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아기 고양이 (2)
은우가 고양이의 앞으로 가까이 갔다.
혜린이가 은우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은우. 슈녀니미 먄지지 마래떠.”
“안 만져떠. 눈냐.”
“그런가.”
혜린이는 금방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러자 연아, 시우, 준수, 지호도 조금씩 고양이 곁으로 다가갔다.
원은 점점 작아졌다.
혜린이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수녀님 말씀을 어긴 건 아니지만 이게 아닌 거 같아.’
그때 노랑이가 작은 입을 벌려 이야옹, 이야옹하고 울더니 아기들에게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은우가 먼저 외치기 시작했다.
“노량아 이리 아.”
시우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까망아 이리 아.”
연아도, 혜린이도, 준수도, 지호도 모두 노랑이와 까망이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까망이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우는 긴장했다.
‘노랑이가 나한테 와야 하는데.’
은우가 노랑이 쪽으로 몸을 숙인 뒤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직까지 세상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그런 노래였다.
“이쁜 거양이, 일로 아. 기여운 거양이, 일로 아.
너는 너뮤 예쁜 사량스런 노량이.
너는 너뮤 예쁜 사량스런 노량이.”
노래를 들은 노랑이가 신기하게 은우 쪽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호도 까망이를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냐능 까먕 고양이. 세상에서 가장 머찐 까먕 고양이.
나는 도두글 쟘는 머찐 고양이.
나능 체고의 액션 히어로.”
연아가 노랑이를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량이 공듀님, 어서 내게 아요.
노량이 공듀님, 드레스갸 정먈 이쁘네요.
노량이 공듀님, 왕간이 여기 이떠요.
어서 와서 뜨세요.”
준수가 까망이를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까먕 고양이. 이야옹.
까먕 고양이. 이야옹.
까먕 고양이. 이야옹.”
노랑이가 은우를 향해 앞발을 내밀었다.
은우는 성수가 했던 주먹 부딪히기가 생각났다.
‘음, 노랑이도 남자인가. 랩을 좀 하나? 주먹을 내밀어야겠지?’
은우가 주먹을 내밀자 노랑이가 앞발로 은우의 주먹을 쳤다.
노랑이는 앞발로 은우의 주먹을 계속 쳤다.
지호가 그것을 보며 외쳤다.
“건투 선수 가타. 건투 자란다. 노량아.”
은우는 가방 안에 놓아둔 고양이 장난감이 생각났다.
“잠깐만 애듀라.”
은우가 가방에서 고양이 장난감을 가지고 왔다.
은우가 고양이 장난감을 꺼내자 노랑이뿐 아니라 까망이도 은우 근처로 왔다.
은우가 낚싯대처럼 생긴 고양이 장난감을 흔들자 노랑이가 앞발을 내밀며 장난감을 잡으려고 했다.
“와와.”
아기들이 소리를 질렀다.
노랑이에 이어 까망이도 앞발을 내밀며 장난감을 잡으려고 했다.
은우가 외쳤다.
“준수야. 내 갸방에 고양이 장냔걈 또 이떠. 가져와 져.”
준수가 은우의 가방을 통째로 들고 왔다.
혜린이가 준수가 가방을 열자마자 장난감 하나를 꺼냈다.
혜린이가 장난감 낚싯대를 흔들자 까망이가 앞발을 치기 시작했다.
준수도 장난감 낚싯대를 꺼내 흔들었다.
까망이는 혜린이의 낚싯대와 준수의 낚싯대를 오가며 냥냥펀치를 날렸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젖병 정리를 하고 돌아와서 벌어진 이 사태를 보고 놀랐다.
‘잠깐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네. 아기와 고양이라니. 에너자이저들의 결합이군. 앞으로 청소할 게 두 배는 많아지겠어.’
***
은우의 등장으로 인해 홍대 근처에는 점점 더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은우가 외쳤다.
“은우 칭규 할 따람 요기요기 부텨라. 은우 칭규 할 따람 요기요기 부텨라.”
퐁퐁이도 함께 외쳤다.
“은우 친구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은우 친구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경완은 불편했던 인형 탈에 점점 적응하고 있었다.
‘인형 탈 속에 들어가 있으니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신경 안 써서 좋아. 그리고 정말 은우 친구가 된 것 같고 말이야. 현실의 나였다면 창피해서 홍대 한복판에서 이렇게 소리 지르지 못했겠지?’
퐁퐁이는 소리를 높여 다시 한 번 외쳤다.
