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06화 (106/131)

〈 106화 〉 Ep11. 사이공 철수 작전 (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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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새벽 4시. 탄손누트 국제공항이 또 다시 폭격을 당했다. 이번엔 경고가 아닌 공격의 메시지를 담은 전면적인 공세였다. 포탄이 작렬하는 비행장 활주로에서 목숨건 구조 작전을 벌이는 미국의 C-130 군용수송기 조종사가 외쳤다.

<이게 마지막 비행기입니다! 아무나 타십시오!>

겁에 질린 미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이 닥치는대로 자리잡으니 조종사가 목숨을 걸고 조종간을 당겼다. 떨어지는 포탄비 속에서 육중한 무게의 수송기가 가까스로 하늘을 날아오르니 탈출한 사람에겐 안도의 한숨을, 탈출하지 못한 자에겐 절망감을 선사했다.

이 날의 공습으로 비행장 활주로는 달 표면 크레이터마냥 움푹 패여 못 쓰게 되었고 미군 장병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군용 수송기를 이용한 탈출작전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사이공의 사람들은 이제 비행장이 아닌 대사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치외법권인 그곳에서 몸을 피하고 헬기의 도움까지 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대사관 내부의 분위기는 달랐다. 단 한명. 사이공의 하얀 성을 지배하는 총 책임자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던 것이다.

미국 대사관 국방 무관단실의 책임자인 스미스 장군은 대사관의 집무실을 찾아가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굳이 비행장만 노려서 폭격한건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 프리퀀트 윈드 작전의 옵션4를 발동해야합니다. 대사님!”

그러거나 말거나. 가브리엘 마틴 대사는 집무실에서 베트남 가정부가 따라주는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차피 본국에서 소련과 협상중일 건데 뭐가 그리 급한가? 장군.”

“비행장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병사 2명이 죽었죠. 미국이 북베트남에게 공격을 당했단 말입니다!”

“이럴 때일 수록 침착하게. 우리가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이공 사람들이 불안에 빠질거야.”

그 말에 스미스 소장이 아연실색을 하면서 말했다.

“이미 공황상태입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십니까?”

“자네는 미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부족한 것 같군.”

“예?”

“우린 세계 최강대국이야. 남중국해엔 우리 항모전단까지 와있지. 병사 2명의 죽음은 가슴아프지만 그건 사고일걸세.”

“......”

가브리엘 마틴 대사는 커피를 내려놓고 말했다.

“사이공이 포위당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사이공 입구를 지키는 남베트남 병력이 고작 1만 남짓일테고. CIA애들 말에 따르면 북베트남 병력은 최소 14만 이상이라 했어.”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근데 일주일이 넘도록 다리에 막혀 들어오지를 못했지. 그 뿐인가? 대공 미사일을 줄줄이 들고 왔을건데, 남베트남 전투기들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우리 수송기만큼은 안 건드리고 있잖아?”

“그건··· 맞습니다···.”

“놈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야. 그러니 자부심을 갖게 장군. 우리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고 질서있게 철수할걸세.”

그러자 스미스 장군이 넥타이를 고쳐매며 말했다.

“하지만 비행장이 못 쓰게 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질서 있는 후퇴를 위해서라도 옵션4는 불가피합니다.”

“그럼 내 두눈으로 비행장을 보고 오지. 눈 먼 포탄이 떨어진건지 공격을 당한건지. 내가 판단하겠네.”

이 때가 오전 7시. 가브리엘 마틴 대사가 비행장을 방문한건 10시가 넘어서였고, 불타는 미군 수송기들과 군데군데 구멍이 난 활주로를 보고나서야 본국에 보안전화를 걸어 옵션 4의 발동을 허락받았다. 이 때가 무려 10시 48분이었다.

미국의 사이공 철수 작전 옵션4는 사이공의 라디오 방송에서부터 시작됐다. 방송 진행자가 베트남의 무더운 4월 봄날에 이상한 노래를 틀었다.

[현재 사이공 기온은 화씨 105도이며 점차 오를 전망입니다. 이어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을 듣겠습니다.]

