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63화 (63/131)

〈 63화 〉 Ep7. 악마와의 동맹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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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7분 57초. 황태녀 이은서와 평양북부경찰서장의 설전 끝에 군대가 출동했다.

경찰서로.

서북방위사령부 부사령관 전 장군이 군병력을 이끌고 경찰서에 들이닥쳐 쿠데타를 벌이듯 장악하니 서장의 집무실에도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경찰서장의 물음에 은서가 답했다. 이번엔 한복차림이 아니었다. 서북방위사령관의 5성장군으로 계엄사령관의 지위를 과시하는 여장군이다.

"보다시피 계엄권을 쓴겁니다."

"시위대는 길거리에 있습니다! 여긴 경찰서구요! 헌데 어째서 계엄군이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냔 말입니다!"

"계엄령은 전시 사변 또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발령합니다. 맞습니까?"

"지금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가 필요한 건 거리입니다!"

"현재 평양의 치안유지권은 계엄사령관인 저한테 있습니다. 하지만 서장님은 1시간이 넘도록 제 지시에 불응하고 강경진압을 주장하고 계시구요.

사령관인 제 허락 없이 강경진압을 하시겠다면, 군사적 필요에 따라 계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경찰이라 할지라도."

"평양의 치안을 위협하는게 저희 경찰이란 말씀이십니까? 무슨 그런 억지가···."

이은서 장군이 말했다.

“민주국가의 주권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던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쏘아 위협하셨지요? 그 다음 전경을 투입하여 몽둥이로 폭력을 행사하셨습니다.”

은서는 또박또박 강조하여 말한다.

“무장한 병력이 국민을 조직적으로 공격한겁니다. 그것도 유혈사태로.”

“......”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불응하는 무장 세력이 제멋대로 국민을 공격하니 이를 진압했을 뿐. 이건 법률에 따른 적합한 군사행동입니다.

그러니 하나 더 묻죠. 시민 대표들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역 정치인, 대학 교수, 고등학교 및 대학교의 학생 대표들로 구성된 평양지역의 시위 주동자들이 있었을텐데요.”

총으로 위협받는 경찰서장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답했다.

“그들은 체포하여 감옥에 구금하고 있습니다. 법에 따른 정당한 집행이었습니다.”

“그말인 즉 지금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뇌부가 없다는거군요.”

"그야···."

“시위를 막겠다며 수뇌부를 날려버리셨는데 어땠나요? 시위가 잠잠해지던가요?”

“그건···.”

“경찰서에 방화사건이 일어나고, 무장경찰에 무장 시위대가 맞서며 쌍방 폭행이 일어나는 참사가 벌어지고 있던데요.”

“......”

“당신은 실패한겁니다. 수뇌부를 날린다고 시위가 끝날리 없죠. 이유를 알려드릴까요? 이건 조직적인 시위가 아니었어요.

시민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판단해 길거리로 나온 전국 규모의 시위였죠. 같은 시각 서울이나 부산 같은 곳에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평양지역 대표들 잡아들인다고 해봐야 잠잠해질리 없죠.

오히려 악화될겁니다. 통제받지 않는 수만, 수십만의 시위대가 무질서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반정부시위를 벌이는 꼴. 당신이 만들었다구요.”

"하지만···."

그리곤 경찰서장에게 사진 석장을 던졌다. 급하게 인화해 온 필름 사진엔 대한제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끌어안은 채 경찰에 두드려 맞으며 피를 흘리는 시위대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사진 신문기사에 실리면 황실과 내각은 끝입니다. 애국심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이딴 짓을 벌였다가 경찰청장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계시겠죠?”

“7분만에 해임···.”

“저도 똑같이 해드리죠. 당신을 잘라버리고 내 책임 아니라고 꼬리를 잘라버릴겁니다. 전 이런 명령을 내린 적도 없고 허락한 적도 없어요. 그러니까 경찰서장 자리 유지하고 싶으시면 제 지시에 따르세요.”

