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9 (39/94)



〈 39화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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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과 연희의 주말은 비와 함께 했다. 봄이  것처럼 따뜻해지던 바람은 순식간에 다시 차가워졌다. 하지만, 연인에게는 비 내리는 날 또한 하나의 이벤트가 되었다. 둘은 커다란 우산 하나에 바짝 붙어서 이동했다. 마치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음, 이제는 커피도 맛이 다 다른 것 같아. 왜 몰랐을까?”


연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치? 신맛도 있고, 쓴맛도 있고, 약간 단맛도 있고, 또 어떤 건 초콜릿향도 나고, 어떤 건 기름진 느낌도 있고.”

수현이 주변을 살짝 둘러보며 말했다. 아담한 규모의 주택을 개조한 홍대의 카페는 연인들이 있기 편하도록 적당한 테이블간 거리와 칸막이를 가지고 있었다. 분위기도 괜찮았고, 커피도 괜찮은 곳이었다. 수현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응. 맞아. 여기 커피는 약간   대신에 신맛이 있다.”

연희가 관심사를 맞춰가는 것이 즐거운 듯이 재잘거렸다.


“그러게. 나는 쓴 것보다는 이쪽이 더 맞는 것 같아. 넌 어때?”


수현이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음, 난 둘 다 비슷한 것 같아. 근데, 가볍게 마시기엔 이쪽이 덜 부담스럽긴 하겠다.”

연희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난 라떼나 다른 거랑 섞을 땐, 좀 쓴 커피가 나을 것 같고, 이건 커피만 마실  좋은  같아.”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맞다! 그러면 딱 좋겠다.”

연희가 동의하며 손을 내밀었다. 수현이 가볍게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둘의 눈이 웃음으로 마주쳤다.

“좋아?”


수현이 물었다.


“응. 좋아.”


무엇이 좋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 좋았으니까.

“어제만 해도 날 되게 좋았는데, 오늘은  진짜 많이 온다...”

연희가 한동안 수현의 손을 가지고 놀다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몸은 괜찮아?”


아침의 작은 소동을 생각하며 수현이 작게 물었다.

“응...”

연희가 부끄러운 얼굴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부끄러워 하지마. 나도 알아야 하는 거니까.”
연희가 벌떡 일어나 후다닥 화장실로 달려가는 걸 보고 수현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라면 함께 꼼지락대며 느긋하게 하루를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현은 무슨 큰 일이 터진 줄 알고 놀랐다. 분명 무슨일이 있기는 했다. 어떻게 보면 큰일이고, 어떻게 보면 아니기도 한.

“보통은 먼저 느낌이 오는데, 이번엔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하나도 몰랐어.”

연희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부끄러움을 억지로 참아내는 목소리였다.


“보통은?”


수현이 되물었다.

“응. 좀 애매한데, 여튼 좋은 느낌은 아니거든. 근데, 이번엔 그런 게 전혀 없어서...”

연희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발갛게 물든 볼이 귀여움을 더했다.

“숨길 필요 없어. 나도 알아야지. 너 아픈 것도 모르고 막 오래 걷는 곳 가자고 하면 어쩌려고?”

수현이 연희의 왼손을 가볍게 주물러주며 말했다.


“근데, 이번엔 진짜 아픈 것도 없어. 내가 그렇게 통증이 큰 편은 아닌데, 그래도 첫날이랑 둘째 날은 좀 아프거든...”

연희는 스스로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랑 있어서 그런가?”

수현이 진심을 농담처럼 말했다.


“진짜 그런가? 막 호르몬 그런 것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던데.”


연희가 좋은 걸 발견했다는 듯이 말했다. 수현이 뿌듯한 표정을 한 채 연희를 바라보자 연희가  웃었다.


“그럼, 자기가 진짜 나의 진통제네.”

연희가 뭐든 좋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이 나이다운 아름다움을 뽐냈다.


“기분 좋은데.”

수현이 오른손을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연희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손을 내어주자 다시 조물거리는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연희는 테이블에 기댄 채 잠시 동안 그 기분을 즐겼다.

“음, 호사스럽다.”

연희가 나른해진 얼굴로 만족스럽게 말했다.

“별말씀을요.”

수현이 손님에게 대하듯 말했다. 연희가 수현의 태도에 맑게 웃었다.

그렇게 꽁냥대는 사이 커피는 조금 식었지만, 대신 둘의 손과 마음은 따뜻해져갔다.

