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37 (37/94)



〈 37화 〉37

*

수현은 상쾌한 저녁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사실, 컴퓨터 계통 쪽은 젬병인 그가 스마트폰 관련 사업 쪽으로는 금전 투자와 아이디어를 내는  말고는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긴 했지만.


수현이 주택단지로 가기위해 신호등에 서있을 때였다.

“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은 급격히 피로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향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연인가요?”
수현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소향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쌤도 먹을래요?”


소향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두 개 중에 하나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연인데, 커피는 두 개?”

수현이 말했다.


“인연인가보다.”

소향이 상큼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수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마셔. 주려고 산거니까.”

소향이 재차 내밀며 말했다. 수현이   없이 받아들었다. 아니면 가는 내내 징징거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잘 마실게요.”

수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타입은 자기가 흥미를 잃어야 그만두는 스타일이었다.


“근데 완전 계획은 아니야.”

소향이 말했다.

“뭐가요?”

“나도 운동시간이 딱 끝나고 딱 이걸 사온 거란 말이지. 기다린 건 아니라고.”


소향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인연이다?”

수현이 바뀐 신호를 보고 발을 떼며 말했다.

“그렇지. 역시 엄친아는 금방 알아듣네. 똑똑해.”


소향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따라붙었다. 주변의 시선이 그들에게 달라붙는 것이 영 불편했다.

“참 고맙네요...”

수현이 떫게 말했다.


둘의 대화는 소향의 적극성과 수현의 적당함이 마주하는 선에서  앞까지 이뤄졌다. 수현은 조금 피로한 얼굴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웃긴 것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향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자신의 방으로 냉큼 사라졌다는 것이다. 트집 잡힐 일은 하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시작하자.”

수현이 약간 피곤하게 말했고, 소현은 2층을 잠깐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수현은 과외를 끝내면서도 소향이 따라나서진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는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조금 뛰듯이 소현네 집을 벗어났다.


적당히 거리가 벌어지고, 수현이 주변을 살폈다. 수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핸드폰을 꺼냈다. 버스를 타면 금방인 거리였지만, 연희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통화를 하기에는 걷는 편이 훨씬 좋았다. 시간을 확인한 수현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은 길지 않았다.

-응! 자기야! 과외 끝났어?-

연희의 반가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수현에게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응. 끝나고 바로 전화했지. 연희 너도 끝났지?”


수현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야 정시잖아. 지금 신촌역이야.-


연희의 음성이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거의 막차지?”

수현이 약간 걱정스럽게 말했다.

-응.  두 개 남더라.-


연희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꼭 정시 퇴근해. 누구 도와주다가 늦지 말고.”


수현이 당부하듯 말했다.


-알았어. 걱정하지마. 뭔가 오늘 되게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아.-

연희가 지하철로 들어가는 듯 카드 찍는 소리가 들렸다.


“수업도 의외로 진행했고?”

-응. 근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좋았어. 자기는 안 도망쳐도 되겠어?-

연희가 킥킥거리며 물었다.

“응.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현이 말했다. 사실, 수업 안 들어가도  상관이 없었다. 기초 재무관리 수준의 교양에 시간을 쓸 이유가 없었다. 교수도 출석에 대해선 그렇게 빡빡한 교수는 아니었다. 신청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자기는 완전 이쪽이 적성인가보다.-

연희가 약간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가?”

수현이 약간 씁쓸한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적성이 맞았다면 그렇게 실패했을까...


-그럼. 흥미를 느끼는 건데. 난 사실  할지 몰라서 일단 제일 유망학과로 지원한 거라서.-

“넌 그럼 디자인 쪽이 좀 흥미가 가?”


수현이 물었다.


-음,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근데 옷이나 멋진 건물 그런  좋아하긴 하니까. 재미있을 것 같긴 해.-

연희가 애매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음, 그럼 의류 쪽 경영지원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 마케팅이나...  그런 쪽.”


수현도 정확히는 몰랐기에 간단하게 말했다.

-첫 날인데, 너무 앞서나갔나?-

연희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응. 많이 그런 것 같아. 오늘은 어땠어? 진상은 없었어?”

