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소풍은 즐거워 (2)
소풍 전날 은우는 방 안에 과자를 늘어놓고 고르는 중이었다.
“손가라게 끼워 머글 뚜 인는 옥수수 과자도 가져가는 게 조게찌?”
“멍멍(너 소풍 가방 벌써 5번째 풀었다 다시 싸고 있는 거 알아? 피곤할 텐데 어서 자. 과자는 매일 먹잖아. 못 가져가면 집에 와서 다시 먹으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
“내일 너무 기대대서 잠이 안 와.”
“멍멍(너도 참. 너 인생 3회차 맞아? 이럴 때 보면 꼭 진짜 애 같다니까.)”
“파리넬리일 땐 소풍 가튼 거 엄떠더. 그리고 파드와일 땐 먹고 살기도 바빠떠. 넌 크리스일 때 어때떠?”
“멍멍(너도 참 힘든 2번의 인생을 살았구나. 파리넬리는 되게 화려하고 위대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널 만나서 보니 넌 대단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아닌 거 같기도 해. 내가 크리스일 땐 난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해서 소풍 같은 거에 관심이 없었어. 난 내가 소풍 안 가겠다고 하고 그날 혼자 수학 문제 풀었어. 집에서.)”
“소풍을 안 가따고?”
“멍멍(소풍 가 봤자 재미도 없고 가서 밥만 먹고 오는 거 뭐하러 가? 밥은 집에서도 먹잖아. 난 친구도 없고 또 다른 애들이 뭐 하고 노는지도 관심이 없었거든. 애들이랑 노는 거보단 수학 문제 푸는 게 더 재밌었어. 내 머리는 온통 수학으로 가득 찼었어.)”
“수학만 인는 인생이라니. 놀라어.”
“멍멍(놀랄 것까지야. 생각해 보면 네가 과자 보면서 설레하는 거랑 비슷한 걸 수도 있어. 다만 난 그 설렘의 대상이 수학이었고. 세상에 과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훨씬 더 적다는 그런 차이만 있는 거지.)”
“똑똑하댜. 이보리. 징쨔 넌 강아지로 살기 아까어.”
“멍멍(처음 강아지로 태어났을 땐 너무 절망적이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강아지의 삶에 적응한 거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도 간식 하나만 줘.)”
보리가 코로 자신의 간식장을 가리켰다.
“아라떠.”
***
백수희는 주문한 유부초밥 키트 설명서를 읽고 있었다.
‘은우 첫 번째 소풍인데 내가 유부초밥이라도 만들어 줘야지. 이건 김밥보다 쉽다고 상품평에 적혀 있었으니까 할 수 있을 거야.’
백수희는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리고 비닐장갑을 꼈다.
‘초밥에 들어갈 재료도 이렇게 믹스로 다 들어있구나. 세상 편한데?’
백수희는 햇반에 야채 믹스와 조미용 소스를 넣고 조물조물 양념이 섞이도록 밥을 주물렀다.
‘밀키트 정말 좋네. 이것만 있으면 나도 더 이상 요알못이 아닐 거 같아. 은우한테 다른 요리도 해 줄 수 있겠는데.’
새로운 기대로 설레는 백수희였다.
‘이제 밥 양념은 다 됐으니까 밥을 유부에 넣고 눈, 코, 입만 붙이면 되네.’
백수희가 구입한 유부초밥 키트는 유부초밥에 표정을 그려 넣을 수 있는 키트였다.
귀여운 표정 때문에 아기들이 좋아해서 아기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난 키트였다.
백수희는 유부 안에 밥을 채워 넣었다.
‘쉬워. 쉬워. 오늘 아주 일이 일사천리로 잘 되네. 난 요리 천재였나 봐.’
마지막 단계인 눈, 코, 입 붙이기는 김으로 하게 되어 있었다.
백수희는 김이 들어있는 비닐을 뜯었다.
‘김이 진짜 가늘고 작네. 이걸 붙이라는 거지?’
백수희는 조심조심 작은 김 조각하나를 떼서 유부초밥 위에 붙였다.
‘눈은 됐고 코랑 입이 남았네. 너무 작으니까 붙이기 어려워.’
백수희는 다시 조심조심 코랑 입을 놓았다.
‘눈, 코, 입이 너무 붙어서 하나도 안 귀엽잖아. 가만 이거 다시 떼었다 붙여도 되나?’
백수희는 천천히 눈, 코, 입을 떼고 새로운 눈, 코, 입을 붙였다.
