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74화 (74/131)

〈 74화 〉 Ep9. 중앙정보부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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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강.

왕자라는 작위 빼면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학생. 미래인이 빙의한 것도 아니고, 미래의 역사를 아는 것도 아니며, 미래 기술을 아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했던 고종 황제의 아들.

그 남자의 1800년대 말 조선은 불행한 나라였다. 남의 나라 군대에 협박당하고, 강화도에서 불평등 조약을 체결당하고, 왕비가 일본인 자객 손에 죽임을 당하고, 왕은 살기 위해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나라.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 의친왕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1905년 귀국을 준비하던 중 수상쩍은 조선인 사내들을 만나게 되는데···.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

집으로 돌아가는 미국의 부둣가. 배를 타려던 학생에게 편지를 건네는 조선사내들. 꾸깃꾸깃하고 피로 얼룩진 허름한 편지. 그곳에 적혀있던 아버지 고종황제의 명령.

<돌아오지마라. 너 같은 건 아무짝에 쓸모 없으니 조선땅에 얼씬도 하지 마라. 용돈을 챙겨줄테니 이 돈을 받고 네 맘대로 살아라.>

귀국을 앞두고 날벼락같이 찾아온 아버지의 저주에 의친왕은 부둣가에 주저앉아 서글프게 울고 말았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것을 전해드리고자 동지들의 8할이 목숨을 바쳤사오니 부디 성심을 가다듬고 귀히 써주소서.>

남자들이 건네준 계좌 한 개. 핏빛에 물들어있는 꾸깃꾸깃 은행계좌. 니맘대로 살라는 아버지가 건네준 용돈 한 줌.

<51만 마르크>

조선반도 21세기 초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250억원에 달하는 '용돈'이 아버지의 폭언과 함께 계좌에 담겨 있었다. 그제야 아버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섞인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못난 불효자는 각오를 다져 이렇게 외쳤다.

<예 아버지! 어디 한 번 제 맘대로 살아보겠습니다!>

시간여행은 없다. 내 몸에 빙의한 남의 영혼도 없다. 미래 같은 것도 모른다. 첨단무기는 커녕 총 한자루 만들줄 모른다.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유학생 한 명이 발길을 돌려 미국땅에 남으니 이것이 바로 대한제국 역사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51만 마르크. 외교독립론자들과 함께 미국정계에 로비활동을 벌이고 해외선전활동에 사용된 비자금. 무장투쟁론자들과 함께 군자금으로 사용된 비자금. 조선땅의 백성들에게 선전활동으로 사용된 비자금.

그가 51만 마르크를 다 쓴건 1945년 8월 15일. 노인이 된 신사가 지갑을 탈탈 털어 막걸리 3통을 동지들과 나눠 마시니 그것이 남아있던 내탕금의 전액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이 노년의 신사를 부른 호칭.

<조선 땅 모든 독립영웅들의 아버지>

대부로 불렸던 그 남자의 마지막 느와르. 대한제국의 세번째 황제는 그렇게 살았다.

***

그 신사의 집권기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에겐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장남은 스스로를 말하길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학교를 다닌' 검은 머리 미국인.

황태자 이연, 미합중국 해병대 출신으로 항일투쟁에 뛰어든 영웅, 한국전쟁마저 북진통일로 끝낸 불세출의 사나이. 그가 서울로 돌아온 건 1951년 새해 무렵이었다.

부산 바다까지 날아가 귀여운 딸내미에게 뽀뽀를 해주고 온 젊은 아버지의 눈에 펼쳐진 서울의 모습은 그동안의 모든 추억을 날려버릴 만큼 충격적인 몰골이었다.

한국전쟁기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서울공방전으로 인해 모든게 잿더미로 바뀐 서울. 시민 전체가 길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야하는 절망적인 상황.

온 국민이 거지로 살아야 했던 1951년의 조국을 깨닫고 은서의 아버지는 길가에 쓰러져 눈물을 흘렸다.

