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Ep7. 악마와의 동맹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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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엔 귀족이 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내각제를 채택한 대한제국은 양원제라하여 국회를 2개 두고 있는데, 국민이 선출하는 하원과 귀족들이 선출하는 상원이다.
하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면 귀족원인 상원이 심사를 하는데 여기서 통과되면 황제의 재가를 받아 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상원에서 법안을 부결시키면 하원에서 재논의를 거쳐야 하기에 이론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 귀족들이 누구냐 하면 일제강점기 시절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들. 1945년 광복과 함께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48년 대한제국 복원 전부터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소리.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막강한 권력’이란 건 형식적인 것이고, 실제로 상원에서 법안을 부결시킨 사례는 없다.
대한제국의 세습직 귀족인 독립운동가들이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하원에 맞서는 걸 꺼려했기에, 헌법개정안 같이 엄중한 사안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통과시켜주는 관례가 있다.
상원의원이 된 귀족은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고, 공직에도 진출하지 않으며, 사회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데,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김두한도 주먹패로 유명했던 불세출의 야인임에도 상원의원시절 단 한마디의 정치 발언도 안했을 만큼 제국 귀족의 관습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이 정치를 하려면 선거에 출마하여 국민의 지지로 당선. 하원의원 자격으로 정치를 하는 것인데 과거에 이승만이나 김구가 그랬고 현재는 이범석 총리가 그렇다.
귀족임에도 특권이 없고, 보유한 재산에 비례하여 세금을 납부하며, 자신의 아들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미덕으로 가르쳐 군대에 보내는 이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존경은 영웅 그 자체. 그렇기에 상원의원의 다른 말은 민족 대표 100인이다.
1973년 현재 국회 상원의장은 민족의 사상가로 유명한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진.
2차대전기 미국 해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1959년까지 국가안보국(NSA)에서 요원으로 활동하였고, 은퇴 후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상원의원으로 활동중이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기념 사업을 추진했고,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사회 활동,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는 일 등을 다채롭게 진행하여 제국 귀족의 모범으로 손꼽히는 여백작이 가진 정치철학.
‘민족을 대표하는 상원이야말로 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다’
황제와 군부를 두려워하지 않는 59세의 상원의장이 한일동맹으로 촉발된 민심의 동요를 읽어내 황실에 질의서를 보내니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있었다.
‘비겁하게 총리 뒤에 숨지 말고 전면에 나와서 입장을 밝혀라. 한일동맹에 찬성하는거냐? 반대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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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9. 2 국회 상원 질의서>
수신 : 대한제국 황제
질의자 : 대한제국 국회 상원의장
최근 대중들 사이에 한일군사동맹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음. 이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반정부시위까지 벌어지는 바. 우리 상원은 이를 크게 우려하고 있음.
이에 대하여 황실은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있으며, 이는 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이에 민족을 대표하는 상원의원 100명은 황실에 공식 입장을 촉구하며, 현 시국을 완만히 해결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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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은 답장 대신 군대를 보냈다.
저녁 9시 무렵 그들이 향한 곳은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주한일본대표부였는데 친위대장 차지연이 직접 지프차를 타고와 이곳에 M48 전차 한 대와 실탄으로 무장한 보병 20명을 배치시켰다.
당황하는 일본 직원의 물음에 차지연은 이렇게 답했다.
“본국은 지금 반일시위로 소란스러운 바. 시위대로부터 일본대표부를 지켜주기 위해 군대를 배치한 것이니 신경쓰지 마시오.”
그 소식을 전달받은 주한일본대표는 창가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전차의 포신이 우릴 향하고 있는데 이게 지켜주는거라고?”
주한일본대표부가 있는 서울의 골목길. 전차 1대와 실탄을 가진 20명의 병사에게 포위된 일본 대표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 뒤로 반정부시위는 쥐죽은듯 잠잠해졌고, 국회 상원도 질의서를 보내는 일이 없어졌다.
실로 군인다운 해결법.
안수진조차 상상하지 못한 초월적인 대응. 일본에서 국가 차원의 항의가 날아왔지만 그러건 말건 국민들이 인지한 황실의 입장은 실로 분명했다.
<한일동맹은 없다>
이 순간 황실의 지지율은 87%. 역대 최고조였다. 안수진의 의도했던 것과 정 반대의 결과. 그러나 썩 나쁘지 않은 엔딩이었다. 일단은.
***
1973년 9월 15일. 대한제국의 예비군이 정식 출범했다.