‘이번엔 좀 더 낫네. 가만있어 봐. 이거 대체 몇 개를 붙여야 하는 거야?’
접시에 놓은 유부초밥은 총 12개.
‘그러니까 총 12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진짜 눈, 코, 입 붙이다 사람 성질 다 버리겠다. 아, 짜증 나.’
백수희는 눈, 코, 입 붙이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역시 난 요리랑은 안 맞아. 담엔 혹시 완제품도 나오나 찾아봐야겠다. 근데 아빤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들었었지?’
백수희는 초등학생 시절 아빠가 싸 준 도시락을 떠올렸다.
백인수의 뛰어난 솜씨 덕에 백수희의 도시락은 예쁜 도시락으로 전교생에게 소문이 나 있었다. 소풍 가는 날이면 다른 반 친구들까지 백수희의 도시락을 보러 오곤 했었다. 백수희의 도시락 위에는 귀여운 곰돌이 인형이 그려져 있기도 했고 문어와 고래가 함께하는 바닷속 세상이 펼쳐지기도 했다.
‘모두 엄마가 싼 도시락인 줄 알았지. 덕분에 내가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은 알지 못했어.’
백수희는 백인수의 예쁜 도시락이 그리워졌다.
***
소풍날 어린이집 친구들은 이태석 신부님과 김 마리아 수녀님과 함께 아기 동물원 앞에 모여 있었다.
아기들은 첫 소풍의 설렘에 동물원에 대한 기대까지 겹쳐 신나 있었다.
혜린이가 말했다.
“난 이따가 사자한테 사인받을 거야.”
듣고 있던 시우가 대답했다.
“사자는 무서어서 사인 못 바댜.”
지호가 두 손으로 사자의 앞발을 흉내 내며 말했다.
“사자가 어흥 한다.”
연아가 말했다.
“난 돌고래!”
아기들은 저마다 보고 싶은 동물을 외쳤다.
은우는 생각했다.
‘판의 재능을 보리하고만 써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동물원에서 모든 동물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을 거야.’
아기들이 처음 만난 동물은 돼지였다.
“와, 돼지 진짜 크다.”
은우는 코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고 돼지 흉내를 내었다.
“꿀꿀꿀꿀. 은우 대지댜.”
“꿀꿀꿀꿀. 시우 대지댜.”
“꿀꿀꿀꿀. 지호 대지댜.”
수녀님이 아기들에게 말했어요.
“꿀꿀꿀꿀. 어린이집에 돼지가 너무 많네.”
은우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대지 유치어니예요.”
돼지 옆 칸에 살고 있는 당나귀가 울었다.
“힝이힝.”
아기들은 당나귀의 큰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혜린이가 말했다.
“배가 고픈가 봐. 여기 당나귀 먹이가 있어.”
당나귀 옆에는 먹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건초가 놓여 있었다.
은우가 당나귀에게 먹이를 주었다.
당나귀는 은우가 준 먹이를 빠른 속도로 먹었다.
“잘 먹는댜.”
“냐도 져야지.”
은우를 보고 시우와 지호도 당나귀에게 건초를 주었다.
혜린이와 연아는 옆에 사는 양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다.
“양아. 양아. 배고프지? 이거 먹어.”
연아가 양에게 건초를 건넸다.
양이 건초를 받아서 먹었다.
혜린이가 양이 먹는 것을 보면서 말했다.
“귀엽다.”
“이거 뱌. 양이 웃었어.”
연아의 말에 준수, 시우, 지호, 은우도 양에게 갔다.
“진짜 웃었어.”
“양은 메에에에에.”
은우가 양의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머기 주는 거 재미따. 또 주러 가쟈.”
아기들은 다음 동물을 향해서 갔다.
다음으로 아기들이 마주친 것은 닭이었다.
“어떤 머기를 져야 하지?”
은우가 고민하자 김마리아 수녀님이 은우에게 닭의 모이가 든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은우는 닭장 앞으로 가 모이 봉투를 열었다.
봉투를 열자마자 닭 한 마리가 은우에게로 걸어오더니 모이가 든 봉투를 낚아채 갔다.
“달기 가져가떠.”
은우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닭을 쳐다보았다.
닭은 가져간 모이 봉투에서 사료를 쪼아서 먹었다.
은우의 옆에 있던 시우도 닭의 행동에 놀랐다.
“달기 배고파나 뱌. 달갸 이거또 가져가.”
시우가 자신의 모이 봉투도 주었다.
닭은 닭장 사이로 목을 내밀더니 시우의 모이 봉투도 가져갔다.