“내가 무능한 탓이야! 내가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그 때 한 노년의 신사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줬다. 대한제국의 세번째 황제. 이연의 아버지가 따뜻한 목소리로 아들을 안아주며 말했다.

"고생많았지?"

"아버지···."

이연의 새해는 그렇게 시작됐다. 복구작업이 한참인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을 위로하고 다니다보니 발걸음이 터만 남은 광화문 전각에 이르렀다.

노년의 신사가 말했다.

"경복궁 말이야."

"예."

"무리해서 복원할 필요 없어."

"......?"

노인이 된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국민이 잘 먹고 잘 사는게 먼저지 우리는 덕수궁 한 칸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석조전만 멀쩡하면 된게야."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창경원도 냅둬. 황실의 궁전이 동물원으로 쓰이면 어때? 국민이 즐거우면 됐지."

"창경원 만큼은 복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실의 궁전이 동물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참담한 몰골을 어찌···."

“언젠가 이 나라도 잘 먹고 잘 살 때가 올거야.”

"제 손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장남의 다짐에 노년의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때까지 애껴뒀다가 여기에 자금성 같은 궁전을 지어. 못 지어본 만큼 그 이상의 갑절로 지으면 되는게야.”

“소자가 꼭 그리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경복궁에 대해서 논하던 두 부자의 발걸음은 근정전. 헐벗은 경복궁의 중심에 도달했다. 황제가 된 의친왕. 이연의 아버지는 말했다.

"연아."

“예 아버지.”

"이 못난 애비의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않으련?"

"말씀하십시오. 어떤 분부든 기쁘게 받들겠습니다."

“네가 황위에 오르면 말이야. 정치 만큼은 안했으면 한다.”

"예?"

“국민이 스스로 대표를 뽑아 정치를 하는 민주주의가 됐으면 하거든. 그러니까 정치는 국민들에게 맡겨.”

"......"

"우린 경복궁으로 만족하면 돼. 그 이상을 꿈꾸게 되면 온 나라가 불행해질거야."

"하오나···."

"넌 앞으로 국부라 불릴 몸이야."

"이 나라의 국부는 오직 아버지 뿐입니다!"

하지만 이강은 고개를 저었다.

"넌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야. 민족을 통일한 영웅은 이 나라 5천년 역사에서 문무왕과 태조 왕건 밖에 없어. 넌 그들과 동급이 된거야."

"하오나···."

"중국으로 치면 진시황 같은 업적을 세운건데 너야말로 국부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저는···."

"그런 네가 정치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눈이 멀어버릴 것이야. 영웅에 현혹되어 민주주의 같은건 안중에도 없게 되겠지."

하지만 이연은 고개를 저었다.

"전 다를 것입니다! 제가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다음 국민에게 돌려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넌 절대 못해. 권력은 아편같은 거니까. 한번 쥐면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란 게 있어."

그러면서 이강은 자신의 아들 손을 꼬옥 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연아. 아비로서 부탁하마. 제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다오. 군주는 정치를 해선 안돼."

“아버지···.”

노년의 신사는 그로부터 4년 뒤 세상을 떠났다.

이연은 아버지에게 은혜로운 군주였다는 뜻을 담아 혜조(惠祖)라는 묘호를 올렸지만, 그 외 다른 조선왕조의 전통은 따르지 않았다. 상복을 입지 않았고 3년상을 치르지 않았으며 대한제국의 모든 의관을 집어치우고 양복 하나만 입은 채 정치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집권초 1955년부터 이승만과 정치싸움을 벌였고, 1960년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이승만 총리를 하와이로 보내버렸다.

<내가 직접 썩어빠진 나라를 뜯어고치겠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북진통일까지 달성한 전쟁영웅. 광개토대왕 이래 최고의 전쟁 군주이며, 이순신 장군 만큼이나 천재적이었던 장군이 전면에 나서서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살아 숨쉬는 영웅이 뿜어내는 찬란한 후광에 눈이 멀어버린 국민들은 1963년 황제의 친위정당인 한국독립당에 과반수 승리를 안겨주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는 헌법에 스스로 찬성표를 던졌다.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대한제국의 수도 중심부에는 거대한 동상이 하나 세워져있으니, 그것은 혜조 대제. 의친왕 이강. 자신의 아버지를 우상화시켜 황실의 권위를 세운 아들의 작품이었다.

