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63화 (163/257)
  • 163화. 동생을 만나다 (4)

    [이은우, 불안 증세로 잠정 활동 중단.

    이은우가 불안 증세를 호소해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소속사 HO 엔터테인먼트는 25일 공식 팬커뮤니티를 통해 “이은우의 미니앨범 1집 일정을 포함한 모든 일정을 중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HO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은우는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은우 부모님과 상의를 거쳐 현재 상태에 대해

    전문적인 의료 조치의 추가 진행을 비롯한 절대적인 안정과 휴식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티스트의 건강 상태는 무엇보다 중요해 이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조치하기 위해 1집 미니앨범 활동을 포함한 모든 일정이 당분간 잠정 중단되었음을 알려 드린다”며 “이후 변동 사항에 대해서는 다시 안내하겠다. 은우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팬분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은우는 지난 18일 1집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난 너무 귀여워]로 [당신의 가요]에서 1위를 차지했다. [따따따]가 4위, [크레파스] 역시 15위를 달리고 있어 후속 활동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초록창의 은우 티비 역시 은우의 활동 중단 소식으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은우 티비의 한 관계자는 은우 티비는 은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채널 주인공을 교체할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은우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고 전했다.]

    은우의 활동 중단 소식에 가장 먼저 뒤집어진 것은 재롱이들이었다.

    ┗ 연 : 은우가 아프다니 우리 은우가?

    ┗ 장난꾸러기 : 은우 많이 아픈 걸까요? 저 기사 읽은 뒤부터 일이 손에 안 잡혀요.

    ┗ cucu 편의점 : 활동을 중단할 정도면 심한 거 같은데. 어떻게 해요?

    ┗ 아아 : 지난주에 [당신의 가요]에서 1위 할 때만 해도 괜찮은 거 같았는데. 지렁이춤 출 때 너무 행복해 보였는데.

    ┗ 살좀빼보자T : 은우가 말하지 못했던 거 아닐까요?

    ┗ 거대고냥이 : 전 알 거 같아요. 그 기분. 저 어렸을 때 친구들이 저 왕따시켰는데 집에 와서 엄마한테 말할 수가 없었어요. 걱정하실까 봐.

    ┗ 쿠키 없어 : 은우는 아빠를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 쭈녀구 : 은우가 힘든 걸 몰랐다니. 우리 은우 팬 맞는 걸까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요.

    ┗ sylv : 걱정되긴 하지만 은우를 믿고 기다려봐요. 은우는 긍정적인 아기니까 곧 다시 좋아질 거예요.

    ┗ 에티우 : 근데 이제 은우 영상 볼 게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죠?

    ┗ 레아 : 저도요. 스트레스 뭐로 풀죠? 큰일이다.

    ┗ 메르세데스 : 기도합시다. 우리. 어서 은우가 나으라고 기도합시다.

    ***

    채드윅은 [블랙 레오파드 2] 대본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왕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즈칸을 이끌 위대한 모습으로]

    키보드에서 손을 뗀 채드윅은 책상 위에 놓인 듀크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잘 보고 있지? 듀크. 네가 살아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난 그래도 네가 하려던 일을 이어서 해 갈 거야. 영화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놓으려던 게 우리 계획이었잖아. 그치? 나 혼자서라도 꼭 해낼게.’

    사진 속에선 듀크가 응원한다는 듯 웃고 있었다.

    채드윅은 듀크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안고 사진을 어루만졌다.

    사진 속에선 스무 살 대학생인 듀크가 밝게 웃고 있었다.

    채드윅은 듀크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벌써 사십 년도 더 된 일이네. 그땐 흑인들에 대한 처우가 진짜 열악했었지. 차별당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쩜 그 차별이 없었다면 우린 만나지 못했을지도 몰라.’

    12살 초등학교 4학년이던 채드윅은 학교가 끝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딸기 맛 아이스크림요.”

    채드윅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그때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일곱 살 꼬마가 채드윅에게 말했다.

    “아빠 저 흑인은 왜 우리랑 같은 아이스크림 집에서 아이스크림 먹어요. 더럽게.”

    꼬마의 아버지인 듯 보이는 중절모를 쓴 백인 남성이 대답했다.

    “빨리 사서 나가자꾸나. 더럽게.”

    채드윅은 화가 나서 주먹을 쥐었다.

    ‘내가 왜 더러워? 난 벌레가 아냐. 나도 돈 내고 사 먹은 거라고.’

    그때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한 흑인 아이가 채드윅은 손을 잡고 속삭였다.

    “참아. 여기서 우리가 화내면 상황만 나빠져. 여기서 빨리 나가자. 누가 빨리 달리나 시합. 하나, 둘, 셋.”

    채드윅은 자신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미처 먹지 못한 딸기 맛 아이스크림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깝지 않았다.

    한참을 달린 뒤 아이가 멈춰 섰다.

    “미안해.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괜찮아.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더라.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어.”

    “나도 그랬어.”

    “정말?”

    채드윅은 놀란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좋아서 참았던 건 아니니까. 화내서 달라질 게 아니라서 참았어. 내가 화낸다고 해서 세상은 달라지지 않아. 난 영화로 세상을 바꿀 거야.”

    채드윅은 눈앞에 서 있는 흑인 아이가 위대해 보였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런 멋진 말을 할 수 있다니. 우린 초등학생일 뿐인데.’

    흑인 아이가 채드윅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안녕. 난 듀크야. 넌 이름이 뭐야?”

    “채드윅.”

    “반가워. 채드윅. 넌 꿈이 뭐니?”

    꿈이라는 것에 대해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채드윅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이 시간을 끌면 초라해 보일까 봐 대충 멋있는 것으로 둘러대야겠다고 결심한 채드윅이 대답했다.

