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Ep6. 위화도 위기 (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서북방위사령관으로서 명령한다. 7군단 특공연대는 지금 즉시 장비를 챙겨서 연병장으로 집합할 것.>
은서가 찾아간 곳은 7군단 특공연대였다. 얼마 전 숲속에서 자신을 기습 납치했고, 김훈 중령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대로 제압당했던 ‘실패한 반란군’들이었다.
황태녀의 등장에 특공연대 장병들이 두려운 눈빛으로 하나 둘씩 연병장에 모여든다.
“우릴 혼내시려는 걸까?”
“군사재판에 넘기려는 거일지도 몰라···.”
병사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수근거린다. 이들이 군사재판에 넘어간다거나 부대 해산을 당하지 않았던 건 징집병들로 구성된 부대인 탓으로, 명령에 따라 행동했을 뿐 자의로 한 반란은 아니었다는 게 정상참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죄는 지휘관들이 진거지 장병은 죄가 없다는 논리였다. 은서도 그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가장 먼저 이들을 찾았다.
연병장 앞 단상으로 올라가던 은서에게 진혁이 물었다.
“전하께서 직접 출정하시는 것도 기겁할 노릇인데, 왜 하필 특공연대입니까? 제 휘하 경호실도 있고, 김훈 중령의 300명 정예 대원도 있을텐데요.”
“경호실은 지키는 데 특화된 친구들이야. 비상 사태랍시고 M16들고 흑복 입어봐야 구색이잖아. 걔네들이 월남전 시절 특전사들처럼 침투작전을 할 수 있어?"
“그야··· 하지만 김훈 중령은요?”
“오빠네 부대는 보병부대야. 그것도 기계화보병. 평양에 처음 올 때 M113 병력수송장갑차 타고 왔었지?”
김훈 중령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애들은 전면전을 상정한 애들이야. 특수전에는 부적합하지. 장갑차 끌고 왔던것도 여차하면 은서를 태워서 포위망 뚫고 도망치려던 거였으니까.”
그러자 은서가 놀리듯 말했다.
“어이구~ 그래놓고 반란에 가담하셨어요~?”
“그건 연기였다고 몇 번을···.”
“아 예~ 어련하시겠어요?”
은서는 헛기침을 하며 재차 말했다.
“쨌든 지금 내 휘하에 동원할 수 있는 특수전 부대는 특공연대가 유일해. 비록 징집병으로 이루어진 부대지만 징병제 복무기간이 3년이야. 짬밥 좀 먹은 애들은 숙련도 측면에서 특전사 못지 않겠지."
김훈 중령이 걱정하듯 말했다.
"그냥 폐하께 말씀드리자. 이 나라 최고 하면 친위대 소속의 특수임무대대일건데 최고의 요원들을 놔두고···."
"안돼, 특임대는 내 부하가 아니잖아. 내 휘하 서북방위사령부의 병력으로 싸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단 말야."
은서는 미소지어 모두에게 말했다.
“보여줘야 하잖아. 우리 사령부는 숙청을 겪었어도 멀쩡히 조국을 지키고 있다고. 국민을 위해 싸우는 국군, 그 주인공이 우리 부대 애들이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은서는 단상 위로 올라가 장병들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사령관이 아닌 황태녀 전하로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두려운 것이다. 자신들이 ‘죽이려’ 했던 반란의 대상. 그런 사람이 멀쩡히 살아서 자기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두려울까?
은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외쳤다.
“니들, 내가 무섭지!?”
“......”
“근데 어쩌냐? 난 니들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장병들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고 죄스럽고 후회스러운 태도. 그런 그들을 내려다 보며 썩은 미소를 짓는 황태녀 이은서.
그녀가 말했다.
"다들 중요한 걸 잊고 있더라? 내가 5성 장군 달고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무시하는 모양인데, 이래봬도 월남전에서 특전사로 싸운 19번도로 전투의 영웅이거든? 훈장을 2개씩이나 받은 여자라고."
그러더니 대뜸 단상에 걸터 앉아 이렇게 말했다.
