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45화 (45/131)

〈 45화 〉 Ep5. 숙청의 밤 (10)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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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덥다···."

사격이 끝나고 사령부로 돌아가는 시골길 오후의 리무진이었다.

뒷자리에 드러누워 진혁의 무릎 베게를 받고 있는 한복차림의 미소녀는 공주로서의 체통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

이 남자 김진혁. 부채질을 해주는 얼굴에 긴강감이 한가득이다. 또래 여자아이가 자기 무릎에 누워서 페로몬이 섞인 땀내를 풍기는 모습에 남자만이 알 수 있는 긴장감이 일어서고 있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어떻게든 위기를 잠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와 여자간에 아주 몹시 '곤란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진혁은 마음 속으로 조용히 대한제국의 애국가를 불렀다. 여섯살 어린애도 따라부를 수 있는 쉽고 경쾌한 노래, 일제강점기 시절엔 '독립군가'라는 이름으로 광복군과 망명정부 인사들이 불렀고, 독립운동에서 정통성을 찾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국가의 공식 노래로 인정한 애국자들의 노래였다.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 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애국가에선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거냐며 항전의 의지를 부르짖는데, 진혁의 눈앞에 누워있는 28세의 여자는 항전의 의지마저 꺾어버릴 강력한 위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고, 공주님··· 이제 슬슬 체통을 지키심이···."

"아 왜~ 더워. 힘들단 말야."

"저, 그···."

"어째 표정이 안좋다? 어디 아파?"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이후로도 은서는 며칠간 계속 부대 순시를 다녔다. 5성장군 이은서, 황태녀 이은서가 서북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대를 기습 방문한다는 소식이 퍼져 일선 부대장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지만 은서가 이런 명령을 내려버려 쉽사리 병사들을 동원할 수도 없었다.

<쓰잘데기 없는 부대정비로 장병들을 힘들게 하면 황태녀로서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음. 훈련 기간엔 훈련만 집중하고 훈련 뒤에는 장병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할 것.>

그렇게 엄포를 놓고서 은서는 사격장에 방문했다. 이번엔 더 크고 넓은 사격장이다. 포병부대가 포탄 사격을 하는 곳으로 야산 전체를 깎아 풀한포기 남기지 않은 민둥산이었다. 이곳엔 과거 경친왕 때 처럼 무수히 많은 견인포들이 사격 준비를 마친 채 은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서의 트라우마를 익히 알고 있던 진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포탄소리가 클겁니다. 예전처럼 월남전의 충격이 떠오르시면···."

"다 방법이 있지."

그렇게 말하며 은서는 포병대를 등지고 서서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곤 큰 소리로 말했다.

"현재 시간 17시 30분. 서북방위사령관 이은서의 이름으로 명한다! 전 포대 사격 준비!"

[사격 준비 완료!]

무전기로 모든 포대의 보고가 올라오자 은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포탄 소리? 방법이 있지.

"귀마개!"

"예, 공주님."

은서는 조심스럽게 귀마개를 받아 양 귀에 끼웠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의 바다. 조심스레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계가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큰 소리로 외친다.

"전 포대 사격 개시!"

[사격 개시!]

70문에 달하는 야포 집단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깎아내린 거대한 민둥산에 우뢰와 같은 충격이 내리고 불바다가 대지를 휘감는다. 그 모습을 방송사 카메라들이 최적의 각도로 찍어내 뉴스로 만들고 있었다.

대한제국 황태녀 이은서가 당당히 포병대를 지휘하는 모습. 모든 이북지역 주민들이 뉴스로 접하게 될 터였다.

***

그 시각, 평양 인근의 골프장엔 3명의 장군이 모여 골프를 치고 있었다.

"나이스샷~!"

중년 남성의 환한 박수소리가 골프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역시 부사령관님이십니다! 하하하!"

서북방위사령부 참모장의 아부에 부사령관 최형욱 중장이 기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오랫만에 한 번 올라갔구만! 하하하!"

골프가 끝난 뒤에는 조촐한 회식이 있었다. 한식집 VIP룸에 도착한 부사령관 최형욱 중장 앞엔 많은 손님들이 비밀리에 초대되어 있었다. 각 군단장들 그 밑으로 사단장까지. 30명이 넘는 장군들이 벌이는 한식집 VIP룸의 은밀한 회식이 그를 즐겁게 했다.

"모두 와주었구만! 미행이나 수상한 자는 없었겠지?"

"예! 장군!"

"자, 모두 건배!"

"건배!"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소주가 오늘 따라 맛있었다. 사령관 이은서를 뺀 모든 장군들이 모인 자리. 참모장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황태녀 전하께서 오늘 포병 사격을 참관하셨답니다."

"월남에서 트라우마가 있을텐데?"

"극복을 하셨는지 지난번 사격 훈련도 그렇고 이번에도···."

