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Ep4. 덕수궁 비서실장 (9)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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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라고 있는 두 녀석이 서로 싸우다 집을 나갔지. 한 명은 경찰이었고 한 명은 학생이었는디··· 둘 다 나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5년 째 돌아오지를 않어>
어느 날. 월남의 19번도로를 돌아다니던 은서에게 건넨 할머니의 말. 그 날의 진실.
“그 할머니의 둘째 아들을 죽인건 저였어요.”
은서는 월남에서 있었던 마지막 이야기. 그 날의 행동을 고백했다. 대민지원을 가장해 19번 도로를 정찰다니던 날들. 결코 순수하지 않았던 그 날의 봉사.
갑작스러운 살인 고백에 한독당 온건파 의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동생은 군인이었습니까? 민간인이었습니까?”
“군인이었고, 동시에 민간인이었어요.”
“군인이면서 민간인이라니?”
“월남전은 게릴라전이었어요. 비정규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아요. 전투도 평범한 마을이나 도시에서 벌어지는게 일상 다반사였죠.”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다시 말해서. 밭을 가는 평범한 농민이 게릴라군일 수도 있고, 사이공의 길거리에서 군인과 하하호호 떠드는 아름다운 여인이 게릴라군일 수도 있다. 이런 판에 민간인과 게릴라군을 구분해내야 하고 그들을 체포해서 전쟁에 이기는 게 목표였다는 거죠.”
“그렇다는건···.”
“베트남인으로 위장해서 현지 주민 사이로 침투. 숨어있는 게릴라군을 찾아내는 임무를 자주 했어요. 문화랑 언어를 공부해놔서 아니까. 저만 할 수 있는 임무였는데···.”
“그 과정에서 할머니라는 분의 둘째 아드님이···.”
“제가 죽인 적군 중 서른 두 번째에 해당하는 아이였죠.”
“서른두번째···?”
은서가 나지막이 눈물섞인 웃음을 지으며 한독당 온건파 의원에게 말했다.
“저는 제가 죽인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순서를 기억하니까.”
“......”
“저보다 세 살 어린 남자아이였거든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노력했고, 공부도 잘하는 착한 아이였는데.”
“그랬던 그가···.”
“베트콩이었죠. 제가 찾아다니던 게릴라군.”
은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 섞인 한숨을 쉬었다.
“저를 누나라 부르며 살려달라 했어요. 내가 착각했겠지. 얘가 그럴리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안아주려고 했는데 품 속에서 폭탄이 보였어요. 배신감에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총을 꺼냈는데 그걸로 녀석의 머리를···.”
“......”
“머리에 구멍이···.”
은서의 고백을 듣던 신민당 의원이 담담하게 물었다.
“후회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은서는 떠올려버렸다. 그 이후 할머니께 했던 자신의 대답.
<한 때는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말을 쓰던 사람들이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고··· 우리 나라도 그랬는데···.>
뻔뻔한 거짓말. 자기가 죽여놓고 마치 동족상잔의 비극 때문에 죽은거 아니겠냐는 마냥. 그렇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거짓말을 했던 자신.
"할머니께 진실을 고백하고 오지 않은게 후회돼요. 내가 죽였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
은서의 고백에 한독당 강경파 의원이 말했다.
"힘들었겠구만. 기래도 전장에서 무기를 들었으면 모두 군인이디요. 공주님이 죽이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릅네다."
은서는 허무히 웃으며 말했다.
“그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그 때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더 많은 아군 병사가 희생됐을거야. 나는 우리 군인들을 살렸어. 그러니 죄책감 가질 필요 없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단 말을 못한거 같아요···.”
“그 생각은 틀리디 않을 겁네다.”
은서가 떨리는 동공으로 말했다.
"저요. 거기서 고문도 해봤어요."
