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81화 (181/257)

181화. [블랙 레오파드 2] (10)

룬다가 올린 영상은 팬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와, 은우 그림도 잘 그려? 대체 잘하는 게 몇 개임? 신이 있다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님?

┗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거임. 그걸 받아들이면 편함. 그리고 은우는 아직 아기라서 별로 질투심이 안 듦. 엄마 미소만 짓게 됨.

┗ 혼자서 독학으로 저 정도 그리는 게 가능함? 엄마 말로는 내가 다섯 살 때 그린 그림은 사람이 아니라 무생물 같았다는데. 원이랑 네모랑 그런 거밖에 없었다고.

┗ 우리 딸도 다섯 살인데 저 정도로 그리지 못하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은우 인생 몇 회차?

┗ 나도 은우가 좀 그려줬으면 은우야 나도 변신 잘 할 수 있어. 나도 좀 그려줘.

┗ 혹시 여기 재롱이들 있나요? 있으시면 대답 좀 플리즈.

┗ 저, 재롱이들인데요. 왜요?

┗ 한국에서 팬미팅할 때 은우가 추첨으로 그림 그려주는 이벤트 하면 좋을 거 같지 않아요? 그쳐?

┗ 그 이벤트 당첨되면 눈물 날 듯. 회장님께 건의해 볼까요?

┗ 회장. 최지은 여깄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들어 진행해 볼게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한국팬들만 챙기지 말고 해외팬들도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제 은우는 월드스타인데.

┗ 미국도 은우 팬클럽 창단식합시다.

┗ 좋아요. 좋아. 동의합니다.

┗ 여긴 영국인데 유럽팬분들 안 계시나요? 유럽팬 찾습니다.

┗ 여긴 스페인입니다. 제 주변에도 은우팬 많아요. 아마 [블랙 레오파드 2] 개봉하면 은우팬 더 많이 생길 거예요.

┗ 은우가 유럽에도 와 주면 좋겠네요. 아니면 할리우드행 비행기 예약해야 할까요?

┗ 은우 노래도 좋아요. 여러분. 노래도 한 번 들어보세요.

┗ 정말요? 은우가 노래도 잘하나요?

┗ [난 너무 귀여워]라고 은우한테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어요. 그리고 [따따따]란 곡도 좋은데 그 곡은 예전에 한국 가수 중에 큰 인기를 끌었던 파이의 곡이랑 느낌이 비슷한데 재밌고 웃겨요.

┗ 정말요? 은우는 진짜 세기의 천재인가? 노래까지 잘한다니 뭐지? 일단 노래 들으러 가볼게요. 숑숑.

[블랙 레오파드 2]의 채널에서 은우가 그림 그리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미술평론가 김다미는 은우의 그림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해. 익숙한 그림인데. 저 서툰 그림체. 하지만 특징만은 묘하게 잡아내지. 서툰 선으로 가려졌지만 대상의 특징을 잡고 단순화시키는 건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거지. 은우는 그림 고수야. 천재들만이 배우지 않고도 저런 걸 할 수 있지. 저 아이는 천재가 틀림없어. 그런데 저 그림체 아무리 봐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이야.’

김다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면서 안 나네. 저 정도 그림 솜씨면 묻힐 리가 없는데. 아직 어린 아이라서 그런가. 연예인 중에선 다양한 재주를 타고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김다미는 기억나는 연예인 화가 몇몇을 떠올렸다.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만드는 조미라.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자선 전시회에서 그림 한 점당 오천만 원에 팔렸지. 백치미를 자랑하던 이선유도 그림 한 점당 가격이 칠팔천만 원은 받는다고 들었고. 카리스마 연기로 유명한 남자 배우 백정기도 취미로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

요즘같이 인지도가 돈이 되는 세상에선 연예인들이 그림을 그리는 게 화제를 끌기엔 더 좋으니까. 실제로 그들 중 몇몇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말이지.’

김다미는 은우의 기획사가 어디인지 찾아보고 있었다.

‘만약 전시회를 연다고 하면 내가 열고 싶은데. 저 정도 인지도면 지금 당장 그린 그림을 올려도 팬들이 몰려올 거야. 평론가들도 우호적인 반응을 내놓겠지. 그림 실력이 탁월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전시회를 열게 되면 나도 은우를 내 눈앞에서 볼 수 있겠지.’

