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15화 (245/257)

외전 15화. 드라마 삽입곡

B사의 자동차 판매장에는 손님들로 북적북적하고 있었다.

유진만은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네, 손님 여기 계약서요. 여기에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60대의 딜러 손준호도 손님들에게 설명을 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네, 손님. 세컨카로도 좋죠. 아이를 태우기에 패스트만큼 좋은 차가 없습니다.”

판매장 사장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번 달에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나 하고 걱정 중이었는데 이게 웬 횡재람.’

오늘 하루에만 계약된 차량이 여섯 대.

지난달엔 계약된 차량이 두 대뿐이었던 걸 감안하면 이미 지난달 실적의 3배를 달성한 셈이었다.

‘본사에서 하도 이것저것 시끄러워서 다음 달엔 가게를 접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패스트의 생각지도 못한 선전으로 인해 판매장을 더 운영해야 하는 건 아닌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 사장이었다.

***

K 드라마국의 간판스타 김진태 PD는 커피를 뽑으며 졸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자판기를 향해 걸어 나오던 조미향 PD가 아는 체를 했다.

“유 PD 잠 좀 잤어?”

“아니요. 못 잤어요.”

“몇 시간 째 깨어있는 거야?”

“마흔여섯 시간 째요.”

“아직 내 기록은 못 깼네. 난 칠십이 시간 동안 깨어있었는데 말야.”

김진태 PD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조미향 PD를 째려보았다.

“선배 우리 탈인간 시합하는 거예요? 지금 몸에서 사리 나오게 생겼거든요. 진짜.”

조미향 PD가 김진태 PD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 자기 인생을 대표할 만한 대표작 만들 때가 진짜 행복한 거라고. 물론 그걸 그땐 모르고 지나고 나서 알지만.”

김진태 PD가 어린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투정을 부렸다.

“졸려 죽겠어요. 진짜 영혼이 탈출할 것만 같아요.”

“이 음악 좀 들어볼래? 요새 유행하는 음악인데 말야.”

조미향 PD가 자판기 커피를 든 김진태 PD를 자판기 옆의 의자에 앉혔다.

조미향 PD가 너투브를 켜자 화면 속에서 은우의 얼굴이 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김진태 PD는 순간 잠이 번쩍 깼다.

‘세상에 이게 성악이 아니고 가요에서 가능한 일이란 말야.’

화면 속의 은우는 [아]라는 가사만으로 누구보다 더 자유롭게 음계를 표현해내고 있었다.

‘성량이 보통이 아닌데 오페라를 듣고 있는 것 같잖아.’

우주 저 멀리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소리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은우의 목소리일 것이라고 김진태 PD는 생각했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스타카토로 끊어치는 빠르고 높은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김진태 PD는 입을 벌린 채 생각했다.

‘이건 인간인가 돌고래인가? 이게 인간의 음역대로 가능한 노래란 말야?’

전문적이진 않았지만, PD로 일하면서 대중가요와 클래식을 모두 다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자신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노래는 찾기 힘들어. 이 노래 대중들에게 어필될 수밖에 없겠어.’

오페라에서처럼 몇 분 동안 이어지는 고음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노래의 전반부를 잔잔하게 흘러오다가 후반부에서 고음이 폭발하기 때문에 전개 방식은 락 발라드와 유사한 느낌이었다.

‘가만있어 보자. 이 노래, 이렇게 흘려보내기 아까운데?’

김진태 PD는 여주인공의 공연 장면에 이 곡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주인공이 성악가라는 설정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질 것 같고 대신 무대의 성격을 오페라가 아니라 팝페라나 대중가요를 위한 무대로 변경해야겠어.’

김진태 PD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편집실로 뛰어 들어갔다.

조미향 PD가 자리에 남아 김진태 PD가 사라진 통로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갑자기 그렇게 가 버리면 어떻게 해?”

***

은우가 부른 [카르페디엠]의 고음 파트는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너투브에서는 패러디 영상이 속속 올라왔다.

첫 번째는 음치 편.

이십 대의 남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댓글들에선 난리가 났다.

[항상 그 자리에] : 어쩜 음 변화 하나도 없음?

[에티우] : 저거 은우가 부른 거랑 같은 노래 맞아?

[with] ; 음은 안 올라가는데 입은 점점 크게 벌어지고 표정도 점점 심각해지는데.

