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데뷔 무대 (1)
길동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친 은우를 데리고 구슬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거맘뜸니댜. 횬아.”
은우가 차 문을 열고 내리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레인보우 세 개요.”
길동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형은 안 먹어.”
“미아내요. 횬아. 세 개 다 내 건데. 헤헤헤헤.”
“혼자서 세 개나 먹게? 은우 그럼 돼지 되는데.”
“대지대면 마니 머글 뚜 이쬬? 그럼 냔 대지댜.”
은우가 검지손가락으로 코를 올린 뒤에 돼지 소리를 냈다.
“꿀꿀꿀꿀. 아이스크리미 피료하다. 꿀꿀꿀꿀.”
길동은 은우를 보며 웃었다.
‘아이돌 아니어서 체중 관리 안 해도 되는 건 정말 좋다. 은우가 체중 관리를 해야 했으면 보는 내가 다 힘들었을 거야. 저렇게 좋아하는데.’
길동이 말했다.
“세 개 다 먹어. 돼지는 되지 말고. 지금보다 더 먹을까 봐 겁난다.”
“네니오.”
은우가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열고 작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떴다.
“횬아. 명서기는 언제 온댜고 해떠요?”
“곧 올 거야. 여기로.”
“헤헤헤헤. 명서기 빨리 와뜨면 조케다.”
은우는 아이스크림 통을 비어있는 의자 앞에 놓고 연기를 시작했다.
“자. 퐁퐁이. 퐁퐁이 한 입 하떼요. 아아. 퐁퐁이는 인형이라 머글 뚜 엄꾼뇨. 그럼 은우갸 머글게요. 아아.”
은우는 빈 의자 앞에 있는 상상의 퐁퐁이에게 수저를 가져가더니 자신의 입으로 쏘옥 스푼을 가져갔다.
“꿀마시네요. 자, 다음. 이보이. 이보이. 한 입 하떼요. 아아. 보이는 강아지라 머글 뚜 엄꾸뇨. 그럼 은우갸 머글게요. 아아.”
은우는 빈 의자 앞에 있는 상상의 보리에게 수저를 가져가더니 자신의 입으로 쏘옥 스푼을 가져갔다.
“꿀마시네요. 이제 은우 차례네요. 은우가 머거 볼까요? 은우 입은 하마만큼 크댜.”
은우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아이스크림 통을 들어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크으.”
옆에서 보고 있던 길동이 은우를 보며 기가 차서 말을 걸었다.
“은우야.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술 마시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야? 리액션이. 아저씨 같잖아.”
“횬아. 이건 진짜 마시뜰 때 하는 거랴고요. 가스미 뻥 뚤리는 그런 느낌. 영타기 땀톤이 그래떠요. 맥주를 마시면 가스미 뻥 뚤리는 느끼미라고요.”
길동은 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역시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니까. 그래도 따라 하는 것 좀 봐. 근데 혹시 예능이라도 나가게 되면 저 리액션 괜찮으려나?’
그때 아이스크림 가게의 문이 열리며 명석이가 들어왔다.
“은우야.”
“명서갸.”
명석이와 은우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마치 이산가족 상봉 같은데.’
길동은 은우와 명석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은우가 명석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려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명서갸 내가 아이스크리믈 시켜는데 퐁퐁이가 와셔 다 머거떠.”
명석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은우에게 되물었다.
“퐁퐁이갸?”
“응, 퐁퐁이갸 와서 다 머꼬 가떠.”
“흐잉.”
명석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길동이 명석이의 손을 잡고 카운터로 갔다.
“명석아. 아이스크림 새로 주문하자. 무슨 맛 먹을래?”
그때 은우가 등 뒤에서 소리쳤다.
“횬아. 나는 스트로베리마시량 초코 텐더요. 퐁퐁이랑 보리 거또.”
길동이 주문하는 동안 명석이는 은우의 옆자리로 왔다.
“명서갸. 나 오늘 뮤직비디오 지꺼떠. 보여주까?”
“응.”
“이건 사진인데. 길동이 횬아갸 찌거져떠. 내가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걸 아이스크림 속에서 수영하는 걸로 바꿔준대. 머찌지?”
“아이스크림 소게서 수영을 해? 머찌댜. 수영하다가 아이스크림 멍는 거야?”
“그거 진쨔 머지게따. 수영하면서 아이스크림 머꼬 십땨.”
