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0 대한제국-13화 (13/131)

〈 13화 〉 Ep2. 소년 이야기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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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은서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다.

1962년 은서의 여고시절. 온 세상 나무가 붉게 물들어 감탄을 자아내던 어느 가을 날. 공주라는 신분을 숨긴 채 공부 삼매경에 빠져있던 은서는 옆자리 짝꿍이 하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얘들아! 큰일났어 큰일! 옆 학교에서 자살 소동이 일어났대!"

"옆 학교면 남고 아니니?"

"그러니까! 쬐끄만 남자애 하나가 옥상 난간을 붙잡고 죽을랑 말랑 거린다니까?"

"대체 왜?"

"내가 아는 남자애한테 소문을 들었는데, 그 녀석 초등학교 때부터 쭉 괴롭힘을 당했다는거야."

"어머 진짜? 학교가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바뀔 때마다 계속 왕따가 된거지. 매번 다른 애들한테."

"에휴··· 그 정도면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거 아니니?"

적응이란 말에 은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깜짝 놀란 짝꿍이 은서에게 묻는다.

"어머 미안! 공부하는 데 방해됐구나?"

"그게 아니라. 지금 몇시지?"

"음··· 집에가기 10분 전?"

결심에 선 은서가 짐을 싸며 짝꿍에게 말했다.

"나 먼저 갈게."

"얘! 은서야! 선생님 말씀은 듣고 가야지!"

"대충 둘러대줘!"

책가방을 매고 복도를 뛰어가는 은서에게 신념이 보였다.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신념. 대한제국의 공주로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살아야겠다는 영웅심리가 17세 소녀의 머리를 강박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2년 전 어머니의 유언에서 기인했다.

세상 발랄했던 여중생 시절, 덕수궁의 분수대에서 바나나를 나눠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은서의 기억.

<나도 엄마처럼 멋진 공주님이 될거야!>

<엄마는 공주가 아니라 황후인데~?>

<아무튼~>

어머니가 주는 바나나를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은서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한 마디.

<그럼 우리 공주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래야겠지?>

<응!>

그렇게 말했던 어머니는 수행원의 안내를 따라 어디론가 나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인애황후 서씨는 1960년 5월 16일 새벽 3시. 한강다리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착하게 살라는 흔하디 흔한 말이 어머니의 유언이 되었고 은서의 신념이 되어 여고시절까지 이어졌다.

'지금이 바로 엄마 말을 실천할 기회야!'

남자 학교까지 쳐들어온 은서가 옥상의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엔 한 명의 소년이 난간에 위태롭게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멈춰!”

소년이 고개를 돌려 은서를 바라본다.

“넌 누구야?”

“이화여고 1학년 3반 이은서라고 해! 너를 말리려고 왔어!”

뒤따라온 경호원이 기겁을 하며 뜯어 말려보지만, 어머니의 유언을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소녀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공주님, 안됩니다! 어서 가시죠!"

"아 씨 놔봐! 지금 애가 죽게 생겼는데!"

경호원의 팔을 뿌리치며 은서가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내가 도와줄게!”

그렇게 손을 펴보지만 난간에 서있는 소년은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넌 자존심도 없어? 안 억울해? 죽어 마땅한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네가 죽으려는거야?”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미련했다. 남이 괴롭히면 참고, 심부름 시키면 참고, 때려도 맥아리 없이 ‘하지마’라고 중얼거릴 뿐 결국엔 참고 넘어가버리는 게 이 녀석의 방식이었을테다.

그런 결론에 이르러 은서는 말했다.

“싫으면 싫다. 힘들면 도와달라. 그렇게 말했으면 해결될 문제를 왜 자살로 해결하려는거야? 너 그렇게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어차피··· 죽을건데···.”

“이 멍청아! 여기 11m가 넘는 옥상이야! 이 정도 높이에서 몸을 던질 용기면 살아서 싸우는 게 더 쉽지 않아?”

“가까이 오지마.”

“죽을 용기로 싸워! 사는 것보다 죽는게 더 쉬우면 그걸 배수진 삼아서 싸워! 어차피 죽을거면 이판사판 사생결단으로 싸워보라고! 아쉬울 거 없잖아! 어쩌면 이길 수도 있어!”

그러자 소년이 힘없이 말했다.

“아니, 난 싸울 수 없어. 자살이라는 건 죽을 용기로 하는 게 아니거든. 무서우니까. 싸울 용기가 없으니까. 그래서 하는거야.”

