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Ep1. 공주 이야기 (7)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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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장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공세를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어디로 적이 공격해오는지 모르는데, 자칫 잘못하면 아군의 피해가···.”
“안돼. 이 시간에도 월남군이 굶고 있잖나? 하루 빨리 19번 도로를 뚫어주지 않으면 4만명이 궤멸될지도 몰라.”
채명진이 괴로운 표정으로 책상을 붙잡고 말했다.
“지금은 피해를 감수해야 돼···.”
남베트남군의 상황은 채명진이 예상한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월맹군 3군단장 리엔 장군은 고립된 남베트남군을 향해 공세를 펼쳤고, 전투가 지속될 수록 월남군의 보급품이 고갈되어갔다. 전투에서 이겨도 보급품은 소모되고, 패배해도 보급품이 소모되니 월남군은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월남군 2군단장이 직통전화로 채명진 장군을 닥달했다.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의 대화니 통역이 필요했지만, 은서와 함께 베트남어를 공부했던 채명진 장군은 조금이나마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급박한지 말이 빨라 반쯤은 못알아들었지만.
[이보시오 채장군! 총알이 없으면 어떻게 싸우란 게요?]
“......”
알아들은건 총알이라는 단어 뿐이었다. 그것 만으로도 뭔 말을 하고싶은지 충분히 이해했다. 정황만 따져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사태였으니까.
[식수도 식량도 모두 바닥을 보이고 있소. 부탁하오. 19번 도로를 개통해주시오!]
“노력하겠습니다. 조금만 버텨주십시오.”
그 때 전화 너머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어보면 심각한 상황인 거 같았다.
실제론 이런 대화였다.
[각하! 베트콩이!]
[뭬야? 놈들이 여긴 어떻게 온거야? 막으라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무슨 일입니까? 뭐라는겁니까?”
[베트콩이 군단 본부까지 기습한 모양이오. 어떻게든 버텨볼테니 그쪽도···.]
“장군! 장군!”
월맹군의 72년 공세(부활절 공세)가 19번 도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베트남 전역을 통틀어 30만 대군이 남베트남을 향해 밀고 내려왔는데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전차와 장갑차만 700여 대. 1968년 구정공세보다 더 많은 병력이었다.
남베트남군은 서류상으로 75만에 달하는 군대가 있었지만 '서류상'일뿐 부패하고 무능한 군부는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무능한 상관 밑에서 유능한 지휘관이 절망적인 투쟁을 이어갔지만 전쟁은 결국 지휘관들의 머리 싸움이다. 상황이 이러니 75만 vs 30만의 싸움인데도 비등비등한 싸움이 일어나 연합군 최고 사령부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채명진이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19번 도로를 뚫지 못하면 2군단이 궤멸될거야. 그렇게 되면 측면이 뚫려 백호부대는 포위된다. 어떻게든 반드시···.”
참모장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의 공격은 무리수입니다. 아시잖습니까?”
“나도 괴롭네. 하지만 이대로 19번 도로를 내줬다간···.”
참모장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이도 저도 못하는 괴로움이 두 사람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래서 채명진은 무리한 명령인 걸 알면서도 부하들에게 죽음에 가까운 공격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째깍째깍 시계소리만 들리는 지휘통제실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채명진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돌격 앞으로!”
670 고지에서 대한제국 군대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채명진이 보낸 보병 부대가 고지 끝자락을 향해 총공격을 시작했다.
자신들이 지었고, 자신들의 자랑이었던. '적들이 절대 뚫을 수 없을것'이라 자부했던 진지를 향해 자신들이 공격을 감행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산 속의 수풀을 헤쳐 가며 한발짝씩 전진하면 누군가는 기관총에 맞아 죽었고 박격포에 맞아 죽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산 속에서 용맹한 장병들이 전진하면 그 중 상당수는 죽었고, 뒤따라온 장병들은 전우의 시체를 넘어가며 필사적인 돌격을 감행했다.