4월에 울려 퍼진 크리스마스 캐롤송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갸웃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악하는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그들은 짐을 챙겨들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 사이공의 길거리를 미친놈들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흰 눈이 내린 크리스마스의 꿈을 꾸네~ 흔히 내가 떠올리곤 하던 그런 모습을~ 나무 끝이 반짝거리고 아이들이 눈 속의 썰매 방울 소리에 귀기울이는 곳을~>

사이공의 4월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런 환상을 떠올릴 경황도 없었고, 썰매 방울에 귀기울여야 할 아이들은 전쟁의 포성에 울부짖고 있었다. 모순적인 상황에 모순적인 노래는 미국인들의 전면적인 철수를 지시하는 '프리퀀트 윈드 작전'의 옵션4 발동을 알리는 비밀 지령이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가까운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고, 그곳엔 소형 헬기 한 대가 겨우 착륙할 수 있을만한 공간이 있었다. 거기서 일렬로 줄을 서가며 탑승해 하늘로 탈출을 했다.

이대현 공사도 그런 헬기를 타기 위해 미리 전달받았던 어셈블리 3로 달려왔다. 상가가 딸려있는 6층짜리 아파트엔 수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있었고 옥상에는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한제국 공사 이대현이다! 약속받은 대로 어셈블리 3로 왔다!”

하지만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가로막은 미해병대 장교들이 이대현 일행을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한국 사람을 태우라는 지시를 받은 적 없습니다! 물러서십시오!"

"지금 장난하나? 신호가 울리면 어셈블리 3로 모이라고 한건 네 놈들이야! 구해주겠다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야?"

황태녀 전하의 보험이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대사관에선 어셈블리 3로 오라그러고, 어셈블리 3에선 들은바 없다고 그러는 어처구니 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 새끼들도 제 정신이 아니구만···."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이대현 공사를 바라보며 부하 직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이들과 입씨름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대사관이랑 해병대 애들이 손발이 안맞았나본데, 이렇게 된거 대사관에 직접 찾아가는게 낫겠어. 보험 하나가 날아갔구만···."

이대현 공사와 일행들은 말싸움을 포기하고 미국대사관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희망은 없었다. 실미도 요원들조차 고개를 저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대사관 입구가 안보일 정도로 피난민들이 잔뜩 몰려와 문을 두드리고 있던 것이다.

<살려주세요! 아이들만이라도 탈출시켜줘요!>

<나도 미국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야! 여기서 탈출 못하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고!>

담벼락에 서있는 미국 해병대 병사들이 총으로 위협해보지만 차마 쏠 수 없었다. 담벼락에 매달려 어떻게든 들어가보겠다고 아우성 치는 사람들이라고 죄가 있는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 미국을 도왔던 사람들이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병사들이라고 모를 턱이 없었다.

멀찌감치서 그걸 바라보고 있는 이대현 공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내가 알고있던 미국이란 말인가?"

옆에 서있는 실미도 부대 강 소령이 의구심을 가진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오전 10시가 넘었습니다. 이쯤 되면 대사관에도 대형 수송 헬기들이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미국 직원들이랑 교민들, 최소한 미국인만큼이라도 대피시키려면 소형헬기론 안될테니까."

“대사관과 해병대의 손발이 안맞고, 미국인조차 피난가지 못하는 상황인데 치누크 헬기 한 대 오지를 않으니, 이건 마치 허둥지둥 하는 거 같습니다.”

두 사람은 일단 대사관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들어가기 힘들어보이지만 어떻게든 들어가야 했다. 잠시 후 이대현 공사는 대사관 입구에서도 실갱이를 해야 했다. 미군 병사들과 장교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한제국 공사 이대현이야! 동맹국 외교관도 못 알아보나? 이 멍청한 새끼들아! 책임자 오라그래! 이딴 어리버리한 소위 새끼 말고! 더 높은 애 오라고!”

결국 답답해서 담을 넘기로 했다.

***

같은 날 오전 11시. 7함대의 기함 USS 블루리지의 지휘실엔 이은서도 있었다. 미군 장교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긴 했는데 말 한마디 꺼낼 수 없는 무겁고 급박한 공기가 있었다.

복잡한 미해군의 군사용어가 오가는 현장 속에서 깍두기 신세가 되어버린 은서는 평양에서 겪었던 굴욕적인 상황을 떠올리고 만다.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장군들은 미국 최강의 무적함대 7함대를 이끄는 지휘관들이었다. 소련조차 이길 수 없는 막강한 항공모함이 2대나 있었고 호위할 수 있는 최신 함정도 무더기로 끌고왔다. 바다 속엔 핵잠수함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7함대.

