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05 (5/94)



〈 5화 〉05

“네?! 계좌 개설이  된다고요?”

월요일 아침밥을 먹자마자 주거래 은행으로 달려가 주식계좌를 개설하려던 수현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 전해졌다. 그의 나이가 아직 만20세가 되지 않은 미성년자(2013년6월30일 이전에는 민법상 성년은 만20세부터)라서 단독으로 개설 할 수는 없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엄마가….허락해줄 리는 없는데.

단호박 같은 창구 직원의 태도에, 수현은 혼이 빠진 듯이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희망이 보였는데, 지금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돈을 벌 기회를 아는데 돈을 벌 수 없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해야 한다니.

그는 집으로 돌아와 좌절감에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다가 다시 계좌 개설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자신이 살아 본 바에 의하면, 분명히 꼼수 같은 것이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성년자 주식 계좌 개설-

그는 차분히 검색을 눌렀다.

지식인 답변:
미성년자의 주식 계좌 개설은 은행마다 차이가 있을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곳은….
그리고 미성년자 직접 방문으로 개설 가능한 곳은 00은행, ##은행…

가능하다!

메이져가 아닌 은행들에서는 비교적 쉽게 미성년자도 계좌를 개설하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가까운 곳이 어딘지 검색을 한 후에 그는 주거래 은행에서 돈을 찾아 가능한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래. 솟아날 구멍은 있구나!

그는 결국계좌를 개설하고 나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아니라면 사실상 큰돈을 불리는 것은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버텨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날개를 잃고 떨어지는 기분과 다시 날개가 돋아 날아오르는 기분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심장에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나저나 미성년자는 메이져 은행이 아니어도 선물옵션계좌는 개설이 불가라 문제네. 특히 올해 11월11일은 완전 대박 터트릴 기회의 장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어쨌든 눈앞의 불똥은 처리했다는 마음으로 그는 집으로 향했다. 일단 알바 자리든 과외 자리든 구해서 종자돈을 모으는것이 급선무였다. 종자돈이 없으면 옵션 투자고 주식투자고 전부 불가능 하니까.

*

그는 계좌를 개설하고 난 후,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첫 일주일은 운동을 시작했다. 역시 운동을 거의 안 하던 몸이라 약간의 근육통은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젊은 몸은 확실히 회복력이 달랐다. 2주차부터는 마냥 과외를 기다릴 수는 없어서 일일 알바가 나오면 알바를 했다. 몸이 고단했지만, 다이어트 대신이라고 생각하니 어찌 버틸 수 있었다. 2주를 지나고 나니, 살이 확실하게 빠졌다. 특히 얼굴의 젖살이 많이 빠져서 상대적으로 더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주말을 맞이해서 머리를 자르고, 무료 원데이 렌즈를 몇  얻어왔다. 다행히 안경을 바꿀 때 마다 다녔던 안경점의 아저씨는 신입생에게 몇 개를  넉넉히 챙겨주셨다.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외자리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주일을 더 기다리기에는 문제가 생긴다. 내일 오전까지 연락이 아무것도 없으면 다른 정기 일자리를 찾아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적거리다가 마우스를 놓고 기지개를 켰다. 적당한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었다.

그가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흥이었다.

“여보세요?”

-야, 너 오늘 시간 되냐?

대흥이 약간 급한 듯이 말했다.

“오늘?  시에?”

-어…저녁쯤? 한…일곱시? 아, 우린 여섯시?

대흥이 애매하게 말했다.

“일곱시는 뭐고, 우린 여섯시는 뭐야?”

-아 일곱 시는 애들이랑 저녁 먹고 술 한잔하려고 모이는 거고, 너랑 나는 너 과외 학생? 보는거고.

“오! 과외 자리 찾았어? 와-  거의 포기였는데, 어떻게 한 거야?”

수현이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물었다.

-너도 알 수도 있는데, 나 같이 방송반 하던 후배들 알지않나? 여튼 오늘 얘네 만났는데 얘네 중 한 명이 과외 하고 싶다고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뭐 너도 나도 과외는 첨이고 잘 모르겠는데, 일단은 나랑있을  한번 만나보는 게 좋지 않겠냐?

“아, 그래? 일단 내가 사이트에서 보니까 대충 시세랑 수업 일수는  것 같았거든? 과목은 어떻게 되는데? 한다고 하면 부모님은 괜찮으시고?”

-어….일단 대충 부모님은 다시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과목은 언어영역이랑 사회영역 쪽 하고 싶다네. 내가 너 언어영역 9월이랑 수능 연속 만점인 거랑, 인서울 3군데 다 논술로 합격했다는 거 말했더니.  반응은 좋아.

“아, 진짜? 그럼 나야 좋지. 그럼 여섯시에 보자. 어디로 갈까? 학교 쪽으로 갈까?”

-아니 나 방송반 애들이랑 점심 먹으러 나와 있어. 음… 그냥 웨돔 쪽으로 와. 있다가 애들 보내고 잠깐 따로 보면 될  같은데?

“알았어. 알았어. 지금 준비해서 갈게. 여섯 시 웨돔?”

-예압.

“오케이. 땡큐. 고맙다!”

전화를 꾾고 수현은 재빨리 다시 한번 사이트를 뒤지며 시세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자료 준비는 그냥 원래 공부하며 단권화 했던 것들과 수능 문제지를 챙겼다.

좋은 성적 받은 요약서랑 시험지만한 효과가 없지. 믿음을 주거든.

수현은 나가기 전에 평소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토토와의 산책을 마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최대한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외모를 정리했다. 렌즈도 착용했다. 그래도 훈남 소리를 들어봤던 그때 정도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꼭 오늘 따낸다. 긴장하지 말고. 이미 과외는 해본 경험이 있지 않나. 가르치는  나름 데이터가 있다. 호감을 주는 것이 중요했다. 호감!

