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04 (4/94)



〈 4화 〉04

1월2일.

수현은 알바사이트에 가입하고 몇 곳을 둘러보는 한편, 친구들에게 알바자리를 물어보기 위해 여기저기 문자를 돌렸다. 카톡이 아니라 단톡방이 없다는 것이 왜이리 어색한지. 문자를 치는 자신이 굉장히 낯설었다.

“아…당장 오늘부터는 무리겠지.”

월급제보다는 일당이나 주급으로 주는 곳이면 좋겠다는생각도 들었다. 2월초부터 기아차에 넣으면 좋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일자리가 잡혀야겠지만.

징~.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수현은 튕기듯이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대흥이었다. 대흥이는 죽기 전 가장 마지막까지 연락을 주고받던 유일한 친구이기도 했다. 색다른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너 알바 구해? 갑자기?

대흥이 약간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뭐 학교 개강하기 전까지 할 것도 없고. 돈 좀 벌어 보면 좋을 것 같아서.너 뭐 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 나 고3  애들이랑 마트 야간하고 있지. 너도 하려구? 한자리 정도 아직 있을걸? 같이 하쉴? 한 명 빼곤 너도 아는 애들이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데?”

-평일 밤 10시에 시작해서 한 6시? 정도 끝나지. 근데 솔직히 이거 개피곤 해서 우리 좀만 더 하다 관둘라고. 난 쫌 비추임.

“아, 그래? 돈은 좀 줘?

-야간이라   주긴 하는데, 그렇게 많이 주진 않음. 아예 넌 그거 말고 과외 알아보면  낫지 않냐?  엄청 많이 주잖아. SKY면 금방 구하지 않을라나?

수현도  생각이 났다. 너무 종자돈 생각에 매몰 되다보니 알바만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과외가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을 폐인으로 살아서 그렇지, 자신은SKY 재학생이었다. 생각해보면 2019년의 자신에게는 빛 바랜 학벌이지만, 대한민국의 20살에게는 가장  훈장 아니던가. 그리고 수현에게는 이미 두 번 정도 군대 가기 전에 과외선생을 해본 경험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경력 있는 신입이었다.

“할 만한 사람 아냐? 어떻게 하면 금방 구하지?”

문제라면 그는 학교 선배 추천으로 했던 것이라서 구하는 방법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쎄. 막 무슨 그것도 사이트 같은 거 있지 않을까? 아님 부모님 친구 애들이라던지.

“아…우리 엄마 주변엔 없을  같은데. 너 혹시 주변에 할 만한 사람 없어? 너  후배들 아는 애들도 많잖아. 혹시 없어?”

-글쎄…한 번 물어볼게! 근데  급전 필요한 일 있냐? 전에 같이 알바 하자고 할 땐 안 하더니. 돈 필요하면  빌려줘?

대흥이 약간 걱정스레 물었다. 수현의 조급함이 통화에도 묻어난 것 같았다.

“아냐. 그냥 좀 나도 돈  모아야 대학가면 뭐 쓸데 있을 것 같아서.”

수현이 별일 아니라는듯이 말했다. 고마운 친구였다.

-아, 뭔지   같네. 그럼 제가 번 알아 보겠슴돠.

대흥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예압. 떙큐.”

-오키. 수고여~

수현은 전화를 끝내고 과외 사이트에 들어갔다. 확실히 과외를 하면 시간에 비해 돈은 확실할 것 같았다. 진행이 되기만 한다면.

그는 재빨리 가입과 함께 과외 학생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일단 월요일에는 계좌부터 터 두러가면 될 테고. 근데 이렇게 되면 과외 시간 안 겹치게 일단은 오전 알바로 구해둬야하나? 방학이라 낮에 할 수도 있을 것 같긴한데.

그는 머리를 재빨리 굴리기 시작했다. 과외가 잡힐지도 모르고 그런데 또 마냥 기다리자니 시간이 아깝고. 그렇다고 알바 잡았다가 과외를 놓치기는 너무 아쉽고.
아, 그 일용직도 있던데. 그거라도 할까?

수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살이 약간 찐 모습. 죽기 직전보단 훨씬 적었지만, 한창 운동해서 뺐던 대학생 때랑 비교하면 상당한 군살이었다. 수현은 이 몸으로는 일용직 나가면 병원비가 더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토 산책도 하고,  따로  운동해야겠다. 식단 조절도 좀 하고. 외모관리도  해야겠어. 다행히 한번 해본적이 있다는 것은 용기를 주었다.

그는 당장에할 수 있을만한 운동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정발산에 오르면 간단한 기구도 있으니 근력은 그 정도로 하고, 유산소 운동은 호수 공원을 뛰어서 돌면 충분했다. 이 때의 몸은 제대로 운동한적은 없어도 젊으니까 어느 정도 버텨줄 거란 생각을 했다.

“토토야~. 산책?”

토토는 부스스한 표정으로 반신반의한 눈빛을 보냈다.

“토토. 산책? 산책갈까?”

토토는 벌떡 일어나 졸린 눈으로 짧은 꼬리를 흔들며 현관으로 향했다. 수현은 기분 좋게 산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오늘 춥네. 짧게만 돌고 가야겠다. 넌 안 춥니?”

토토는 요크셔테리어의 장모를 가진 믹스견이었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일단은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추워하지는 않고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잘 돌아다니긴 했다.

그들은 한동안 한적한 작은 공원을 천천히 돌았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휴, 학생! 애기 춥겠는데 옷 입혀야지!”