"근데 더 재밌는건 뭔 줄 알아? 사실 나 여태까지 싸우면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은서는 떠올렸다. 월남전에 파병되어 무수히 싸워왔던 자신들의 전투를. 아픈 과거가 버티는 시간의 장벽을 넘어 그보다 과거로 거슬러 가면 소위 시절의 이은서, 중위 시절의 이은서, 대위 시절의 이은서가 각각 나온다.
아버지 강요로 월남땅에 던져진 이은서 소위는 김훈 대위의 갈굼을 받으며 자랐고, 짬이 차오른 이은서 중위는 김훈 대위의 뒤에서 많은 것을 보조했다.
그리고 이은서 대위. 김훈 대위가 소령으로 진급해 본국으로 돌아가자 공수지구대 3팀을 물려받은 새로운 팀장.
복수심에 불타는 이글거리는 여전사의 눈빛. 공주로서 처절하게 죽어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겠단 일념 하나로 단독 작전을 무수히 벌였던 정신나간 년.
그러나, 부하들이 죽어간 마지막 전투에서 조차 결과만 놓고 보면 승리했고 19번도로 전투의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 해버린 무패의 특전용사.
지난 1년간 전쟁의 후유증으로 폐인처럼 지내온 자신이지만 그 이전까지의 자신은 분명 아버지의 뒤를 이을 영웅의 딸, 그 자체로 영웅인 '군인'이었다.
이는 월남에서부터 쭉 이승필 중위를 통해 감시해왔던 친위대 김진혁도 느끼는 부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단 한번도 작전을 실패한 적이 없었어···.’
성별을 떠나 신분을 떠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그 자체로 군인인 존재로, 11명의 죽음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단상위에 우뚝 선 '군인 이은서'가 7군단 특공연대 장병들에게 딜을 걸었다.
"너희들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줄게. 나랑 같이 위화도에 가자. 반역자라는 오명을 벗고 조국을 구한 영웅이 되어 떳떳하게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
무거운 침묵. 연병장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긴장감. 망설이는 장병들을 보며 은서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너희들, 사회로 돌아가면 친구들한테 무용담 자랑할거잖아? 군생활 하면서 뭘 했다느니 그런거. 그 때 200% 과장해도 뭐라 안할게.
내가 왕년에 황태녀 전하와 함께 위화도 전투에 참가했었다고. 위기의 순간 전하를 구한게 나다! 내가 전하 옆에서 적을 무수히 때려잡았다! 그렇게 잔뜩 폼잡으면 눈이 아주 초롱초롱해질걸?
친구랑 애인이랑 군대 이야기 하면서 내 이름을 팔아먹어도 뭐라 안할 특급 기회를 줄게. 어때? 이거 원래는 불경죄다? 특별히 허락하는거야."
가벼운 농담에 장병들이 피식 웃었다.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은서가 자신감을 갖고 다시한번 말했다.
"같이 가자! 국군의 힘을 보여주러!"
***
7군단 특공연대가 황태녀를 따라 위화도에 갔다는 건 곧바로 최고 사령부에 보고되었다.
서북방위사령부의 지하 벙커.
은서의 아버지, 대한제국 황제 이연이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윽박을 질러댔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서북방위사령관으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건데?]
“너도 내 동생 따라하는거냐? 누구 맘대로 군사 행동을 벌여? 너 이거 반역인 거 몰라서 그래?”
무전기에서 은서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경친왕 전하는 허락을 안 구했으니 반역인거고.]
“너도 허락을 안 구한건 마찬가지야.”
[난 준비만 하는거야. 아버지, 아니. 국군통수권자인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명령을 대비하는거지.]
“준비만 하겠다고?”
은서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위화도 사태가 북한군 잔당의 소행이라 확신해. 미국 대사님도 그러지? 중정도 그러고. 중국 소행일리 없다는 분위기잖아.]
이연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그래, 너도 그 정도는 아는구나.”
