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30 (30/94)



〈 30화 〉30

*

수현과 연희는 따뜻한 라떼를 한 잔씩  채로, 버스들이  가득 정차해있는 쪽으로 향했다. 워낙 대인원이 움직이는 것이라, 장소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수현은 연희의 손을 잡은 채로 버스 쪽을 향해 연희를 이끌었다.  또한 이상하게 설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첫 새내기 때의 그 느낌은 분명 아닐 테지만,또 다른 의미의 설렘이었다.

수현은 괜히 연희를 보며 한  웃어 보였다. 연희가 마주 웃어주었다.

“어, 저희 경영대 신입생인데, 바로 버스로 가는 건가요? 아니면 따로 확인해야 하나요?”

수현이 길 중간에서 무어라 사람들을 지도하고 있던 과잠을 입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그들을 돌아보다가 순간 몸을 굳혔다.

“어...선배님?”

수현이 다시 부르자 그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어... 오티 오셨어요?”

남자는 버벅이며 말했다.

“아뇨... 저희 둘 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수현이 그가 버벅이는 이유를 알만해서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그럼, 저기 천막으로 가셔서 인원체크 하시면 돼요.”

남자는 여전히 약간 멍한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현과 연희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고 천막으로 향했다. 남자의 시선의 그들의 뒤를 따랐다가, 같은 학생회 인원의 욕을 먹고야 정신을 차렸다. 그는 호들갑을 떨며 다른 학생회 인원에게 다가갔다.

수현과 연희는 그런 뒷 상황은 모른 채, 가벼운 걸음으로 천막 아래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학생회 일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현과 연희가 들어서자, 그들을 본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저희 경영대 신입생인데, 오티 안 왔던 사람들은 여기 들렀다가 오라고 하셔서요.”

수현이 말했다.

“아, 네. 이쪽으로 오세요!”

서류철을 들고 앉아 있던 여자가 그에게 손을 들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시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류철은 남자와 여자 둘이 들고 있었다. 수현의 기억이 맞다면 이 둘이 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목에 명찰에 회장 박진수, 부회장 이정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두  성함이?”

부회장인 이정인이 물었다.

“전 김연희요.”

연희가 말했다.

“전 황수현입니다.”

수현이 말했다.

“아, 그럼 김연희씨는 이쪽으로.”

회장인 진수가 연희를 불렀다.

“황수현씨는 이쪽으로 와주세요.”

부회장인 정인이 수현을 불렀다.

“이름 확인하고 싸인 해주시면 되고요. 지금 차가... 2번  딱 두 자리 남았네요. 거기 타시면 될 것 같아요.”

회장이 버스표를 확인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수현과 연희는 싸인을 마치고 목걸이를 걸고 나왔다. 둘이 나오자 회장과 부회장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와... 둘이 커플 같았지?”

정인이 말했다.

“어... 남자애... 개부럽다...”

진수가 멍하니 말했다.

“수현이도 잘생겼는데?”

정인이 뭘 부러워 하냐는 얼굴로 말했다.

“어? 그렇긴 한데... 연희 쪽이... 나 공연 온 아이돌 중에도 저런  못 본 듯...”

진수가 여전히 멍하니 말했다.

“수현이는 남자애고 연희는 연희인  봐라... 좋은 머리는 여자 이름만 외우지?”

정인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도 남자애 이름부터 외운 주제에...”

진수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난 둘  외웠거든?”

정인은 당당히 말했다.

“그럼 외모지상주의네. 다른 애들은 기억 없지?”

“지는...”

둘이 티격태격 거리자, 뒤에서 회계가 그들에게 할 것 없으면 옮기는 거라도 도우라고 소리를 질렀다. 둘은 움찔했다가 다음으로 들어오는 신입생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딱 두 자리래!”

연희가 기분 좋게 말했다.

“그러게. 이게...운명?”

수현이 킥킥 거리며 말했다.

“좋다. 가서도 반이랑 조 같이 됐으면 좋겠다.”

연희는 희망차게 말했다.

“응. 일단  때까진 같이 가면 되니까 좋지 뭐.”

수현이 잡은 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잠깐 화장실 들렀다가 가자.”

연희가 말했고, 수현이 동의했다. 둘은 가까운 건물의 화장실에서 볼일 마치고 나왔다.

“이리 와봐.”

수현이 건물을 나서다가 연희를 살짝 끌어당겼다.

“응?”