*

대망의 3월 11일.

수현은 연희가 알바 동기의 땜방을 위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영화관으로 가버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는 다리를 떨며 초조하게 차트를 보고 있었다. 목이 타는 수현은 다시 한 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얼음이 자글거리며 입안을 돌아다녔다.

시간은 장 마감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STX의 현재 가격은 19,250원이었다. 수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20배. 2천만 원이 그의 품으로 오는 순간이었다.

동시 호가 시간이 지나가고 최종 호가는 19300원. 화요일의 종가는 18,250원이었고, 수요일은 18,850원 이었으니, 최종 3일간의 평균 종가는 18,800원이었다.


행사가와는 1,000원 차이. 전환비율 20%를 곱하면 콜 개당 200원 이익. 콜 개당 매입 가격은 10원. 정확히 20배의 수익.


1백만 원을 투자해서 2천만 원이 최종적으로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현은 긴장이  풀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늘어졌다.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수현은 천천히 HTS창을 껐다. 대단한 금액은 아니지만, 적은 금액도 아니었다.


그는 잠시 동안 멍하니 있다가 짐을 싸서 카페를 재빨리 나갔다.


수현은 백야로를 달렸다. 버스정류장까지 달린 그는 숨을 몰아쉬며 그제야 현실감을 느꼈다. 그는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래, 아직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었다.


수현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마침 일산으로 향하는 버스가 올 타이밍이었다. 그는 버스에 올라타서도 한참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방황하다가 집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는 가는 길에 애견용품점에 들러 애견용 간식과 강아지용 옷을 새로 샀다.

“아, 맞다.”

수현은 갑자기 유명인 한 명이 생각나면서, 반려동물 시장도 아직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물용 생식이나 고급 간식이 뜬다는 것을 생각한 수현은 집에 가면 일단 이것도 적어두기로 했다. 다만, 이건 아직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 뜨지 않는 만큼 자본을 충분히 모은  시작할 아이템으로 정해두기로 했다.


수현의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의외로 투자할 만한 곳은 많았다. 자신이 아는 것만해도 미래에 성공한 사업 아이템 중에서 아직 없는 사업이 많았다. 하지만 투자를 위해서는 일단 자본을 크게 키워야 했다. 수현은 5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

수현은 즐거운 얼굴로 과외를 하러 걸음을 옮겼다.

“쌤!”

신호등 건너에서 소현이가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막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인 듯 했다. 수현이 길에서 멈춰 신호등 앞에 섰다. 그가 가볍게 손을 들어보이자 소현이 손을 내렸다.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이 요즘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보기가 좋았다.

“안녕하세요!”

소현이 수현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응. 오늘은 조금 늦었네?”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친구랑 얘기  하면서 오다보니까...”

소현이 민망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럴 수 있지.  간단한  먹을래? 사줄게.”

수현은 편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괜찮아요! 석식 먹고 와서!”

소현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내가 배고파서 그래. 과외하면서 간단하게 먹을 과자나  사가자.”

수현이 미소로 이끌자 소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 들어왔다. 수현이 고르기 시작하자, 그제야 소현도 이것저것 몇 가지를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수현과 소현은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든 채로 소현의 집까지 걸었다.


“요즘 학교는 어때? 친한 친구들이랑은 같은 반 잘 됐다며.”

수현이 간단한 생활상을 물었다.

“평범하죠, 뭐. 생각보다 고 3이라고 뭐 달라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전 막 심경의 변화가 클 줄 알았는데.”

소현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치? 하루 이틀이지?  비슷비슷하다니까.”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그냥 똑같은  같아요. 놀 사람은 놀고, 공부하던 애들은 하고. 분위기도 생각보다 비슷하고.”


소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넌 어느 쪽인데?”


수현이 장난스레 물었다.

“전 당연히! 공부하는 쪽이죠!”

소현의 당당함에 수현이 피식 웃었다.


“다음 주...기대해도 되는 거지?”

수현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소현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주부터는 우리 월요일이랑 수요일만 보겠네?”


수현이 말했다.

“네... 아쉬워요.”

소현이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 그만한다는데 아쉽다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들어가자.”

평소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텐션이 높아진 수현은 소현의 진심이 비친 부분을 놓쳤다. 수현이 빙글 웃으며 대문을 열어주었다. 소현이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며 들어갔다.


안주인은 반갑게 같이 들어오는 둘을 맞이했고, 집안의 장녀는 과자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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