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64화 (64/131)
  • 〈 64화 〉 Ep7. 악마와의 동맹 (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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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건의 시작은 덕수궁이었다.

    국회 상원의장 안수진이 덕수궁에 질의서를 날렸던 그 날. 이연의 명령을 받은 친위대장 차지연이 일본 대표부로 탱크를 끌고가 무력시위를 벌인 날이 한일관계가 극적으로 바뀌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틀 뒤 덕수궁에 일본 대표가 찾아와 황제와의 독대를 청했다.

    덕수궁 석조전 황제의 집무실. 황제 이연과 일본 대표가 일대일로 벌이는 담판의 현장.

    일본인이 말했다.

    “대한제국은 불쌍한 나라군요.”

    이연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지속되는 안보위기로 사회 전체가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국, 소련과 국경을 접한 이북지역은 특히 심했죠. 툭하면 짐싸들고 평양으로 피난오는 그런 수준이니까요.”

    이연은 묵묵히 일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처음엔 무서웠습니다. 황태녀 전하의 임명식이나 대한제국의 독립기념일이나 매번 열병식을 벌이는데 그 때마다 저를 초대해 들러리로 세우셨으니까요.”

    “일본 대표부에 탱크도 보냈었지.”

    “조롱받고 멸시받고 위협받고. 정말 무서워서 몇 날 며칠을 잠을 설쳤습니다.”

    “지금은 어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불쌍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라고.”

    “......”

    "폐하께서 군대에 집착하시는 이유. 본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였죠? 국가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어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거. 필사의 노력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자 피식 웃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몇 안되는 이가 하필이면 일본인이라니. 기가차서 웃음이 나온다.

    “이건 진짜··· 전세계 역사학자들이 봐야 합니다. 침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군국주의라니. 이게 대관절 말이나 되는 소린지···.”

    “그래서 어쩔텐가? 한일수교 할거야? 말거야?”

    “과거사 문제는 원하시는 만큼 최대한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배상금 문제는··· 좀 봐주십시오. 저희도 돈이 궁해서요.”

    “동맹은? 미국이 너희를 꽤 많이 압박하던데.”

    그러자 일본 대표가 단호히 말했다.

    “재무장 만큼은 절대로 안됩니다. 저희는 두번다시 전쟁을 하지 않을겁니다.”

    그 대답은 이연으로서도 뜻밖이었다. 이 땐 아직 오일쇼크가 터지기 전으로 동맹 문제는 이연도 반대를 하고 있던 시기. 그랬던 그에게 일본인이 나서 단호히 선을 긋고 있었다.

    “저희는 지금 미일동맹의 파기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시작으로 본토 내 모든 미군을 철수시키고 중립국이 되기로 했으니까요.”

    “중립국?”

    “저희는 패전국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국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번 선거에서 집권하며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일본의 항구적 평화.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에서 경제 발전을 꿈꾸는 중립국입니다.”

    “그게 진심이었나?”

    “예. 일본은 중립국이 될겁니다. 두번다시 전쟁을 하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미국과 한국은 일본의 평화를 위협하지 마십시오.”

    일본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생각치도 못한 주장에 이연이 담배를 떨궈버렸다. 재떨이에 툭 떨어지는 허망한 새 담배가 남자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평화헌법 폐기도 없고, 일본의 재무장도 없고, 스위스보다 극단적인 영구중립국이 되겠다고?”

    “누군가를 위협하지 않으면 위협받을 일도 없을겁니다.”

    “그건 불가능해.”

    “저희는 가능합니다. 왜? 패전국이니까요. 1945년 미군정이 일본군을 강제 해산시켰고 그 이후로 평화헌법을 만들었습니다. 제벌을 해체하고 농업국가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이 나라의 전쟁수행능력을 모조리 깎아버렸죠."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졌지. 네 녀석들 경제는 분명···.”

    “한국전쟁은 반년만에 끝났습니다. 경제적인 반사이익을 얻기엔 택도 없는 시간이었죠. 저희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입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군대는···.”

    "없습니다. 전투기 몇 대가 전부죠. 나머진 모두 소수의 무장 경비대가 전부입니다."

    “......”

    “중립국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있죠. 패전국, 비무장, 평화헌법까지. 여기서 미군만 철수해주면 중립국이 완성되는겁니다.”

    “그리고··· 군대에 들어갈 비용을 경제에 투자하겠다?”