“뭐?”

“미안한데, 네가 한 말은 하나도 도움이 안돼.”

“잠깐만, 멈춰!”

소년은 몸을 던졌다.

비명소리가 학교를 울렸다. 지켜보던 선생님도, 뒤 따라온 경호원도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소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소년의 자살을 막아 착한일을 해보겠다던 은서의 자신감은 산산히 부서진다. 겉잡을 수 없는 공포와 죄책감이 열일곱밖에 안된 소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미안한데, 네가 한 말은 하나도 도움이 안돼>

“내가··· 아무런 도움도 안됐다고?”

그것이 은서의 원죄였다.

***

그로부터 1주일 뒤. 서울의 한 병원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품속에 흑색 리볼버 권총을 지니고 다니는 양복 차림의 남자. 대한제국의 황제 이연이다.

그가 찾아간 1인용 병실엔 얼마 전 자살 소동으로 딸을 곤경에 빠뜨린 소년이 있었다. 나무에 두차례 부딪히며 떨어진 탓에 충격이 반감되었고, 그 덕에 팔다리가 부러지는 정도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몸은 어떠냐?"

이연의 물음에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황제 뒤에 서있던 수행원이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무거워진 병실 분위기 속에 소년이 주눅들어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시다. 어서 대답하거라!”

"됐다."

이연이 수행원을 제지하며 말했다.

“여긴 병실이야. 환자가 갑이고 방문객이 을이어야지.”

그렇게 말하곤 소년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로 말했다.

"내 딸이 폐를 끼쳤구나. 아비된 자로서 대신 사과하마. 보아하니 아직도 많이 아픈거 같은데 편히 있어도 되니 너무 부담갖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폐하···.”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서기만 좋아하고, 주절주절 떠들어대는데 서러웠겠지. 그렇지 않느냐?”

“......”

“녀석은 내가 잔뜩 혼을 내놨으니 당분간 얼씬도 안할게다. 녀석의 잘못은 내가 보상해줄테니 그만 잊어다오.”

그렇게 말하며 이연은 품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낸다.

“이건···.”

“위임장이다.”

“위임장이라 하시면?”

“내가 너의 복수를 대신 해주겠다는 뜻이지.”

소년은 멀뚱멀뚱 황제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복수에 위임장이 왜 필요한거죠?' 라는 의문이 들어있음을 깨달은 이연이 자신의 계획을 다정하게 설명했다.

“너를 괴롭힌 일진들 중엔 국회의원의 아들이 껴있었어. 그는 내 정적이기도 하니 우리 둘은 똑같은 적을 둔 셈이란다.”

“위임장은 어디에 쓰이는 것입니까?”

“황실의 직속 변호사가 너를 대신해 법적대응을 할거다. 노련한 실력으로 법정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어른의 방법으로 녀석들을 혼쭐내겠지. 내가 고른 능력있는 사람이니 믿어도 될거다.”

“폐하께서는 정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괴롭혔던 녀석의 아버지가 폐하의 정적인 것입니까?”

“그래, 너의 복수를 할 겸 나의 싸움도 할거란다. 그는 나쁜 정치인이거든. 학교 교장에 뇌물을 먹여 아들 성적을 챙겼고, 선생조차 설설기게 만들면서 편의란 편의는 다 받아챙겼던데, 네가 자살을 결심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니더냐?”

이연이 소년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또박또박 하는 말.

<싸울 용기가 없으니까>

소년이 소녀에게 했던 말. 소녀의 아버지가 소년에게 돌려주는 말. 이 사건의 중요한 핵심.

‘싸울 용기가 없다.’

이연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어 소년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넌 최선을 다해서 싸웠어. 하지 말라는 말도 해보고, 선생님과 부모님께도 일러보고, 학교 옥상에 올라간 것도 반쯤은 시위 목적이었겠지.

그러다가 내 딸이 나타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움을 청하라느니, 죽을 각오로 싸워보라느니. 그딴 소리를 지껄였으니 얼마나 억울했느냐?”

“폐하···.”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투쟁을 알아주고 인정해준 유일한 남자. 자신에게 위임장을 건네며 복수를 약속하는 남자. 그 남자가 대한제국의 황제였다.

그가 소년에게 선언했다.

“내가 너의 편이 되어주마.”

소년의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폭포수가 되어 이불을 적셨다. 서럽게 터져나오는 눈물은 그동안 마음속에 썩어있던 자신의 원한이었다.

