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22화 (22/131)

〈 22화 〉 Ep3. 애국자들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1973년 3월 5일.

덕수궁에 도착한 아침 신문엔 이은서 대위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었다.

<독립투사 유관순의 정신을 이어받은 조선 여인의 기개! 월남전에서 대활약! - 독립신문>

<북괴를 때려잡은 19번 도로 전투의 영웅! 대한제국 특전사 이은서 대위! - 제국신문>

<월남의 영웅 채명진 장군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이은서 대위! - 황성신문>

낯뜨거운 아부성 기사에 은서가 얼굴을 붉히며 자기 방에 신문지를 집어던졌다.

“김재필!!!”

은서는 중앙정보부장의 이름을 외쳤다. 덕수궁이 아니라 남산에서 근무하므로 들을 턱이 없지만.

“첩보조직을 운영한다는 새끼가 구질구질하게 여론 조작을 해? 신문지 1면기사까지 아주그냥 제멋대로잖아!”

은서의 말에 진혁이 물었다.

“여론 조작이 아닐수도 있지 않습니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보지만 은서는 콧방귀도 끼지 않는다.

“아주 지랄을 하세요. 여기 실린 사진들 다 우리 부대원이 찍었던거거든? 기자들이라곤 머리털도 안보였는데 이걸 걔네들이 구해서 찍었다고? 딱 봐도 중정에서 제공해줬구만!”

진혁은 바닥에 떨어진 신문을 주워 은서에게 보이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거짓말은 하나도 없네요. 보세요. 19번도로 전투에서 활약한 것도 공주님의 활약이구요.”

그리곤 다른 신문지를 하나 더 주워 읽어본다. 19번 도로 전투중 가장 치열했던 670고지 전투의 사상자가 150명으로 적혀져 있었다.

“여기도 보세요. 670고지 전투 사상자도 사실 그대로잖습니까? '이은서 대위가 통신방해를 해결해주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 커졌을 수도 있다.' 여기에 거짓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안하면 여론조작도 상관없다?”

“조작이 아니죠. 그동안 막혀있던 기사들을 풀어준것 뿐. 그렇게 이해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은서는 숨을 씩씩 거리며 말했다.

“어쨌든, 조작 맞네 뭐.”

“그래도 충분히 1면감입니다. 대한제국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 특전사. 이은서 대위의 영웅적인 활약상이니까요.”

진혁은 활짝 웃으며 은서의 얼굴이 찍혀있는 신문지를 펼쳐보였다.

“보안상 이유로 막혀있었을뿐. 마땅히 칭찬받고 박수받고 환호받았어야할 일이죠. 공주님이 받으신 그 훈장들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더욱.”

“......”

“이제 저랑 데이트 해주시겠습니까?”

“안한다니까 고자야.”

“에헤이, 고자라 하지 마시고.”

“저리가.”

“공주님~”

“아우! 징그럽게 왜 이래?”

그렇게 이은서 대위가 찍힌 신문지를 들고 1시간이나 쫓아다닌 끝에 진혁은 가까스로 데이트를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진혁은 여자랑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28년차 모태솔로였으니까.

함께 덕수궁을 도란도란 거닐고 그러다 서울시내를 산책하며 그냥 산책하고 또 산책하고···.

“......”

손을 잡기엔 좀 낮뜨거우니까. 그냥 그렇게 각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사복차림으로 걸어다니는 게 둘이 하는 데이트의 모든것이었다. 참다 못한 은서가 말했다.

“야이 빙구야! 이게 데이트냐? 산책이지!”

“그, 그게···.”

“아니, 뭐라 말을 좀 해봐! 재미있는 이야기라던가 개인적인 이야기라던가. 사내 자식이 뭐 이렇게 소심하냐?”

“......”

모태솔로 인생 최초의 데이트. 그것도 대한제국의 공주님과 하는 데이트가 가슴설레이지 않으면 거짓말이었다.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게 너무도 어려워 진혁은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런 모습이 눈에 훤히 보여 은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고, 영화나 보러 가자.”

“영화요?”

“나라고 데이트하는 법을 알겠니? 공주인데. 뭐 영화보고 다방가서 커피 마시고. 그런게 데이트겠지 뭐.”

그렇게 두 사람은 종로거리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과거 이 동네엔 우미관이라고 해서 유명한 영화관이 있었지만 59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화신백화점 근처에 같은 이름의 영화관이 생겼기는 하지만 글쎄··· 딱히 시설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여기가 낫겠지?”

“일단 가까우니까요. 종로 거리의 영화관이라면 친위대도 경호가 쉬울겁니다.”

“경호원이 있어?”

은서는 깜짝놀라는 투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범한 차림의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70년대 서울의 종로 거리. 친위대라곤 털끝 만큼도 안보이는 그곳에서 진혁은 능숙하게 자신의 부하들을 찾아냈다.

“저기 술집 앞에서 자전거를 만지고 있는 청년이 예전의 제 부하였습니다. 지금은 경호실에서 팀 하나를 꾸리고 있는 기특한 녀석이죠.”

