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01
-------------------prologue---------------------------------
2021년 2월. 한남동의 한 카페에 방송국인원들이 카메라 세팅을 마치고 큐사인을 주었다.
“네, 오늘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또 주목받는 젊은 사업가 부부시죠? 황수현씨, 그리고 김연희씨 두 분 모시겠습니다!”
유명 MC의 소개가 이어지고, 수현과 연희가 가벼운 미소로 인사하며 나타났다. 이젠 꽤나 카메라가 익숙한모습이었다.
“아, 정말 어렵게 모셨습니다. 너무 바쁘셔서.”
보조 MC가 넉살을 떨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최근에는 좀 쉬는 중이라...”
수현이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 그치만 또 이 사업이라는 게...”
보조 MC가 억울한 특유의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기야.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말라고 그랬지.”
MC가 가볍게 분위기를 띄우며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인터뷰는 그들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사업과투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아! 그러고 보니 두 분은 새내기 때 CC로 만나셔서 한 번도 헤어지신 적 없이 결혼까지 하신 거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여러 질문들이 오가던 중 MC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자 보조 MC가 감탄의 추임새를 넣었다.
“네. 한 번도 헤어진 적 없죠. 그치?”
수현이 말하며 연희를 살며시 감쌌다.
“네. 그리고 헤어졌으면 사업 큰 일 났었겠죠. 저희 처음 일은 특히?”
연희가 수현에게 가볍게 기대며 말했다. 일부러 약간 닭살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긴, 그렇죠. 동업에, 꼭 함께 하셨어야 하니까.”
MC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왜... 유명 돌체 앤 땡땡땡도...”
“자기야.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말라고 했지.”
보조MC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수현과 연희는 이젠 제법 카메라 앞에서도 떨지 않을 내공으로 부드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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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시바아알!”
황수현은 홧김에 컴퓨터의 마우스를 모니터에 던졌다. 29살 그의 인생 마지막 시험이라 생각한 회계사 시험의 2차 결과가 막 나온 참이었다. 수현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눈물을 막고 싶은마음도 없었지만 막으려고 했다고 해도 막을수 없는 그런 눈물이었다. 이를 악물었다. 피맛이 나는 것 같았다.
불합격.
점수
재무회계 111점.
원가회계 72.5점.
회계감사 51점.
세법 71점.
재무관리 67점.
지난날 1차 합격을 2번 통과하고 가졌던 일말의 희망도 모두 재가 되어 날아갔다. 그래도이 정도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신감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자만에 가까웠다고 보는 게 맞았다. 점수가 말해주고 있으니까. 하지만...너무했다. 결국 한 과목으로 떨어진 것은 억울한 느낌 마저 들었다.
쾅!쾅!쾅!
수현이 끓어오르는 감정에 키보드를 두들겼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뭔 지···”
한참을 지랄을 해댔더니, 결국 뒷줄에 앉아있던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그러나 그는 수현의 모니터를 바라보고는 말을 멈췄다. 아니 어쩌면 수현의 엉망인 얼굴이나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눈빛을 보고 멈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반걸음 뒤로 물러섰다. 약간 질린 것 같은 얼굴이기도 했고, 연민을 가진 얼굴이기도 했다.
“크흠··· 저···어···”
수현은 새빨개진 눈으로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화를 내러 왔던 사람은 결국 흠칫하며 별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도망갔다. 하긴 그라고 뭐라 할 말이 있었을까.
“뭐에요, 형. 뭐 조폭이에요?”
수현을 찾아 왔던 사람이슬금슬금 돌아가자, 뒤쪽에서 보고 있던 그의 일행이 그에게 물었다.
“아냐, 새꺄. 걍 가서 앉자.”
“왜요? 뭔데요?”
“걍 가. 병신아. 가자. 앉어. 앉어.”
수현을 찾아왔던 남자에게 반쯤 끌려가는 남자는 황수현 쪽을 보려고 몇 번 더 고개를 돌렸으나 못이기는 척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고 수현은 한참을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특별히 할 것이 있어서 온 것도 아니었고, 할 마음도 없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낫기 때문에 오던 피시방이고 단지 발표가 지금 나왔기에 확인 한 것이었다. 확인 했더니 결과가 불합격이었던 것이고...
그리고 슬프게도 한참을 모니터를 바라본다고 해서 불합격이 합격이 되는 것도 아니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있어봐야 요금만 더 나올 테니.
데스크에 가까워지자 예쁘장한 여자 알바가 그를 안쓰럽게 보며 이온음료를 건넸다. 그녀는 최근 할 것도별로 없는 수현이 피시방을 들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저기, 이거 드세요.”
“저···요?”
수현이 새빨간 눈을 슬쩍 문지르며 말했다.
“네, 저기···힘내세요!”
아, 피시방 모니터는 데스크에서 다 볼 수 있다더니 진짜였나 보네. 수현은 쪽팔림에 고개를 푹 숙였다.
시발. 좆같다. 오죽했으면 키보드를 내리친 사람한테 응원을 해줄까.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할지 감이 잡혔다.
그는 나지막이 ‘감사합니다.’를 중얼거리며 이온음료를 손에 꽉 쥔 채로 문을 나섰다.
8월의 하늘은 아직 맑고 밝았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세상 같기도 하고, 자신이 어떻게 되든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아 수현의 기분은 한층 더 나빠졌다.
칙-.
음료를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벌써 5년을 준비했다. 2014년에 전역해서 2015년부터 준비했으니 이 공부만 거의 5년을 한 것이다. 그리고 받은 결과는 좌절이었다. 곧 30줄이었다.