[그러니까 황제 폐하랑 군부, 그리고 미국 대사랑 상의해서 알아서 결정해. 그리고 명령을 내려, 서북방위사령관 이은서 장군에게 위화도를 탈환하라는 명령]
이연은 사령부의 장군들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불신과 걱정이 서려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이연 본인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28세 소녀 이은서를 장군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를 대표해 말했다.
“넌 안돼. 이번 작전을 지휘하기엔 너무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 위화도 탈환은 특임대에 맡기고 넌 돌아와서 교육이나 받아.”
그러자 무전기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경험 부족한 28살 소녀를 사령관에 앉힌건 아버지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돌아오란 거잖냐?”
[5성 장군 이은서는 낙하산이지만 소령 이은서는 실력이야. 내가 얻은 훈장들은 내 힘으로 얻은거 아니었어?]
“......”
[반공소녀 이은서. 그렇게 되라며 김종규 대장시켜서 내 머리카락 자른게 누구였는데 그래?]
“......”
[거기 종규 아저씨 옆에 있지? 국방부장관님께 전해. 그 때의 공주님은 아주 훌륭하게, 빌어먹을 만큼 최고의 특전사가 되어 돌아왔다고.]
“은서야···.”
남자의 표정에 걱정이 서렸다. 57세의 아버지 이연. 딸내미가 전투에 나간다는 소리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느껴졌다.
“넌 내 하나밖에 없는···.”
은서가 말했다. 새벽녘 헬기를 타고 이북 지역을 날고 있는 5성장군,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소령 이은서의 마음가짐으로 특공연대와 함께하는 평범한 일선 지휘관이었다.
[살아서 돌아올게. 갔다오면 옥류관에서 케이크 먹자. 내 생일파티 못 했잖아.]
“......?”
[몰랐구나? 나 딸기 올려진 핑크빛 3단 케이크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은서야···.”
[맛있는거 많이많이 사줘. 오랫만에 해보는 생일 파티가 영원히 기억에 남도록.]
“그래, 약속하마.”
[이기고 돌아올게. 국경 분쟁이 전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남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담담히 말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명한다. 서북방위사령관, 지금 즉시 위화도를 탈환하도록. 단, 중국이 반응하지 않도록 신속하고 조용하게. 최대한 적을 생포하는 쪽으로 진행하라.”
[네, 폐하.]
은서의 특공대는 위화도로 향했다. 아직도 새벽이었다.
***
압록강 한 가운데 둥둥 떠있는 섬 위화도.
백두산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드넓은 압록강이 되어 흐르고, 강물로 운반된 토사가 퇴적되면서 형성된 거대한 섬은 총 면적 11.2㎢로 여의도 3배 넓이쯤 된다. 끝도 없이 넓은 땅에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사는 평범한 섬.
이런 곳에서도 새벽은 잠입을 하기 좋은 타이밍이 된다.
지휘관이 숙청당한 특공연대는 김훈 중령이 이끌었다. 월남전에서 특전사 1개 팀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었고, 본국에 돌아왔을 땐 소령으로 참모로 일한 경력이 있다.
잠입임무야 월남전 때 지겨울 만큼 해본 그였기에 고무보트를 타고 몸소 노를 저어가며 적진에 침투했다. 그의 인도에 따라 엄선된 150명의 장병들이 함께 위화도의 정면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작전을 설계했던 은서는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이렇게 설명했다.
“망치와 모루 작전을 응용해볼거야. 150명의 정예 대원을 엄선해서 위화도 정면으로 침투. 적과 교전을 벌여야 돼.”
김훈 중령이 물었다.
“총격전은 위험하지 않을까? 국경분쟁이잖아.”
“마을 규모가 20개소, 137명의 주민들이 살던 마을이야. 놈들이 여기를 장악하고 기관총까지 배치하며 버티고 있어. 총격전은 감수해야지.”
“그렇담 최대한 빨리 제압해야겠군. 중공군에게 빌미를 줘선 안되니까.”
“잘못하면 우리 작전이 세계3차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어. 오빠가 저격으로 기관총만 제압하고 시선을 끌어줘. 최대한 죽지 않도록.”