그런 소년을 다정하게 안아주며 이연은 또 다른 선물을 소년에게 말했다.

“학교에서만 그랬던 게 아니었을거다. 아버지는 술에취해 폭력을 휘두르고, 어머니는 집밖으로 나가서 어디 계신지도 모르겠고. 어딜가도 넌 외톨이었겠지.”

소년이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해결해주마. 술에 절어사는 아버지에게 새 삶을 가르쳐주고, 집나간 어머니를 찾아오고. 그렇게 두분을 화해시켜 단란한 가정이 되도록. 내가 최선을 다하마.”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연이 말했다.

“이제, 위임장에 서명을 해주겠느냐?”

“예, 폐하!”

소년의 마음에 결심이 섰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 그걸 참다 못해 도망간 어머니. 파탄난 가정 속 불행했던 학창시절. 그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꿈같은 기회.

소년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황제가 건넨 위임장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김진혁.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을 하사받은 소년의 이름이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이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들었구나. 그럼 네 삶을 내게 바쳐라. 너의 모든걸 컨설팅해줄테니 나의 수족이 되는거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는 뜻 있는 애국자의 길을 알려줄테니 죽을 힘을 다해 봐라. 할 수 있겠느냐?”

이연의 제안에 진혁이 답했다.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소년은 인생에 가장 완벽한 구원을 선물받았다.

하지만 몰랐다.

자신이 서명한 위임장이 대한제국의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에 종말을 고하는 나비효과의 시작점이었음을. 그것은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소년이 이해하기엔 너무도 어려운 정치 문제였다.

국회는 군인들 손에 떨어졌다.

자신의 친위정당으로 선거에서 이긴 대한제국 황제는 친정(親政)을 선포하며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하니 이를 한국식 입헌군주제라 불렀다.

***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1973년 3월 1일. 대한제국의 공주 이은서가 월남전에서 돌아온지 3일이 지난 날이었다.

대한제국 황제 이연은 덕수궁의 서양식 궁전에 자리잡은 고풍스런 집무실에서 담배를 찾으며 중얼거렸다.

“지긋지긋한 단식투쟁···.”

덕수궁 비서실장 이화가 나지막히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영양실조에 걸리실겁니다.”

“이 실장, 자넨 대체 뭐하는거야? 편히 오라고 황실 전용기까지 보냈는데 오자마자 단식투쟁이잖아?”

“송구하오나 폐하. 저는 독신이라 부녀간의 감정 부분은 조언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

그 말에 이연이 담배를 떨구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얼마나 싫다던가?”

“공산당보다 아버지가 더 싫다고···.”

“나에 대한 원망이 그정도인가?”

이화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것 조차 순화된 표현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면 이랬다. 황제 알현을 종용하던 이화에게 수라상을 집어 던지며 대한제국 공주 이은서가 했던 말.

<공산당보다 그 새끼가 더 싫어!>

차마 폐하께 ‘그 새끼’라는 말은 올릴 수가 없었다. 이 말 뒤로 지금까지 수라상을 안 받은건 덤이었다.

“내가 찾아가면 어떨까?”

“......”

“허허 참···.”

덕수궁의 집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이연은 그 뒤로 담배를 두번 더 찾았다.

“진혁아.”

“예, 폐하.”

이연은 11년 전의 소년을 찾는다. 자신이 구하고 컨설팅해서 대한제국 친위대 장교로 만든 엘리트였다. 계급은 대위였다.

“보다시피 이런 상황이다. 과거 일로 껄끄럽겠지만 날 좀 도와다오.”

“무엇이든 하명하십시오. 폐하.”

이연이 비서실장 이화에게 묻는다.

“얘라면 가능하겠지?”

“저처럼 수라상으로 얻어맞진 않을겁니다. 11년전 사건으로 죄책감을 갖고 계시니까요.”

“전직 중정 요원이 수라상으로··· 허허 참···.”

“폐하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십니다.”

“내가 다 미안하구만···.”

이연이 한숨을 쉬며 진혁에게 말했다.

“전담 경호원으로 임명할테니 공주를 설득해보거라. 내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알겠느냐?”

“예, 반드시 모셔오겠습니다.”

공산당보다 더 싫다는 아버지를 ‘공산당보단 덜 싫은’ 아버지로 바꾸는 것. 그렇게 하여 장장 8년동안 얼굴 한번 보지 않은 부녀지간을 화해시키는 것. 진혁이 맡은 임무는 공산당을 잡는 것보다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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