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73화 (73/131)

〈 73화 〉 Ep8. 한국식 입헌군주제 (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대학생들이 무더기로 연행됐다는 소식을 들은 신민당이 발칵 뒤집어졌다.

당대표인 김영현이 투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덕수궁에 쳐들어가니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에서부터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온다.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왔다! 이 문을 열지 않으면 내가 이 자리에서 단식투쟁이라도 해버릴라니까 당장 고해!>

야당 대표가 황궁 입구에서 단식투쟁을 하겠다는 기절초풍한 선언에 이연이 박장대소를 하니 야당 대표와 황제가 일대일 독대를 하게 되었다.

언젠가 분명 자기입으로 말했던 군신관계. 군주인 이연과 신하인 김영현이지만 그런것 치곤 그 남자의 기백이 너무도 당당해보였다. 이 때 영현의 나이 48세. 1927년생.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당권을 휘어잡은 남자.

“대학생들을 체포하셨다구요?”

"경찰이 한걸로 아는데?"

“폐하께서 지시한 거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무슨 죄를 진건지도 모르고, 변호사도 없이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를 받고 있지요.”

“그래서 날 더러 풀어달라는건가?”

“폐하께 경고드리는 겁니다. 죄없는 학생을 데려다가 정치 공작을 하시겠다면, 이 김영현이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울테니까요."

그의 담대한 선전포고에 이연이 커피를 마시며 웃음을 지었다.

“허허 참, 이거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겠구만.”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비서실장 이화가 찾아와 말했다.

“수사결과 나왔습니다.”

그러자 김영현 총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화가 살짝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답했다.

“전원 무혐의로 석방한답니다.”

“......”

김영현이 황제를 노려본다. 야당 대표의 따가운 눈총에 이연이 능구렁이처럼 말했다. 이제는 공포정치와 결별을 선언한 남자.

“거 봐, 아무것도 안했다니까?”

“이럴거면서 뭐하러 서울시내 대학들을 털어다가 학생들을 잡아가신겁니까? 고작 20대 초중반밖에 안된 어린애들이 뭐가 무서우시다구요.”

“그건 묵비권을 행사하지.”

“나 원 참··· 그래서 애들한테 밥은 맥이셨습니까? 경찰서에 잡아가둬놓고 밥 한끼 안 먹이신건 아니겠죠?”

그러자 이화가 말했다.

“설렁탕을 사주긴 했습니다만···.”

“그 설렁탕이 입이 아니라 코로 들어간 거 아닙니까?”

“깍두기까지 얹어서 입으로 맛있게 잘 먹었으니 그만 돌아가주시죠.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김영현이 분을 삭히며 다시금 말했다.

“아무튼. 이 나라는 입헌군주제고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폐하께서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가지시는 것도 국민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헌법을 준수해주십시오. 자본가랑 결탁해서 언론을 조종하고 계신것도 다 알고 왔습니다.”

결국 언론 장악의 문제는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언론사들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인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누가봐도 황실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그림이지만 증거도 없고 법으로 틀어막을 힘도 없으니까. 당 내에 언론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투쟁에 나서지만 언제쯤 결실을 볼 지 아무도 몰랐다.

해직된 청년 기자들은 여전히 복직하지 못했고, 언론사들간에 블랙리스트로 등재되어 취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현재 공사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책을 고심하는 장준호의 얼굴에 주름이졌다.

***

4월 3일. 은서는 다시 한 번 평화시장을 찾았다. 귀족집 딸내미 마냥 고운 사복을 차려입었지만, 선글라스 차림에 모자까지 짙게 눌러쓰고 있어 그녀가 황태녀인지 아니면 어디 큰 공장의 딸인지 분간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여전히 사복 경호원들이 곁에서 그녀를 지켰고 그녀 옆에는 진혁이가 서있었지만 누구도 황태녀를 알아볼 수 없도록 각별히 신경쓰고 있었다.

눈앞에 서있는 전태일의 동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외로워보인다.

<내가 대학을 나왔더라면, 아니면 대학 다니는 친구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절절하게 아쉬워하며 노동법을 공부했을 청년의 동상 앞에 서서 은서는 원고지 묶음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노동법 해설서>

은서가 자기 손으로 꾹꾹 눌러쓴 노동법의 한글 번역문 원고다. 낮에는 서북방위사령관으로 근무하고 밤에는 별빛이 햇빛으로 바뀌는 동안 써온 노력의 결과물. 국민학교만 다녔어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끔 쓰여진 원고는 작성자의 이름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나가던 국민>

은서는 여전히 정치 개입을 주저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걸 들키면 정치에 나선다고 알려질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목소리도 누가 들을라 낮춰서 말했다.

“노동법 말이야. 요 며칠동안 계속 공부해봤거든.”