<"흑흑··· 씨발새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왜그래~ 우리 즐거웠잖아.>
특수부대로 잠입한 북한 여군을 고문해놓고 능청맞게 연기하던 자신. 땅속에 파뭍어 얼굴만 드러내게 해놓고 그대로 버리고 간 자신.
“후회하지 않아, 내가 거기서 녀석을 고문하지 않았다면, 19번 도로의 방해전파에 관한 정보도 못 얻었을테고, 그랬다면 더 많은 아군 병사가 희생됐겠지. 그래서 저는 그 때도 지금도 그 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아요.”
“......”
“고문하길 잘했다고···.”
떨리던 동공이 멈췄다. 3초간 숨이 멎는다.
“이런 제가 어떻게 보이나요? 살인귀? 악마? 아니면 19번 도로 전투의 영웅?”
공주의 물음에 의원들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표정에선 제각각 다양한 모습이 보였지만 그것 조차도 조심스러워 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여러분들께 묻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달리고 있어요. 철로엔 사람들이 발이 걸려 못 빠져나오고 있는데요. 그대로 달리면 5명이 죽을 거예요. 하지만 진로를 바꾸면 5명을 살리는 대신 공사중이던 인부 1명이 죽죠.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하실건가요?”
그 말에 한독당 강경파 의원이 말했다.
“변경해야디요. 5명이 죽는 것보다 1명이 죽는 게 낫디 않갔습네까?”
한독당 온건파 의원은 다른 주장을 했다.
“1명은 죽지 않아도 될 운명이었는데, 절 더러 그를 죽이란겁니까? 5명이 죽는건 사고지만, 1명의 죽음은 내가 저지른 살인이지요.”
둘의 상반된 대답에 은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답은 상관 없어요. 중요한 건 하나. 그 상황에 놓인 모두가 불쌍하단거죠. 똑같아요. 전쟁터에서 누굴 죽이고 말고, 고문하고 말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건데.
그런 빌어먹을 선택지를 던져 준 전쟁 자체가 나쁜건데. 착하고 나쁘고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는데···.”
은서는 눈물을 흘렸다. 죄책감과 분노, 슬픔 등이 복잡하게 얽힌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며 나지막이 말했다.
“전쟁은 이런거라구요. 답이 없는, 답을 고르고 싶지 않은 질문을 던져줘놓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개새끼로 만들어버리는 병신 같은 질문이죠. 이건 그냥... 비극이잖아···.”
그리곤 책상에 엎드려 흐느꼈다.
“전쟁 자체가 나쁜거잖아···.”
***
하원 운영위원회가 10분간 휴식에 들어갔다. 공주님이 더 이상 뭔가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화가 하염없이 등을 두드려주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렇게 위로해주고 나서야 은서는 정신을 차려 다시 회의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그럼 다시 회의를···.”
위원장의 말을 끊더니 은서가 말했다.
“제가 왜 싸운거 같나요?”
“......”
의원들 누구도 거기에 답을 주지 못했다.
“질문이 잘못된 거 같네요. 저를 포함해서 대한제국 장병 전체가 월남에서 싸운 이유. 뭐라고 보시나요?”
한독당 강경파 의원이 말했다.
“자유 월남을 지키기 위해서디요.”
“그렇죠. 자유.”
은서는 폭풍처럼 지나갔던 10분간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큰 숨을 내쉬곤 말했다.
“자유 월남은 망할 거예요. 늦으면 10년. 빠르면 2년 정도 안에.”
그 말에 신민당 의원이 놀라 물었다.
"월남 정부를 위해 싸우고 오신 공주님이십니다. 근데 망한다뇨? 전우분들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발로 뛰었기에 확신할 수 있는거에요. 월남 정부는 망할 거예요. 월남전은 당장은 휴전으로 끝났지만, 머지 않아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날 거라 확신합니다.”
“어째서 그리 보십니까?”
“월남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으니까.”