뒤쪽에서 어떤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시츄 두 마리를 꽁꽁싸매고 나온 아주머니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약간은 한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털도 길고 별로 안 추워하는 것 같아서 그냥 나왔는데, 괜찮지않나요?”

“아휴, 그래도 실내견 애들은 그러면 안돼! 우리 애들도 항상  입힌 다니까! 전에 감기 걸려서 아주 고생을 했어.”

그녀는 뭘 모른다는 듯이 그를 타박했다.

“아…알겠습니다.”

“엄마한테 애기 옷 좀 사달라고 해. 알겠지 학생? 요즘 너무 추워서 애기들 감기 들어.”

“아…예.”

“오늘은 빨리 그냥 들어가고!”

아주머니는  두 마리와 그를 지나쳐갔고,토토는 내 뒤로 숨어 개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나는 토토를 안아 들었다. 이렇게 보니 추워하는  같기도 했다.

엄마 몰래 입힐 것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팠다가 병원이라도 갈 일이 생기면 돈 들었다고 엄마가 무슨 난리를  칠지도 모르고. 고1때쯤 토토가 다리를 심하게 절고 못 일어나서 병원에 갔던 것을 들켰을 때, 얼마나 욕을 먹었던가.

항상 엄마는 돈이 문제였다. 항상 조금이라도 돈을 ‘허투로’ 쓰면 내일 당장 우리가 길바닥에 나 앉게 될 것처럼 분노하던 사람. 일산 시내에 소형이라지만 그래도 아파트 3채가 있음에도 그녀는 항상  이야기만 나오면 지나치게 히스테릭 해졌다. 특히 토토에게 들어가는 돈은 예전부터 ‘허투로’ 쓰는 돈이었다.

“하긴…아들 부족한 과목 과외도 못 시켜준다고 하던 분인데. 이러고 좀 돌다가 들어가자.”

수현은 토토를 품에 넣고 나무 냄새를 맡게 해주며 천천히 공원을 두 바퀴쯤 돌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나이가 제법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일종의 드라이브도 토토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워 한 것 같았다.

수현은 적당히 우울한 감정을 가진 채로, 그러나전에 없던 독기를 지닌 채로 운동을 위해 다시 나왔다. 지갑에서  만원 모아둔 용돈은 토토의 옷을 사기위해서 들고 나왔다. 전에 보니 호수 공원 근처 어딘가에 애견용품 할인 매장이 있던 것 같았다.

그는 후드를 쓰고 호수공원까지 걷기 시작했다.

공원 근처로 오자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연초 주말이라 멀리 중앙 광장 쪽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그는 아는 얼굴을 마주칠 것 같아 후드를 좀더 깊게 쓰고 걷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의 자신이 이 정도로 대인기피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때만 해도 나름대로 친구들도 제법 있었고, 대인관계는 오히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게 좋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부터 과거의 자신이 상당 부분 지워지고 대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정신적인 강박도 약간은 있는 것 같았고.

수현은 한숨을 내쉬며 광장을 지나쳐갔다.

툭.

“죄송합니다.”

수현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후드 때문에 시야가 더 좁아서 어깨를 부딪친 것 같았다.

“어? 이게 누구야? 수현이네? 야~,  학교 엄청 잘 갔다며?”

수현이 고개를 틀어 바라보자 죽기 전 만났던 그 일진 양아치가 있었다. 생각보다 기억은 미래의 자신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던 녀석의 이름이 떠올랐다. 박승완. 그래 이 새끼의 이름이었다.

“어? 아, 오랜만이네. 박승완.”

“야, 뭐가 올만이야. 몇 주 전에 교실에서도 봤구만. 섭하네~. 여튼 대학도 존나  간 새끼가 주말에 뭐하냐?”

“뭐, 그냥. 운동... 넌 뭐하는데?”

박승완은 반쯤 비웃는 얼굴로 옆의 여자를 끌어당겼다. 그날 봤던 박승완의 아내, 이우희였다. 그녀는 어색하게 손 인사를 했다.

“난 여친이랑 놀다가 좀따 애새끼들이랑 술 마시러 가지. 너도 올래?”

“아, 안녕. 아니. 난 됐다. ...그럼 잘 놀아라.  간다.”

수현은 옆의 여자를 보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이때도 사귀고 있었구나. 조금 더 앳된 그 얼굴을 다시금 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현은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걸었다.

“야! 담에  보자! 나도 명문대생들이랑 술 한잔 해보고 싶은데!”

박승완은 수현의 등을 보며 외쳤다.

“저 병신 대학가도 찐따인 듯?”

그러고는 수현에게 딱 들릴 만한 목소리로 우희에게 비웃듯 말했다.

“야, 왜 그래. 수현이가 무슨 찐따야.”

“아니, 뭐 공부 좀 한다고 맘에 안 들게 깝치잖아. 그리고 방금도 내가 술 한잔 하자니까 대가리 숙이고 쫄고 저게 찐따지 뭐. 아니냐?”

“어휴, 빨리 가자. 자 가요~. 그리고 너 오늘은 술 적당히 먹어?”

뒤에서 그를 껌처럼 씹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수현은 이를 악 물었다.

이번엔 꼭 성공하리라. 그래서 보여줄게. 너에게도 저 아래 시궁창이 어떤지를.

수현은 분노의 질주를 하고나서 토토의 옷을 샀다. 점원은 그의 땀냄새가 불편했는지 적당히 가격을 깎아주고는 그를 빨리 내보냈다.

수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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