연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따라왔다. 수현은 인적이 없는 건물의 틈 사이로 그녀를 이끌었다. 연희가 수현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수현이 몸을 돌리고 연희에게 입을 맞췄다. 연희도 수현의 목에 팔을 두르고 부드럽게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이제는 서로에게 익숙해진 방식의 입맞춤이 잠시 지속되었다가 떨어졌다. 가벼운 버드키스가 마무리로 끝나고 둘은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시간 있을 때 해둬야  것 같아서.”

수현이 변명하듯 말했다.

“잘했어. 똑똑해.”

연희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수현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수현이 어린아이 칭찬하는 듯한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어른의 입맞춤 후에 아이 같은 칭찬이라니.

“놀리는 거 아니지?”

수현이 물었다.

“음, 반반? 근데, 마음에 든 건 맞아.”

연희가 살짝 혀를 빼물었다. 수현이 그녀의 볼을 살짝 늘렸다. 둘은 웃으며 다시 버스 쪽으로 돌아갔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둘이 버스에 오르자, 시선이 쏠렸다. 아는 얼굴이  있었다. 일단 병훈과 소영이 있었다. 둘은 이미 그들에게 아는 척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옆자리에도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얼굴이 익은 아이들이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수현과 연희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너희도 일찍 왔구나?”

연희가 창가쪽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수현이 복도쪽으로 앉으며 병훈과 주먹을 마주쳤다.

“응. 일찍 도착했어. 우리 그럼 같은 반이네!”

소영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응? 어떻게?”

연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수현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오티 때 제비뽑기로 반 결정을 하고, 새터에서는 오는 순서로 차 배정을 해서 반 배정을 했다. 그 외 나머지는 랜덤.

“같은 차 타면 같은 반이야. 1번차랑 2번차가 같은 반이니까, 우리 같은 반이지!”

소영이가 연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둘이 굉장히 좋아했다. 아는 얼굴과 같이 묶이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었다.

“오, 김병훈 우리 같은 반이네.”

수현이 가볍게 다시 주먹을 맞대며 말했다. 바뀐 미래였다. 병훈과 연희는 자신과 다른 반이었다. 그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했다.  날의 이야기, 그 후의 이야기,  만났는데 그 때는 너희는 못 나와서 아쉬웠다는 이야기 등...

“둘이 사귀는 거 맞지?”

소영이 피식 웃으며 둘을 보며 말했다.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면 모를 수 없는 일이지만, 또 누구에게 이렇게 확인을 받으면 괜히 부끄러워지는 법이었다. 수현과 연희는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소영이 깔깔대며 그럴 줄 알았다고 웃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아는 아이들이 있는 아이들은 저들끼리 떠들고, 혼자인 아이들은 슬쩍 끼거나, 혹은 초조하게 앉아있을 때쯤, 집행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올라탔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작게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자,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인원이 다 모여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인원체크만 끝내고 출발 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쾌활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적당한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오, 우리  분위기 매우 좋네요. 좋아요. 다들 앉아주세요.”

남자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하고는 뒤따라오는 여자와 둘이서 인원체크를 시작했다.

“와, 우리 반... 기대 됩니다...”

둘은 인원 체크를 마치고 마이크를 잡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자,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 1호차와 2호차는 4년을, 아니 평생을 함께 갈 경영대 무적1반입니다!”

남자의 말에 박수가 나왔다.

“그럼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환락1반의 부회장 하정훈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회장 강미현 회장이시고요. 여기 2호차는 제가, 1호차는 회장님이 타기로 했습니다. 그럼 회장님은 이제 회장님 차로 가시고요. 마이크는  드립니다. 싫어요. 가세요.”

남자는 개구진 표정으로 마이크를 빼앗으려는 여자를 밖으로 떠밀었다. 사람들이 웃었다.

“1호차에서는 저한테 마이크  주던 사람이 상도덕이 없습니다. 한국 최고의 경영학과에서 이러면 되겠습니까.”

정훈이 다 이유가 있다는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의 1호차가 출발하고, 2호차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자기야, 드디어 간다!”

연희가 작게 외쳤다. 신이  모습이었다. 둘은 손을 잡고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정훈은 고속도로에 오르기 전까지는 잠시 마이크를 놓았다.

“자, 이제 길도 좀 평탄해지고, 아는 얼굴들끼리는 할 말도 다 했을 테니... 가볍게 자기소개를 나와서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말하자 작게 야유가 터졌다.

“하하. 싫어들 하시는데, 그냥 어색하게 하면 당연히 재미가 없죠. 여러분 FM이라고 아십니까? 오티 때 배운 분들도 있으시죠? 대학교식 자기소개를 하는 방법인데, 음에 맞춰서 하는 건데요. 이건 나중에, 저기 왜 시골 사는 고양이들이랑, 연고전 하고 뒷풀이  때도 쓰고 하니까 알아두면 좋습니다.”