수현이 분위기를 환기 시키며 말했다. 연희가 하루의 일을 소곤소곤 말하기 시작했다. 수현이 가끔 추임새를 넣어가며 말을 들었다.

핸드폰이 뜨거워지고, 수현이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연희도 도착을 한  같았다.


“도착했어?”


-응. 대문 들어서는 중! 잠깐만.-

연희가 발랄하게 말했다.

-자기는 어디야? 아직 밖이야?-

연희의 뒤로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응. 집 보인다. 들어가서 쉬어. 오늘 피곤했겠다.”


대학가의 영화관은 오늘 꽤나 북적했던 것 같았다.

-응... 확실히 2월이랑 다르긴 하더라...-

“주말에 고기  먹여야겠다.”


수현이 웃으며 말하자, 연희도 웃었다.


“들어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자. 나도 이제 들어갈게.”


수현이 연희를 다독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래도 올 때, 자기랑 통화하고 오니까 좋다. 이것도 색다른 맛이 있어!-


연희가 맑게 웃으며 말했다.

“난 그래도 얼굴보고 싶은데.”


수현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연희도 작게 중얼거렸다.


“오빠가...돈 많이 벌어서 우리 연희 알바  해도 되게 해줄게.”

수현이 일부러 목소리를 더 굵게 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연희가 킥킥거렸다.

-방금 완전 사기꾼 아저씨 같았어.-


사실,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진짜 들어가. 나도 들어갈게. 이러다 핸드폰 터지겠다.”


수현이 말했다. 일부러 말꼬리를 억지로 잡고 늘어지는 이유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응. 자기도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봐!-

“응. 잘 자. 쪽.”

수현이 웃으며 가볍게 입을 맞추자, 건너에서도 입맞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뜨듯한 핸드폰을 넣고 수현은 아파트로 들어섰다.

*

수현과 연희의 일주일은 평범하다면 평범하게 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아는 사람이 나올 때만 밥약을 나갔고, 다른 사람이 나온다고 하는 경우는 피했다. 둘은 이미 학교 커뮤니티에도 알음알음 유명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특히 연희는 벌써 연대 ooo으로 몇몇 미녀 연예인이 들어간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요일이 되자, 둘은 민형과 아이들에게 점심을 사기 위해 신촌으로 나섰다.

“얘들아!”


연희가 손을 들어 멀리서 다가오는 민형, 병훈, 강민, 그리고 소영에게 손을 흔들었다. 소영은 원래 따로 밥을 사려고 했는데, 자신도 여기에 껴서 사달라고 직접 말해왔다.


“일찍 와 있었네?”


소영이 반갑게 연희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응. 그냥 간단하게 쇼핑했어.”
연희가 즐겁게 말했다.

“모델 둘이 런웨이 한 거야?”

소영이 말하자, 연희가 깔깔거렸다.


“야, 밥부터 먹자!”

그 사이를 참지 못한 강민이 외쳤다.

“아오, 그지가 들었나! 잠깐을 못참네!”


소영이 강민의 배를 치며 말했다. 다들 피식 웃음을 지었다.

“형이 소고기 산다. 가자.”


수현이 고개를 치켜들고 약간 거만하게 말했다.


“소고기면 형 맞지! 가요, 형!”

병훈이 좋다고 말했고, 강민이 따랐다.


“하, 자존심 없는 새끼들...”


민형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들은 점심부터 소주를 따기 시작했다.

“야,  상관없는데, 너희 저녁에 미팅있다며... 괜찮겠냐?”


수현이 남자 셋에게 말했다. 셋은 오늘도 내일도 미팅을 잡았다. 대단한 놈들이었다. 하긴, sky 신입생의 장점이라고 하면 어느 미팅이든 쉽게 잡힌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의 미팅은 특별히 사진을 주고받으며 진지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어느 학교 어느 학과끼리 하는 술배틀에 가까웠다.

“고기가 있는데, 술이 없으면? 그건 뭐다?”