[보라] : 저거 보다가 핵 웃겨서 숨넘어갈 뻔함.

┗ [장난꾸러기 lee] : 난 도서관에서 뿜었음. 쫓겨날 뻔함.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남자의 노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천천히 느려지면서 음 구분이 전혀 안 되는 노래.

다시 불타오르는 댓글창.

[카이] : 저거 원래 스타카토 아님?

[kos7] : 저분이 편곡 실력이 워낙 뛰어나신 분이라 원곡의 자취를 전혀 찾을 수가 없음.

[빈이맘오키] : 저 노래 알음. 저거 우리 할아버지가 반신욕 하실 때 부르는 노래임.

두 번째는 화장실 편.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있는 남학생이 휴지를 꼬옥 쥐고 외친다.

“여러분 저는 요즘 유행하는 [카르페디엠]을 가지고 변비에 걸린 한 고 3의 고뇌를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롤러코스터 타듯 빠르게 변하는 음.

남학생의 얼굴 표정도 판타스틱하게 변한다.

휴지를 잡은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마에서 나는 땀을 닦기도 한다.

이때 자막으로 떠오른 글씨.

[가라 가라 가라 어서 가라 똥덩어리들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남학생의 노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스타카토지만 남학생의 신체적 고통으로 인하여 부분부분 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휴지를 쥔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가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남학생.

이때 떠오르는 자막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너와 이별할 거야.]

갑자기 밝아지는 남학생의 표정.

환하게 웃으며 끝난 노래를 다시 이어서 부른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까와는 달리 밝고 선명한 음들.

댓글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mk9] : [카르페디엠]이 이렇게 대단한 곡이었다니. 변비까지 소화할 줄이야.

[여우비] : 내가 볼 땐 변비랑 가장 찰떡같음. 앞으로도 [카르페디엠] 들을 때마다 이 남학생 표정 떠오를 거 같음.

[미르은가람] : 아까 남학생 스타카토로 끊어서 노래 부를 때 표정 봤음? 레알 현타 온 듯. 노래도 노래인데 표정이 너무 리얼 변비임.

[모나] : 학생 어서 변비 나아요. 누나가 유산균 보내줄게요.

[박향순] ; 나도 극심한 변비로 초등학교 때부터 고생 중인데 저 표정은 진짜다. 같은 변비인이 볼 때 저건 연기가 아님.

[랄라] : 유산균 다음 광고 모델 예약임. 저 학생이 광고 모델 하면 나도 그 유산균 사 먹는다.

다음은 우주인 버전.

우주복을 입은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으로 보이는 화성에 다가가고 있다.

“여러분. 화성입니다. 인류는 드디어 해답을 찾았습니다. 우린 자연재해와 환경오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박수를 치며 노래를 시작하는 우주비행사.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가끔 삑사리가 나긴 하지만 행복한 기분을 잘 표현해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고음.

우주비행사 노래를 하면서 계속 미소 짓고 있다.

비행선의 문을 열고 화성의 땅을 밟는 우주비행사.

준비해 온 깃발을 꼭 쥐고 땅을 걸어간다.

깃발을 땅에 꽂으며 다시 시작하는 노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비행사는 두 팔을 벌리며 최초로 화성에 깃발을 꽂은 기쁨을 노래한다.

스타카토로 짧게 끊어지는 음.

음의 높이는 은우의 원곡에 비하면 턱없이 낮으나 곡의 분위기와 비행사의 상황이 일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삑사리는 봐줄 만하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비행사가 꽂아놓은 깃발을 날려 버린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비명이 되어 끝나는 노래.

댓글창에 글들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소울메이트] : 와, 화성인 정말 속상하겠다.

┗ [작가지망생] : 님, 화성인 아니고 우주비행사입니다.

┗ [소울메이트] : 아, 그렇군요. 이런 실수를.

┗ [작가지망생] : 괜찮습니다. 제 꿈이 우주비행사여서요.

[봄날] : 현타 오겠다. 힘들게 꽂은 깃발 날아감.

[루루] : 님들 근데 저 깃발과 함께 인류의 미래도 날아간 건가요? 우리 화성으로 여행 못 가나요?

[편하개] :화성으로 여행을 어떻게 가요? 아직 그럴 만한 기술이 없음.