드넓은 서울 운동장에서 총을 들고 군복을 입은 사회인들이 모여 예비군 창설식을 진행하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카드섹션을 벌여 예비군 창설을 축하해주고 있었고, 운동장 지붕엔 이런 간판이 큼지막하게 걸려 선전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일하면서 싸우자!>
그것은 예비군의 성격을 정확히 표현하는 표어였다. 군복무 3년을 마치고 전역한 청년들이 사회에 나갔다가 매 년 군부대에 다시 모여 2박 3일의 훈련을 받는 것. 그러다 전쟁이 터지면 현역들과 같이 전쟁터를 누비는 것이다.
창설식엔 황제가 직접 참석하여 장병들의 충성을 받고 있었고, 연단에 서서 이렇게 연설했다.
“지난 날 조국 수호를 위해 싸운 전우들이여. 오늘 너희들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며 일하는 국가 방위의 전사가 될 것을 조국과 민족 앞에 엄숙히 선서했다.
너희들은 예비군의 장엄한 창설식을 통해서 우리 국방사상 신 기원을 연 것이다. 내 나라는 내 힘으로 지키겠다는 그 결의를 가슴에 품고 독립을 사수하라. 대한 독립 만세!”
황제의 만세와 함께 장병들의 만세삼창이 서울운동장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대한 독립 만세!>
그것은 과거 독립운동가들이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바쳐 외친 구호였고, 지금은 독립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선 조선의 아들들이 외치고 있는 구호였다.
이로써 대한제국 남성들의 70년대 군복무기간은 현역 3년에 예비역 8년. 장장 11년에 달하는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됐다.
대한제국의 1973년 전체 병력은 상비군 83만 명, 예비군 270만 명. 도합 353만 대군. 같은 시기 미국의 정규 병력이 225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자유진영 내에서도 손꼽히는 육군대국이었다.
***
같은 시간 평양의 골프장. 서북방위사령부에 새로 부임한 장군들이 골프를 치며, 새로 창설된 예비군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은서를 보좌하는 부사령관 전 장군이 말했다. 계급은 3성 장군인 중장이다.
“솔직히 말이 좋아 선배들이고 정예 병력이지 군복무 3년 한것도 지긋지긋했을건데.”
은서의 참모장 박 장군이 웃으며 답했다. 그도 부사령관과 동일한 중장.
“제 아들 녀석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중공을 욕하더랍니다. 그게 얼마나 웃겼던지. 하하!”
“그래도 뭐, 270만 병력이 생기면서 동원사단도 창설될건데. 장군들 보직은 늘어나겠지요.”
“그래봐야 한직 아니겠습니까? 전역을 앞둔 장군들이 마지막으로 거쳐가는 그런 곳이지요.”
그렇게 대화하던 둘은 갑작스럽게 박수를 쳤다. 활짝 비즈니스 비소를 지으며 열렬한 박수를 치는 중년 아저씨들의 외침.
“나이스샷!!!”
“와아!!!”
짝짝짝짝. 그들 앞에는 28세 소녀 이은서가 선글라스에 골프복 차림으로 어설프게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 여자.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잔뜩 생겨 해피한 장군님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된 황태녀.
“아이 참, 내가 생각해도 어설프게 쳤구만 죄다 나이스샷이래···.”
머리를 긁적이는 은서가 애써 웃어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장군들이 더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원래 처음엔 다 그런겁니다. 하다보면 늘어나는 것이지요. 하하!”
“초심자이신 거 치시곤 엄청나게 잘 치셨습니다!”
장군들의 아부에도 숙련도가 있었다. 황태녀 전하의 눈높이와 심리상태, 부담의 정도까지 고려한 맞춤형 아부가 소녀의 마음을 살살 녹였다.
서북방위사령부 장군들의 골프회동은 맛있는 오찬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장성들이 가던 한식집은 무시한 채 옥류관으로 가는데 이는 심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은서의 질문.
"가까운곳 놔두고 왜 옥류관까지 가자고 하시는거죠?"
부사령관 전 장군의 대답.
“거기는 반란군들이 작당을 벌이던 불온한 장소입니다. 괜히 거기 갔다가 안 좋은 기운이라도 옳으면···.”
참모장 박 장군의 말.
“세상 만사 다 조심하는게 베스트 아니겠습니까?”
새로 부임한 장군들은 떨어지는 낙엽조차 사뿐사뿐 피해가겠다는 필사의 각오를 하고 있었다. 전임 장군들이 재판정에서 아무리 변호하고 발악해봐야 1심에서도 사형. 2심에서도 사형이 확정적. 그런데 새로 부임한 자신들은 그들보다 계급이 낮은 3성 장군으로 사령부에 왔다.
