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57화 (57/131)

〈 57화 〉 Ep7. 악마와의 동맹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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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과 일본은 원수지간이다.

사이가 얼마나 안 좋냐면, 특히 조선 입장에서 일본이란 나라는 이렇게 정의가 가능하다.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없던 600년대, 백제와 일본(야마토 시대)이 문화적인 교류를 나누고, 백제 말기엔 지원군까지 오는 등 활발한 동맹관계를 이어오기도 했다.

이러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이 벌어지면서부터다. 이 당시엔 조선이 이겼고, 전쟁의 후폭풍으로 일본의 정권이 교체되며 당시엔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문제는 1910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제국이 조선을 식민지로 강제 병합하면서 원수지간이 된 것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식민지배 기간 동안 수 많은 조선인 남성들이 일본의 탄광이나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고, 여인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군인들의 성노리개가 되는 등. 인적, 물적 자원을 통틀어 뼈저리게 착취를 당해온 조선인 입장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이웃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일관계를 비유하자면, 나치독일과 프랑스 공화국 정도 되는 원수지간인셈. 어쩌면 그보다도 심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그랬던 대한제국이 딱 한번.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화해를 논한 적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한일기본조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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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 2. 20일 제1차 한일기본조약 가조인 요약>

대한제국과 일본국은 양국 간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며 주권 상호존중의 원칙에 입각한 양국간의 관계 정상화를 희망하며···.

...(중략)...

제1조 양국은 외교 및 영사관계 수립을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간다.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무효임을 확인한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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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1조.

'양국은 외교 및 영사관계 수립을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간다.'

협상을 파토냈는데 미국 눈치는 보이니까 앞으로 계속 논의하는 척은 해주겠다 정도의 느낌.

두 나라는 배상금 문제부터 시작해 과거사 정리까지 모든 조항에서 충돌을 빚었고, 제대로 된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저런 반쪽짜리 조약으로 끝을 낸 것이다.

양국은 여전히 대사관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대신하는 대표부란 게 있긴 하지만 급이 현저히 낮은 임시직.

냉전기 동북아에서 미국의 안보에 협력해 줄 양국이 이렇게 서로 싸워대니 중간에 끼어있는 미국으로선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1973년 양국의 외교부는 여전히 '형식적으로' 협상을 이어가고 있으며 동맹은 커녕 수교 조차 까마득하다.

***

8월 15일은 대한제국의 독립기념일이다.

공식 명칭은 대일전승기념일(Victory over Japan Day)로 1945년 8월 15일 대한제국 망명정부 휘하 광복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서울진공작전을 실시, 조선총독부를 점령한 사건을 근거로 한다.

“해피 빅토리데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평양 근처의 모래사장 위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28세의 소녀. 황태녀이자 서북방위사령관인 이은서가 멋드러진 제복을 차려입고서 가슴에 훈장까지 주렁주렁 달고 이렇게 외쳤다.

“지금부터 대일전승기념일 기념 합동화력훈련을 실시한다! 전 포대 발사 준비!”

그녀의 선언과 함께 무전기에서 보고가 들려왔다.

[준비 완료!]

회심의 미소를 짓는 은서 뒤로 100문에 달하는 견인포들이 해안가에 3열 종대로 가지런히 서있었다. 지난번 70문보다 훨씬 많은 규모였다.

현재 시각 아침 9시.

이런 모습을 생중계로 열심히 찍고있는 KBC 기자들에게 은서는 이렇게 말한다. 전 국민에게 전하는 황태녀의 메시지다.

“전승 28주년! 국민 곁에서 조국을 지키는 든든한 국군이 되겠습니다. 충성!!”

그 다음 은서는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외쳤다.

“전 포대 사격 개시!”

그녀의 선언과 함께 신호수의 붉은 깃발이 힘차게 내려갔다. 그러자 100문의 야포가 일제히 불을 뿜어 바다 넘어 섬에 포탄의 비를 쏟아부으니 화염바다 속에 천지가 진동했다.

이날의 사격을 시작으로 대한제국의 성대한 열병식이 막을 올린다.

꽃가루가 휘날리는 서울 하늘 아래 대한제국 친위대의 헌병대 사이카들이 천천히 도심을 달렸다.

그 뒤로 가지각색 부대기를 든 육군 장병들이 군악대와 함께 행진했고, 육해공 사관생도와 간호사관생도 등 미래의 주역들이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행진하니 그들의 얼굴에 강해진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대한제국의 보병부대, 특수전부대, 해병대나 해군 및 공군 장교들이 어깨를 곧게 펴고 행진하고나면 그 뒤로 역사적인 연출이 이어진다.

서울진공작전의 주역인 독립군의 군복을 입은 장병들이 앞장서서 행진했고, 한국전 북진통일의 주역인 50년대 국군의 전투복을 입은 장병들이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충성의 경례를 올리니 이제는 사회의 실세가 된 독립운동가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기쁘게 경례를 받아주었다.

행렬을 이끌던 장군에게 시민들이 달려와 꽃목걸이를 걸어주었고, 군악대의 행복한 연주 속에 대한제국의 육중한 기갑부대들이 뒤를 따랐다. 육중한 전차와 장갑차, 견인포를 끌고 있는 군용트럭들이 서울 시가지를 행진하면 하늘 위로 대한제국 공군의 F-4 전투기가 오색빛깔 연기를 뿜어내며 날아가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황제 이연과 각군 장성들, 내각 요인들과 여야 주요 의원까지. 거기에 독립운동가 및 후손들이 자리를 빛냈고, 각국 대사와 장군들이 참석하니 귀빈들만 해도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곳에 일본인이 있었다. 귀빈석의 구석탱이 가장 불편하고 좁은 좌석에 떠밀리듯 앉아있는 한 명의 외교관. 8월 15일이 자국의 패전일인 일본인 입장에서 이런 자리에 초대하여 들러리를 세우는 건 심각한 외교결례지만 알게뭔가? 애초에 정식 수교국도 아닌걸.

