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 외전-14화 (244/257)

외전 14화. 자동차 광고

상담실에서 나온 유진호가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안드레아 씨, 음반 반응이 아주 좋다네요. 한국 음반 차트 반응도 좋고 해외 반응도 좋대요.”

“감사합니다.”

안드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루시, 네가 작사한 곡을 사람들이 좋아하나 봐. 루시, 너의 노래를 사람들이 기억할 거야.’

유진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자동차 광고 모델 의뢰가 들어왔는데 한번 해 보시겠어요?”

“광고요?”

안드레아는 한 번도 광고를 찍은 적이 없었다.

세계 정상의 테너로 살아온 삼십여 년 동안 광고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성악가가 광고를 찍는다는 게 과연 좋을까?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음악이 아니라 향수나 구두, 가방을 떠올린다면 이상할 것 같은데.’

예술가적인 자존심 때문에 아직 한 번도 광고에 출연한 적이 없는 안드레아였다.

유진호는 안드레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했다.

“가족의 사랑을 강조하는 광고인데 [수달 가족] 노래를 듣자마자 광고에 딱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우리 측에 [수달 가족] 저작권 요청도 함께 했어요. 광고에 삽입하겠다고요. 출연 요청은 은우와 함께 들어온 상황이라 안드레아 씨와 은우가 모두 오케이 해야 광고를 찍을 수 있겠어요.”

안드레아는 [수달 가족]이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루시가 작사한 그 곡? 그럼 내가 광고에 출연하면 다른 아빠들은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안드레아의 머릿속에는 아빠를 기다리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있을 수많은 루시가 떠올랐다.

‘다른 아빠들은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과의 시간이니까.’

안드레아가 결심을 굳힌 뒤 말했다.

“출연할게요. 대신 인터뷰도 하나 잡아줄 수 있겠어요?”

“인터뷰요?”

유진호는 안드레아의 예상치 못한 요청에 놀랐다.

“[수달 가족]을 만들게 된 그 상황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싶어요. 광고주도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럼요. 광고주는 당연히 좋아하겠죠. 안드레아 씨가 출연해 주기만 해도 기뻐할 텐데 인터뷰까지 하시겠다니.”

“중요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을 광고에선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

경기도의 한 타운하우스 밀집 지역.

태윤이 광고를 찍기 위해 안드레아와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아, 오늘 은우 본다아!”

“이번 노래도 너무 좋더라. [카르페디엠] 너무 멋져.”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루시의 헌정 음반과 은우의 광고 촬영은 화제가 되고 있었다.

안드레아가 먼저 유진호와 함께 촬영현장에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함께 촬영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태윤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유진호가 태윤의 말을 통역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수달 가족]만 아니었다면 촬영에 응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수달 가족]이 제게 너무 특별한 곡이어서.”

태윤은 안드레아가 한 번도 광고를 촬영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시가 작곡한 곡이죠? 알고 있습니다. 소중한 곡이니만큼 잘 만들어 볼게요.”

안드레아가 태윤의 손을 잡았다.

태윤은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마음으로 부탁하는 그런 느낌이네. 정말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

안드레아가 말했다.

“모든 아빠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요. 아이들이 우리를 영원히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요.”

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은우가 촬영장에 도착했다.

은우가 가방에서 태디를 꺼내 안드레아에게 건넸다.

“안드레아. 태디가 아빠가 보고 싶대요. 제가 태디에게 우리 집 구경을 시켜줬어요. 은혁이 형이랑 은정이랑 엄마, 아빠도 소개해 주고요.”

“태디가 기뻐했겠는데.”

“태디는 사실 보리가 태디를 마음에 들어 하는 바람에 위험해질 뻔했는데 제가 구해줬어요. 태디는 루시의 친구니까 보리에게 줄 수 없거든요. 보리가 침을 묻혀놔서 제가 물티슈로 싹싹 닦아줬어요.”

“고마워.”

안드레아는 태디가 작은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이건 뭐야?”

“그건 은정이가 메준 건데. 은정이가 새로 산 장난감에 들어있는 가방이에요. 은정이가 태디 배고플 때 먹으라고 과자를 넣어줬어요.”

안드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은정이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루시가 정말 고마워할 거야.”

은우가 등장하자 계속 미소 짓는 안드레아를 보며 태윤은 생각했다.

‘서로를 미소 짓게 하는 사이라니.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는 광고에 적합한 사람들 같아.’

***

촬영용 승용차와 렉카차(자동차 탑승씬 촬영용 특수차량)가 현장에 도착했다.