은서의 머리 속에 장갑차가 지나갔다. 월남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남베트남군의 장갑차. 그것은 순전히 머리속에서만 이루어진 상상이었지만, 상상의 기반은 그동안 보아온 신문이나 잡지, 그곳의 사람들로부터 들은 다양한 이야기에 기반되어 있었다.
“1960년부터 1967년까지만 따져도 군인들의 쿠데타가 10회나 반복된 나라에요. 63년 11월엔 대통령이 군인들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죠.
10회! 상상이 돼요? 1년에 한번씩 반란이 터져도 7번인데 그걸 넘어 10회에요. 정치가 그렇게 혼란에 빠진 사이 고위 공직자들은 재산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질렀죠.
돈만 찔러주면 뭐든지 가능한 나라인데 간첩을 어떻게 잡을거에요? 간첩이 뇌물 주면 어떡할건데? 나라가 이 지경이 되니 망하는 것도 순식간이겠죠.”
“공주님!”
한독당 강경파가 외쳤다. 그러자 은서는 더욱 단호하게 외쳤다.
"정부가 신의를 잃은거에요! 쿠데타가 한 번으로 끝나면 혁명이 되겠죠. 두 번이 되면 혁명의 배신자를 처단했다는 멋진 이유를 댈거에요. 근데 세번 째는 뭐라고 변명할거죠?
투표를 하든, 나라를 지키든, 뉴스를 쓰던간에 군인들이 밥먹듯이 법을 무시하고, 자기들 멋대로 나라를 뒤엎는데 누구를 위해 충성해야하고 누굴 위해 애국을 해야하는건가요?
고위공직자들은 법을 밥먹듯이 어겨가며 자기 배만 채우는데, 그걸 바라볼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눈에 보이는 간첩이 나쁠까요? 아니면 한자리 차지하고 떵떵거리는 부패공직자가 나빠보일까요?
둘 다 그놈이 그놈이겠구나 하겠죠. 그런 나라에서 뭘 위해 반공을 해야하고, 뭘 위해 법을 지켜야하죠? 어차피 법 따위 의미 없어진 나라인데.”
은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금 눈물을 지었다. 하지만 이번엔 있는 힘껏 꾹 참아내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은서가 말했다.
“목숨 걸고 지켜준 동맹국이 망해가는걸 보니 가슴이 아파요. 이럴거면 내가 뭐하러 싸웠나? 거기서 죽어간 내 부하 11명은 뭘 위해 죽은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고 말죠.
하지만, 필연적인 일이라면 교훈이라도 얻고 가죠. 월남이 패망하면 우린 거기서 뭘 배울건가요? 빨갱이 잘 잡자? 자나 깨나 간첩조심? 간첩 신고는 111?”
은서는 생각했다. 그리고 가슴팍에 달려있는 훈장.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황금색 대훈위 금척대수장을 떼어 책상에 던지듯 쾅 내려놓으며 외쳤다.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으로서. 황제가 되기 위해 황태녀 자리를 노리는 공주가 던지는 각오.
“법치주의(法治主義)!"
은서는 그렇게 말하며 의원들을 노려보았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인정하고 따를 수 있는 룰. 그 룰대로 돌아가는 공정한 사회. 공직자는 부패를 저지르지 않고, 군인은 국가 밖의 적만 바라보며, 국내의 문제는 온전히 법대로 해결하는 나라.
민의에 따라 공정하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며 상호간의 신뢰를 이어가는 성숙한 민주사회, 조국을 노리는 간첩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내어주지 않는 굳건하고 신뢰 받는 법치 위의 건강한 정부.”
은서가 희망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게 룰대로 돌아가는 나라. 우린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죠.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 아닌가요? 저희가 월남에 파병되며 부르짖었던 자유란 바로 그 자유가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우리라도 그렇게 해야죠.”
은서의 말을 들으며 멀찌감치 앉아 있던 이화가 미소를 지었다.
‘책 속엔 답이 없다고 했는데 왠걸, 답이 있었나보네.’