    “예. 그것이 저희 정부의 새 국정방향입니다.”

    “......”

    “저희는 대한제국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만성적인 안보위기에 시달리는 불쌍한 나라. 항상 전쟁을 대비하며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그것 때문에 경제개발까지 지연되는 불행한 나라. 저희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겁니다.”

    일본대표는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조만간 미국 대표가 한번 더 찾아올겁니다. 하지만 그 때 한일동맹 만큼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저희 일본에게 재무장을 강요하시면 한일수교도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일쇼크가 터졌다.

    이연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미일 삼각동맹을 결심한다. 일본과의 동맹이 국방비 감축의 유일한 실마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때 가장 먼저 분노했던 건 다름 아닌 일본인이었다.

    <조센징은 물러가라!>

    <너희들의 나라로 돌아가!>

    대마도에서 일어났던 혐한시위. 그것은 본디 한국을 상대로 한 반전시위였고, 현지 언론의 기자들이 도착했을 땐 과격시위로 변질되어 조선인을 상대로 한 폭력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원래 의도는 이랬다.

    <한국이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

    <세계3차대전은 너희들끼리 해라.>

    ***

    1973년 11월 5일 20시 30분.

    대한제국 국군이 대마도를 기습 점령했다. 이범석 총리의 담화문 발표 이후 한일동맹 반대시위가 전국적으로 터진지 4일만의 일이었다.

    공군의 F-4 전투기가 하늘 위에서 일본의 전투기를 쫓아내고 있었고, 특전사가 낙하산을 타고 공수 강습을 실시했으며, 해군 함정의 호위아래 해병대 병력이 대마도 항구에 상륙하고 있었다.

    大韓帝國 海兵隊

    대한제국 해병대

    세계3차대전을 대비한 대한제국의 작전계획 3015에 따르면, 전시 미국 7함대의 호위를 받아 중국 텐진에 상륙. 베이징을 점령하는 것으로 계획되던 대한제국의 정예부대다.

    미중전쟁을 상정하여 훈련받던 정예부대가 아이러니하게도 대마도에 상륙해서 일본을 정복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이변.

    사태가 이렇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대한제국 국회였다. 긴급 소집된 하원 본회의장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분노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아우성쳤다.

    “일본과 전쟁이라니! 지금 제정신인가? 어찌 이런 중대사를 국회와 논의도 없이 벌인단 말인가!”

    “우리에게 승산이 있나? 미국이나 국제사회도 보복하려 들텐데, 폐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신건가!"

    “이범석 총리! 설명을 해보세요! 얼마나 어디까지 알고 있는겁니까?”

    하원 의원들의 물음에 이범석 총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 대신 웃었다. 70대 노인의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보며 화가 난 신민당 의원이 소리쳤다.

    “이 총리!!!”

    총리의 대답.

    “기다려봐. 미국의 공식 입장이 나올테니까.”

    잠시 후. 미국 국무부의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으로 이런 입장을 내놨다. 미합중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아낸 정부 공식 입장이었다.

    <미합중국은 한일간에 벌어진 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원하며, 양국의 요청이 있다면 중재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대한제국 국회의원들은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 돼···.”

    “일본이 공격을 받았는데 미국이 중립을 선언했다고?”

    본회의장에서 이범석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전쟁을 한 게 아니야. 대마도를 놓고 영토 분쟁을 빚은거지. 백두산에서 중국과 벌이던 그것을 떠올려보게."

    총리의 설명에 신민당 의원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마도가 분쟁지역이라니 대관절 무슨 소리요! 내가 역사를 잘못 배운겁니까? 거긴 우리땅이었던 적이 없어요!"

    "머리 속에서 지워. 그 땅은 우리 땅이었고 일본 애들이 강점을 하고있는거야."

    "그런 역사는 없었소!"

    "없으면 만들어야지."

    같은 시각 상황을 전해들은 은서가 허겁지겁 사령관실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덕수궁의 집무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벨소리의 끝자락에 귀여운 딸의 목소리가 들리니 아버지가 기쁜 미소로 말했다.

    그 남자 이연, 딸과의 약속을 지킨 대한제국의 황제. 그는 담배를 하나 더 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많이 놀랐구나?”

    은서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뭔 일이야! 전쟁이라도 하는거야? 사태를 해결해주겠다더니 일본이랑 전쟁하는 게 해결책이었어?]

    "진정하고."