    “농구 선수. 난 키가 커서 농구를 잘하거든.”

    “멋지다. 채드윅. 그럼 넌 농구 선수가 되고 난 영화감독이 돼서 세상을 바꿔보자.”

    채드윅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

    은우는 창현과 함께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은우야. 힘내.”

    “은우야. 아프지 마.”

    플래카드를 든 팬들이 은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은우야, 이것 좀 먹어봐.”

    “은우야, 좀 쉬어도 괜찮으니까 푹 쉬어. 우린 늘 네 팬이야.”

    은우가 팬이 준 선물을 작은 두 손으로 받았다.

    “걈샤함니댜.”

    은우는 자신이 팬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 활동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오해가 너무 커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었어.

    난 여전히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은데. 무대에 서는 게 좋은데.

    스트레스로 아프다고 생각하다니.

    전생의 동생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은우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걱정하지 먀세요. 갠챠나요.”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 팬이 은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은우야, 기억해? 네가 전에 그림 그려줬던 경자 할머니야. 네 그림 덕분에 요새 많이 웃고 지낸단다. 아파서 어쩌누? 아픈데도 어찌 그리 웃고 지냈어? 맘 아프게.”

    “개차냐요. 하뮤니.”

    “아니야.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해도 된단다. 참지 마. 할미가 살아보니 인생이 참 짧아.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널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내고. 이건 네가 그때 잘 먹길래 잡채랑 불고기랑 싸 왔어.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언제든 놀러와.”

    “할뮤니 따랑해요.”

    은우가 경자 할머니에게 안겼다.

    경자 할머니에게서는 포근한 살 냄새가 났다.

    ‘전생의 엄마한테서도 이 냄새가 났었어. 내가 너무 좋아하는 냄새.’

    은우는 강아지처럼 할머니에게 파고들었다.

    은우를 보는 창현의 마음이 복잡했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아프다니.

    분명 은우는 팬들을 좋아해. 팬들도 그렇고.

    은우와 팬은 나와 은우 사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야.

    음반 활동이 무리였던 것 아닐까? [위대한 목소리] 영화를 촬영할 때나 [겨울나라 2] OST를 부를 땐 무리가 없었는데.’

    ***

    은우는 창현과 함께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정우가 반갑게 은우를 맞이했다.

    “횬아, 와떠?”

    정우는 강아지처럼 졸졸졸 은우를 따라다녔다.

    “냐옹.”

    은우를 본 노랑이가 은우의 다리에 몸을 부볐다.

    은우가 노랑이를 만져주었다.

    “노랑야, 너도 잘 자떠.”

    현정이가 퐁퐁이를 안고 나타났다. 현정이는 늘 쓰는 빨대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안녕, 은우야. 나랑 가치 외계로 신호를 보내지 아늘래?”

    “응.”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프리카로 신호를 보내고 싶어. 현정아. 동생이 잘 있는지 너무 궁금해.’

    현정이는 은우가 자신과 함께 놀겠다는 말에 신이 났다.

    “여기 내 안테나도 이떠. 가치 가 보자.”

    현정이는 자신의 아지트인 미끄럼틀 옆으로 은우를 데려갔다.

    정우와 노랑이가 쫄랑쫄랑 은우를 따라왔다.

    현정이는 수녀님이 사 준 아기용 텐트 안에 자신의 보물들을 모두 숨겨놓았다.

    현정이가 은우와 정우에게 말했다.

    “여기 안쟈.”

    정우와 은우가 자리에 앉았다.

    “혼자 하는 거보댠 함께 햐는 게 소언이 잘 이루어진대. 이루고픈 소언 이떠?”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늘 혼자 놀던 현정이는 자신과 함께 외계인 놀이를 해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에 신이 났다.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소언을 외계인의 말로 외우세요.”

    정우가 번쩍 손을 들었다.

    “현정이 눈나, 외계이니 머야?”

    “다른 벼레 이는 샤람. 우리 엄마처럼. 슈녀니미 그러는데 사라믄 주그면 벼리 된데.”

    “현정이 눈나 머찌다.”

    정우가 감탄한 듯 현정이를 우러러보았다.

    현정이가 말을 이었다.

    “빨대 머리띠가 하나뿌니니까 이건 정우에게 빌려 주께. 은우는 내 안테나를 쓰자.”

    현정이가 정우에게 빨대 머리띠를 씌워주었다.

    “우아, 나 외계이니랑 말할 뚜 이따.”

    정우가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은우는 현정이가 만든 나무젓가락 안테나를 두 손에 조심스럽게 쥐었다.

    현정이가 말했다.

    “소어는 말하지 아나도 대요. 간절하게 여러 번 빌면 소언이 이루어져요.”

    정우가 외쳤다.

    “냐는 매일매일 아이스크림 멍는 거.”

    현정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소그로 생각하떼요. 그래야 이루어져요.”

    “실슈.”

    정우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은우는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동생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이 오해를 풀고 다시 팬들을 만나고 싶어요.

    지금 저에겐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져요.

    갑자기 모든 게 실처럼 꼬이기 시작했어요.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전 너무 어려요.

    전 왜 다섯 살인 걸까요?’

    정우는 두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었다.

    ‘아이스크림 매일 매일 먹게 해주세요. 이빨 안 썩게 해주세요.’

    현정이도 두 눈을 꼭 감고 소원을 빌었다.

    ‘엄마를 만나게 해주세요. 엄마한테 제가 잘 있다고 전해 주세요. 수녀님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어린이집 친구들이랑 잘 지내게 해주세요.’

    혼자 눈을 뜬 노랑이가 소원을 다 들었다는 듯이 울고 있었다.

    “냐옹. 냐아옹.”

    노랑이의 목에 달린 고양이 말 번역기에서 번역이 완료되었다.

    [걱정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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