"흐음··· 그럴리가 없을텐데?"

장성들의 표정에 어째 긴장감이 묻어난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참모장이 계속 말했다.

"이북지역 민심도 그렇고 장병들의 마음도 빠르게 전하쪽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특히 매번 순시를 나갈 때마다 바베큐 파티를 벌이시는 바람에···."

"하다 안되니 돈으로 장병들을 매수한다 이거지?"

최형욱 중장이 쓰디쓴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켰다. 1군단장이 자리에 일어나 외쳤다.

"서북방위사령부는 경친왕 전하의 것입니다!"

2군단장도 일어나 말했다.

"맞습니다! 이대로 황태녀가 장악하게 둘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형욱 중장이 제지하여 말했다.

"그것 뿐인가?"

"부사령관 각하!"

빈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비장한 각오를 담아 말하는 최형욱의 선언. 그들의 각오와 의지가 한식집의 은밀한 VIP룸을 울린다.

"우리에겐 더 큰 대의가 있네! 일제강점기 시절 과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전쟁의 공을 모조리 부정당한 진짜 영웅! 그분의 명예를 세워주는 것이 우리의 진짜 대의 아니겠나?"

그러자 참모장이 일어나 말했다. 술잔을 가득 따라 치켜올리며.

"한국전쟁의 진정한 영웅! 백선경 장군님과 경친왕 전하를 위하여!"

"위하여!"

모든 장군이 일어나 술잔을 들으며 호응했다. 오로지 단 한명. 꿋꿋이 자리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는 7군단장 구남철 중장만이 그들의 의지와 대응에 호응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부사령관 최형욱 중장이 말했다.

"7군단장! 자네는 왜 일어나지 않는거지?"

구남철이 말했다.

"단순한 골프 모임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황제가 경친왕을 죽였어! 그분을 모시던 충신으로서 우린 복수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데?"

"우리가 충성하던 건 경친왕이 아니라 조국. 대한제국이었습니다."

그러자 최형욱 중장이 하찮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의 조국이 대한제국이었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자네 아버지가 친일파였던 걸 알고 알고있네. 일제강점기 시절 순사로 근무하셨다지?"

"그건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전 그저 이 나라 대한제국의 충직한 군인으로 국가에 충성할 뿐이지요."

"욕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부사령관님."

"복수를 해주겠단 거야. 같은 적을 둔 사람으로서."

'복수'. 그 소리에 구남철 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어떤 복수입니까?"

"부당한 인사처우로 고생한 자네와 자네의 동지들을 위해 복수해주겠다는 거지."

"똑바로 말하십시오. 최형욱 중장."

최형욱 중장이 구남철 중장의 잔에 술을 따르며 차분한 미소로 말했다.

"대한제국 황제 이연은 황태자 시절 대한제국군의 창군을 주도한 사람이지. 그 과정에서 미국 육사 출신들이 들어왔고, 중일전쟁에서 장제스와 함께한 자들이 들어왔으며, 망명 정부의 독립군들이 함께했지. 그 과정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네도 알거야."

"일본 육사 출신과 만주군 출신···."

"그래, 민족반역자다. 친일파다. 그런식으로 욕먹던 자들이 조국의 부름을 받았네. 용서해주겠다고. 함께 싸워 북한군을 무찌르자고. 그래서 그들은 한국전쟁에서 용맹히 싸웠네."

"그 중엔 백선경 장군님도 계셨지요."

"그래, 평양 전투에서 경친왕 전하와 함께 이름을 날린 명장. 장병들 앞에 서서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쏘라'며 독려했던 진정한 참군인. 그분이 지금 뭘 하고 계신지 아는가?"

구남철 중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언론에 1초도 나오지 않는 친일파 출신의 한국전쟁의 영웅. 군부 내에서 언급조차 금지되어 있는 그 남자의 현재.

"50대 밖에 안된 한국전쟁의 영웅이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고 계시네. 친일파라는 이유로 민족반역자로 낙인 찍혀 취업도 못하고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부들부들 손을 떠는 최형욱 중장에게 구남철 중장이 말했다.

"그분은 친일파입니다. 민족을 배신한 자가 어찌 영웅으로···."

"용서해주겠다 했어!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우라고! 그래서 공을 세우셨지! 그런데··· 1960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토사구팽 해버렸어. 그놈의 황제가!"

"......"

최형욱 중장이 하찮은 비웃음을 날리며 방이 걸린 태극기를 노려본다. 대한제국의 태극기. 그것의 주인 대한제국 황제 이연을 향한 경멸스런 웃음.

"영웅들을 위한 나라라고? 한국전의 영웅을 민족반역자로 몰아 숙청한 놈이 지 잘났다 떵떵거리는데 이게 나라인가?"

구남철 중장을 향해 말했다.

