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Ep1. 공주 이야기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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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는 첫 날부터 행군을 했다.
30kg 군장을 메고 적진 한복판으로 침투하는 임무였다.
첫 날부터 실전이라니 재수없지만 유감스럽게도 군대는 365일이 재수없는 곳이다.
사막이나 초원을 다니는 보병 부대라면 트럭이라도 탔겠지만, 정글과 산악에서 비밀 작전을 해야 할 특전사는 어깨가 빠질 것만 같은 무거운 배낭을 매고 못해도 수십 킬로미터는 걸어야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정말로 죽을 거 같았다.
정글이란 곳이 어떤 곳이냐면, 나무와 수풀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자라고 있고, 독을 가진 뱀과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숲속이니 먹을거라도 많아보이지만 대부분이 독성을 갖고 있거나 영양가 없는 무언가들이기 때문에 생존에 하등 도움되지 않아 녹색 사막이라고도 불린다.
심지어 덥다. 적도에 가까운데다 비도 많이와서 습하고 덥다. 한국인 입장에선 죽을맛.
하물며 여기는 베트남. 게릴라전으로 아군을 괴롭히는 적들에게 자기 집 같은 곳이니 언제 어디서 기습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다.
은서는 가빠지는 숨 속에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본 팀의 막내 이재훈 하사가 말했다.
"이은서 소위님! 힘내십쇼! 아직 30km는 더 가야됩니다!"
"헉··· 헉··· 아니 잠깐만··· 조금 쉬었다 가면 안될까?"
"5km만 더 가면 안전지대가 나오니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10분 뒤, 은서는 그대로 탈진해 쓰러졌다. 이재훈 하사의 간호를 받으며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 모습에 공수지구대 3팀의 팀장 김훈 대위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공수지구대 3팀의 부사관 중 최고 선임자인 박철민 상사가 말했다.
"팀의 막내인 재훈이도 멀쩡한데 벌써 쓰러지시면 어떡합니까? 체력 단련 안하셨어요?"
"미안··· 조금만 쉬었다가···."
"여기가 무슨 훈련장입니까? 전쟁터에서 그런게 어딨습니까? 베트콩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여기서 쉬자구요? 소위님 때문에 여기서 쉬었다가 기습 당해 죽으면 책임 지실겁니까?"
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구구절절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나 때문에 죽는다니···.'
죽음의 공포 속에서 죄책감까지 밀려와 은서의 마음을 짓눌렀다.
3팀은 경계인력을 배치한 채로 10분간 휴식을 취했고, 그 뒤로 은서의 30kg짜리 군장을 부하들이 1시간 간격으로 매주며 남은 거리를 주파했다.
강인한 남자였다. 박철민 상사가 등으로 30kg 군장을 매고, 앞쪽으로 은서의 30kg 군장을 매어 총 60kg를 감당하니 짐덩어리의 주인인 은서가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부하들의 눈빛에 원망이 서린 것 같았다.
'미안해··· 나도 오기 싫었어···.'
은서는 울고 싶어졌다. 울 힘도 없어서 훌쩍이지도 못했다. 두시간 뒤. 은서는 또 쓰러졌다.
***
이틀 뒤엔 사격 훈련이 있었다. 작전에 나가는 날이 아니면 늘 이렇게 무언가 훈련을 했다. 연병장을 뛰면서 체력단련을 하거나, 사격 훈련을 하면서 전투감각을 기르거나.
특전사들은 어느 한국군이 그렇듯 미국의 M16소총을 들었는데, 간혹 비상시를 대비해 권총 사격을 하기도 했고, 북베트남군과 공산게릴라가 쓰는 모신나강, PPSh-41 같은 총을 노획해 훈련하기도 했다.
특수부대 답게 장교건 부사관이건 250m 거리에서 총을 쏴도 백발백중이었고, 팀의 막내인 이재훈 하사조차 10발 중 8발을 맞추는 실력을 보인다.
