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Ep11. 사이공 철수 작전 (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베트남의 적화통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1975년 4월 27일이었다.
사이공으로 향하는 마지막 다리, 미국제 M16 소총을 든 남베트남 병사와 소련제 AK-47 소총을 든 북베트남 병사가 격돌을 벌이니 무수한 피가 그곳에 흘렀다.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혁명을 위하여!!!>
외세를 몰아내고 조국 통일의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북베트남 군인들의 열망이 총구에 담겨 불을 뿜었다. 날아오는 총알에도 두려워 하지 않는 그들은 충천한 사기와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다리를 향해 돌격했다.
<누구도 여기를 통과할 수 없다!>
레민다오 장군이 이곳에 있었다. 쑤안록에서 전략적인 후퇴를 감행해 이곳에 자리잡았다. 병력과 물자를 끌어 모으고 견고하게 진지를 구축하여 만든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곳이 뚫리면 남베트남은 멸망. 그야말로 배수진이었다.
"장군님!!!"
뒤에서 총을 든 앳된 청년들이 달려왔다. 남베트남의 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학생들까지 총을 들고 나선 것이다.
"어떻게 너희들까지···."
"저희들도 싸우겠습니다!"
"도망을 가지 않고···."
"국군은 국민을 지켜야 하니까요!"
늦었지만 조국이다. 망할 나라도 조국이다. 부패하고 무능했을 지언정 자신들의 소중한 국민이 살고 있는 고향 땅의 조국이다. 그렇기에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전장으로 뛰쳐 나온 군인들은 이 나라의 마지막 애국자들이었다.
포성이 오가고 총탄이 오가는 피의 다리에서 한 명의 군인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더 이상 조국을 지킬 수 없다는 원통함에 하늘을 바라보고 외쳤다.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
그곳엔 미국의 비행기들이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지켜주기로 약속한 동맹이었고, 공동의 적을 두고 등을 맞댔던 혈맹이었다.
"도와줘··· 제발···."
목소리가 닿기엔 모든게 멀어보였다. 헬기와의 거리도, 비행기와의 거리도, 항모전단과의 거리도 모든게 멀게만 느껴졌다. 친구들은 무사히 피난갔을까? 어머니 아버지도 전쟁을 피해서 몸을 잘 추스리셔야 할텐데. 청년은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숨을 거뒀다.
그 시각 남베트남의 공군참모총장은 관제탑에서 무전을 날렸다.
"모든 항공기는 즉시 이륙하라! 모두 이륙해서 아무데나 가버려!"
그러자 누군가가 무전망으로 되물었다. 이름모를 젊은 공군 파일럿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뭘 해야하냐구요!]
"너희들은 이 나라가 키운 귀중한 인재들이야. 그런 너희들이 헛된 기대를 품다가 죽는건 내가 허락할 수 없어. 그러니까··· 도망가라. 비행기 끌고 어디든지 도망가서 후일을 도모해."
비관적으로 말하는 장군님께 젊은 파일럿이 답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는데 어디로 도망가란 말입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육군의 전우들은 목숨 바쳐 다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장군님!]
"안돼,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갔다간 죽어!"
[죄송합니다. 전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겠어요.]
그렇게 혈기왕성한 파일럿들이 각자의 전투기를 끌고 활주로를 박차 하늘로 향했다.
트룽 풍 대위와 푹 중위는 자신들의 기체인 A-1 스카이레이더 전폭기를 끌고 적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북베트남군에게 폭격을 날렸다.
장군님과 무전기로 대화하던 트란 반 히엔 중위는 탄 중위와 함께 AC-119 건쉽을 몰고 하늘을 날았다. 육중한 비행기엔 분당 4,000발까지 총알을 쏘는 미니건이 4정 달려 있었고, 분당 6,600발을 쏠 수 있는 발칸포가 2정이나 달려 있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무자비한 총알 세례에 다리를 공격하던 북베트남군이 주춤하고 말았다.
기대하지도 않던 공군의 지원 사격에 다리를 지키던 결사대가 희망을 얻었다. 레민다오 장군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마지막 순간이 되니 진짜 애국자들을 만나는구만···.'
가슴이 아려왔다. 사무치는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도망가고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에 와서야 진정한 애국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빨리 나왔다면 어땠을까? 지금 이 순간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싸우고 있는 마지막 애국자들이 처음부터 나라를 이끌고 있었더라면 월남전은 조금 다른 결과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입으로만 반공을 떠들고 입으로만 애국을 떠들어대는 거짓된 애국자들이 망친 조국은 더 이상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것이 너무 분해서 장군은 눈물을 흘렸다.
"왜 우리는 이제서야 애국자가 되었단 말인가?"
같은 시각 또 다른 애국자가 있었다.
대한제국 대사관으로 돌아온 이대현 공사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4월 27일 저녁이었다. 깜깜한 대사관의 공터에 50명에 달하는 조선 사람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피난간줄 알았는데··· 한 두 명도 아니고 50명 씩이나 남아있다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전투기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귓청을 때렸다. 남베트남 공군의 결사대와 북베트남 공군의 정예 병력들이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보기에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거 같았다.
"아이고 공사님!"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소리쳤다. 그 모습에 이대현 공사가 핏대를 세우며 화를 냈다.
"내가 누누히 피난가라고 말했잖나! 왜 여기서 알짱대고 있는게야!!!"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슈··· 시골에 살아서 그만···."
"아니 도대체 남의 나라 시골까진 뭐하러 간거야? 이 미련한···."
