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라이키 광고 (1)
길동은 은우와 함께 광고 촬영장으로 가고 있었다.
운동마니아인 길동은 은우가 라이키 광고 모델이 된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라이키 광고는 정말 특별하지. 국가 대표급 운동선수는 돼야 할 수 있는 건데 그걸 우리 은우가 하게 되다니. 장하다. 이은우.’
길동은 자신이 씨름선수이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시절 가장 아쉬웠던 게 있다면 씨름엔 국가대표가 없었다는 거.
그리고 씨름선수 중엔 라이키 모델이 된 사람이 없었다는 것.’
라이키 광고는 운동선수들 중에서도 인기 종목인 축구나 야구 선수는 돼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비인기 종목인 씨름선수이던 길동에게 라이키 광고는 다가갈 수 없는 먼 산처럼 느껴졌다.
‘은우야 네가 나의 못 이룬 꿈을 이루는구나. 역시 은우 매니저 하길 잘했지.’
길동은 은우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길동이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먹고 싶은 거 없어?”
“요구르트.”
“요즘 꽂힌 건 요구르트구나. 그래, 좋았어. 요구르트.”
맘 같아선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주고 싶었지만, 은우 매니저를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은우는 근래에 꽂힌 것을 한동안 계속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길동은 근처 마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은우야. 잠시만 여기 있어. 금방 사 올게.”
“횬아. 빨대 마니. 이따 스텝들 거또 사요.”
길동은 은우를 위해 요구르트를 사서 돌아왔다.
은우는 빨대를 뜯어서 다섯 개의 요구르트에 나란히 꽂았다.
“무어시 무어시 똑가틀까. 빨대 다섯 개가 똑가타요.”
은우는 신이 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요구르트를 마셨다.
***
이번 라이키 광고를 담당하게 된 PD 장준호는 광고 기획안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트레이닝복도 귀여울 수 있다는 컨셉이라. 이거 너무 무리수 아닌가?
기존 라이키가 지녀온 컨셉과 너무 다르잖아.’
장준호 PD는 라이키 마니아였다. 평소에도 운동복 스타일을 좋아하는 그는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라이키 브랜드로 치장하고 있었다.
운동화를 수집하는 수집광이기도 해서 매년 사는 라이키 운동화만 50켤레가 넘었다. 그의 집에는 따로 운동화 방이 있을 정도였다.
‘기존 라이키 광고는 스포츠 정신을 강조하는 게 많았지. 흑인 운동선수를 전면에 내세워 차별에 반대하거나 장애를 가진 운동선수들을 모델로 기용해 인간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거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라는 문구를 던져주거나.’
장준호 PD는 라이키 광고들을 사랑했다.
그것들은 운동의 욕구를 끌어올리는 데 좋았으며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을 때 보아도 좋은 광고들이었다.
‘그러니까 그 광고는 누가 보아도 명작이었는데 말이야. 트레이닝도 귀여울 수 있다라니? 이게 라이키 정신에 맞냐고? 무슨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예쁜 운동복을 판매하는 칠라 같은 브랜드도 아니고 말이지.’
장준호 PD는 라이키 본사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델 이은우. 사회적인 영향력도 좋고 요새 잘 나가고 팬도 많고. 다른 광고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5살 아기를 데리고 스포츠 광고를 찍으라니 아동복도 아니고. 대체 라이키를 위해 이은우를 섭외한 거야? 아니면 이은우를 위해 라이키를 섭외한 거야? 알 수가 없어.’
은우를 만나기 전까지 장준호 PD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은우는 길동의 차에서 내려 스텝들에게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이은우임니댜.”
은우는 작은 손으로 스텝들에게 야구르트를 하나씩 건넸다.
은우의 요구르트를 받은 스텝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너무 귀여워. 이 요구르트 좀 봐.”
“구내식당에서도 주잖아. 그땐 이렇게 안 좋아하더니. 은우가 주니까 귀엽데.”
“나 이 요구르트 안 먹고 보관할 거야. 은우가 준 거잖아.”
“맙소사.”
스텝들은 저마다 은우와 요구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준호 PD는 은우가 준 요구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구르트라. 식당이 아닌 곳에서 요구르트를 받다니 이게 얼마 만이지?’
밥차나 커피차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요구르트 선물은 받은 적이 없었다.