이렇게 서열 정리는 끝났다. 서북방위사령관 겸 계엄사령관, 황태녀 이은서는 평양지역의 모든 사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

은서가 계엄사령관으로서 실행한 첫 대응은 시위대의 무조건 석방이었다. 최초에 시위를 주도했던 평양지역의 정치인, 대학 교수, 학생 대표들이 우선적으로 풀려나 경찰서장의 집무실에서 은서를 만났다.

어느새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은 28세의 소녀. 경찰서장의 자리를 뺏어앉아 인자한 미소로 차를 권하는 황태녀가 평양 시민의 대표들에게 다정히 말했다.

“황태녀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유능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요.”

그러자 정치인 한 명이 시민 대표로 말했다. 서북방언을 쓰고있는 지역 의회의 의원인데 화가 단단히 났는지 황태녀에게 딱 한마디로 답했다.

“일없습네다.”

“......”

다시 정적이 흘렀다. 싸해지는 분위기. 은서는 어떻게든 화기애애한 대화를 만들어보고자 억지로 웃어보이며 말했다.

“계엄령이 발동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치안유지를 위해서일뿐. 시위를 강제진압하거나 그럴 생각은 없어요.”

“계엄령이 발동됐으니 시위 자체가 불법이디요.”

“계속하셔도 돼요. 계엄사령관의 권한으로 허락해드리죠.”

“......?”

계엄 상황에서 시위를 허락해준다는 말에 괴상함을 느낀 지역의원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계엄령이란 건 해당 지역 내에서 시위를 일체 금지하라는 건데···."

“전 폐하의 외동딸인걸요?”

그러고 활-짝.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어보인다. 장군들에게 배운 사회인의 미소.

“여러분들께 황제 폐하는 어떤 존재일지 모르겠지만, 저한텐 그저 아버지세요. 제 말이면 껌뻑 죽는 분이시니까 걱정마시구요. 애초에 계엄사령관으로 딸내미를 앉힌 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기건 기렇긴 하지만···.”

“걱정마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단 조건이 있어요.”

“어떤 조건입네까?”

“저랑 신사협정을 맺으시죠.”

“신사협정?”

"군대로 시위를 진압하는 일은 없을거에요. 전투경찰로 무력 진압할 생각도 없구요. 최루탄도 안 쓴다고 약속해드리죠."

“조건이 뭡네까?”

“화염병 금지, 투석 금지, 죽창이나 쇠파이프, 각목을 비롯한 모든 무기 사용 금지.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해주시고 질서를 지켜주시죠. 화형식도 안됩니다.”

“기건 노력해보겠지마는···.”

“최대한 노력해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경찰력으로 알아서 해볼테니까요.”

그렇게 시민대표와 계엄사령관간에 이례적인 신사협정이 체결됐다. 시위권을 보장하는 대신 질서를 지키겠다는 상호간의 약속.

엄밀히 말해 계엄령의 법률상 의도를 무시하는 짓이었지만 독재국가에서 독재자의 외동딸이 제 맘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말릴 것인가? 은서는 그런 마음으로 모든것을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맞이한 11월 5일의 겨울날. 평양의 길거리는 많은것이 달라져있었다.

시위에 참가한 인원 57만 명. 자유로운 집회가 보장되자 거리낌없이 튀어나온 평양 시민들이 거리를 빼곡히 채워버렸다. 계엄령 발동 이전 34만 명과 비교했을 때 훨씬 거대한 규모였다.

은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복을 입은 채로 옥상에 앉아있던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자유 시위를 보장했다가··· 규모가 더 늘었단 말이지?”

김훈 중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경찰서장이 비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거 같구만. 거봐라 내 방법대로 하길 잘했지 이런식으로.”

은서는 침을 삼키며 각오를 다졌다.

“그래, 한일수교도 아니고 한일동맹인데. 민족적인 분노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래야 조선사람 아니겠어?”

그러자 김진혁이 물었다.

“한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가장 중요한 걸 빼먹은 느낌입니다만. 한일동맹. 황태녀 전하는 찬성이십니까? 반대십니까?”

그러자 은서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반대야. 당장 아버지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화가나있어.”