하지만 은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고작 100명의 친위대와 약간의 해병대 그리고 13척의 구식 수송함을 거느리고 있을 뿐인 자신은 헬기 한 대조차 띄울 수 없어 구걸해야 할 처지에 놓인 30세 여자다.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면 진급 잘 해봐야 소령 계급이 고작이었을텐데, 그런 자신이 저들과 당당하게 대화 할 수 있을지 자신이 들지 않아 주눅들고 만다.

"겁나세요?"

옆에 서있던 남자가 손을 잡아주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정체는 진혁이었다. 친근한 미소로 격려해주는 녀석의 손길이 따뜻했다.

"많이."

"자신감을 가지세요. 전하는 지금 대한제국 국군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서계시는 거니까요."

"그래도 난 너무 초라한걸? 거느린 병사도 경력도 모든게 부족해. 헬기 한 대 없어가지고 구걸을 해야할 상황도···."

"여기 거들먹 거리는 장군 애들 끽 해봐야 3성 장군이에요. 전하는 지금 5성장군이시죠. 맥아더 장군이 달고 있던 바로 그 계급이라구요. 지금 여기선 백 여명밖에 없지만 본국에는 39만 대군을 거느리고 계시죠."

"그렇긴 하지···."

새삼 생각해보면 그랬다. 자신의 계급이 맥아더 장군과 동급이다. 태평양 전쟁의 영웅이었으며, 패전국 일본을 농업국가로 만들어버린 미군정의 총책임자. 그들에게 'GHQ 막부의 맥아더 쇼군'으로 불린 정계의 실세. 조선인에겐 한국전쟁의 은인으로 대우받는 그 장군님과 똑같은 5성 장군이다.

그래서 더 부끄러웠다. 자신의 힘으로 능력을 입증해 5성 장군까지 올라간 맥아더 장군과, 좋은 핏줄을 타고났다는 이유 만으로 5성 장군이 된 자신의 차이는 너무도 컸으니까.

'난 낙하산이야. 능력도 없으면서 좋은 핏줄을 타고났단 이유만으로 올라온 장군이라고···.'

하지만 그 때 미군 장성들이 주고받는 작전의 대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내용인 즉 미국 대사관으로 언제 헬기를 보내는지 논하는 내용이었다.

“치누크는 언제 보내라던가?”

미국의 함대 지휘관의 물음에 장교 한 명이 답했다.

"10시 45분부터 투입하랍니다."

손목시계를 보며 머리를 굴리는 지휘관이 곧바로 답을 도출했다. 작전 개시 시간 10시 45분에 대한 그 남자의 해석.

"표준시 기준이겠군. 런던 시간으로 오전 10시 45분이면 사이공에선 5시가 좀 안될 시간일테니 아직 시간이 있겠어."

"예. 그 때까지 조종사들을 쉬게 했다가 곧바로 헬기를 투입하면 대사관 직원들을 모두 빼올 수 있을 겁니다."

함대 지휘관이 반신반의하듯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흠··· 조금 느긋한 거 같구만···."

그 말이 은서를 자극했다. 사이공이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느긋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 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느긋해? 느긋하다고? 사이공이 포위당했어. 적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판에 어떻게 느긋할 수가 있지? 지금 이 시간에도 이대현 공사님은 사이공에 같혀계시는데···.'

그러자 용기를 내서 외쳐보기로 했다. 망설이기엔 자기 어깨에 달린 이대현 공사님과 직원들 그리고 실미도 요원들의 목숨이 너무 컸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국민들의 생명은 더더욱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외쳤다.

"잠시만요!!!!"

그러자 모든 미국 장성들이 30대의 여성 장군. 계급은 별이 다섯개인 이은서를 쳐다보았다.

"뭐야? 저 여자는?"

장군의 물음에 옆에 있던 장교가 귓속말로 소근거리며 답했다.

"코리아의 크라운 프린세스랍니다."

"뭐? 왕족?! 공주가 왜 여기에 있는거야?"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30대에 5성 장군은 군인인 자기가 보기에도 우습기 짝이 없는 낙하산이다. 하지만 황태녀는 다르다. 거들먹거리는 동맹국의 장군들 조차 무시할 수 없는 '남의 나라 최고 등급 VIP'였기 때문이다.

'그래, 난 황태녀야! 니들이 장군이면 다야? 난 동맹국 국가원수의 딸이라고!'