‘되게 사소한 건데 기분이 이상하네. 묘하게 귀여워.’
장준호 PD는 은우가 귀엽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래서 사람들이 이은우, 이은우 하는구나. 하긴 그러니까 타이틀곡이 [난 너무 귀여워]지. 대놓고 자신이 귀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은우는 촬영 준비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미선이 은우에게 옷을 입혀주며 말했다.
“은우야. 이거 우리 은우를 위한 옷인가?”
새로 나온 라이키의 트레이닝복은 크롭 스타일로 짧은 티셔츠와 발목을 드러내는 7부 스타일의 바지가 특징이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니 은우의 귀여운 볼록한 배와 두꺼운 일자 발목이 드러났다.
“우리 은우 너무 귀여워.”
미선이 옷을 입은 은우를 꼬옥 안아주었다.
미선은 은우의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 주었다.
“오늘의 뉴 헤어스타일.”
미선은 나이키에서 준 스티커를 은우의 손등에 붙여주면서 말했다.
“공룡변신 로봇도 아니고 나이키에서 이런 스티커를 만들다니 의외인데? 은우 덕분에 스티커가 큰 유행이 됐어.”
은우는 나이키 스티커를 붙인 후에 오른손을 주먹을 쥐고 외쳤다.
“변신 완료 출동!”
세트장에는 은우를 위해 미니 농구장, 미니 축구장, 미니 야구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장준호 PD는 세트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무슨 [스몰 월드]도 아니고 말이지.’
언젠가 홍천 근처에서 본 미니어처 마을이 떠올랐다. [스몰 월드]는 사진 명소로 귀여운 사진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손가락 위에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올려놓거나 입을 벌리고 백악관을 먹는 사진 등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스몰 월드]였다.
은우가 세트장으로 들어서자 장준호 PD가 오늘 찍을 장면에 대해 설명했다.
“은우야 여기서 이 농구공을 가지고 튕기면서 농구를 하다가 여기 골대에 슛을 하면 돼. 멀리서 넣는 장면도 찍고 손을 넣어서 직접 넣는 장면도 찍을 거야. 여긴 너만 있지만 실제 광고에서는 CG 작업을 해서 마이클 조던이 너와 함께 농구를 하게 될 거야.”
“그럼 칭구가 이따고 생각하고 해요?”
“그렇지. 친구와 함께 농구를 하는 거야.”
오늘의 광고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의 어린 시절을 CG로 복원하여 은우와 함께 운동하는 장면을 찍는 것이었다. CG로 복원되는 장면이 크기에 상상력이 중요한 장면이었다.
“잘할 뚜 이떠요.”
은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상 속의 친구와 노는 거라면 자신 있어.’
은우는 파리넬리이던 시절에 노래 연습만 하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이 없었다.
그때부터 은우는 심심할 때마다 마음속의 친구를 불러내어 함께 놀았다.
‘이번 생에선 신기하게도 퐁퐁이가 현실의 나를 찾아왔지.’
퐁퐁이를 만난 후 상상 속의 친구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진 은우였다.
은우는 자신의 몸에 맞게 축소 제작된 농구공을 들고 코트에 섰다.
은우가 공을 낮게 튕겼다.
“앗.”
공은 한 번 각도를 빗나가자 또르르 굴러서 코트 밖으로 멀어져 갔다.
스텝이 공을 주워서 은우에게 던졌다.
은우는 공을 받으며 해맑게 웃었다.
“헤헤헤. 거마어어.”
은우는 천천히 공을 튕겼다.
은우를 바라보는 장준호 PD의 마음은 심란하지 그지없었다.
‘그럼 그렇지. 다섯 살 아기에게 농구, 축구, 야구가 쉽겠어? 이번 촬영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골치가 아프다. 은우 동작도 CG로 해야 하나? 그럼 자연스럽지가 못할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대역을 구해놓을 걸 그랬나? 그치만 마이클 조던이 살아오지 않는 한 다섯 살 농구 천재가 있을 리가 없지. 대부분 은우처럼 공 튕기는 것도 잘 못 할 테지.’
은우는 천천히 공을 튕겼다. 하지만 또다시 공은 코트를 벗어나 또르르 굴러갔다.
스텝이 공을 주워 은우에게 던져주었다.
“거마어요.”
은우는 밝게 웃으며 다시 공을 튕기기 시작했다.