아군 포병대가 포신이 붉어질 정도로 지원 포격을 날려보지만, 견고한 참호에 숨어있는 북베트남군은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는다. 월맹군의 포격까지 고려해 설계한 대한제국의 전략적 참호 배치가 만든 결과였다. 그런 피땀어린 진지를 고스란히 넘겨준 건 대한제국군 역사에 두고두고 남을 최대의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상황이 어렵게 전개될것으로 예측한 채명진 장군은 UH-1 헬기에 보병부대를 태웠다. 공중 강습을 실시해 670고지의 측면으로 침투해 협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통신이 안되는 상황에서 실시한 강습 작전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중대장님! 적이 매복해 있습니다!”
"씨발, 헬기 요격되기 전에 뛰어 내려! 당장!"
그 위치에 북베트남군이 매복해있다는 것은 670 고지를 공격하던 장병들이 수색정찰을 해서 알고 있었지만 이건 30분 전의 일이다. 채명진이 보고받은 몇 시간 전 통신에서 그곳은 비어있었다. 통신 마비로 생긴 수 시간의 격차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한다.
채명진의 지시로 투입된 보병부대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적에게 포위당해 물조차 보급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채명진은 이 사실조차 보고받을 수 없었다. 대한제국의 통신망엔 여전히 방해전파가 흘러나온다.
“공중강습, 성공했을까요?”
"성공해야지. 반드시···."
답이 나올 수 없는 고민을 이어가는 두 사람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간다.
“다른 고지를 지키는 2소대와 3소대는 어떻게 됐을까? 최악을 가정해야 하나?”
참모장이 비장한 자세로 불안정한 확신을 담아 말했다.
“직접 다녀온 연락장교 말로는 잘 버티고 있답니다. 짜빈동 전투로 입증된 전술기지니 1시간 전 정보라도 믿을만 할겁니다.”
“제기랄, 정보가 너무 늦어. 이래선 2군단도 670고지도 모두 잃겠구만. 미군 항공대는 어떻게 됐나?”
“전폭기를 지원해주겠답니다.”
“된김에 걔네들 무전망이라도 쓸 순 없을까?”
정보장교가 낙담하며 말했다.
“부대 내 첩자가 벌이는 문제니 무전망을 빌려온들 소용 없을겁니다. 자칫하면 미군 통신망까지 뚫려서 연합군 전체가 난처해질겁니다.”
“하는 수 없군. 폭격만 요청하기로 하지. 좌표는··· 한심한 소리지만 미군이 알아서 하도록. 그것 밖엔 말을 못하겠구만.”
채명진은 절망했다.
부끄러움을 참아내며 보낸 미군 항공대였다. 하지만 이 마저 통신이 안되니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남베트남의 활주로에서 이륙한 미 7공군 소속 F-4 전폭기들이 670 고지로 날아갔지만, 구체적으로 어딜 때려야 할지 정보가 없었고 모든 공격이 조종사의 자율적인 판단아래 육감대로 이루어니 폭탄이 엄한 곳으로 떨어졌다.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는 하늘 위에서 아군 오폭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조종사들은 ‘적당한 곳’에 네이팜탄을 날렸고, 그렇게 떨어진 폭탄이 적이 없는 공터로 날아가 허망한 불길을 연출했다.
물론 채명진은 모른다. 폭격이 실패했다는 정보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조종사 입장에선 폭탄날리면 끝이니까. 월맹군의 부활절 공세가 남베트남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지금. 미국의 통신망엔 공군 지원을 요청하는 무전이 쇄도하고 있었다.
<채 장군, 사정은 알겠지만 우리도 사람이오. 지상에서 좌표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폭격은 없을겁니다>
<......>
<힘내세요>
그런 민망한 대화가 오간지 한시간 후. 채명진이 핏줄을 세우며 말했다.
“인사참모!”
“예, 장군님!”
“통신애들 신원은 확인해봤나? 첩자로 의심할만한 기록 없어? 실종됐다가 돌아온 애라던지, 포로였다가 풀려난 애라던지, 아니면 임관 전에 수상한 기록은 없었는지. 단 하나라도 없었냐고!”