렉카차 위에 걸린 승용차를 보고 은우가 말했다.

“우와 차가 차를 업었다.”

태윤이 은우의 말에 감탄했다.

“이 차를 매번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은우 정말 창의적이다.”

은우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말했어요.”

안드레아가 말을 보탰다.

“개구리의 짝짓기 같기도 하고 말이지. 차 위에 차가 올라타 있다니? 근데 난 오늘 내가 운전할 줄 알고 어제 하루 종일 한국의 도로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괜히 했네.”

앞의 커다란 차가 운전하는 대로 자신은 끌려갈 생각을 하니 뭔가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태윤이 안드레아에게 말했다.

“미리 말씀드릴 걸 그랬네요. 운전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카메라 보조가 카메라를 설치하고 카메라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 촬영 준비 끝났습니다.”

카메라 감독이 다시 태윤에게 말했다.

“감독님, 준비 끝났는데 스텐바이 할까요?”

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아 씨 이번 장면은 편안히 운전하시면서 가끔씩 뒷좌석에 타고 있는 은우를 바라봐 주시면 돼요. 가족의 사랑을 지키는 차가 컨셉이니까요. 최대한 사랑스럽게 봐 주시고 안전운전을 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안드레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태윤이 은우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은우야, 넌 편안히 뒷좌석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들면 돼. ‘아이가 잠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조용한 차.’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거든.”

태윤이 은우에게 공룡 변신 로봇을 건넸다.

“장난감은 네가 이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이걸로 준비했는데 괜찮니?”

“잠깐만요.”

은우가 소리를 지르더니 안드레아의 가방에서 태디를 꺼내왔다.

“태디가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태디는 루시의 인형이거든요. 루시 대신이기도 하고요.”

태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가 우리 광고에 출연하는 느낌이네. 보이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가방을 멘 태디가 은우의 손에 들려 자동차의 뒷좌석에 탔다.

안드레아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탔다.

태윤이 큐를 외쳤다.

안드레아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면 카메라가 안드레아를 클로즈업한다.

편안하게 앞을 주시하는 안드레아.

백미러로 뒤에 앉아있는 은우를 보면 태디를 안고 놀고 있는 은우.

태디에게 지나가는 것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태디야, 저건 나무고 이건 풀이야. 저건 꽃인데 이름은 모르겠어.”

안드레아의 입가에 미소가 어리고 은우는 태디를 안고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든다.

잠든 은우의 무릎에서 함께 잠을 청하는 태디.

그 모습을 백미러로 바라보는 안드레아.

“컷.”

태윤이 컷을 외치고 안드레아와 은우에게 말한다.

“안드레아 씨, 은우를 바라보는 눈빛 너무 좋았어요. 태디도 그렇고요. 가족의 사랑이 뿜뿜 합니다. 뿜뿜.”

은우는 태디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

“다음엔 뭘 찍어요. 감독님.”

“이젠 집 앞에서 차와 함께 나오는 컷을 찍을 거야. 이건 광고지에도 나갈 컷이기도 하고.”

마당이 있는 예쁜 목조 주택 앞에서 B사의 흰색 패스트가 서 있었다.

안드레아가 말했다

“차가 정말 예쁘네요.”

“이탈리아에 워낙 명차가 많아서, 이탈리아 사람들도 한국 차를 타나요?”

“사실 이탈리아엔 외국 차가 별로 안 다녀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차에 대한 자부심이 크거든요.”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페라리를 가진 나라인데요. 저도 저런 차들 타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들은 모두 가족이 타기에 적합한 차들은 아니죠. 생각해보니 저런 차들은 광고에 가족이 등장하지 않거든요.”

“한국 광고와 이탈리아 광고가 다르겠군요. 이탈리아 광고도 찾아봐야겠어요.”

“전 한국 광고가 좋습니다. 정말이에요.”

안드레아와 태윤이 대화하는 사이 은우는 태디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태디야, 꽃향기 맡아볼래? 태디야, 너는 어떤 자동차가 좋아? 나는 꿀벌 자동차가 좋아. 자동차가 꿀벌처럼 붕붕 날아다니면 차도 안 막히고 좋을 텐데.”

은우는 태디의 가방을 열어 정원에 핀 작은 꽃을 넣어주었다.

“태디야, 이 꽃 가져가서 향기 맡아.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게.”

태윤이 은우를 보고 말했다.