“그 다음엔 네가 직접 후방을 치겠다?”
“응. 총격전은 초반에만 잠깐 벌어질거야. 오빠가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내가 진혁이랑 특공연대 애들 30명 정도를 동원해서 후방을 칠게. 정신 없는 사이 뒤를 치게 되면 앞뒤로 협공해서 순식간에 제압하는거야.”
“나도 그렇지만 너도 명심해. 이번 작전은 위화도를 점령한 적의 정체를 밝히는 게 목적이니까. 폐하도 당부하셨지? 최대한 생포하라고.”
“알고있어.”
그렇게 공수지구대 3팀을 이끌었던 두 명의 지휘관이 팀을 2개로 나뉘어 앞뒤로 위화도를 공격한 것이다.
특공연대의 노련한 지정사수들이 기관총 사수를 저격하면, 그 뒤로 김훈 중령과 장병들이 제압사격으로 ‘적당히’ 싸우며 겁을 줬고 그런 사이 은서와 진혁이 후방을 친다.
오랫만에 입어보는 특전사의 전투복에 단검을 들고있는 28세의 여전사. 고무보트에 내려 터벅터벅 위화도의 전장으로 향하는 그녀의 눈빛에 살기가 돈다.
"가자, 진혁아."
진혁의 임무는 황태녀를 지키는 것. 한치 앞을 모르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남자의 눈빛에도 각오가 빛났다.
***
결과부터 말하자면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김훈 중령과 정예 맴버가 제압사격만으로 시선을 끈 사이 은서의 특공대가 후방을 쳐서 적을 제압했다.
이 때 은서가 뽑았던 맴버 30명은 특공연대 중에서도 엄선된 무술 유단자들이었는데, 태권도부터 시작해 가지각색의 무술들을 연마해 근접 전투에 대비해온 기특한 친구들이다.
마을 곳곳의 허름한 벽돌집에 의지하여 총격전을 벌이던 적군은 갑자기 들이닥친 대한제국군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명심해. 죽이는 게 목표가 아니야. 최대한 생포하도록 해.>
은서의 당부대로 특공연대의 병사들은 총을 쏘면서도 팔이나 다리 위주로 맞췄고, 적당히 상황이 정리되면 발차기나 주먹을 이용해 적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28세의 여전사 이은서는 단검을 휘두르며 적을 제압했고, 춤을 추는듯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몸놀림이 혼자의 몸으로 3명이나 되는 적을 때려 눕히고 있었다. 황태녀도 사령관도 아닌 그저 평범한 28세 특전사의 위용이었다.
"이런 간나 새끼!"
그러다 중공군 하나가 본색을 드러내 도끼로 은서의 뒤를 노린다. 하지만 괜찮다. 은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은서의 곁에는 특공연대 장병들이 있었고 친위대 경호실 김진혁도 있었다. 진혁은 평시에도 전시에도 은서를 지키는 최고의 보디가드였다.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적군의 팔을 붙잡고 엎어치기로 제압해버리는 그의 모습에서 멋진 남자의 구슬땀이 흘렀다. 자신의 남자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버지가 사윗감으로 붙여준 28세의 또래 남자. 고자인듯 고자아닌 무심한 새끼.
아무튼 김진혁이 말했다.
"이 녀석 방금 우리말을 썼군요. 역시···."
"그래, 중국인이 아니었어."
제압당한 중공군에게 은서가 군홧발로 짓밟으며 협박조로 말했다.
"너 방금 우리말 썼지?"
놈은 다시 중국어를 쓰기 시작했다.
"一个女人要上战场了! 你的肝肿了!"
남자의 어설픈 중국어에 은서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발음도 엉망이고 뜻도 이상하고. 중국인 흉내를 낼 거면 제대로 냈어야지."
"......?!"
"내가 취미가 공부라서말야."
"不! 我是中国人!"
어설픈 솜씨로 자신이 중국인임을 강조하는 적군에게 은서는 총을 겨누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笨蛋"
(뻔딴)
바보, 멍청이, 얼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