┗ [서밋] ; 왜요? 스페이스 X에서는 여행 상품도 내놓던데.

┗ [콩빠] : 형님. 형님. 그건 과대광고입니다.

***

시청률 30퍼센트 화제의 드라마 킹덤캐슬은 어느덧 막바지 촬영에 접어들었다.

작가가 어젯밤에 보내준 쪽대본을 받아든 주연배우 김여진은 짜증이 났다.

‘암기력 테스트하는 거야? 연기력 테스트하는 거야? 진짜 너무 한다.’

극중 인물인 주희연은 유명한 성악가였다.

가난을 모르고 엘리트 예술 교육 코스만을 밟고 자라온 여자.

여자는 최고가 아닌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희연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목소리를 잃게 되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위해 노래할 무명의 성악가 낸시를 찾아낸다.

‘그러니까 처음엔 그냥 오페라였잖아. 왜 갑자기 이걸 팝페라로 바꿨냐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극의 분위기엔 오페라가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게다가 팝페라로 설정이 바뀌면서 낸시의 촬영 부분부터 재촬영했다고 한다.

‘물론 낸시 부분은 내가 찍어야 할 분량은 아니지만.’

드라마에서 쪽대본은 일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설명도 없이 세부 요소가 바뀔 땐 짜증이 났다.

‘내가 인형도 아니고 말이지. 나도 예술가라고.’

김여진이 쪽대본을 받아들고 짜증을 내고 있을 그때, 김진태 PD는 은우의 [카르페디엠] 패러디 영상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번엔 자장면 배달원 버전이 나왔네. 진짜 재밌다니까.’

자장면 배달원이 독도에 자장면을 배달하고 나와서 지르는 비명은 정말 배꼽을 찾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웃기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인기 있는 노래를 우리 드라마에 똬악 넣으면 우리 드라마도 함께 상승세를 타고 더 유명해지는 거지.’

김진태 PD는 벌써부터 인터넷에 올라올 킹덤캐슬 짤을 기대 중이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무대에 오른 주희연은 관객들로부터 우렁찬 박수를 받는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미소 짓는 주희연.

그러나 손가락은 떨리고 있다.

주희연 무대 뒤의 낸시를 바라보면 낸시 준비가 되었다는 듯 주희연을 바라본다.

무대에 전주가 흐르고 노래가 시작된다. 열창하는 주희연. 하지만 입만 벌리고 있을 뿐 그녀의 마이크는 꺼져 있다. 카메라가 낸시를 화면 위로 오버랩시키면 켜져 있는 낸시의 마이크 아름다운 낸시의 음성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낡은 페인트 통 속에 오래된 붓.

나는 그 붓을 들어 거리에 색칠을 하죠.

햇살이 빛난다 너무 달콤해.

바람이 분다 너무 시원해.

노을이 진다 너무 행복해.

거리를 파란색으로 물들여요.

거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여요.

거리를 빨간색으로 물들여요.]

눈을 감고 주희연의 노래를 감상하는 관객들.

편안하게 미소 짓는 관객들의 얼굴 위로 주희연을 주목하고 있는 단 한 사람.

김성태다. 김성태는 주희연의 목을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고음에 올라가면 목에 핏줄이 서는 게 주희연의 특징인데 목이 너무 멀쩡하잖아.’

김성태는 계속해서 주희연을 주시하고 있다.

‘마이크의 전원이 꺼져 있어. 이건 분명 주희연이 부르는 노래가 아냐. 대체 어디서 오고 있는 거지?’

김성태는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공연장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어느덧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주희연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듯 심취한 채 연기를 계속하고 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높은음과 낮은음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는 낸시의 노래.

관객석에선 주희연을 향해 폭포 같은 박수를 쏟아낸다.

주희연의 입가에 어리는 웃음.

김성태는 공연장 뒤쪽을 돌아다니다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방 하나를 찾아낸다.

‘저기서 누가 노래를 부르고 있어. 대체 누구지?’

이어지는 낸시의 노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스타카토로 끊어치는 빠르고 높은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비행기의 활주를 보는 듯이 부드럽게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고도로 활강하는 것 같은 음들의 비행.

노래에 집중한 낸시의 표정. 자신의 노래에 대한 환희와 자신감이 가득 찬 모습.

그때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선 김성태.

낸시를 찾아낸 순간. 바로 이거다 싶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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