사심으로 가득 차 행복회로를 돌려보는 김다미였다.

‘근데 아무리 봐도 이 그림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김다미는 은우의 소속사에 연락을 해서 전시회에 대해 생각을 물어보려고 소속사 정보를 찾는 중이었다.

‘소속사는 HO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대표는 강라온.’

김다미는 평소 습관대로 모니터의 내용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두었다.

메모보다 편하기 때문에 김다미가 애용하는 기능이었다.

‘잘 나왔겠지?’

사진을 확인하다가 김다미는 자신의 스마트폰 앨범에 있는 다른 사진들도 보기 시작했다. 그때 자신의 사진첩에 있는 다른 사진이 들어왔다.

전시회에 갔다가 무심코 찍었던 사진들.

‘찾았다. 은우가 그린 그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그 그림. 카를로스였어.’

김다미는 카를로스의 이름을 검색했다.

- 순수함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카를로스.

- 신비주의 화가. 카를로스. 그는 과연 누구인가.

- 카를로스의 그림은 노인의 그림 같기도 하고 아기의 그림 같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는 인생이 있다.

신문 기사와 함께 전시회에서 카를로스의 그림을 보고 감상을 적은 개인의 블로그들도 떴다.

[지난 한 주 매일 야근을 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야근이 많아서 열 시에 퇴근하면 일찍 하는 거예요. 새벽 두 시, 세 시에 끝나는 날도 많지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광고업계 사정이 다 비슷하거든요. 급하게 일이 들어오면 맞추느라 야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쉬는 날이 불규칙하고 야근도 많다 보니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를 가지는 일도 제겐 힘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갑자기 광고 계약 하나가 취소돼서 시간이 비었어요. 퇴근을 하겠다고 일찍 나왔는데 압구정 거리엔 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친구와 연인과 다들 신나는 것 같더라구요. 저만 혼자였어요. 외로운 마음에 헤어진 남자 친구와 함께 잘 가던 학익 미술관에 갔습니다.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처음 보는 작가의 그림이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그림을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너무나 따뜻한 그림. 작가 이름을 찾아보니 카를로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마침 김상태 도슨트분께서 지나가시기에 여쭤보니 카를로스라는 신인 화가라고 하시더라구요.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알 수 없다고.

무엇도 모르지만 그 그림이 저에게 위로를 주었어요. 그림을 사고 싶었는데 아직 팔진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처음으로 사고 싶다고 생각한 그림이었는데 말이죠. 그 그림이 현관에 걸려 있으면 퇴근할 때마다 외로운 제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왔는데 가끔 쓸쓸할 때마다 봐요. 여러분도 사진으로나마 위로를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김다미는 블로그의 글을 보며 생각했다.

‘카를로스가 은우라는 게 밝혀지면 은우의 인기가 더 높아질 거야. 그리고 그림의 가격도 더 상승하겠지. 지난번 영상에서 은우의 꿈이 아프리카에 학교를 지어주는 거라고 했는데 그림이 비싸게 팔리면 학교를 짓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김다미는 [블랙 레오파드 2]의 채널로 돌아가 댓글을 달았다.

┗ 은우가 카를로스예요. 카를로스가 은우구요.

┗ 카를로스는 대체 누구? 잘못 들어오신 거 아닌가요?

김다미가 카를로스의 그림을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였다.

┗ 이거 보세요? 오늘 은우가 그린 그림이랑 그림체가 비슷하지 않나요? 은우는 이미 카를로스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입니다.

┗ 세상에 은우 대체 다섯 살에 직업이 몇 개야? 배우, 가수, 이제 그것도 모자라서 화가까지. 난 삼 년째 취준생인데. 이거 레알 실화임?

┗ 은우가 화가였다니? 화가였다니? 근데 이건 소속사에서 확인해줘야 하는 정보 아님. 이렇게 카더라로 말해도 되나?

┗ 은우가 카를로스면 전 너무 좋을 거 같은데요. 다음번 앨범 표지는 은우가 그린 그림으로 하면 멋질 거 같아요.

┗ 저도 은우 그림 사고 싶어요. 소속사에서 팔아주면 좋겠다.

┗ 은우 굿즈 너무 가지고 싶은데 은우가 자기 자신을 그려서 굿즈로 만들면 좋겠다.