하지만 그들 모두 '대단하다'라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250m 사격은 그냥 훈련 수준이니까. 이정도 거리는 미국도 월남군도 월맹군도 맞춘다. 그냥 총 자체가 좋은 거다.
그래서 공수지구대 3팀의 부사관들은 생각했다. 체력이 부족한 이은서 소위도 사격 만큼은 잘할거라고. 사격을 잘하면 최소한의 전력은 될테니 그걸로 만족하자고. 그것은 3팀이 양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다.
"못해도 6발은 맞추시겠죠?"
"아니, 백발백중일지도 모르지. 전쟁터엔 유능한 여성 저격수가 많으니까. 분명 소위님의 숨은 실력이 드러날거야."
라고 기대하는 부사관들이었으나···.
"에? 4발? 고작 4발 맞추신겁니까? 10발중에?"
이은서 소위가 고개를 푹 숙인채 부끄러워하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게, 사관학교에선 나무로 만든 소총을 썼는데···."
박철민 상사가 타이르듯 말했다.
"M1 개런드? M1이나 M16 소총이나 둘 다 미국 총입니다. 250m에서 조준 사격 하는 정도로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그러십니까? 제가 M1 가져와서 쏴볼까요? 얼마나 차이나나?"
그렇게 말하며 선임담당관 박철민 상사는 큰 소리로 ‘개런드 가져와!’를 외쳤다. 하지만 다들 최신 무기인 M16밖에 없어 가져오질 못하자 자기허리에 꽃혀있던 권총 꺼내든다.
“에이 씨발, 그냥 보십쇼!”
그러자 부하 한명이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예? 15m 맞추는 권총으로 어떻게 250m를 쏨까?”
“닥쳐! 딱 한발로 250m 맞춰본다. 니들도 잘 봐 새끼들아.”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견착도 안되는 손바닥만한 권총으로 250m 거리의 표적지에 총을 쐈다. 김훈 대위도, 이은서 소위도, 지나가던 장교들도, 큼지막한 m16 소총에 의지하던 부하들도 식은 땀을 흘리며 결과를 지켜본다.
명중.
박철민 상사가 쏜 권총은 250m 표적지의 정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다. 기가막힌 사격 솜씨에 놀란 부하들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박철민 상사를 쳐다보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장교들도 ‘뭐 저런 괴물이 있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은서에게 말했다.
“이 정도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3팀의 여론은 박철민 상사에게 완벽히 장악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권총은 커녕 최신 M16 소총으로도 4발 밖에 못 맞추는 은서는 팀의 왕따가 되어 있었다.
'기대 받으려고 온 게 아니란 말야···.'
부담감이 점점 커져간다.
***
일주일 뒤 대형 사고가 터졌다.
공수지구대 3팀이 수색 작전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은서는 부중대장으로서 지도를 보고 길을 안내하는 것을 맡았는데, 방향을 착각하는 바람에 팀 전체가 엉뚱한 곳을 가버렸다. 참다 못한 김훈 대위가 직접 은서를 혼냈다.
"야, 이은서! 이젠 하다하다 지도 보는 법도 햇갈리냐? 지도 보는 법은 간부의 기본 소양 아냐?"
"죄송합니다. 전투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만···."
"씨발 그걸 말이라고 해? 너 때문에 3km를 해멨어. 믿고 맡겼더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은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김훈 대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넌 나 죽으면 부하들 어떻게 통솔할래? 부하들 보다 뒤쳐지고, 부하들 보다 못 싸우고, 부하들보다 지휘도 못하는데. 도대체 육사는 어떻게 졸업한거야? 너 진짜 낙하산이냐? 특전사가 만만해보여?"
눈물을 꿀꺽 삼긴 채 은서가 힘없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인 은서를 내려보며 김훈 대위는 말했다.