은우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멋진 장면을 그려보고 싶어. 뮤직비디오에서 CG로 만든 영상과는 다른 느낌일 거야.’
은우가 명석이에게 말했다.
“명서갸. 우리 그림 그릴래? 아이스크림 소게서 수영하는 거.”
“신냔다.”
길동이 주문한 아이스크림을 테이블 위에 놓아주면서 말했다.
“그림은 집에 가서 그려. 여긴 종이도 없고 크레파스도 없잖아.”
명석이가 말했다.
“나 지나가다가 반는데 사람드리 벼게다가 그림 그린 거. 우리 동네에도 마니 이떠.”
“벽화 말하는 거야? 벽화는 어려울 텐데. 한 번 그리면 지워지지도 않고.”
은우는 생각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그림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할 거야.’
은우와 명석이 행복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길동은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아크릴 물감을 사면 될 것 같긴 한데. 근데 이거 남의 집에 막 그려도 되나? 구청 허가 같은 거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못하게 하면 은우가 상처받을 거 같은데. 일단 그리게 하고 있다 내가 새벽에 와서 몰래 지워야 하나.
지우는 법은 어려울까?’
명석이와 은우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에 골목을 걷고 있었다.
은우가 오르막길의 단독주택 앞에 멈춰 섰다.
“이 지비 조게떠요. 횬아. 며서갸. 그림 그리쟈.”
은우와 명석이는 사이좋게 붓을 들고는 아크릴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길동은 물통과 휴지를 들고 은우와 명석이를 따라다녔다.
‘은우가 노래는 잘하지만 그림도 잘 그릴 수 있을까? 남의 집 담벼락 망쳐놓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집주인이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가슴이 조마조마하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나.’
은우는 풀 위에 누워서 수영하는 아기를 먼저 그렸다.
“명서갸. 이거 너야.”
“와, 이게 나야?”
명석이는 신기한 듯 그림을 쳐다보았다.
“응, 난 아꺄 핸는데 넌 몯해 바뜨니꺄 내가 그려주는 거야.”
“거마어. 난 멀 그리지?”
“넌 내가 아기를 다 그리면 풀장을 색칠해.”
“응.”
명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대문이 열리며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길동은 말문이 막혔다.
‘두려워하던 게 현실이 되었네. 은우에게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할머니가 화내시면 어떻게 하지?’
은우와 명석이가 씩씩하게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할모니. 저는 은우예요.”
“저는 명서기예요.”
“아이구. 이쁜 아기들이네. 여기서 뭐 해?”
“그림 그려요. 할모니. 제가 명서기 그려주고 이떠요.”
“잘 그렸네. 여기 할머니도 그려줄 수 있을까?”
“할모니도요?”
“응. 여기다가 할머니도 이쁘게 그려줘.”
“네네네네네.”
은우가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길동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랐다.
“할머니. 정말 여기 그림 그려도 괜찮으세요?”
“괜찮아. 집이 오래되기도 했고. 나도 얼마 안 남았지만, 이 집도 얼마 안 남았을 거야. 오래되고 낡은 집 밝게 해 준다는데 뭐가 나빠. 나도 저렇게 이쁜 손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복이 없는지 자식이 없어. 영감 죽고 쓸쓸해.”
“할모니. 뜰뜰해 하지 마떼요.”
은우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뉘 집 손주인지 네 할머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 할머니 이쁘게 그려줘. 알겠지.”
“네네네네네.”
“난 요 앞 경로당에 나가는 길이라. 하루 일과야. 할 일도 없고 말이지.”
할머니는 천천히 경로당으로 걸어갔다.
은우는 생각을 정리했다.
‘아이스크림 풀 속에서 수영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명석이. 그리고 그런 명석이를 바라보는 할머니를 그려야겠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할머니.’
은우는 담의 구석에 할머니를 그리기 시작했다.
은우의 붓끝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쓰고 있는 할머니가 탄생했다.
‘할머니가 예쁘게 그려달라고 했으니까 할머니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게 해 드려야지. 허리도 꼿꼿하게 세운 모습으로 그릴 거야. 예쁜 구두도 신겨 드리고.’
은우는 천천히 집중해서 할머니를 그리기 시작했다.
명석이는 은우가 알려준 대로 풀장을 칠하기 시작했다.
길동은 은우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에 감탄했다.