“근데 왜 덕수궁에 가질 않으시고 여기서 시위 관리를 하시는겁니까?”

“보여줘야지. 법치국가 대한제국. 자유로운 민주주의 만큼이나 법치국가로서의 민주주의도 중요한거잖아? 그러니 둘 다 보여줘야지.”

“그래서 전략적인 중립을 택하신겁니까?”

“중립이라기보단 내 할 일을 한다. 그렇게 보면 어떨까?”

내심 그런 생각도 있었다. 아버지라면 어떤 식으로든 좋은 선택을 내릴거라고. 그것은 전화로 한 약속에 근거한 믿음이었다.

<할 수 있어. 해봐. 니 애비가 사태를 해결할 완벽한 작전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용기를 내서 버텨. 조금만 버티면 책임지고 반드시 해결해줄테니까.>

그 말을 떠올리며 은서는 각오를 다졌다.

‘믿을게. 아버지는 유능하니까. 해결해줄거지?’

그렇게 은서의 지휘가 시작됐다.

평양 거리의 시위대 규모는 57만 명. 1973년 현재의 평양 인구를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다.

시위를 진압하던 전투경찰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시위가 보장되자 못 보던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타났다.

부녀자들이나 교복 입은 중고등학교 학생들. 특히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시위가 폭력적으로 바뀌거나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되면 제일 큰 피해를 입는 쪽이라 몸을 사렸나보다.

<한일회담 중단하라!>

<매국수교 결사반대!>

<한일동맹 왠말이냐!>

이런 구호들이 평양 시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목소리의 데시벨 따위 지금 당장 신경쓸 포인트가 아니다.

중요한 건 57만 명의 시위가 평화적으로 질서있게 끝나도록 치안을 유지하는 것. 이를 위해 은서가 조치한 것은 가장 먼저 '벽'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걸 위해 은서가 경찰에 한 부탁이 있었다.

<트럭이든 버스든 어떤 것이든 좋아요. 시위대의 행동 범위를 안전하게 제한할 방법이 필요해요.>

은서가 8년 내내 군인으로만 있다보니 잘 몰랐지만, 사실 경찰은 거기에 대응한 장비도 갖고 있었다. 평양 경찰이라고 족족 때려잡기만 한 건 아닌지라 시위대를 물리적으로 봉쇄할 대책이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경찰버스

병력을 실어나르는 버스들이 있는데 창문마다 철조망이 쳐져있다. 일종의 보호장치로 이런 버스를 도로변에 일렬로 주차해 막아버리면 여간해선 깨부술 수 없는 물리적인 장벽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방패를 든 경찰들을 앞에 세워 인의 장벽을 한번 더 구축하면 시위 통제를 위한 방벽이 된다.

단. 최루탄을 안쓰겠다는 약속에 따라 경찰들도 방독면을 쓰지 않았다. 여전히 중무장 상태지만 20대 청년들의 얼굴이 훤히 드러나는 모습에 '최루탄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지가 보인다.

57만 명. 한 공간에 이만한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단 시민 대표들이 약속을 했지만 규모가 규모다보니 언제든지 변칙적인 존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노조라던가 특정 단체가 벌이는 시위라면 내부에 위계질서가 잡혀있어 괜찮겠지만 지금의 시위는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시위.

경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나 몽둥이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 경찰트럭을 끌어내려는 사람까지. 안나왔으면 좋겠지만 항상 대비는 필요하다. 그래서 은서는 무전기로 경찰에 지시를 내린다.

"폭력을 쓰는 사람은 체포하여 법대로 처리해주세요."

은서의 지시에 따라 전경들이 과격시위대를 일사분란하게 체포해 데려갔다. 그러면서 시위대에 방송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국민여러분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경찰은 여러분들의 안전한 시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시위현장에 발생하는 문제는 폭력만이 아니다. 수십 만의 인파가 한 공간에 모여 단체행위를 벌이다보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겨울이다보니 저체온증 환자가 생길 수도 있다.