진혁은 그저 말없이 서서 은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1953년에 제정됐는데 일본의 노동법을 그대로 모방해왔다 하더라고. 근데 일본의 노동법이란 것도 미국이 군정 시절 만들어놓은거라 결과적으로 보면 서구 선진국의 노동법을 고스란히 가져온 셈이야.”

“지켜질리 없었겠군요.”

“맞아.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어났어.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감이 생기는 와중에 누구도 지킬 생각이 없었지. 그러다보니 이 법은···."

손가락을 까딱까딱. 손가방을 어루만지며 무슨 말을 해야할까 착잡하게 고민하던 은서는 이내 말했다.

“법치국가지? 우리나라.”

“그랬죠.”

“근데 법전에 써있는 글자들은 대부분 한문이야. 노동법만 그런게 아니었어.”

“국한문혼용체요?”

“그래. 한문이랑 한글이랑 섞어서 쓰는 그거. 나야 한자를 알고 있으니 쉽게쉽게 읽지만, 이런 애들한테는 그게 장벽이 될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

"한자가 이 친구를 문맹으로 만든 셈이군요···."

"한글을 알아도 한자 때문에 법이 안 읽히니까."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나풀 거리는 노동법 해설서, 중간쯤의 어느 한 페이지, 은서가 순한글로 번역해낸 근로기준법의 일부.

-----------

근로기준법 제45조

[휴일]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일주일에 평균 일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

-----------

근로자들에게 주 1회의 휴일을 줘라. 그런 내용조차 일하는 사람들은 읽을 수 없게 만들어져 있던 그날의 법전. 한자가 만들어 낸 괴리감과 그 속에서 권리를 알아내고 분노하며 절망했던 청년의 비극.

“우리나라 말을 한자로 쓸려면 1800자는 공부해야 돼. 하지만 한글로 쓰면 24자만 알아도 충분하지. 그걸로 무궁무진하게 조합해서 수만가지 소리를 담아낼 수 있으니까.”

"국한혼용체 폐지를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은서의 머릿속을 짐작해낸 진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늦으셨습니다.”

“늦다니?”

"한자교육 폐지, 신문과 법전의 한글화. 그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분이 덕수궁에 계시잖습니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학교를 다니신 분."

"어··· 그러네? 아버지 한자 모르시겠구나?"

은서가 군복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이연은 학부대신을 덕수궁 집무실에 불러 한자교육의 즉각적이고 강력한 폐지를 명령하며 이렇게 말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면 말이야. 애들한테 영어를 가르쳐야지 쓸데없이 한자는 뭐하러 가르치는 거야? 이 나라가 중국도 아니고>

학부대신은 반박했다. 뼈속 깊이 학자였던 그에게도 황명을 거부할 자존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 내내 한자를 써왔습니다. 한국어에 한자 비중이 얼마나 되리라 보십니까? 한자 교육을 폐지했다간···.>

그러자 이연은 말했다.

<내가 지금 한자를 얼마나 읽을 수 있을 거 같나?>

이연의 입에서 나온 짧은 숫자를 들었을 때 학부대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당장은 어렵다. 10년만 달라'며 절박히 호소하는 그가 들은 황제의 한자 갯수는 대한제국실록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검열됨>

***

1974년 4월 25일.

독립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3사가 자체적인 언론개혁안을 발표했다. 국한문혼용체로 한자와 한글을 섞어쓰던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폐지. 모든 신문을 순한글로 작성하겠다는 자구책이었다.

신민당은 이렇게 반응했다.

<이게 무슨 언론 개혁인가? 수익구조 개선도 없고 기관원의 신문사 출입도 그대로인데 언론의 자유와는 전혀 관련이 없지 않은가?>

신민당과 청년 기자들. 특히 장준호의 지적에도 언론 3사는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고, 신민당의 항의 성명도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신문사 사장은 이렇게 생각했다.

<야당 놈들 반응은 상관 없어. 대중들 관심만 끌면 돼. 이슈를 순한글정책쪽으로 몰아가서 팩트를 흐리는거지.>

<대중들이 한글신문으로 폐하의 소식을 더 쉽게 접하면, 황실 지지율도 오르고 광고도 많이 들어올 거라고.>

<그리고 말이야. 한글 신문으로 구독자가 많아지면 그것도 수익개선 아니겠어? 이게 다 언론개혁이야. 언론개혁.>

신문의 대대적인 순한글정책이 어떤 방향을 줄지는 저마다 추측이 달랐다. 겉으로는 비난하던 신민당도 가면의 뒤에선 웃고 있었으니, 회의실에 모여앉은 지도부를 상대로 장준호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잘된걸지도 모릅니다. 대중들이 언론에 더 관심을 갖게 됐잖습니까?”

하지만 김영현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봐야 결국 황실의 나팔수잖아요. 우린 진거에요. 완전히 패배했다구요. 국민들이 한글로 황실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지지율만 더 높아질게 뻔하지 않습니까?”

고개를 젓는 장준호의 표정에 확신이 서려있었다.