인사참모가 비관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3년 전 기록까지 싹 살펴봤지만 대공용의점은 없었습니다. 무전기 주파수와 암호명은 대외비에 해당하는 군사 기밀이라 아는 애들이 극소수일건데···."
“이런 씨발···.”
채명진은 얼굴을 감싸쥔 채 그대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걱정하는 참모들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한국전쟁에서 이기면 만사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20여년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으며 환호하던 전우들의 모습을. 북한이 ‘완전히’ 패퇴하여 1년도 안되어 끝난 한국전쟁은 독립한지 얼마 안된 대한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놨다.
“그 땐, 북한이건 공산당이건 다 끝난 줄 알았지···.”
“장군님···.”
채명진 장군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 명의 여인을 떠올린다. 자신이 19번 도로 지역으로 단독작전을 보낸 장교의 이름. 이은서.
‘무리하지 말거라. 제발···.’
채명진은 무사히 돌아왔을 은서의 미래를 상상했다.
돌아오면 내 손으로 직접 소령 계급장을 달아줘야지. 그 다음 은서의 손을 잡고 지휘통제실로 데려가 의자에 묶어놔야지.
<사, 사령관님! 뭐하시는거에요?>
당황하는 은서 앞에 200페이지 분량의 서류를 쥐어주며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내로 끝내, 알았지?>
정말로 악랄한 상사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다. 녀석은 머리가 좋아 200페이지의 서류 작업도 3시간이면 끝낼 것이다. 그러면 다음에 300페이지, 그 다음엔 500페이지씩 참모부의 일거리를 몰아주며 더욱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그러면 은서가 억울한 표정으로 묻겠지.
<저한테 왜 그러시는거에요?>
<그야, 네가 딸 같으니까.>
딸 같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주고 싶으니까. 녀석을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손발을 묶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할 것이다. 심술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은서를 상상하며 채명진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그 시각, 특전사령관 박승진 소령은 특전사 본부에서 1팀부터 10팀까지 각 팀장들을 모아놓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1팀부터 2팀까지는 지금 즉시 헬기를 타고 공중 강습 나간 애들을 구원한다."
1팀장이 말했다.
"전파 방해로 전황 파악이 안되는 걸로 압니다. 혹시 모르니 3팀도 데려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박승진 소령이 답했다.
"안돼. 이은서 대위가 부재중이다."
"대체 어딜 갔답니까? 그 여자."
1팀장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단독 작전을 나갔다가 고립된 모양이다. 복귀 시키고 싶어도 어딜 갔는지 모르겠고 연락할 방법도 없으니 그냥 죽었다 생각해야지."
"지가 무슨 영화 속 주인공이야 뭐야?"
"사령관님 명령 때문에 보내긴 했지만 솔직히 나도 의문이다. 월맹군으로부터 노획한 모신나강 하나 들고 나갔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으면 어디서 뭘 하는지 상관인 나조차 모르니 참···."
박승진 소령이 이승필 중위를 노려보며 물었다.
"니네 팀장에 대해 뭐 아는 거 없어?"
"죄송합니다."
"이래서야 이은서 대위가 첩자 같구만. 제기랄."
그렇게 1팀과 2팀, 4팀이 고립된 보병부대를 지원하고자 헬기를 타고 출동했다. 그들 역시 깜깜무소식인 채로 출동했으므로 앞날이 불투명했다.
이은서 대위를 대신하여 회의에 참가한 이승필 중위는 특전대장실을 힘없이 빠져나왔다. 그런 그 앞에 박철민 상사가 나타났다.
"부중대장님!"
"담당관님?"
박철민 상사가 물었다.
"부중대장님은 알고 계신거죠?"
"예? 뭘요?"
"유서 말입니다. 이은서 대위님의 유서!"
이승필 중위는 고개를 돌리며 애써 모른척했다. 누가봐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유서라니 그게 뭔소립니까?”
“제가 영어 모른다고 시치미떼기입니까!?”
“아니 그러니까···.”