"미국 육사 나온 사람도 영웅이 됐고, 장제스와 함께 싸운 군인도 영웅이 됐어. 만주와 태평양에서 독립군으로 싸운 자들도 영웅으로 대접받는 나라야. 하지만 그 자리에 백선경 장군님은 어디에 계시나?"

"......"

"자네가 말해보게. 아버지가 친일파였지? 꼴에 정의랍시고 연좌제만큼은 안했던 웃기는 새끼. 그 새끼가 경친왕 전하를 죽였고, 백선경 장군님을 거지꼴로 만들어놓고, 그래놓고 28세 밖에 안된 자기 딸을 서북방위사령관으로 앉혀놨는데 자넨 그런 새끼한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나?"

최형욱 중장이 술잔을 치켜세워 모두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그런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나?!"

"없습니다!"

구남철을 제외한 2명의 군단장, 12명의 사단장. 당장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현역 육군 전투 병력을 이끌 수 있는 모든 장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영웅을 위하여!"

최형욱 중장도 외친다.

"진정한 영웅을 위하여."

구남철 중장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었다.

"영웅을··· 위하여···."

서북방위사령부의 부사령관과 참모장, 3명의 군단장, 12명의 사단장. 현역 육군 전투부대 27만명을 지휘하는 장군들이 반역을 결행하는 순간이었다.

***

그 시각 덕수궁 석조전에선 장성들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황제 이연의 주도로 국방대신 김신, 합동참모의장, 육군 참모총장, 해군 참모총장, 공군 참모총장을 비롯하여 친위대장 차지연과 동북지역 두만강을 지키는 제2야전군 사령관까지 호출되어 이 나라 대한제국에서 별 4개 이상을 달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이화가 무거운 마음으로 모두에게 보고를 올렸다.

"방금 보안사에서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서북방위사령부 휘하 반역자들의 명단입니다."

장성들에게 보고서가 한부씩 전달됐다. 그곳에 적혀있는 수 많은 장군들의 이름이 눈에 보이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럴수가!"

국방대신 김신이 경악한다.

"서북방위사령부 휘하 모든 보병부대 사단장과 군단장이 반역자란 말인가? 총 병력만 27만···."

육군참모총장도 경악을 금지 못했다.

"공군과 해병대, 지역 예비대까지 긁어모아도 12만 밖에 안됩니다! 이들을 당해낼수가···."

이화가 말했다.

"그들 12만 명은 전시가 아니면 서북지역에 동원하기 어려운 예비 병력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연이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경친왕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이었구만."

"황태녀 전하가 위험하지 않을까요?"

"내가 그래서 친위대를 보냈잖나?"

"하지만 고작 300명입니다."

"놈들도 병력이 27만이지만 압록강에 집중되어 있어 빼오기 어려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반란군 이래봐야 훈련 기간동안 평양까지 내려온 일부지."

"하오나···."

"숙청의 밤. 진행시켜."

***

그 날 저녁이었다. 1973년 7월 19일. 부사령관 휘하로 모든 장성들이 여전히 같은 장소, 한식집의 VIP룸에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 유일하게 없는 인물. 7군단장 구남철 중장의 빈자리를 보며 부사령관 최형욱이 말했다.

"우린 오늘 밤. 영웅이 되거나 민족의 반역자로 죽게 되겠지."

참모장이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훈련이란 명목으로 내려갔던 12개 보병연대와 1개의 공수여단. 그리고 3개의 기갑연대가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다만 걱정되는게···."

"뭐가 말인가?"

"보안사령부 말입니다. 저희들의 행동을 눈치채지 않았을까요?"

"눈치채지 못할거야. 3시간 정도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건지···."

"우리가 동원한 병력은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작계3015 대비 훈련으로 포장되어있어. 그게 누구 허락이었을 거 같아?"

"서북방위사령관 이은서 원수···."

"그래, 그 멍청한 띨띨이 년이 지를 상대로 한 쿠데타 계획서인 줄도 모르고 내 말에 속아 싸인을 했지."

"하오나···."

"3시간이면 돼. 황태녀만 인질로 잡으면 게임 끝이야. 그걸로 황제와 협상해서 잃어버린 영웅들의 명예를 되찾는다."

"하지만 김훈 중령이 친위대를 끌고 황태녀를 지키는 것으로 압니다. 300명 밖에 안되긴 해도 워낙에 정예 병력들이라···."

최형욱 중장이 썩어빠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잊었나본데. 김훈 중령 말이야. 친위대 되기 전에 어디 있었나?"

"김훈 중령이라면 월남 이후로 소령 시절 내내··· 설마!?"

"그래, 평양에서 경친왕 전하 밑에 있었거든. 친위대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편이었단 말일세."

그 시각 은서는 야밤의 숲속 길에서 리무진을 타고 가고 있었다. 부대 시찰이 끝나고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곁에는 경친왕의 옛 부하였던 김훈 중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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