‘너무 어려운데 그냥 공을 들고 가서 골대 안에 넣을까?’
은우는 공을 들고 농구 골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농구공을 잡고 까치발을 디뎠다.
그리고 골대 안으로 공을 넣었다.
“골인.”
은우는 공을 넣고 나서 신이 나서 엉덩이를 쭉 내밀고 양쪽으로 흔드는 춤을 추었다.
“고린. 고린. 고린.”
스텝들은 그런 은우가 너무 귀여워서 숨죽여 웃었다.
장준호 PD는 머리가 아파 왔다.
‘그래, 저게 평범한 다섯 살 아기의 농구 실력이겠지. 은우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지만, 운동은 못 하는구나. 덕분에 라이키 광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견적이 안 나오네.아, 담배 피고 싶다.’
장준호 PD는 차라리 모델을 바꾸고 싶었다.
‘제일 쉽게 가는 건 모델을 바꾸는 거야. 다섯 살짜리가 농구를 어떻게 하냐고? 축구, 야구도 똑같을 텐데. 대체 왜 라이키는 은우를 광고 모델로 쓰고 싶어 하는 거야?’
장준호 PD는 라이키 본사에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다.
코트 위에는 여전히 엉덩이춤을 추고 있는 은우가 있었다.
‘난 심란해 죽겠는데 은우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걸어가서 공을 넣고 골인이라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장준호 PD는 은우의 웃음의 이유가 궁금했다.
‘웃는 게 귀엽긴 하네. 그럼 아예 콘티를 다시 짜서 운동하는 장면을 모두 빼야 하나?’
은우가 신이 나서 농구공을 다시 튕기기 시작했다.
공은 다시 굴러가고 은우는 웃으면서 공을 따라갔다.
“헤헤헤헤헤.”
장준호 PD는 은우를 보다가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가만있어 봐. 어차피 모든 다섯 살짜리가 공을 잘 못 튕긴다면? 그걸 잘 튕기게 포장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결국 모든 스포츠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 정해진 방식으로 잘해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지 몰라.
은우는 은우의 방식대로 농구를 즐기고 있는 거야. 규칙도 모르고 점수 계산도 할 줄 모르지만 혼자서도 저렇게 즐겁게 즐기고 있는 거야.’
은우가 다시 공을 들고 골대 앞에 섰다.
이번에는 골대에 손을 대지 않고 삼십 센티 정도 떨어져서 슛을 날렸다.
첫 번째 공은 골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헤헤헤헤.”
은우는 공이 골대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즐거워하며 웃었다.
은우가 두 번째 공을 던졌다. 두 번째 공은 첫 번째 공보다 가까웠지만, 여전히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스텝이 은우에게 새로운 공을 던져주었다.
“거마어어.”
은우는 인사를 한 뒤에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세 번째 공은 골대를 맞고 튕겨서 밖으로 나왔다.
“아까어.”
은우는 아쉬워했지만 새로운 공을 또 던졌다. 공은 아슬아슬하게 골대 위를 돌다가 가까스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고린. 고린. 고린. 지규를 구하쟈.”
은우는 신이 나서 엉덩이를 쭈욱 빼고 엉덩이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이은우. 허공 중에 은우의 이름이 새겨졌다.
장준호 PD는 은우를 보며 광고를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즐기는 자가 진정으로 스포츠를 할 줄 아는 자다. 은우는 스포츠 정신을 가지고 있는 아기야. 은우의 모습들을 잘 포착하면 새로운 라이키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동안의 라이키 광고는 사실 너무 각박하긴 했어.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장애인 모델을 기용할 때도 그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한 노력을 강조했지. 노력하는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재밌게 즐기면서 하는 건데, 라이키 광고에는 그게 없었어.
이번 광고는 은우를 통해서 행복하고 귀여운 스포츠 정신을 그려낼 거야.
은우는 비록 마이클 조던보다 농구를 한참 못하지만, 마이클 조던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농구를 할 수 있는 아기지. 그건 소비자들도 마찬가지야. 소비자들 중에 마이클 조던처럼 농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농구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어. 농구의 규칙을 하나도 모르는 은우가 공을 튕기면서 행복해하는 것처럼 말이야.
이번 광고는 그런 모습들을 담을 거야.’
장준호 PD는 라이키 광고의 모델로 은우가 기용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어쩌면 이번 광고가 내 PD 인생에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