박철민 상사가 양 어깨를 부여잡고 절박하게 말했다.
“die! 죽다! 그 단어는 알아들었거든요? 죽음이 뭐시기 하며 부중대장님께 말하고 휙 도망갔는데, 그 뒤로 뭐라고 하셨어요? 예스 맴? 맘? 아무튼 예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건 맞긴 한데 그게 어째서 유서랑···.”
“사람이 뒤지는데 예스면 유서지 뭐긴 뭡니까!!!”
실제 뜻은 이랬다.
<if die,="" drawer="" general="" give="" i="" in="" the="" to="" will="">
(내가 죽으면 서랍에 있는 유서를 장군님께 전해.)
<yes, ma'am="">
(예, 알겠습니다.)
박철민 상사가 절박하게 말했다.
“팀장님 생사가 걸린 문젭니다. 월맹군 오는 것도 모르고 19번 도로로 가셨는데 무전기도 없고, 특전 사령관님도 어디가셨는지 모르잖습니까? 단서가 될만한건 유서밖에 없습니다!”
이승필 중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부중대장님은 팀장님이 걱정되지도 않으십니까?"
“걱정되죠. 하지만 유서잖습니까? 산 사람의 유서를 마음대로 공개할 권한이 우리에게 있던가요?”
"부중대장님!"
그런 중위를 보며 박철민 상사는 답답함을 느껴 말했다.
"보나마나 팀장님 숙소에 있겠죠. 그렇죠?"
"......"
"부정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박철민 상사는 등을 돌려 이은서 대위의 방으로 향한다. 그런 그에게 이승필 중위가 말했다.
"또 하극상을 벌일 셈입니까?"
하극상이란 말에 발걸음이 멈췄다.
"하극상이요?"
"3년 전 당신은 팀장님의 숙소를 점거하고 음주가무를 했어요. 그런 추악한 짓을 벌여놓고 또 숙소에 간다는 겁니까?"
"이번엔 팀장님을 구하기 위해섭니다."
"3년 전에도 그랬겠죠. 여자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니 하극상을 일으켜서라도 쫓아내자. 그렇게 자의적으로 판단해 선을 넘었던 거 아닙니까?"
"......"
"살았는지, 죽었는지, 위험한지, 안 위험한지. 모두 다 제멋대로 판단해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던거죠. 당신은 그런 인간입니다. 구제불능."
박철민 상사가 단호히 말한다.
"예, 구제불능 맞습니다. 그 때의 행동을 몇 번이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후회할 짓을 할 생각입니다. 왜? 죽어서 후회하느니 살려 놓고 후회하는 게 나으니까."
"박철민 상사, 당신은 정말···."
“시간을 되돌려도 저는 똑같은 짓을 하겠죠. 이은서 소위님이 죽어서 후회하느니, 살려놓고 후회하는게 나으니까.”
박철민 상사는 허망히 웃으며 이승필 중위에게 말했다.
“중위님은 나중에 오셔서 모르실겁니다. 우리 팀장님이 소위 시절에 얼마나 귀여웠는지.”
“귀엽다구요?”
“예. 정말 미치도록 귀여웠습니다. 팔다리에 근육도 안붙은 24살 소녀가 부중대장이랍시고 왔는데 이건 안되는 거잖습니까?”
“그게 하극상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전쟁터는 귀여우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니까요. 이곳은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게 아니라, 강한 자가 운 좋아야 살아남는 곳이니까요. 그게 특전사의 세계니까!”
“......”
“그래서 김훈 대위님께 말했습니다. 우리 소위님 죽는 꼴은 못보겠다고. 그러니 내가 악역을 자처하겠다고. 대위님은 잘 타일러서 소위님 고향땅에 돌려보내시라고. 그렇게 짜고 했던 게 3년 전 이은서 소위님 방에 있었던 음주가무의 진실입니다.”
“하지만 이은서 소위님은··· 대단한 팀장이 되셨죠. 대위 계급으로.”
박철민 상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기부여가 된거겠죠. 그래서 지금은 저희들의 자부심입니다."
</yes,></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