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02
“크어억.”
수현은 허리와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의외로 아프진 않았지만, 뻐근함이 느껴져서였다.
“뭐…뭐야…”
수현은 깜짝 놀라 발 아래를 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이었을 것이 분명한 몸뚱이가 요가라도 하듯이 허리와 머리를 제멋대로 꺽은 채로 널부러져있었다. 사지는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게....무슨 일이야? 수현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몸을 내려다보며 입을 벌렸다. 술마신 것과 다르게 정신은 또렸했으나,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안녕, 친구? 네가 보기에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지?”
수현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소리는 동굴에서 말할 때 처럼 묘하게 울리는 것처럼 들려서 한번에 찾을 수가 없었다.
“위쪽이야. 친구. 위쪽.”
상대는 수현이 멍청하게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찾지 못하는게 재미있었는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현은 뻐근한 뒷목을 잡은 채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독특한 차림새에 새빨간 피부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아니, 괴물이 있었다. 악마 같기도 하고 저승사자 같기도 한 그 모습은 인간의 태생적인 공포를 깨우는 모습이었다. 아니 차라리모습 보다는 그 존재 자체가 원초적인 공포 그 자체를 표현한 듯했다. 수현은 본능적인 공포로 벌벌 떨었다. 어째서 느끼지 못했을까 싶은 공포였다.
“흐음-. 무서워할 건 없어. 무섭겠지만. 하하. 우리 이야기를 해볼까?너의 몸이 마저 죽을 때 까지.”
'그'는 말 그대로 악랄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유쾌한 톤으로 말했다. 그게 한층 더 공포를 자극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러니까 전…아직 죽은 게 아닌가요?”
수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보이잖아? 버둥거리며 떨리는 네 몸뚱이가. 제법 그로테스크하지? 네 머리랑 허리가 아픈 것도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아서지. 좀만 있어봐. 아프지 않아질 거야.”
'그'는 시종일관 즐겁게 말했다. 마치 어린 아이가 개미시체를 가지고 놀며 웃는 느낌이었다.
“괜찮은 비유네. 맞아. 난 수 천년이 지나도록 제일즐거운 시간이 이때야. 죽기 전의 인간의발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름다움을 뽐내거든. 하하하! 너도 나름대로 아름답게 떨고 있는 편이니까 걱정마.”
수현은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제… 생각이 들리시나요?”
생각까지 읽힌다는 것은 모든 것이 벌거벗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한. 그래서 너를 감추지 못하는 한. 싫다면 노력해보라구. 이건 나도 따로 조절한다고 되는건 아니거든.”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말한 노력이라는 것은 딱 봐도 무의미한 노력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저를 데려가시려고 온 분인가요? 지옥의?”
수현은 읽히기 보다는 스스로의 생각을 말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아니. 아니. 난 그런 아주 하찮은 일을 하지는 않아. 그 많은 일들을 내가 전부 간다면 나라도 너희의 그 발작에 흥미를 잃고 말거야. 그건 따로 맡은 바 있는 부서가 있지.”
'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그 제스쳐 만큼은 인간의 것과 닮아있었다.
“그럼?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수현의 질문에 '그'는 매혹적으로 웃으며 그의 앞으로 휙 하고 다가 왔다. 물리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준비동작 조차 없는 빠르기였다. 차라리 영사기를 껐다 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간단해. 난 때때로저런 재미있는 것을 보려고 나타나는 존재고. 너는 그저 그때 마주친 인간인거야. 물론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너에게 중요한 건 아니지.”
'그'는 친절한 듯, 유혹하듯, 비밀을 알려주듯 말했다. 정말 악마의 전형이었다.
“그럼, 전 이렇게 있다가다른 부서 분들에게 가는 건가요? 이렇게 있다가?”
수현은 자신의 떨리는 몸을 가리키며 물었다. 무언가 실망과 허탈함이 수현을 강타했다.
“그건 내 마음에 따라 다르지. 때론 말을 걸고, 때론 보기만 하다 가기도 하지. 때론…. 때론,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하지.”
'그'는 시종일관 쾌활하고 활기차서 사기꾼 같은 면모가 강해 보였다. 하지만, 진중하지 않음에도 낮게 속삭이는 끝맺음은 대부의 돈 콜레오네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제안을 할거야. 그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작은…선물이요? 그건... 제게도 주실 수 있다는 말씀인 건가요?”
그리고 수현은 '그'가 드라이브 하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답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음으로. 이건 자연재해 같은 것이었다.