똑같은 위치에서 한 단계 낮은 계급. 힘은 약해졌는데 직위는 그대로. 그것은 황제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
일거수 일투족이 보안사령부의 감시를 받고 있을 장군들에게 눈앞에 있는 소녀는 자신들의 군생활 그 이상이 걸려있는 운명의 소녀였다.
‘최대한 잘 보여서 폐하의 눈에 들어야 해!’
옥류관에 호화로이 차려진 장군들의 오찬이 은서에겐 행복하고 풍족한 식사였지만, 장군들에게 있어 이 식사는 업무의 일환. 먹는 속도부터 말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업무적이고 계산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앗! 황태녀 전하께서 혼자 식사를 드시고 계시잖아? 말벗이 되어드려야 해!’
고작 1분동안 말 없이 식사했다는 이유로 장군들은 이런 긴장감을 느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런! 먹는 속도가 너무 빨랐어! 전하께서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속도를 조절해야 해!'
받 숟가락을 드는 속도에도 계산이 필요했다. 상급자보다 밥을 먼저 다먹어서도 안되고, 밥을 너무 늦게먹어 기다리게 만들어서도 안됐다. 그분이 편안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눈치채서 무안해하시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황태녀 전하 모시기를 황제와 같이 하고 있는 이들에게 식사 자리는 말 그대로 전쟁터. 치열한 눈치 싸움의 장이었다.
그러던 중 장군들끼리 하던 대화가 은서의 귀에 들어왔다.
“박 장군, 그거 아십니까? 이번에 포항에 있는 해병대 1사단이 군사훈련을 진행한다더군요.”
"해병대면 전시에 미국을 도와 북경에 상륙하는 임무를 맡고있는 전력이잖습니까?"
“거기에 특수전사령부 휘하 공수부대랑 해군 3함대까지 함께 하고 있답디다. 공군의 최신예 F-4 전투기까지 참가했다는데 이북도 아니고 남한에 왠 3군합동훈련을 하는건지···.”
은서가 말했다.
“일본이겠네요?”
이야기를 하던 전 장군이 말했다.
“그들은 미국의 동맹입니다. 우리도 미국의 동맹이지요. 아군의 아군은 적이 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훈련 내용이 딱 일본인걸요? 공군으로 제공권을 차지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후방을 기습. 일본이 혼란에 빠진 사이 해병대가 상륙하여 점령한다.”
“그렇다면···.”
“F-4 전투기가 부산의 공군기지에서 이륙하면 일본 남부지역을 타격하기엔 충분한 항속거리가 나올거에요. 완전무장 상태로 수 시간 교전을 벌인다 해도 대마도나 후쿠오카 정도라면 무리없이 가능하겠죠.”
“조선이 대마도를 점령? 허허 설마요. 그랬다간 유엔 가기도 전에 미국 선에서 정리당할겁니다.”
“일본이 갖고 있는 최신 기종이 뭐죠?”
“미국제 F-104 스타파이터입니다. 120대 정도 있고 소련을 대비해서 훗카이도에 집중배치된 것으로 압니다. 저희가 보유중인 F-4 전투기보다 뒤쳐지는 기종이지요.”
“일본은 F-4가 없나요?”
“예. 아직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하온데··· 전투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시군요?”
은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서북방위사령관은 서북지역 공군까지 지휘한다길래 공부좀 해야할 거 같아서··· 헤헤···.”
전 장군이 미소지어 말했다.
“좋은 자세입니다. 전하.”
“뭐, 쨌든··· 일상적인 훈련이겠죠. 어느 군대나 훈련의 중점이 될 가상 적군은 있어야 하는거니까.”
은서의 말에 전 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일본이 가상 적군이라? 그럴리가 없을텐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모두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터진다.
1973년 10월 6일 중동에서 전쟁이 터졌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제4차 중동전쟁이 전 세계 석유 가격을 지옥으로 끌고갔다.
배럴당 3.01달러에 불과하던 석유가격은 5.12 달러로 70% 인상된다. 10월 20일 아랍 국가들은 이렇게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할 때까지 그들을 지지하는 모든 나라들에게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리겠다’
중동이 석유를 무기로 사용한 최초의 사례. 이스라엘과 친한 국가다 싶으면 모조리 금수조치를 때리는 무시무시한 담합. 이들은 석유의 생산량마저 인위적으로 감축하여 기름값을 끌어올리니, 70% 상승은 시작에 불과했다.
옆 나라 일본도, 바다건너 미국도, 유럽 동맹국까지 모든 자본진영 국가가 경제위기에 빠지는 초유의 사태. 이것이 바로 제1차 오일쇼크.
석유 한방울 나오지 않아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던 대한제국의 경제가 하루 아침에 붕괴 위기에 놓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