공주님이 방에 틀어박혀 수라상까지 걸러가며 읽으셨던 책. 민주주의에 대한 서적들, 법치주의를 설명하는 전공 서적, 월남의 60년대 사회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서방 외신의 기고문. 거기에 자신이 월남에서 눈으로 보고 들었던 참상까지. 그 모든걸 머리속에 쓸어담듯 외워버린 그녀가 의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랑 거래를 하시죠. 어차피 경친왕 전하는 반역죄, 그분의 아들인 수성군 이환은 살인혐의. 황위 계승권이 붕 떠버린 상황에서 독재자 아버지의 뒤를 이을 사람은 저밖에 안 남았거든요.
계승법을 변경해서 제가 황태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지금까지 설명드린 제 마음속 상처들을 잊지 않은 채 영원히 간직할게요.
황제가 되면 직접 통치도 하겠죠. 하지만 그 때마다 마음속 상처를 돌아볼게요. 내가 잘못하면 이 상처를 돌아보며 내가 초심을 잃었구나. 그렇게 후회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겠죠.
그걸로 성군이 될게요.
법치국가 대한제국을 만들 성군으로. 군부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대한제국으로. 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고 평화속에 번영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나라로. 모든게 룰대로 돌아가는 사회.
제가 만들어서 여러분들께 돌려줄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독재권력의 힘으로 황태녀가 되고 싶지 않아요. 민의의 대표자인 여러분이 직접 해주시면 안될까요?”
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탁드릴게요.”
그걸로 회의는 끝났다. 그로부터 몇 일간 각 당의 수뇌부들이 깊은 고심의 회의를 이어갔고, 3일 뒤 국회 하원 본회의에서 조선황실법 개정안이 표결에 붙여진다.
은서의 요청과 국회 하원의장의 수락으로 이루어진 비밀 투표에서 나온 결과는 찬성 157표, 반대 40표, 기권 103표였다.
이렇게 통과된 법안은 상원 본회의에 붙여졌고, 독립운동가 출신의 명예직 귀족들로 구성된 그곳은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에 반대하지 않는 것이 관례. 그래서 조선황실법 개정안은 무사히 개정될 수 있었다.
이로서 은서는 황위계승서열 1위에 오르며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계승자가 되었다. 역대 공주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여인이었다.
취재진들이 몰려있는 중앙청의 입구 계단.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은서는 종이 한 장을 찢어버렸다. 한지에 휘갈겨 쓴 공주의 붓글씨. 거기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大韓帝國 鐵血公主 李銀誓
대한제국 철혈공주 이은서
자신을 ‘철혈공주’로 부르지 말아달라던 공약 같은 부탁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황태녀에겐 봉작명이 붙지 않으니까.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별명에서 따왔다는 조선 공주의 작위는 이렇게 폐기되었다. 참 부끄럽고 엽기적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몰랐을거다. 철혈공주란 괴상한 네이밍 센스의 주인공은 은서의 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이름을 오래전에 추천한 장본인.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 공주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짓는 그녀의 혼잣말.
‘사실 그 이름은 프랑스 유학 시절에 지은 거에요. 딸이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다는데 봉작명을 추천해달라는거야.
편지에 답장을 해야하는데 떠오르는게 없어서 대충 책을 뒤져보며 적었거든요. 설마 이걸 하시겠어? 그런 마음에 장난으로 적었는데 진짜 그걸 고르실 줄은 몰랐지.
이건 평생 비밀로 할거에요. 작위명이 이런식으로 지어졌다는 게 알려지면 국가 망신이거든요.’
하지만 그녀도 몰랐다. 그 편지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있다는 걸. 동시기 그녀가 추천한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철혈, 토끼, 얼음, 불꽃. 그리고 이화. 마지막 단어는 Victoria Choi(빅토리아 최)가 중앙정보부 해외 파트에 들어가서 하사받은 코드네임이 된다.
Ep.5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