“그래. 그래. 일단은. 내 마음은 그렇다는 거지. 근데… 사실 곧 너의 사지가 멈추면 그쪽 애들이 올 테고, 그럼 넌 안타깝게도 내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되겠지? 난 부득이하게 돌아갈 수 밖에 없겠고.분업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그러니까... 빨리 신중하게 골라봐. 무얼 받고 싶니?”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재촉하는 말투는 부드러웠다. 그 공포가 깃들어 있지 않다면 다정한 형의 말투처럼 느껴질 만큼.
“그럼 무엇이든…가능한가요?”
수현이 침을 삼키고 물었다.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그 것도 너의 재량이지. 어디까지 가능할까? 어서 말해봐. 지금 시간은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생각은 해볼 수 있는 시간이지. 똑딱 똑딱. 어서.”
수현의 머릿속에 온갖 소망들이 머리를 휘저었다. 무엇 하나 콕 집을 수 없었다. 점점 고통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발 아래의 몸은 곧 떨림을 멈출 것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시간?그래, 시간!
“돌아…돌아 가고 싶어요! 가능한가요? 20살. 딱 성인이 된 그때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수현이 간절하게 외쳤다. 그 시절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정말로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응.”
'그'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수현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거기엔 간절함, 공포, 욕망, 희망, 절망이 섞여 아름다운 빛으로 재미있게 빛나고 있었다. 끝에 도달했다가 밧줄을 잡는인간들이 발하는 빛이란 항상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영생을 사는 자신은 가질 수 없는 절박함이있었다.
“좋아. 해주지.”
그 순간 수현의 육체는 떨림을 완전히 멈췄다. 정말로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다.
그때 휙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사람이 나타났다. 새까만 옷으로 둘러싼 그 모습은 확실히 ‘저승사자’라는 이미지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왜 당신이…지금...!”
저승사자가 당황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저승사자는 확실히 그보다 ‘하찮은 일’을 하는 격이 떨어지는 존재이긴 한 것 같았다.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긴 하지만, 함부로 그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것 같았다.
“이 인간은 나와 계약을 했으니, 너희 소관은 이제 아니게 되었어. 그러니까... 엄...내말은, 비켜줄 수 있겠니? 부탁해~.”
그는 마치 조롱하듯이 저승사자에게 말을 걸었다.
“한동안… 저희에겐 관심도 없으시고, 잠잠 하기만 하시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십니까.”
저승사자는 입술을 깨물며 그에게 말했다. 굉장히 불만은 많은 것 같았다.
“나 또한 우주를 만든 아버지의 어린 양인걸 어찌할까? 그분께서 나를 이렇게 낳으셨으니 나는 내 일에 충실할 뿐이지. 너희가 너희 일을 하듯이 변덕이 내 일이다. 불만접수는 이쪽이 아니라 만든 쪽에 해야하지 않겠느냐?”
저승사자는 그와 수현을 동시에 쏘아보며 입을 달싹거리더니 머리를 숙이고는 재빠르게 사라졌다.
“다음 번에 보게 된다면 너도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직이 말을 남기면서.
“저것들은뭐 별 권한도 없는 것들이 항상 말만 거칠어. 흐흐. 나처럼 유쾌하면 얼마나 좋나.”
'그'는 손을 짝 마주치며 말했다.
“저, 그럼 전 어떻게 되는 거죠?”
수현이 작게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네가 원하던 대로. 왜? 마음이 바뀌었나?”
그는 뻔히 알면서 물었다.
“아뇨. 그냥 무서워져서 그렇습니다.”
수현도 입으로 내어 말했다.
“하하하하. 그래 끝까지 너의 속을 읽히고 싶진 않은가 보구나? 차라리 입 밖으로 내는 인간은 오랜만이야.”
수현은 정말로 할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별 것 없다. 그리고 이미 넘어온 계약을 난 물릴 마음은 없고. 그러니 네가 무섭다고 뭔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지.”
수현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가지 말해주지. 우연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너희가 말하는 나쁜놈 착한놈을 가리지 않지. 그리고 우연은 언제나 바뀌기에 우연이다. 우연은 아무런 대가도 상황도 따르지 않지. 그게 유일한 본질이다. 믿던 대로 그걸 믿어라.”
그는 그 말을 마치며 수현의 목을 쥐고 투포환을 던지듯 멀리 던져버렸다. 아주 마초적이고 호쾌한 방식의 일처리였다. 무슨 신적인 능력이라기엔 지나치게 물리적 방식. 수 천년을 살았다더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건가.
수현은 이게 날라가는 것인지,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는 느낌을 받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어쩐지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