“다른 친위대는?”

“저기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직장인이 보이십니까? 저 녀석이 우리팀 막내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아저씬데?”

“위장은 친위대 경호실의 특기죠. 평범한 길거리 시민으로 위장해서 은밀하게 VIP를 경호하는 것. 저희 주특기입니다 저게.”

그렇게 진혁은 한명 한명씩 경호실 직원들을 찾아 귀 속에 수근거리며 알려줬다.

그 중엔 설레이는 마음으로 꽃 선물을 고르는 청년도 있었고, 예쁘게 꾸민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남자도 있었으며(아마 여자까지 2인조로 친위대원인 모양),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도대체 30대 남성이 어떻게 할아버지 연기를 저렇게 잘하는지 귀로 듣고 눈으로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왜 굳이 위장을 하는거야?”

“경호는 이중으로 해야 안전하니까요. 테러범들이 눈에 보이는 경호병력만 믿고 들이 닥치면, 눈에 보이지 않던 위장 경호원들이 나타나 제압을 하는겁니다.”

“기습 효과를 노리는거구나?”

“그런셈이죠.”

진혁은 말해주지 않았다. 자기가 소개해준 친위대원보다 3배나 되는 인원이 은서 주위에 포진하고 있었다고. 종로거리 전체가 친위대에 장악되어 있다시피 할만큼 이곳은 철저한 안전지대였다. 그걸 아무도 못 알아볼 만큼 친위대의 경호는 감쪽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위장해서 몰래 지켜만보니까 괜찮죠? 부담도 안되시고.”

“그러네, 마음은 놓이는데 부담은 또 안돼. 신기하다. 헤헤···.”

그렇게 두 사람은 우미관에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시절 김두한으로 유명한 우미관과 완전히 다른 장소, 완전히 다른 시설이지만 흘러가는 역사 속에 자신들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는 추억 속의 영화관이다.

둘이 관람한 영화는 1955년작 에덴의 동쪽. 청춘스타 제임스딘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헐리우드 영화였다.

캘리포니아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아론과 칼은 형제이지만 서로 다른 사랑을 받고 자란다. 장남인 아론은 모범생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그렇지 못했던 칼은 외면 속에서 질투심을 품는다.

아버지의 농장을 위기에서 건져보려고 변통해 온 5천달러 때문에 꾸중을 들은 칼은 홧김에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형에게 폭로하는데, 술집의 여주인이 실은 자신들의 어머니였던것. 소심한 성격에 충격 받은 형은 군에 입대해버렸고 1차대전에서 전사한다.

자신이 죽였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동생 칼, 충격에 졸도하여 반신불수의 몸이 되고나서야 둘째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아버지. 둘은 그렇게 아론의 빈자리 속에서 화해를 맺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은서는 특별히 감상평을 내지 않았다. 종로 거리를 말없이 걸으며 두 사람의 데이트는 영화 감상 하나로 끝을 맺었다.

***

대한제국의 국회는 중앙청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로 쓰였던 건물은 해방 후 내각의 정부종합청사로 쓰임과 동시에 국회로 쓰인 것이다.

여의도에 국회의사당 건설이 계획되고는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지고 있어 좁아터진 건물에 국회 상원, 하원이 우겨져있었는데 하원 의원만 300명이었으므로 대단히 좁게 느껴졌다.

대리석으로 장식된 중앙청 로비를 거닐던 한국독립당 하원의원이 말했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중앙청을 써야하는겁니까? 차라리 태평로에 있는 건물을 쓰지 여긴 너무 좁습니다. 어떻게 국회의원이랑 공무원이 한 건물에서 일하는건지 원···.”

그의 불평에 답한 건 11년 전 친위대장으로 일하고 있던 김종규 대장. 현재는 한국독립당의 유력 의원이었다.

“폐하는 국회를 불필요한 존재로 여기고 계시네. 국회의사당을 갖고 싶으면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폐하를 만족시켜야 할거야.”

“허허 참···.”

김종규의 눈에 중앙청은 썩 나쁘지 않았다. 우리 손으로 지은 건물은 아니었어도 이만하면 대한제국의 품격에 손상은 없다 여기고 있었다.

중앙청은 본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제국이 자신들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복궁을 헐어버리고 지은 건축물로, 르네상스 양식에 바로크 양식이 절충된 서양식 건축물이라 동시기 지어진 덕수궁 석조전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거대하니까.

‘일본’이 만든 건물이라는게 민족적 자존심을 계속 건드렸는데 이를 해결코자 중앙청 전면엔 거대한 태극기를 365일 세로형으로 걸어놨고, 메인 로비에도 거대한 태극기를 걸어놔 마치 대한제국이 ‘정복’을 한 것처럼 연출해놨다. 그래서 ‘이만하면 충분하지’라는 게 군인 출신인 김종규의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신문 보셨습니까?”

“아, 이은서 대위에 관한 거 말하나보군.”

“근데 어디서 많이 뵌 것 같지 않습니까?”

김종규가 웃으며 물었다.