닭장 옆에는 병아리들이 있었다.
“병아리다.”
은우가 노란 병아리를 보고 외쳤다.
수녀님이 아기들에게 설명을 해 주셨다.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는 거야. 병아리는 달걀에서 나오는 거고.”
연아가 수녀님께 물었다.
“달갸리 병아리예요?”
“그렇지. 옆에 부화기가 있네. 마침.”
김마리아 수녀님은 병아리장 옆에 부화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기들을 모았다.
부화기 속에서는 병아리 한 마리가 반쯤 부서진 껍질을 까고 알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기들은 부화기 앞에 다리를 쭈그리고 앉았다.
시우가 말했다.
“우아. 병아리 좀 뱌. 진짜 달갸레서 나온다.”
연아가 주먹을 꼭 쥐고 파이팅을 하면서 병아리에게 말했다.
“병아리야 힘내.”
은우가 외쳤다.
“병아리 변신햔다. 변신.”
준수가 한쪽 팔을 앞으로 내밀며 변신 자세를 취했다.
“진짜 변신한다. 변신.”
병아리는 아기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머지 껍질을 모두 깨뜨렸다.
아기들은 병아리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참 잘해떠요. 병아리.”
“체고예요. 병아리.”
은우가 아기들에게 말했다.
혜린이가 말했다.
“병아리 귀엽다. 나도 병아리 기르고 싶다.”
연아도 동의했다.
“냐도 기르고 시퍼. 병아리 이쁜데.”
시우가 말했다.
“우리 이 병아리 가져가서 길러요. 네.”
수녀님은 난감했다.
‘노랑이, 까망이를 기르고 있는데 병아리가 생기면 노랑이, 까망이가 병아리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아기들이 놀라지 않을까? 아직 약육강식의 개념을 모를 거야.’
이태석 신부님이 아기들에게 말했다.
“병아리는 피곤해서 자야 해. 너희도 갓난아기였을 때 하루 종일 잠만 잤거든. 병아리도 아기라서 잠을 자야 해.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안 돼요.”
은우가 대답했다.
“네네네네네.”
시우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건 마쟈. 내 동생도 하루 종일 잠먄 자. 아기들은 하루 종일 자냐 뱌.”
아기들은 병아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혜린이가 토끼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토끼댜.”
아기들은 모두 토끼장 앞으로 달려갔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아기들에게 말했다.
“토끼는 봉지에 든 사료를 주어도 되고 당근을 주어도 된다는구나.”
은우가 당근을 들고 토끼장 앞으로 다가갔다.
토끼들이 당근 근처로 몰려들었다.
“토끼 당근 조아해.”
은우가 토끼에게 당근을 주면서 외쳤다.
시우도 당근을 들고 토끼장 앞으로 갔다.
시우 앞에도 여러 마리의 토끼가 모여서 당근을 얻어먹었다.
연아는 먹이를 주지 않고 토끼장 근처에 앉아 있기만 했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연아에게 물었다.
“연아는 왜 먹이를 안 주니?”
“무서어어. 귀여운데 무섭기도 해요.”
“그치. 그럴 수 있어. 꼭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된단다.”
“토끼가 배고플지도 모르니까 수녀님이 주세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연아를 위해 당근을 들고 토끼장으로 다가갔다.
연아는 토끼에게 다가가지 않은 채 말했다.
“마니 머거 토끼야.”
***
아기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혜린이가 도시락을 열자 너구리 캐릭터 모양의 샌드위치가 나왔다.
연아의 도시락은 고기가 듬뿍 들어간 주먹밥이었다.
은우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은우의 도시락 안에는 백수희가 열심히 눈, 코, 입을 붙인 유부초밥이 들어있었다.
혜린이가 은우의 도시락을 보며 말했다.
“초밥이 모자를 썼어.”
연아가 말했다.
“초뱌비 우꼬 이떠.”
은우는 백수희가 만들어준 도시락이 자랑스러웠다.
“우리 엄마갸 만드러 준 거야.”
시우가 은우에게 물었다.
“나 한 개만 머거뱌도 돼?”
“응.”
은우가 시우에게 유부초밥을 하나 주었다.
시우가 유부초밥을 먹으며 말했다.
“마디떠.”
시우의 말이 끝나자 다른 아기들도 은우에게 말했다.
“냐도 머거보고 시퍼. 은우야.”
“냐도.”
은우는 다른 친구들에게 초밥을 하나씩 주었다.
은우는 뿌듯했다.
‘엄마가 싸 준 도시락 진짜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