“태디는 은우가 있어서 좋겠다. 나도 은우 같은 친구 있었으면 좋겠네. 은우야, 태디야, 이제 촬영을 시작해야 해요. 준비할까?”

은우가 태디 뒤에 숨어서 대답했다.

“네네네네네.”

***

장미와 꽃들이 예쁘게 핀 정원이 있는 목조 주택 앞 흰색의 패스트가 멈춰 선다.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차에서 내린 안드레아가 뒷좌석의 문을 연다.

아직 잠이 덜 깬 은우. 태디를 손에 꼭 쥐고 잠이 들어있다.

안드레아가 그런 은우를 안고 차에서 내려준다.

잠이 깰까 조심조심 은우를 다루는 안드레아.

은우가 쥐고 있던 태디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태디가 사라지자 잠에서 깨 안드레아를 바라보는 은우.

안드레아 은우가 사랑스럽다는 듯 은우의 볼에 입을 맞춘다.

잠에서 깬 은우가 바닥에 떨어진 태디를 주워서 들고 말한다.

“아빠 운전해 줘서 고마워요.”

그때 대문이 열리고 대문 앞에서 나오는 안드레아의 부인과 흰색 진돗개 한 마리.

“여보, 이제야 왔어요.”

안드레아에게 팔짱을 끼고 옆에 섰다.

가족들은 패스트 차 앞에 서서 다 같이 미소 짓고 있다.

“컷.”

***

B사의 자동차 판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 딜러 유진만은 뉴스를 확인하며 초조했다.

‘이번에 내놓은 패스트마저 망한다면 회사의 앞날도 알 수 없는데.’

노조는 계속해서 임금을 올려달라고 농성을 하고 있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금 회수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이대로 망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야.’

이미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H사와 K사가 점유를 하고 있는 상황.

B사는 중소 회사 3곳 중 하나였다.

‘히트작은 낸 지 3년이나 됐고.’

3년 전 B사의 이름을 높여 주었던 소형 SUV 큐브의 영광이 그리웠다.

‘그땐 홍보를 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매장에 가득 찼었는데.’

이젠 할부 서비스와 이자 지원 서비스, 옵션 서비스를 지원해도 고객들은 다른 회사의 매장으로 가 버렸다.

‘게다가 이 매장에서 내가 가장 실적도 나쁘고.’

집에선 아내가 월급도 제대로 안 나오는 딜러를 그만두고 경비라도 알아보라고 성화였다.

‘딜러 월급의 대부분은 인센티브인데 계약을 못 하고 있으니.’

3년 전만 해도 매장에 다섯 명이나 있었던 딜러가 이젠 두 명뿐이었다.

‘다른 한 분은 정년퇴임을 하고 오신 분이니까.’

60대의 딜러는 그러나 인맥을 활용하여 자기보다 높은 계약성사율을 달성하고 있었다.

‘교장으로 은퇴했다고 하시더니 인맥이 무서워.’

아는 교사, 교육청 관계자, 가끔은 학교에서 쓰는 다인용 승합차까지도 계약을 해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 패스트까지 망하면 진짜 우리 매장도 문 닫고 나도 경비나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매장의 문이 열렸다.

삼십 대의 젊은 남자가 들어오더니 유진만에게 물었다.

“패스트 좀 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물론이죠.”

젊은 남자가 패스트 앞에 서서 외관을 훑어보았다.

때를 놓칠세라 유진만은 설명을 시작했다.

“디자인이 깔끔하고 예쁘게 잘 빠졌죠? 가족을 위한 차량이라 뒤에 짐도 많이 실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어요. 그리고 여기 시트를 빼면 침대처럼 바꿀 수도 있어요. 캠핑 좋아하시면 정말 핫한 아이템이죠. 요새 캠핑이 유행이잖아요.”

“광고처럼 조용한가요? 아이가 깨지 않을 정도로요?”

“그럼요. 독일에서 온 Z엔진을 썼거든요. 저희 B사의 차 중에서 가장 비싼 엔진이에요. 아기가 있으신가 봐요?”

“네, 다섯 살 된 딸아이가 있어요.”

“뒷좌석이 아기용 카시트를 넣기에도 편하게 돼 있어요. 조금 넓게 설계가 됐거든요. 그리고 뒷좌석에도 에어백이 터집니다.”

“뒷좌석 에어백이라니 정말 좋네요. 광고에서 본 것처럼 가족을 생각하고 만든 차 같아요. 계약하겠습니다.”

어라? 이렇게 쉽게?

유진만은 어안이 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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