 소문났다고 하니... 아시죠?”
수현이 빠르게 사장의 주고객층들을 거론하며 말했다. 사실 이대는 잘 몰랐다.고대는 살짝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뭐 어쨌든 소문은 시간 문제였다.
“...전속으로?”
“네. 애매하시면 3개월이나 6개월만 해보셔도 좋고요.”
수현이 단호하고 빠르게 일부러 짧은 기간을 제시했다.
“3개월 하고, 반응이 괜찮으면 동일 조건으로 6개월 더 연장. 어때요?”
사장이 질 수 없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이 남자 조금 위험한 수컷 냄새가 났다.
“3개월 하고, 반응 좋으면 동일 조건으로 3개월로 하죠.”
수현이 고개를 살짝 치켜 올리며 말했다. 사장과 수현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사장이 결국 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연희는 정신 없는 공방에 당황해서 당사자임에도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40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석에서 계약을 하고 매주 금요일 오전에 촬영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다만, 이번 주에는 이미 그들이 엠티가 잡혀 있어서 목요일 오후에 촬영하기로 했다. 다음 주부터 해도 되겠지만, 사장은 이렇게 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촬영하기를 원했다.
“와... 오늘 하나도 정신이 없었네...”
연희는 역으로 향하는 길에 수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너무 너한테 언질을 안 줬지?”
수현이 약간 미안하다는 얼굴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응... 우리 그때는 40이면 충분하겠다고 그랬었잖아.”
연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나도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넌 더 할 생각은아니잖아. 그러면 저쪽에는 전속 한다고 하고 더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갑자기 딱들더라구. 저쪽은 우리 사정 모르니까.”
수현이 사과하듯 연희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조금 약았네?”
연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응... 실망이야?”
수현이 일부러 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 정도야 뭐... 협상의 기술 아니겠어?”
연희가 수현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나 잘했어?”
“응. 칭찬해줄게.”
연희가 수현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둘이 눈을 맞추고 마주 웃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