┗ [블랙 레오파드 2]가 개봉되면 은우 굿즈도 나오고 와찰라 굿즈도 나오지 않을까요? [블랙 레오파드 2] 너무나 기대됩니다. 개봉일만 기다리고 있어요.

┗ 저도요. 목이 빠질 지경. 소속사에서 은우가 카를로스라고 하면 내일 각 포털 사이트에 은우 이름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 사실이면 그렇겠죠. 인정. 큰 뉴스임.

***

태현은 갑자기 밀려드는 전화로 분주해졌다.

“네? 은우가 카를로스냐고요? 카를로스가 누군데요? 대체? 네, 뛰어난 화가라구요? 지금 [블랙레오파드 2] 채널에서 은우가 카를로스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고요?”

전화를 끊은 태현은 정신이 없었다.

‘은우가 그림을 그린다고? 기자들에게 계속 전화가 오는 걸 보면 빨리 확인해서 공식 기사를 내야 할 것 같은데.’

태현은 길동에게 전화했다.

길동은 촬영장의 더위를 잊기 위해 선풍기 앞에서 얼음을 씹어먹는 중이었다.

“길동아, 은우가 카를로스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데 사실이니?

“카를로스요? 글쎄요.”

은우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 같긴 했지만 이미 화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믿기가 힘들었다.

‘은우 스케줄은 내가 대부분 다 알고 있는데.’

은우의 어린이집 친구들도 태권도장 친구들도 알고 있는 것이 길동이었다.

“컷.”

마침 촬영이 멈추는 소리가 나자 길동은 은우에게 가서 물었다.

“은우야. 지금 한국에서 난리가 났데. 네가 카를로스라는 이름으로 화가로 활동했다는 데 사실이야?”

은우는 고민하던 문제가 터졌음에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할아버지에게 먼저 대답해 드리기로 했는데 팬들이 먼저 알아버렸네. 있다 촬영 끝나고 할아버지께 전화해서 알려드려야겠다.’

은우가 대답했다.

“횬아, 제갸 카를로스예요. 할아버지갸 제 그리미 조타고 자랑하시댜가 전시회까지 하게 대떠요. 긍데 제갸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니까 그림까지 그리는 걸 알면 안 조을까뱌 숨긴 거예요.”

“진짜?”

길동은 묘한 감정이었다.

‘은우에게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니 서운해. 하지만 은우가 화가로 활동할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니 대견스럽기도 한걸.’

길동은 태현에게 말했다.

“형, 은우가 카를로스가 맞다고 하는데요. 팬들이 서운해하지 않게 형이 기사 좀 잘 내주세요. 부탁드려요.”

“알았어. 내가 최대한 신경 써 볼게.”

태현은 전화를 끊고 나서 중얼거렸다.

“은우는 정말 대단해. 소속사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이렇게 기삿거리도 만들어주고 이슈거리도 만들어주고. 지난번 불안 증세 때문에 걱정했는데 [블랙 레오파드 2]와 함께 세상을 시선을 끌 사건 하나를 더 만들어내다니.”

몇 시간 뒤 인터넷에는 HO 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한 기사가 나왔다.

[익명의 화가 카를로스 은우로 밝혀져.

5-6개월 전 익명의 화가 카를로스가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었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신인이었지만 뛰어난 그림 실력만으로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과자 봉지, 상자 등에 그린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들은 사람들은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몇몇 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은 대가인 박수근이나 이중섭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신비주의 컨셉 때문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그림 편수도 많지 않아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활동에 제약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 전 [블랙 레오파드2] 촬영 현장에서 찍은 영상으로 인해 은우가 카를로스라는 팬들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팬은 은우가 그린 그림이 카를로스와 유사하다는 점을 터치와 선, 그리고 대상을 간략화하는 그의 수법을 증거로 들어 주장하였다.

은우에게 확인한 결과 은우는 자신이 카를로스가 맞으며 다만 연예인으로의 활동에 제약이 생길까 두려워하여 카를로스임을 밝히지 못했다고 시인하였다. 은우는 팬들에게 절대 숨기려고 한 의도는 없었으며 자신의 그림이 연예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화가들보다 더 높게 평가된다면 다른 화가들에게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은우는 앞으로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더 활발한 작품활동을 약속드리겠다고 본지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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