    [진정은 무슨!]

    이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겁먹지 않아도 돼. 적당한 선에서 잘 해결될테니까 푹 쉬고 있어. 고생 많았다.”

    [아버지, 설마 지금 반정부시위 잠재우겠다고 일본을 공격한거야? 그런 목적으로 전쟁을 하는건 아니지?]

    “정치적인 목적 맞아. 한일 수교를 위한 협상장에서 치사한 패를 쓴거니까.”

    [이게 협상이라고?]

    “대한제국과 일본은 서로간에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어. 군사력도, 경제력도, 총체적인 국력과 국제사회의 외교적 영향력까지. 민족적 감정에 휘둘려 객관성을 잃고 있거든. 그래서 협상도 평행선을 달렸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오래전부터 이걸 해결하고 싶었어. 대한제국과 일본의 국력 차이를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알려줄 사건이 하나 있으면 싶었던거야.”

    [그래서 대마도를 침공했다고? 몇 달 전 이남 지역에서 합동군사훈련을 한 것도 다 그걸 위해서고?]

    “그래, 그러니까 너도 잘 봐둬. 대한제국과 일본의 국력차이. 어느정도인지 말이야.”

    잠시 후 일본 외무성 대변인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1973. 11. 5. 일본 외무성 대변인 공식 브리핑>

    쓰시마에 한국군이 진주한 것은 양국간에 합의된 사안으로, 이는 전쟁이나 국경분쟁이 아닙니다. 미국 국무부의 발표는 오해입니다.

    얼마 전 일본 내 한국인들이 집단구타를 당한 사건으로 양국간에 외교 분쟁이 빚어졌고, 이로 인해 반일시위가 심한 것으로 압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0일 정도 한국군이 진주하며 재일한국인의 철수를 진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양국은 정식 외교 수립을 위해 성실히 협상을 진행중이며, 조만간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조하지만 절대 전쟁이 아닙니다.

    기자 : 쓰시마 섬의 시청에 태극기가 걸려있습니다. 섬에 들이닥친 한국군의 규모가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정말 한국인의 철수 작전이 맞습니까?

    대변인 : 양국간에 합의된 사안입니다.

    기자 : 그렇다면 하늘에서 공수부대가 내려오는 것은 뭡니까? 현지 목격자들에 따르면 실탄을 무장하여 경찰들을 겁박하고 무장해제 시키고 있다던데요.

    대변인 : 양국간에 합의된 것으로···.

    기자 : 쓰시마의 한국인을 철수시키겠다면 우리 경찰이 직접 송환해주는 게 맞습니다. 이것을 왜 남의 나라 군대가 하고 있습니까? 실은 침공을 당한 게 아닙니까? 국민들에게 사실을 말씀해주십시오!

    <브리핑룸에서 퇴장>

    기자 : 이보세요! 대변인!!!

    ------------------

    그 후 대한제국 외교부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외무성을 곤경에 빠뜨리는 발표였다.

    <양국간에 합의했다는 일본국의 발표는 사실과 다릅니다. 대마도는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제국의 영토였으며, 대한제국 땅에서 대한제국 국민을 보호하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을 뿐입니다.>

    ***

    난리는 하원만 난 게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귀족들로 이루어진 민족대표 100인. 상원도 발칵 뒤집어져 덕수궁의 황제를 호출하니 이연이 군말않고 상원에 출석했다.

    비서실장 이화를 대동한 채로 국회 상원 본회의장에 나타난 이연은 늘 그렇듯 검정 양복에 흑색 리볼버 한 자루를 품에 꽂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본회의장에 입성하자마자 한 소리는 이랬다.

    "편하게 이야기하지."

    그래놓곤 단상 아래 평평한 곳에다 의자 하나를 갖다놓고 문자 그대로 ‘편히’ 앉았다.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담배를 찾는 그의 모습에 황제로서의 품위 같은건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지금은 황제랑 귀족의 관계지만 과거엔 동지였잖아? 어려웠던시절 독립운동을 함께한 사이끼리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그러면서 눈치를 본다. 독립운동을 했다기엔 젊은 의원들이 곳곳에 보인다.

    “세대가 바뀐게 대수인가? 가문에 흐르는 영광이 중요한거지. 나한테 격식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동지다 생각하고 편하게 해.”

    그러자 59세의 상원의장 안수진이 황제의 전면에 서서 물었다.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의 장녀였다.