부회장은 깔끔하게 야유를 잠재우며 말했다.

“자, 먼저 우리 선배 쪽에서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제가   하고, 우리 아무런 직책도 없이 따라온 09 헌내기부터 쭉 돌아서 우리 새내기들이 익숙해지도록 하겠습니다. 똑똑한 우리 새내기들은 한  번이면  외우시겠지만, 헌내기들 이렇게라도 써먹어야겠죠? 자, 시작하겠습니다.”

정훈은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는 마이크를 멀리 잡고 목을 가다듬었다.

앞의 09학번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에프~엠! 에프~엠! 에프~엠! 에프~엠! 에프엠! 에프엠!

아,  박자 쉬고! 아, 두 박자 쉬고! 아,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안녕! 안녕! 안녕하십니까!” 어이!

“통~일~! 연대!” 어이!

“최강 경영!” 어이!

“그중에서 최고 잘나가는 무적1반!” 어이!

“실세를 맡고 있는 09학번!” 우어어어어!

“하!정!훈! 당차게 인사드립니다!”

정훈이 마이크를 쓰지 않고도 괴성으로 질러댔다. 박수가 나왔다.

“자,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께는 마이크를 제공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자 헌내기들, 뭐해요? 나와.”

정훈이 제일 앞의  사람에게 손을 까딱였다. 한동안 09의 깨방정한 FM이 이어졌다.

“아...자기야. 자기는 자기소개부분 뭐할지 정했어?”

연희가 10학번의 자기소개가 시작되자 초조한 듯 물었다.

“음, 아직. 연희 넌?”

수현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아, 나도 아직... 뭐하지?”

연희가 앞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

“내가 정해줄까?”

수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응? 뭔데? 말 해줘.”

연희가 뭐든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경영대 여신.”

수현이 깔끔하게 말했다. 누구라도 반박할  없을 것이다. 연희의 표정이 대번에 울상이 되었다.

“아, 정말... 장난치지 말구우.”

연희가 발을 굴렀다.

그치만, 그거 말곤 생각나는  없는 걸. 심지어 원래 네 구호도 그거였단다.

수현은 피식 웃었다.

어느새 그들의 앞인 소영이 FM을 마치고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들어왔다. 연희가 약하게 울상을 지으며 수현을 지나쳐 앞으로 나갔다. 모든 인원의 시선이 그녀에게 박혔다.

“와, 아까 말씀 드렸죠. 우리 반 기대 된다고... 그 첫 번째 여자 분입니다.”

정훈이 감탄하며 소개를 했다.

“일단, 악수를...”

정훈이 두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연희가 당황하다가 마주 악수를 했다.

“우리 학교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훈은 약간 짓궂게 말했다. 연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혹시 자기소개 부분은 정하고 나오셨나요? 아니면 제가 꼭 좀 정해드리고 싶어서...”

정훈이 간절하게 말했다. 수현이 피식 웃었다. 자신이 건들지 않는 미래는 그대로 흐르는 것 같다.

“아, 네!”

연희는 좋아했다.

“딱 보자마자 이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경영대 여신! 어떻습니까?”

정훈이 말하자, 연희는 얼굴이 더 붉어졌고, 사람들의 환호가 일었다. 결국 약간 울상이 된 연희는 에프엠을 하기 시작했다.

...

어이!

“겨, 경영대 여신을 맡고 있는 10학번!” 우워우어우어!

괴성이 터졌다.

“김!연!희! 당차게 인사드립니다!”

연희는 얼굴을 푹 숙이고 수현의 곁으로 돌아왔다.

“죽, 죽을  같아...”

연희가 떨며 말했다.

“나갔다가 올게.”

수현이 연희의 손을 작게 잡아 토닥여 주고 말했다. 연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음분 나옵니다! 아, 올해 연고전은 이미 우리가 확실히 이겼습니다, 확실해요.”

객관적으로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훈은 분위기를 띄우며 말했다.

수현은 여유롭게 에프엠을 마치고 들어왔다.

“치, 자긴 되게 여유롭다...”

연희는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연희야, 그럼, 내가 이걸 몇 번을 했는데....

“남들 다 하는 건데 뭐...”

“근데 좀 잘난 체 아니었어?”

연희가 장난스레 말하며 수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가?”

“흔하디 흔한 이라니... 내꺼 보다 더 잘난 척 같았어.”

연희가 수현을 쿡쿡찌르며 말했다.

“네, 경영대 여신님.”

수현이 말하자 연희가 얼굴을 붉히며 그를 때렸다. 이건 진짜 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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