"됐고, 넌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
은서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진 부하들의 불평불만이 그 한마디에 담긴 것 같아 수치스럽고 뼈아파 눈물을 흘렸다. 우는 것이 들킬 거 같아 고개를 한참 들지 못했다.
시련의 시간이었다. 장교가 지휘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질질짜는 모습이 부사관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소문이 퍼질대로 퍼져 무능한 장교, 울보 장교, 고문관. 그런 오명들이 쏟아질지도 모른단 생각에 공포가 느껴진다. 은서가 이런 생각을 할 때쯤 부대에 퍼진 그녀의 별명은 다음과 같았다.
띨띨이.
***
"됐고, 넌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
이 한마디가 있은 뒤로 부사관들이 이은서 소위를 향해 하극상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어? 부중대장님이네?"
"저딴 년이 무슨 부중대장이야? 그냥 띨띨이지."
"그러지 말고 소위님도 같이 드시지 말입니다. 아, 소위님은 술 안드시던가?"
부하들의 술파티가 벌어진 곳은 다름 아닌 은서의 숙소였다. 3팀의 부사관들은 은서의 숙소에서 술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구타와 폭력을 제외하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하극상이었다. 은서는 술냄새가 진동하는 자신의 숙소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
"난 너희들의 상관이잖아···."
하극상을 일으키는 부사관들. 땅에 떨어진 장교의 권위. 그런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선임 장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눈물짓는 자신.
그 현장에서 은서는 묵묵히 술을 마시던 박철민 상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장교로서 나한테 명령해봐. 이게 무슨 짓이냐? 누구 허락을 받고 이러고 있냐? 단 한마디라도 나한테 할 수 있어? 못할걸? 넌 무능하니까. 무능한 놈은 특전사가 될 자격이 없어. 당장 집으로 꺼져.'
그런 압박이 은서의 마음을 사정없이 짓누른다.
겁에 질려있었다. 장교가 부사관에게. 상급자가 부하에게 공포감을 느낀 채 ‘하지마’라는 한마디를 못해 벌벌 떨고 있었다.
'무서워···.'
내가 저들을 이길 수 있을까? 단 한명이라도? 수 년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산전수전 다 겪은 아저씨들을 상대로 이제 스물넷밖에 안된 신입 장교가 뭘 할 수 있을까? 저들보다 총도 못 쏘고, 힘도 못 쓰고, 뛰는 것도 못하는데. 하다 못해 장교의 주특기인 지휘 능력 조차 궤멸적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이은서 소위는 막사 밖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추적 추적 쏟아지는 베트남의 게릴라성 호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진흙탕이 된 연병장을 하염없이 뛰어다녔다.
부끄러웠다.
남들보다 노력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뛰지 않았으며, 남들보다 잘 쏘지 않았다. 장교의 권위같은게 있을리도 없다. 사관학교 생활 4년 내내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대충대충 해왔던 자신이기에 뒤쳐지는 건 당연했다.
근데 왜?
나는 왜 노력해야했고, 왜 여기서 수치를 당해야 했을까? 나는 대한제국의 공주인데. 공주가 왜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거지?
빌어먹을 황제는 왜 나를 여자로 낳아놓고 군대로 보냈을까? 수년 전 성적이 안 나왔을 때 말한 ‘특단의 조치’라는게 이런거였나? 치졸한 인간말종새끼.
죽으란 걸까? 날 더러 전쟁터에서 죽으란 걸까? 치열한 전쟁터에서 나약한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며 비참하게 죽으라고 황제가 보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은서가 외쳤다. 자신의 아버지인 대한제국의 황제를 향해서.
"내가 여자로 태어나 싫었던거지? 이 빌어먹을 씨발 새끼야!!!"
그렇게 뛰다 진흙탕에 넘어졌다. 더 이상 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보이지도 않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다 한 남자가 나타나 말했다.
"그러다 감기 들린다."
엄청나게 높은 계급을 가진 장군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