하지만 이 행사는 일본을 겨냥한 게 아니다. 같은 시기 만주벌판에서 중국과 소련이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의 적이지만 중국은 현재의 적. 군사 행동에 군사 행동으로 맞받아치는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참으로 어려웠다.

***

다음 날 1973년 8월 16일.

대전광역시 근처 산기슭 어딘가. 국방과학연구소의 비밀 사격장에서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와 국방부장관 김종규가 만났다.

"중정을 거느린 실세로서 어떻게 보나? 중공군과 소련군 규모. 구체적인 수치를 좀 알고 싶은데."

선글라스를 낀 김종규 국방부장관이 물었다. 관람석에 앉아 태연히 콜라를 마시는 그에게 이화가 미소지어 답했다.

"군부에서도 이미 알고 있을텐데요?"

"군부에서 갖고 있는건 68년도 정보더라고. 경친왕 이전과 이후의 규모는 다르지 않겠나?"

그러자 이화가 말했다.

"구체적인 부대 현황은 조만간 김 부장이 서류로 전달할겁니다. 소련의 총병력은 약 500만. 그 중 동북아에 배치된 극동군관구 병력이 63만명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최근 블라디보스토크쪽에 방공부대와 대함미사일들이 증강됐고, 전차부대도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계속 증원되고 있죠."

"중공군은?"

"건국 초기에 550만 명이었고 이후 감소세를 보이다가 문화대혁명을 거친 현재는 430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 중 만주를 관할하는 선양군구 병력만 80만에 달하구요."

김종규 장관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대한제국이 83만이야. 전군을 긁어모아 이 정도인데 놈들은 만주지역에만 143만이라고? 나 원참... 중공 놈들은 국경분쟁도 끝났겠다 여차하면 430만 병력을 모두 끌어올 수 있을 게 아닌가?"

"그 중 반절만 와도 대한제국은···."

"그 놈들, 징병제였지?"

"중국 인구가 8억 8천이에요. 430만 병력이 징병제로 긁어모은 중국 청년의 전부일까요?"

"하긴···."

"하지만 우린 징병제죠. 조선 청년 전체를 긁어모아 3년간 강제로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고작 83만. 앞으로 인구가 늘어 1억은 바라봐야 100만을 채울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온 거 아니겠나?"

드넓은 사격장에 배치된 40발들이 다연장로켓포를 바라보며 이화가 말했다.

"월남전에서 노획했던거군요. BM-21 Grad, 소련제 다연장로켓포로 20초간 40발의 로켓을 쏟아부을 수 있죠."

"그래, 소련 놈들의 병기긴 하지만 이만한게 또 없지. 우린 이걸 연구해서 대한제국에 쓸만한 다연장포를 만들거야. 로켓포 발사관은 36개 정도로 줄여 안정적으로 화력을 투사하고, 이걸 각 군단급 포병여단에 배치시켜서 중공을 막는데 쓸 생각이거든."

"국방부를 포방부로 만드실 셈이군요."

"머리수로 안되면 화력으로 승부를 봐야지. 조선시대 화차부터 시작된 우리 군의 전통이 아니겠나?"

이화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절 여기로 부르신게 병력 규모 물어보고 이거 보여주자고 부르신 건 아닐텐데요. 진짜로 원하시는게 뭘까요?"

"국방예산을 증액하고 싶네. 예산 부족으로 지지부진한 예비군 창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볼 생각이거든."

"예비군이요?"

"그래, 전역한 장병들에게 매년 주기적인 훈련을 시켜서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게 준비하는거지."

"그건 이미 서북방위사령부랑 동북지역 제2야전군사령부에서 하고 있을텐데요?"

"이북지역에 제한적으로 하고 있지 않나? 전국으로 확대해야지. 그렇게 하면 예비병력만 270만 명을 확보해 83만 정규군을 합하여 350만 육군 대국이 되는거야."

"그들에게 지급할 최소한의 장비들을 마련하려면··· 지금의 국방예산으론 안되겠군요."

"일단 가용예산을 모두 쏟아부어서 당장 올해부터 진행할 생각이야. 6.25때 쓰던 총과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버리고 간 총까지 모두 긁어모아서 버텨볼테니까 폐하께 말씀드려보게."

이화가 비관적인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게 되면 경제쪽으로 투입되던 예산까지 빼와야 할거에요. 재무부장관과 상공부장관이 반대할텐데요?"

"그래서 폐하의 힘을 빌리고자 하는 게 아닌가? 올해로 데프콘2만 두 번째야. 안보위기를 해결하려면 다른 방도가 없어. 이로 인한 피로도 누적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이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말씀은 드려보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이건 대한제국의 미래를 희생하는 일이라는 거."

김종규가 굳은 의지로 답했다.

"현재를 지켜야 미래도 있는걸세."

비밀사격장의 BM-21이 불을 뿜었다. 40발 로켓포가 천지를 울리며 표적을 불바다로 만든다. 오로지 단 한 개. 한 개의 발사대가 40문의 견인포와 동일한 화력을 내고 있었다.

김종규가 꿈꾸는 국군의 새로운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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