가진 힘이 있다면 최대한으로 쓰기로 했다. 황태녀의 영향력은 미국 7함대도 움직일 수 있다. 내가 입증하리라. 난 대한제국 황태녀니까. 구해줘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까.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은서는 자신있게 말했다.

"시간에 문제가 있어요!"

"문제라니요?"

"방금 느긋하다고 하셨죠? 장군님이 생각하시기에 지금이 느긋하게 굴어도 될 상황인가요?"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느긋한게 맞지 않습니까? 지금 11시밖에 안됐습니다. 못해도 5시간이나 남았는데···."

"지금 사이공은 포위되어 있어요! 우리 함대가 메콩강 하구로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베트콩이랑 북베트남군이 잔뜩있었다구요!"

"그건 우리도 압니다."

"근데 느긋해요? 사이공의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공포에 질렸을텐데?"

"일단 진정하시고···."

은서는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말씀하신대로 지금은 11시 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구출작전이 무려 5시간 뒤? 그동안 놀고 있으라는게 백악관의 뜻일까요?"

"당연히 놀고 있으란 건 아닐겁니다. 그 동안 헬기를 정비하고 조종사들에게 작전 준비시간을 주고···."

"작전 준비를 5시간동안 하라는 게 말이 되나요? 미군은 원래 그래요? 10시 45분! 그리니치 표준시가 아닐 가능성은요?"

모순점이 있었다. 지금 사이공의 시각은 오전 11시. 하지만 미국 워싱턴에서 하달한 작전 개시 시각이 오전 10시 45분. 7함대 사령관은 이것을 시차의 차이로 해석하여 런던에 위치한 표준시를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표준시와 사이공의 시차는 무려 6시간이다.

"미국은 세계 전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입니다. 우린 아메리카 대륙에서부터 유럽, 중동, 아시아까지 세계 전역을 누비고 있죠. 그러니 시간도 국제표준시로 움직이는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남자의 해석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세계 전역을 누빈다. 지구라는 행성은 둥글기 때문에 지역마다 시간이 달라서, 워싱턴에서 오전 11시라 하면 베를린에선 오후 5시가 되고 서울에선 다음 날 자정이 된다. 시간의 기준점을 잡아두지 않으면 작전에 혼선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자국민들이 사이공에 같혀있어 안절부절 못하시는 모양인데 여긴 7함대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섣불리 나서지 마십시오."

하지만 은서도 고개를 치켜들어 당당하게 맞섰다. 그 여자 이은서 대한제국 황태녀의 결의를 담아. 영웅의 딸 그 자체로 영웅 월남전 참전용사의 항변.

"알지도 못한다고? 그래 항공모함에 대해선 아는게 쥐뿔도 없겠지. 하지만 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이야. 사이공에 대해선 너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은서는 벽에 걸린 지도를 강조하며 말했다.

"사이공이 포위됐다고. 앞으로 몇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건···."

"바다에서 뺀질나게 항모나 타고 돌아다닌 네가 알까? 월남 애들이 얼마나 못 싸우고 얼마나 나약한지? 녀석들은 못 버텨! 절대로!"

"그 정돈 나도 압니다. 월남군의 나약함을 우리가 모를리 없죠."

"알고 있으면 명심하라고! 사이공은 못 버텨! 당장 오늘 함락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야! 그러니까 잘 생각해."

은서는 호소하듯 고개를 저으며 절박하게 말했다.

"난 헬기 한 대만 빌리면 돼. 치누크 헬기 한 대만 빌려주면 내가 구해주고싶은 모든 부하들을 구할 수 있다고."

"그건··· 진작 말을 하시지···."

“사이공엔 니들 국민도 있잖아. 미국 사람들과 니들을 도와준 베트남의 사람들은 헬기 한 대로 안되는 거잖아.”

"......"

“다시 생각해 줘. 한 번만 더 확인해 봐. 작전 시간이 5시라는 건 말이 안 돼. 사이공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굴라는 건 이상하잖아.”

은서는 지도를 가리키며 호소했다.

"이 순간에도 너희 나라 국민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포탄이 떨어지는 사이공에서!"

대한제국 사람들은 둘째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인은 첫째의 문제다. 미국 7함대의 지휘관인 그 중년의 백인 남성에게 미국 국민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도 미국인이니까. 그도 미국의 국군이라면 국민을 지켜야 하니까. 그래서 장군은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백악관에서 하달한 작전 시간 10시 45분이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이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잠시 후. 워싱턴에서 날아온 첫번째 전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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