후-.
아직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이 났다. 어째선지 몸 안에서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수현은손등으로 얼굴의 땀을 훔쳐냈다. 답답해서 괜히 더운 느낌인 것 같았다.
그는 한참을 걸었다. 음료는 금세 미지근해졌고, 그 맛 조차도 비려진 느낌이었다. 잔디에 남은 음료를 다 부어버리고 음료 캔을 찌부려뜨렸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쓰레기봉투가 정자 옆에 놓여있었다.
휙.
그는 캔을 집어 던졌다. 캔은 옆의 기둥을 맞고 제멋대로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시발! 캔도 제대로 못 넣네.
그는 속으로 스스로를 비웃으며 터덜터덜 걸어 정자로 다가섰다. 캔을 주워서 쓰레기봉투에 넣고는 정자에 털썩 앉았다. 그늘 아래에서도 땀은 다시금 주륵 났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사실 연락할 곳은 없었다. 당연하다. 누구에게 해야 할까? 이미 연락한지 연 단위로 지난 친구들? 같이 시험준비 했던 이미 합격한 친구들?
아니면 빨리 손절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 기대감을 갖던 엄마? 은근히 고시낭인이라며 무시하던 사촌들?
멍하니 보던 화면을 다시 껐다. 술 마시는 것도 안 된다.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이걸 알린다고?
안 그래도 비난 어린 시선과실망 어린 한숨은 발표 때마다 받았다. 아마 술까지 마신다면 욕만 욕대로 더 먹을 것이다.
시험이 떨어진 날 다음 아침부터는 최소 일주일은 말도 걸지 않고 밥도 주지 않아 따로쭈구리가 되어 먹었는데, 해장이라도 필요하면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하다.
할아버지 두 분이 그를 바라보며 정자에 앉았다. 슬슬눈치를 주는 것을 보니, 여기가 할아버지들의 모임 장소인 것 같았다.
수현은슬쩍 일어나 다시 정처 없이 걸었다. 육교를지날 때쯤 한 커플을 보았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자신과 별로 사이가 좋진않았던 일진 무리의 남자애와, 같은 반이었던 제일 인기가 많았던 예쁜 여자애였다. 20대 초반에 사고 쳐서 결혼 했다고 했는데,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야.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저 우는 사람?”
여자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것 같았다.
“쟤? 저거 걔 잖아. 그 3학년 우리 반에서 공부 좀 한다고 나대던 새낀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뭐 스카이 갔을 걸? 전에 동창회 때 애새끼들한테 듣기론 무슨 고시던가 한다고 했는데. 근데 보니까 망했나본데? 쳐 우는거보니?”
남자는 수현을 금방 알아보았는지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생각났다!”
여자가 무언가 더 말을 했지만수현은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겨 그 소리에서 멀어졌다. 그 비웃음에서 멀어지기 위해서수현은 달렸다.
수현은 손을 덜덜 떨었다. 주변의 사람은 여전히 많았고 누구든 그를 비난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뛰듯이 걸어서 사람이 적을만한 곳으로 향했다.
수현은 한참을달려 정발산 아래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변기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주저앉듯이 변기에 걸터앉았다. 뛰느라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생각해보면 그 일진애는 집이 제법 부자라고 했다. 어느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제법 잘나가는 회사라고, 아버지 회사를 자랑했던 것이 기억난다.
수현은 한참을 앉아 손을 떨었다.모기가 그의 주위를 돌며 몇 번 피를 빨았을 때야 그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팍!
수현은 한참을 포식하고 벽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기를 터뜨려 죽였다.
수현이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해는 거의 져서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이이잉.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보니 엄마였다. 분명 오늘 발표인 것을 알아내고 전화를 건 것이다.
수현은 갑자기 목을 죄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핸드폰을 가까운 도랑에 집어 던졌다. 그는 과호흡 증후군처럼,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가까운 편의점으로 뛰듯이 들어갔다. 그는 허겁지겁 소주를 두 병 골라 계산대에 올렸다. 알바생은 인상을 찌푸린 채 결제를 하고카드를 던지듯이 돌려주었다.
수현은 길이 없는 곳으로 산을 올랐다. 그리고 한참을 숨이 차게 오르다 어딘지 모를 곳에 멈췄다. 그는 나무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벌레는 그 주변을 맴돌며 듣기싫은 소음을 냈고,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어두운 시간에 맞춰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땀으로 방울진 안경에 불빛들이 뒤틀려 그의 눈에 들어왔다.
우웩!
그는 몇 번이고 속을 게워냈다. 세상이 싫었다. 갑자기 저기 보이는 모든 것들이 역겨웠다. 불빛들도, 사람들도, 그리고 그걸 보는 자신 조차도.
벌레들은 더 많아졌다. 마치 그를 뜯어먹으려 몰려든 것처럼 소음을 내며 맴돌았다. 수현은 그 모든 소음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소주 두 병을 모두 따서 얼굴에 붓듯이마시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반 쯤은 흘러 내렸지만, 빈 속에 들어가는 알콜은 그에게 금세 취기를 주었다.
술기운이 금세 돌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을 때, 그는 빛나는 세상을 향해 한마디 욕을 내뱉으며 한걸음을 내딛었고 동시에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오를 때는 그렇게 숨이 차고 오래 걸렸는데, 떨어질 때는 어찌나 빠르게 떨어지는 지. 그의 인생같았다.
우직-! 빡! 우지끈-빡!
수현은 뒤통수와 허리에 차례로 끔찍한 고통을 느꼈고,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