병훈이 물으며 흥겹게 소주의 병뚜껑을 돌려 땄다.

“그건 빅맥을 시켰는데, 패티가 없는 거지.”

강민이 받으며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그렇지. 그건 맞지.”

민형이 의외로 술을 냉큼 받으며 말했다.


“건강한 거잖아.”


소영이 말했다.

“맛이 없잖아. 건강하려고 빅맥 먹냐?”

강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고는 소주를 받았다. 병훈은 모두에게 한 바퀴 술을 돌렸다. 20살의 술자리는 술이 있으면 잔을 빼서는 안 된다. 특히 남자끼리는.


그들은 원샷을 했다.


“너희... 미팅 나 때문에 망했다고 하면 병으로 머리 부순다?”


수현이 잔을 내리며 말하자, 민형이 욕을 했다. 다들 킬킬거리며 웃었다. 민형이 병에 손을 뻗으려 하자 모두가 호들갑을 떨었다. 한 번도 실제로 일이 터진 적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장난이었다.


그들은 소고기에 소주 몇 명을 비워가며 먹었다. 해가 중천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붉은 노을이 지었다. 이맘때면 대학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아,  먹었다!”


강민이 고깃집 문을 나서며 말했다.

“저거 제대로 취한 것 같은데...”

수현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며 말했다.

“괜찮아. 8시까지 안 깨겠냐?”

민형이 간단히 말했다. 20살의 패기였다.


“안 깨면?”

수현이 말했다.


“야, 김연희,  남친 빌려도 되냐?”


민형이 웃으며 물었다. 둘의 관계는 상당히 개선 된 상태였다.


“야!”


“저게 미쳤나!”

 여자가 동시에 민형에게 화를 냈다. 민형이 더 크게 웃었다.


“아, 안 데려가!”


소영의 주먹에 맞은 민형이 엄살을 피며 말했다.

“미친놈아, 내가 안가! 뭘 빌리고 말고야.”

수현이 외쳤다. 그들은 다 같이 킬킬거리며 대낮의 거리를 취한 채로 걸었다. 수현도 일부러 기분에 조금 취한 채로 걸었다,

“나 빌려 줄 거야? 아니지?”


수현이 일부러 아이처럼 물었다. 야유가 나오고, 연희가 웃었다.

“내껄  빌려줘! 당연히 아니지!”


연희가 말하자, 수현이 남자 셋에게 당당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셋은 토하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고기 잘 먹고 후식이 영 아니네... 야, 컨디션이나 하나 빨고 술 깨자. 흥이 깨졌어.”


병훈이 메스껍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이제 너흰 가라. 잘 먹었고, 빡친다.”

민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나도 오늘 여친을 만들던지 해야지...”

강민이 중얼거렸다. 반쯤은 이쯤에서 커플을 보내주려는 것이었다.

“그래, 잘 먹었어! 이제 둘이 데이트 해야지!”

소영이 수현과 연희를 살며시 밀며 말했다.

“와, 물주는 돈만 내면 끝이지? 바로 보내버리네?”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알았냐? 가봐라. 우린 미팅 준비해야 돼. 강민이 저건 좀 재워야겠다. 생긴 건 존나 상남잔데 제일 술이 약해...”


민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수현이 가볍게 민형의 손을 잡아 어깨를 마주치며 말했다.


“그래. 데이트 잘 해라.”


“안녕!”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수현과 연희는 신촌역으로 향했다.

“자기는 괜찮겠어?”

연희가 약간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 취해서 인사불성인 거 본 적 있어?”

수현이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연희를 감쌌다.

“오늘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연희가 걱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왜? 친구들 잘 마셔?”


수현이 물었다. 오늘은 연희와 함께 서울로 대학을 온 친구  명과 함께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렇다기 보단... 애들이 좀 짓궂어서... 그리고  전에도 제법 먹었잖아.”

연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수현이 피식 웃었다. 뭔지 알  같았다. 내 소중한 친구한테 어울리는 남자인지 테스트하는 자리라는 뜻일 것이다.

“오빠 믿지?”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연희가 결국 웃어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역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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