주먹을 부르르 떠는 이대현 공사에게 무거운 책임감이 생겼다. 혹시나 했던 마음이 현실로 바뀐 순간이다. 황태녀 전하의 뒤를 이어 최후의 책임자가 되어버린 자신은 50명에 달하는 국민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했다.
'이거 이래선··· 50명 말고도 더 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황태녀 전하는 미국 대사관으로 헬기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면 실미도 요원들에 의존해 베트남 사람 행세를 하며 몰래몰래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50명이다. 무려 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몰래 피난시키는게 가능할리 없다.
"내가··· 어찌하면 좋겠나?"
이대현 공사의 물음에 강 소령이 답했다.
"어떤 선택을 하시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일단 우리 대사관으로 들어가지. 누가 얼마나 더 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잠시 후 대사관에 전화가 울렸다. 유창한 영어로 들리는 미국 대사관발 전화 통화에서 미국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신호가 울리면 어셈블리 3로 모이십시오. 저희가 모두 구출해드리겠습니다.>
보험이 먹혀들고 있었다.
***
다음 날 4월 28일, 탄손누트 국제 공항에 포탄이 떨어졌다. 당장 사이공을 떠나라는 경고성으로 날아온 포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출을 멈출 수 없었다.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공항에서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인'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한제국이 우려했던 모든 문제가 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군인, 사업가, 관료, 여행객 등 그들의 재산을 옮겨줘야 했고, 그들과 함께 살던 베트남 사람들. 미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까지 딸려와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것도 모자라 미군과 협력했던 베트남의 고위공직자들, 공무원, 지식인들이나 경찰 심지어 전장에 나가야 할 장군들까지 몰려와 태워달라 하고 있으니 아무리 피난 시켜도 줄지를 않았다. 이런 판에 공항이 폭격을 당하니 미군 장교들도 돌아버릴 노릇이다.
<도대체 왜 줄지를 않는거야!>
같은 시간, 남중국해에 위치한 미국 7함대 항공모함에는 하늘을 까마득하게 수놓은 헬기 무리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모두 다 사이공에서부터 날아온 것들이다.
<뭐가 이렇게 많이 오는거야? 수용량 초과라고!>
은서도 현장에 있었다. 자신이 끌고온 13척의 수송함들이 7함대에 합류한 상태라 코앞에서 항공모함이 보였다.
"남베트남 헬기들이 저렇게나 많이···."
옆에 서있던 김훈 중령도 헬기의 국적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꼬리 부분에 마크가 있었다. 푸른원 안에 하얀별이 그려져있고 날개처럼 뻗은 노란선이 장식된 라운델. 그것을 상징하는 나라는 딱 하나.
"남베트남 공군에서 오는 거 같은데 그것 말고 육군 소속도 있을거야. 정말 진절머리 날 정도로 오는구만···."
"다들 어디가나 했더니 여기로 오는거였어···."
사이공을 뺀질나게 날아다니던 헬기들의 정체다. 미국 헬기도 여기로 오고, 베트남 헬기도 여기로 오고. 뭔가 갈 곳이 없다 싶으면 일단 남중국해로 날아와 항공모함을 찾았다.
공군 조종사들의 경우 자신의 가족들을 태워 여기로 날아오는데, 간혹 고위공직자들이 타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그것도 아니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누구든지 닥치는대로 태워 여기로 날아왔다.
항공모함 갑판이 시장통 같았다.
여기저기 빈 공간이 있다 싶으면 헬기들이 쑤셔오듯 들어와 닥치는대로 착륙했고, 조종사까지 모두 내렸다 싶으면 항모 승무원들이 헬기를 바다속으로 밀어버렸다. 다른 헬기들이 착륙할 수 있게 공간을 확보하려면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 손으로 안되니 지게차까지 끌고와 밀어버리는 저력에 미군 지휘부의 결단이 엿보였다.
"저저 버릴거면 차라리 우릴 주지···."
김영진 대사가 안타까운듯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회의감을 갖고 말했다.
"저걸 준다고 해도 가져갈 방법이 없을걸요? 우리한텐 항공모함이 없으니까."
"아···."
사람을 구하는 능력에도 국력의 차이가 있었다. 미국은 항공모함까지 끌고와 공중 수송 작전을 벌이는데, 대한제국은 9노트밖에 안되는 전차 상륙함을 끌고와 며칠이 걸리는 느릿느릿한 구출작전을 벌였다. 이런 모습을 가장 착잡하게 지켜본 건 역시 해군제독이었다.
'우리에게도 항모가 있었다면 좋을텐데···.'
잠시 후 몰려오는 헬기 수가 더 늘어났다. 헬기를 밀어내도 밀어내도 공간이 나오지 않자 파일럿들은 바다 위로 착륙하기 시작했다. 은서가 비명을 질렀다.
"위험해!!"
풍덩! 가라앉는 헬기 밖으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헤엄쳐나왔다. 마지막으로 파일럿까지 무사히 헤엄쳐나와 수면 위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니 항모 승무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브라보!!!>
분명 조국을 버린 이들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일념아래 발휘한 용감한 활약은 애국자 못지 않았다. 몰려오는 난민을 외면할 수 없었던 미군 장병들도 고무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끌어올리니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은서는 7함대의 기함을 찾아나섰다. 대한제국 국군 원수로서 동맹국의 대표 자격으로 인정받고 지휘부에 참석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공에 남아 교민들을 찾고 있을 이대현 공사를 위해 보낼 단 한대의 헬기를 위해서.
항모가 없는 대한제국의 황태녀 이은서는 미국에 구걸을 해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찾아라 USS 블루리지.
항공모함도 모자라 지휘함까지 갖고 있는 부유한 미국 해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