‘처음엔 은우가 대체 얼마나 그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건 다섯 살짜리의 그림이 아니야. 서툰 듯하지만, 특징을 잘 잡았어. 아이스크림 풀 속에서 수영하는 명석이의 행복한 미소가 살아있고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봄날이 느껴져. 할머니는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그런 미소를 짓고 있어.
정말로 행복한 그림이다. 지워야 하나 걱정했는데 너무 멋진 그림이어서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대체 은우 너는 못 하는 게 뭐니?’
은우는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했다.
‘이 그림에 딱 어울리는 재능이 하나 있긴 해.’
은우는 재능을 불러왔다.
[올림포스의 천마 페가수스의 시인의 상상력 레벨 2.
당신이 상상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 앞에 시각, 청각, 촉각, 후각으로 느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림을 볼 때마다 아이스크림 속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일 거야. 헤헤헤헤.’
***
강라온은 은우의 첫 번째 앨범 반응을 체크 중이었다.
‘예약판매 105274. 첫날 판매 87624 둘째 날 판매 91342 셋째 날 판매 102351.
데뷔 앨범치곤 매우 좋은 성적이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닌데.
내 기대가 너무 컸나?’
강라온은 음원차트에서 은우의 순위를 체크했다.
‘수박에서는 타이틀곡인 [난 너무 귀여워]가 9위로 진입했어. [나의 강아지에게]는 18위로 진입했어. [비 오는 날]이 25위.
미니 앨범 5곡 중 3곡이 차트에 진입했네.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가 음반에 들어갔으면 더 좋았으련만.’
강라온은 입맛이 썼다.
‘그때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다니. 남은 일정이나 체크해야겠다.
내일은 첫 음악방송 출연. 일주일 뒤 팬 사인회 일정이 하나 있네.
활동 뒤 차트에서 순위가 더 올라가야 할 텐데.
국내 차트에서 1위를 하지 못한다면 다음 음반에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는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 거야.’
강라온은 은우가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는 그 모습을 떠올렸다.
‘반응을 좀 더 보고 예능 출연을 염두에 둬야 할 수도 있겠어. 이번 주 활동 시작과 함께 추가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계획이 필요해.’
***
은우와 뽀뽀 댄스팀은 함께 방송국 로비로 들어가고 있었다.
채원이가 지유에게 말했다.
“우아. 우리가 가던 어린이 프로랑은 마니 다른 거 가타.”
지유가 한심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촌스럽게 어린이 프로 얘기는 하지 마. 이제 우린 엄연한 가슈야.”
옆에서 듣고 있던 민혁이가 말했다.
“갸슈는 아닌 거 가튼데. 우리 춤추는 거 아니야?”
듣고 있던 예원이가 맞장구쳤다.
“마쟈. 우린 백댄서지.”
지유는 단호하게 고집을 부렸다.
“아니야. 우린 안무갸야.”
단장인 옥이가 지유에게 말했다.
“우리는 뽀뽀 댄스팀이란다. 지유야. 변한 건 없어. 그리고 달라진 것도 없고. 전처럼 똑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즐기면 된단다. 재밌게 놀고 오렴.”
지유는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노리공언 언니들도 인는데 어떠케 놀고 와요. 저는 이제 프로라구요.”
대기실에 도착하였다.
단장인 옥이가 아기들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대기하다가 순서가 되면 무대에 올라갈 거야. 다들 안무 까먹지 말고 알았지?”
채원이가 지유에게 말했다.
“와 여긴 대기실도 이떠. 저넨 이런 거 엄떠는데.”
지유는 잘난 체하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냐. 우린 어른드리랑 똑같다고. 그러니까 잘해야 해.”
미선은 분주하게 은우의 사과머리를 묶고 옷차림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예은이가 말했다.
“은우는 미용사가 인네.”
지유가 말했다.
“우리도 이떠.”
옥이가 대답했다.
“뽀뽀 댄스팀은 내가 할 거야. 이리 오렴.”
옥이는 아기들의 머리를 살펴보고 채원이와 지유의 머리를 새로 묶어주었다.
은우는 사과머리 아래 파란색 츄리닝 세트를 입었다.
츄리닝에는 은우가 좋아하는 공룡 변신 로봇이 프린트돼 있었다.
그리고 손목에는 공룡 변신 로봇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미선이 은우에게 웃으며 말했다.
“은우야 출동해 볼까? 준비됐어?”
“네네네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