은서는 지역 소방대에 명령을 내려 구급차와 소방차가 현장에 대기토록 했다. 치료나 진단이 필요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앞서 하지 말라 했는데도) 화형식 같은걸 행하는 자가 있으면 재빨리 꺼버린다.

"공주님 저기요!"

진희가 시위현장 한 곳을 가리켰다. 우는 아이 한명이 동떨어져 애타게 엄마를 찾고 있었다. 부녀자가 시위에 나오다보면 아이 혼자 집에둘 수 없으니 같이 나오곤 하는데 57만명의 인파 속에서 미아가 될 위험이 있다.

은서는 무전기로 경찰에 연락했다.

"비무장경찰들로 팀을 꾸려서 안전통제요원으로 투입하죠. 시위대 지도부만으론 질서유지가 힘들거에요. 잡화상 근처에 미아가 있으니까 데려다 보호해주시고 요원들 시켜서 찾아주세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뭐든지 돕게 해주시구요."

그로부터 17분뒤. 아버지가 나타나 경찰의 안내에 따라 아이를 찾았다. 알고보니 온 가족이 함께 나온 모양이다. 가족 단위의 시위대는 은서도 처음 봤다.

이 외에도 안전통제요원은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위험해보이는 인물이 있으면 구두로 경고를 해주고, 분실물이 보이면 파출소로 가져가 주인을 찾게 해주는데 특히 지갑이 많이 보인다.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현금다발들이 신분증과 함께 인근 파출소에 수북히 쌓여갔고 또 사라져간다.

추운 겨울날, 최루가스가 사라진 평양의 길거리에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평화적 시위를 위해 지도부가 고민한 비장의 무기였다.

<노래로 시위를 해보자>

1973년. 그들이 시위현장에서 부른 거리의 노래는 다름아닌 독립군가. 이 나라의 애국가였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 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 질이 너와 나로다>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 건가 정의의 날쌘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길 이 너와 나로다>

그 노래가 누구를 가리키고 무엇을 요구하는지. 시위 현장의 누가 들어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노래에서 '원수'라고 하면 1945년까지 조선땅을 불법 강점하고 있던 일본을 뜻했으니까.

한일동맹에 반대한다는 뚜렷한 메시지가 조국의 노래로 들려와 경찰들을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시위를 관리해야할 입장에 있던 황태녀 이은서는 덤.

어찌됐든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해는 뉘엿뉘엿지고 있었다. 시위도 밥은 먹고 해야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거리에서 사라져간다.

평양에서 은서의 시위 관리를 지켜보고 있던 20명의 경찰청 담당자들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은서가 내린 모든 지시, 거기에 따른 평양 북부경찰서의 준비 및 대응. 그 과정에서 나왔던 모든 돌발사태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이들에 황태녀에 대한 존경이 엿보인다.

‘저분이 언젠가 우리들의 황제가 되실 분이군.’

그렇게 모두는 황태녀가 보여준 리더로서의 모습을 기쁘게 수근거렸다. 그 보고는 고스란히 내각에 전달됐고, 덕수궁의 집무실에 있던 은서의 아버지. 대한제국 황제 이연에게도 전달됐다.

이화가 담담한 태도로 보고를 올린다.

“황태녀 전하께서 질서 유지에 성공하셨답니다.”

“시위 규모는?”

“시위 규모는 좀 더 늘었습니다. 평양에서만 57만명이 시위중인데, 전하의 방법으로 전국의 시위를 관리하면 강도가 낮아지는 대신 인원이 늘어날겁니다. 전국에 300만 규모의 반일집회를 각오해야겠죠."

“그렇군···.”

이연이 재떨이에 담배를 지지며 말한다.

“그럼 기대에 부응해야겠지.”

잠시 후 연락을 받고 온 부사령관 전장군으로부터 은서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국방부로부터 모든 사령관에게 하달된 전달사항이었다.

<11월 5일 20시 30분부로 대마도 점령 성공. 각 부대 지휘관들은 다음 지시가 하달될 때 까지 비상대기하되, 병력은 데프콘4에 준하는 평시 상태를 유지할 것.>

대한제국이 일본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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