“어떤가?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조선 여인의 기개가.”

“제 추측이 맞다면··· 대한제국의 공주님. 맞는지요?”

김종규가 로비 중앙에서서 빙긋 웃은채로 하원의원에게 말했다.

“앞으로 대한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분이네.”

“그럼 역시 공주님이···.”

“그래, 대한제국의 공주님이자 황태녀가 되실 분이지.”

황태녀라는 말에 하원 의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나, 지금 이 나라엔 경친왕 전하가 계십니다. 황위 계승권에서 밀려나면 가만 계시진 않을텐데요.”

“그래서 우리 역할이 중요한거지. 대한제국의 여당이자 친위정당인 우리 한국독립당이 공주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해드리는걸세.”

“당 내에 경친왕 전하를 지지하는 세력도 많습니다.”

“괜찮아. 이범석 장군님의 뒤를 이어 내각총리대신에 오를 사람은 바로 나 김종규니까. 국회는 내 손에 떨어질거야. 제국의 정보 조직도, 의회 조직도, 군부와 행정조직까지. 폐하의 충직한 신하들이 틀어쥔 대한제국일세.”

중앙청의 로비 한 가운데 서있는 김종규의 표정에 자신만만함이 가득해보였다. 대한제국의 행정부와 입법부가 함께 사용하는 중앙청. 이곳은 이제 김종규의 것이된다.

한국독립당이 여당이라면 거기에 반대하는 야당도 국회에 존재한다. 하원 본회의장에 앉아 한숨을 푹푹쉬는 구석탱이의 사람들. 신민당. 황제의 통치를 반대하는 민주주의자들의 연합 정당이었다.

국회 하원의석 300석 중 185석이 황제의 친위정당인 한국독립당의 차지였고, 95석은 신민당. 20석은 무소속이었으니 괴사 직전이나 다름없는 야당 조무래기들의 집합체였다.

국회 하원 본회의장에 앉아있던 신민당 총재 김영현은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김동지. 이거 신문좀 봐봐요. 이 놈들이고 저 놈들이고 죄다 이은서 대위 소식 뿐이에요. 활약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이건 좀 과한거 아닌지 원···.”

영현의 말에 신민당 부총재 김대정이 답했다.

“이은서 대위라···.”

“뭔가를 가릴려고 이러는 거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검열을 때리는건지···.”

“검열이라기보단 그 자체로 사실일 수도 있어요.”

“예?”

부총재 김대정은 담담하게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얼마전 파월 장병들 환송식 때 폐하의 옆자리가 비어있는걸 보셨지요?”

“예, 황후 마마도 돌아가시고 공주님은 아직 신변이 비공개고 그러니까.”

“헌데, 이은서 대위도 환송식 때 안 보였단 말입니다.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특전사로 언제는 유관순 열사의 후예라 떠들어대더니 머리털도 안보였어요.”

“이상하긴 했지요. 별로 공이 없구나 싶었는데.”

“보다시피 엄청난 전공을 세웠지요. 1급 무공훈장까지 받는 수준이면 채명진 장군과 같이 주목을 받았어야 하는데, 몇 일이 지나서야 뒷북을 친거에요.”

“그말인 즉···.”

김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신민당 총재 김영현에게 말했다.

“이은서 대위가 대한제국의 공주님이라고 봐야겠지요. 이제와서 뒷북을 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론에 대대적으로 뿌려지는걸 보면 3월 7일 그날일겁니다.”

“상하원합동연설? 그 날은 황제 폐하의 연설이 아닙니까?”

“깜짝 등장을 시키는거죠.”

“허허 참···.”

영현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김동지, 황제 폐하의 독재 정치는 인기에 기반했었지요?”

“독립운동의 영웅, 한국전쟁의 영웅. 화려한 수식어에 눈이 멀어 민주주의가 사라지는건 보지도 못한 채 수 많은 국민들이 황제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어요.”

“이러다 공주님까지 월남전의 영웅으로 밝혀지면···.”

“다음 선거는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자들이 상대하기에 대한제국 황제 이연은 너무도 거대한 파도였다. 장악된 언론으로 인해 단 한줄도 실리지 못한 채 길거리의 외로운 민주 투쟁을 이어가던 신민당의 의석수는 고작 95석.

무소속 의원들을 설득해 어떻게든 개헌만은 막아보고 있지만, 다음 선거도 패배하면 한국독립당이 전제군주제로 전환하는 개헌안을 발의한들 막을 턱이 없을테다.

대한제국을 입헌군주제로 정의하고 있는 헌법을 뜯어고치는데 필요한 하원 의석수는 200명. 황제의 친위정당인 한국독립당은 현재 185석을 갖고 있다. 독립운동가겸 전쟁영웅인 대한제국 황제의 대중적 지지가 이정도였다.

지금은 1973년 3월 5일. 대한제국 황제 이연이 황위에 오른지 18년 째 되는 해. 연호는 유신(維新,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함)

그래서 73년은 유신 18년이라 불렸다. 낡은 제도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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