날은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하늘도 제법 맑은 편이었다. 적당히 찬 기운을 마시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걸었다. 사실 처음 과외를 갈 때 보다  떨렸다. 아마 간절함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제일 친한 친구의 후배라는 점이 오히려 좀 더 부담스러운 느낌이었다. 비즈니스보다 인간관계가 먼저 하는 관계라서 그렇겠지.

수현은 5시  정도에 광장에 도착해서 대흥이에게 연락을 했다.

“응. 어디임? 나 광장 도착했거든. 먼저 근처 카페 들어가 있을게. 어느 쪽이 오기 편해? 웨돔 쪽? 라페 쪽? 아직 웨돔이야?”

-응? 우리 지금 카페 와 있었는데... 네가 걍 이리로 오면  듯.

“아, 그래? 그럼 어디로 가면 돼?

수현은 제법 빠르게 발을 놀려 대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먼저 카페에 앉아서 나름 이거 저거 펼쳐 놓았다가, 대흥이 데리고 들어오면 음료도 한 잔 사주면서 시작하려 했는데 조금 아쉽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쩔  없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황수현! 여기 여기!”

수현이 카페에 들어가자, 멀리서 대흥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동현이도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둘이 함께 방송반을 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오, 황수현~. 빡세게 하고 왔네. 미팅 나온 줄?”

동현이 수현을 보자마자 킬킬거리며 말했다.

“영어론 이게 미팅이 맞거든.”

수현이 비키라는 듯이 동현에게 손짓을 했다.

“나, 왜?”

동현이 수현을 올려다보며 눈을 꿈뻑거리고 물었다.

“그럼 초면에 바로 옆자리 앉니?”

수현이 작게 한숨을 쉬고 말하자, 동현이 깜빡했다는 듯이 일어났다.

“깜빡했다. 내가  아는 사이라.”

“야, 우린 아예 옆자리로 비켜 있을게. 이야기 하고 같이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대흥이 같이 일어나며 동현을 옆자리로 이끌었다. 동현은 순순히 옆자리로 함께 이주했다.

둘을 옆자리로 보내고 나서야, 둘은 겨우 제대로 인사를  수 있었다.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고 본 그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얼굴이었다. 도수 높은 안경에, 유난히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아이.

“아, 우리  적 있죠?”

수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자, 상대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반가워요.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고 좀 편하긴 하네요.”

수현이 가볍게 웃으며 살갑게 말했다.

“안경...빼시니까 못 알아볼  했어요. 많이 변하셔서.”

여자 아이도 예의바르게 말했다.

“좋은 쪽인 거죠?”

수현도 기분 좋게 대꾸했다.

“뭐야, 미팅이야? 왤케 화기애애해. 공부 얘기해.”

동현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수현이 눈짓으로 경고를 하자, 동현이 놀리듯 따라하면서도 다시 핸드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둘은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잠시 더 갖고 공부 이야기를 했다. 전형적인 4등급에 빠진 아이였고, 독특한 점은 외국생활로 외국어영역 만큼은 1등급을 항상 받는다는 것이었다. 과외 선생으로서는 가장 좋은 학생이었다. 이야기는 술술 흘러갔고, 어머니에 대한 허락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럼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소현이 핸드폰을 들고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화장실로 사라졌다.

“너 솔직히 이거 되면, 오늘 술 사야 하는 거 아니냐? 솔직히 소현이가  생각보다 페이 더 쎄게 부른 거 같은데, 맞지?”

동현이 수현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지금 되도 돈은 아직 없거든.”

수현은 약간 할 말이 없어서 괜히 동현의 팔을 치우며 말했다. 하여간 눈치는 빠른 놈이었다. 그렇게 잠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였다. 소현이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들 근처로 다가왔다.

“아, 어떻게 됐어요?”

수현이 영업용 미소를 빠르게 지어보이며 물었다.

“어머니도 괜찮다고 하셨어요. 근데 아버지가 그... 남자 선생님이면 얼굴은 한 번 보고 날짜 잡아보고 싶다고 하셨어서...”

하긴, 여학생과 남자 과외 선생은 그리 환영 받는 조합은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 쪽에서 오케이 한 것이 신기했다. 아무래도 대흥이 녀석의 신뢰도가 어머님들 사이에서 꽤나 높은 듯싶었다.

“네. 그럼 언제쯤...?”

“아, 아버지는 아직 통화가 안 되어서... 내일쯤 알려드려도 될까요?”

소현이약간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죠. 번호 알려줄게요.”

소현은 수현과 연락처를 교환한 뒤, 카페를 나섰다.

“아, 과외도 쉽지 않구먼!”

동현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법먹고 애들 오면 술이나 마시자. 치돈 땡긴다.”

대흥이 트레이를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치도리?”

동현이 한마디를 했고, 인상을 쓴 수현이 그에게 치도리를 먹였다.

술자리는 즐거웠다. 찌든 티가 나지 않는 술자리는 즐거움과 희망이 있었다. 주량을 잘 모르는 엉성함과 거친 속도 같은 것조차도 귀엽게 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이 새끼는  마시는데 왜 갑자기 표정이 붓다냐?”

정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 배짱에 놀라서 그런가보지. 미친...  정시   중에 너 만큼 당당한 놈 못 봤다니까? 누가 알면 발표  줄. 벌써 대학생인 줄.”

“아니, 대기2번이라니까? 안 되겠냐?”

둘은  다시 입씨름을 했고,  것 아닌 걸로 언성을 높였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둘을 말렸다. 비극보단 희극으로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