민주주의를 껍데기만 남겨버린 아들의 또다른 이름은 독재자였다.

대한제국 제4대 황제 이연. 연호는 유신(維新)이다.

***

어둠 속이었다. 침대맡에서 불을 켜보니 시곗바늘이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간단히 씻고 새벽녘 놓여진 신문을 꺼내어 읽고나면 이화가 제1부속비서관과 함께 6시에 출근하여 아침수라를 가져온다.

수라상은 반찬 세가지로 구성된 3첩 반상인데, 쌀밥에 김치, 오징어젓갈, 떡갈비가 준비되어 있었고, 뚝배기에 담겨 부글부글 끓고 있는 설렁탕엔 소고기가 듬뿍 얹어져 있었다.

한 나라의 황제가 고작 3첩 반상이라 하면 불쌍해보일까? 검소해보일까?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다.

가난했던 혜조 대제 시절에도 5첩은 먹었고 조선왕조 시절엔 12첩을 먹었다. 그러지 않았던 건 단지 이런 이유 때문.

<혼자서 12개 반찬을 어느 세월에 먹고 있어? 내일부터 3개로 줄여. 황제 밥 먹는걸 누가 본다고 밥상에서 권위를 따지냔 말이야. 정 그런게 필요하면 3개로 줄이는 대신 메인디쉬 하나에 집중시켜.>

그런 이유로 황실의 수라상 전통은 군인 정신에 입각한 실용주의에 맞춰지고 말았다.

그렇게 '메인디쉬'에 해당하는 설렁탕을 먹으며 이연은 아침 첫 질문을 부하들에게 던졌다.

"은서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은서는 별도의 일정이 없으면 항상 평양에서 서북방위사령부를 지휘한다. 그런 탓에 딸내미 소식을 아침식사 자리에서 종합하여 이화에게 들었다.

"어제 다섯개 부대를 순시하셨고, 전방경계태세 개선을 위한 회의를 주관하셨습니다. 157개의 서류를 검토해 그 중 120개의 서류에 서명을 하셨는데 합참의장이 검토했을 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답니다. 일과 시간이 끝나면 진혁군과 평양시내에 나들이를 가서 부대찌개를 드셨구요."

데이트를 떠올린 이연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둘은 잘되간다던가?"

"늘 그렇듯 각목같다고 하십니다."

"허허 참··· 딸내미 문제인지 진혁이 문제인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아무래도 두분 다 연애 경험이 없으신지라···."

"차라리 내가 가서 연애 코치를 해줄까?"

"참... 믿음직스럽겠네요···."

그렇게 가벼운 농담을 하며 설렁탕의 고기 한조각을 떠먹을 때 쯤. 꿈에서 봤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르고 말았다.

<연아. 아비로서 부탁하마. 제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다오. 군주는 정치를 해선 안돼.>

아버지의 말에 입맛이 뚝 떨어져 한참을 멍하니 설렁탕만 바라보고 말았다. 그러다 나지막이 말했다.

"이 실장."

"예. 폐하."

"슬슬 허락 해야겠어."

"어떤···?"

"국회의사당 말이야. 조감도도 가져오고 관련자들도 다 오라고 해."

1974년. 대한제국 국회는 조선총독부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현재 부르길 '중앙청'. 내각의 총본산.

그걸 대신하고자 60년대에 국회의사당 건축이 계획되고 있었는데 무사히 진행됐다면 1967년에 첫 삽을 떠서 1975년 완공했을테다.

하지만 이연이 변덕을 일으켜 1974년 현재까지 일정을 미뤄버리니 그 때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쓰잘데기 없이 돈 낭비 하지 말고 중앙청이나 써>

국회의원들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드셨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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