"당장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한글신문으로 황실의 소식을 접하고. 영웅의 활약상을 보며 동경에 빠질지도 모르죠. 하지만 신문사 녀석들. 황제가 미국 출신이라고 거기 매몰되어 깜빡 잊어먹은 게 있습니다."

“뭘 말입니까?”

"한자는 지식인과 대중 사이를 갈라놓던 하나의 벽이었습니다. 지식인들이 전면에 나서서 대중을 이끈다는 소위 엘리트주의의 핵심이었죠."

"그런데요?"

"신문과 법전, 전문서적들이 모두 한글화 되면 대중이 지식을 손쉽게 접할겁니다. 지식인과 대중 사이를 갈라놓던 벽이 허물어지는건데 이는 정치참여도의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죠.

한글로 된 신문을 읽어 사회 관심도가 높아진 대중이 한글로 된 법전을 읽으며 정부를 견제하기 시작할 겁니다. 부당한 법률엔 개정을 요구하고, 정부가 법을 어기면 따르도록 요구하고. 이러다보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죠."

그러자 김대정 부총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한국독립당의 선거전략은 대중과 정치를 떨어뜨려놓는다는 우민화 전략이었죠.”

“예. 놈들은 지금 자기도 모르게 자충수를 쓴겁니다.”

그것이 사회와 이연의 권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

어느 날, 이화는 중앙정보부의 남산 취조실에 직접 방문했다. 지하의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불쾌한 감정이 들어 눈쌀이 찌푸려졌다.

김재필 부장의 안내에 따라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곳은 콘크리트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감옥 같은 공간. 지금도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거 같은 고문과 심문의 장소. 어두운 조명 속 귀신의 집을 방불케하는 남산의 지하실.

이화에게 있어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리게 하는 고문과 심문의 장소. 선배님의 과거를 알고 있던 김재필 부장이 면목이 없다.

이화가 물었다.

“지난번에 서울대생이 여기에 와있다구요?”

"자수 할 게 있다면서 제발로 걸어들어왔습니다."

“그래놓고 황실의 관계자가 아니면 말을 안하시겠다?”

"예. 비서실장님을 불러달라며 입을 다무는 통에···."

이화의 발걸음이 취조실의 끝자락 고문실의 한켠에 다다랐다. 철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매마른 바닥 위로 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안경잡이 모범생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제 발로 걸어왔다고? 이유가 뭘까?”

얼마전 황태녀 전하께 거짓 편지를 전해서 정치성향을 떠본 당돌한 녀석. 서울지역 모든 대학교 학생회와 연계하여 조직적인 작전까지 펼칠 수 있었던 숨은 능력자. 고작 대학생. 그가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뜻밖의 단어에 이화가 어처구니 없는듯 웃으며 말했다.

"국보법 위반? 그걸로 자수를 해?

"국가에 반역을 꾀하는 공산주의자를 만났으니 국가보안법 위반이 맞죠."

공산주의자라는 말에 이화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서울대생이 미소지어 말했다.

"사실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최근엔 공산주의자들하고도 교류를 하고 있었죠."

"그래서?"

"하지만 혁명 같은건 관심에 없습니다. 그것이 놈들과 저의 차이였죠. 민주주의의 기틀 아래서 온건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 그게 저의 목표인 이상 그들과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화는 아무말도 없이 서울대생 앞에 앉아 천천히 귀를 기울였다. 서울대생은 계속 말했다.

"전 단지 대한제국에 사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됐으면 좋겠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습니다."

"말해봐. 계속."

"제가 이 나라에 해가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입증해드리죠. 그 대신 저와 동지들한테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보장해주십시오."

하지만 이화는 거절했다. 이 청년이 누구인지 부하를 통해 알게됐기 때문이다.

"박철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 4학년. 학생회장. 아버지는 원래 김씨였지만 중간에 박씨로 성씨를 갈아치웠지."

"50년대 반공정책이 연좌제로 이어졌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겁니다."

"그런 너한테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해달라고?"

철수는 당당히 일어나 결의의 태도로 말했다.

"제 이름은 김철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제 할아버지가 김씨였으니까. 의열단의 수장, 항일 무장 투쟁의 선구자. 독립운동가였지만 공산주의자가 되어 잊혀진 영웅."

이어지는 이화의 대답.

"약산 김원봉."

"예. 제가 바로 그분의 후손입니다. 하지만 전 그분과 다른 길을 갈겁니다."

"그래서, 반역자의 후손에게 정치 활동을 보장해달라?"

"제가 여기에 온 이유를 들으시면 생각이 바뀌실겁니다."

철수는 말했다.

"오진수"

이름 석자에 이화를 포함한 모든 요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월남전에서 은서를 죽일 수 있었던 최후의 잔당, 1973년 위화도 사태의 배후로 유력한 용의자. 중정이 적군파의 핵심 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위험인물.

오진수, 그가 돌아왔다.

Ep.9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