    "대한제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는겁니까?"

    "아니, 수교를 위한 협상이지."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뜸을 들이다 다시 물었다.

    "무력시위를 하신거군요?"

    그러자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던 중이라 끄덕이는 것도 시늉뿐이다. 신성한 국회에서 다리꼬고 앉아 담배나 찾고 있는 거만한 중년 남자. 그에게 따져묻는 제국의 상원의장 안수진.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저희 누구도 지금의 사태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국회의 동의도 없이 이런 짓을 하시다니 이건 명백한 위법입니다.”

    “그래서 국군통수권자가 직접 왔잖아. 선조치 후보고.”

    "대체 뭐가 그리 급하셨습니까?"

    "놈들이 한일수교 협상을 중단하려고 했어. 그래서 대마도를 점령하는 것으로 협박을 했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곳을 대신 가져가겠다고."

    그러자 안수진이 화를 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십니까!!!"

    "욕 해. 다 들어줄테니까. 근데 이거 하나만 알아둬. 난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 이건 악마들이나 할 짓이니까."

    “대마도를 불법으로 점거해놓고 한일동맹을 하시겠다구요? 일본인들 입장에서 이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놈들에게 선택권은 없어. 단지 언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형식적 문제지.”

    "도대체 무슨 소릴··· 전 지금 폐하의 말씀을 따라가질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이연이 말했다.

    “일본이 중립국이 되겠다고 하더군.”

    이연은 자기가 들었던 일본 대표의 말을 고스란히 상원의원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들이 자기에게 했던 충격적인 한마디.

    <미국과 한국은 일본의 평화를 위협하지말라.>

    이연의 설명을 들은 대한제국 상원의원들이 아연실색했다.

    황제는 말했다.

    “미국과 일본은 60년대 말부터 싸웠다더군.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하려고 했더니 일본인들이 반대한다는 거야. 중립국을 선언하겠다며 미군기지도 철수하라 그러니 화가 단단히 났지.”

    “그들이 왜···.”

    “오키나와는 미국 7함대가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야. 거기서 배를 빼라니까 미국이 화가 안 나겠나?”

    “그래서 미국 대신 악역을 자처하신겁니까?”

    “그래, 일본이랑 영토분쟁을 벌여서 안보위기를 만들겠다. 놈들이 스스로 재무장의 필요성을 느끼게끔 악역을 자처할테니, 미국이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들어 중재자 역할을 해라.”

    “처음부터 미국이랑 짜고···.”

    “이제 사태 파악이 되나?”

    안수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본이 스스로 반성하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중립국이 되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뭡니까? 그냥 받아주시죠! 그렇게만 해준다면 저희는 모두가 꿈꾸던···.”

    하지만 이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착잡하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한편으론 죄책감도 서려있는 듯 한 중년의 안타까운 인상이다.

    "비무장 평화는 꿈같은 소리야. 대한제국이 앞에서 중국과 소련을 막아주고 있으니 가능한거지, 결국은 안보무임승차를 하겠다는건데 그걸 받아주자는 건가?"

    "하지만!!"

    "우린 냉전기 최전선에서 싸우며 희생하고 있는데, 놈들은 뒤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경제개발만 하겠다고?"

    "그래도 저희가 손해보는 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리한 군비증강으로 경제가 뒤쳐지는 사이 일본이 추월을 하겠지. 놈들의 방패가 되어 희생하는건데 막대한 손해가 아니고 뭔가?”

    “그래서 짓밟으신겁니까? 스스로 평화를 논하는 일본의 의지를?”

    “그래, 놈들은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어. 우리의 동맹이 되어 세계3차대전 발발시 조선을 지키다 죽는 희생양이 되어야 해.”

    “일본인을 희생시켜 조선의 희생을 줄이겠다? 이건 악마나 할 발상입니다!”

    하지만 이연이 말했다.

    “그래, 악마란 우리를 뜻하는 말일지도 모르지. 난 그래도 할거야. 그것이 대한제국을 위한 길이니까.”

    "저희 아버지는 이럴려고 독립운동을 하신 게 아닐겁니다."

    "지금은 난세야. 전 세계가 미국과 소련으로 갈라져 핵무기를 앞세워 대립을 벌이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난세. 난 비겁하고 치사하고 악마가 될 지언정 조국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거니까."

    이연은 재떨이에 담배를 지지며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우리 시대에 평화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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