“은우 친구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은우 친구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은우의 앞에 백팩을 멘 단발머리의 여대생이 와서 섰다.
“안녕 은우야. 눈나랑 같이 재밌는 놀이하지 않을래?”
“네, 눈냐. 칭규 하실 거죠? 조아요.”
퐁퐁이가 물었다.
“누나. 자기소개 부탁드려도 되나요?”
“아, 퐁퐁아. 나는 성북동에 사는 간미주라고 해. 코미디언 지망생인데 오늘도 오디션 시험을 봤는데 떨어져서 은우랑 같이 꿀꿀한 기분 좀 달래 보려고.”
은우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요기 부텨요. 눈나.”
미주가 은우의 엄지손가락을 잡았다.
퐁퐁이도 미주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간미주가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내며 말했다.
“게임은 간단해 얼굴에 붙인 포스트잇을 손을 쓰지 않고 최대한 빨리 떼어내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포스트잇의 개수는 열 개.”
“재미게땨.”
장난치기 좋아하는 은우에게 그것은 너무나 재밌는 놀이처럼 생각되었다.
“어셔 해요. 눈나.”
경완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저게 진짜 재밌는 거니? 은우야. 저 게임에서 진다고 우는 건 아니겠지?’
간미주가 은우의 얼굴 위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은우는 얼굴이 작아서 포스트잇이 10개나 붙을 자리가 없네. 누난 10개 잘만 붙었는데. 은우는 아기니까 6개만 붙이자.”
“아니에요. 눈냐. 더 붙이고 시퍼요.”
은우의 고집 덕택에 포스트잇 2개는 손등에 추가로 붙이기로 했다.
간미주가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은우야 누나도 붙여줘.”
은우는 간미주의 얼굴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웃었다.
“헤헤헤헤헤. 눈나 눈 옆에 저미 이따.”
미주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콧구멍을 벌렁벌렁거렸다.
“헤헤헤헤. 눈나. 우껴요. 헤헤헤헤헤.”
미주는 두 눈을 중앙으로 모은 뒤 혓바닥을 코에 닿았다.
“와하하하하. 눈나. 하하하하. 눈나. 너무 우껴요.”
“은우가 웃어주니까 기분이 좋은데. 누나는 웃기다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아.”
미주는 오디션에 떨어져서 우울했던 기분이 은우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
은우가 미주의 얼굴에 10개의 포스트잇을 다 붙였다.
미주가 퐁퐁이에게 말했다.
“퐁퐁아, 시간 좀 재주세요. 시간은 5분. 준비하시고 시작.”
퐁퐁이가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미주가 얼굴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기 위해 입바람과 콧바람을 소리 나게 불었다.
“흥흥흥흥.”
은우는 미주를 보면서 따라 했다.
“흥흥흥흥.”
은우가 너무 열심히 바람을 불어서 콧물이 나왔다.
퐁퐁이가 외쳤다.
“은우가 콧물이 나와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할게요.”
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퐁퐁이가 촬영팀에서 휴지를 빌려 은우의 콧물을 닦아주었다.
“은우야. 괜찮아.”
“갠차냐. 퐁퐁아. 이거 너뮤 재미떠.”
은우는 콧물을 닦은 뒤에 신속하게 게임에 돌아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포스트잇 떼기에 주변에 선 시민들이 은우와 미주를 응원하고 있었다.
“미주씨 파이팅.”
“은우야. 귀여운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좀 줘.”
“은우야. 적당히 해도 돼.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은우는 다시 게임에 집중하며 바람을 흥흥 불었다.
하지만 바람은 은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은 부는 것은 한계가 있는 거 같아. 아기라서 그런지 어른만큼 바람을 세게 불 수도 없고.’
은우는 작전을 바꿔서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은우가 입을 요리조리 움직이자 포스트잇 하나가 떨어졌다.
“은우 좀 봐. 너무 귀엽다. 어쩜.”
“은우 저런 표정 처음이야.”
“게임도 저렇게 열심히 하다니.”
은우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 서 있는 팬들이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눌러대고 있었다.
미주는 빠른 속도로 얼굴에 있는 포스트잇 다섯 개를 떼어냈다.
미주를 보던 한 커플이 말했다.
“와, 저분 입바람 장난이 아니야? 자기 저거 가능해? 저렇게 입바람 세게 불 수 있어?”
남자가 여자에게 입바람을 불자 여자가 코를 막으며 말했다.
“자기야. 내가 자기 입 냄새까지 사랑하는 건 아니거든. 반대쪽 보고 해. 응?”
미주는 입을 사방으로 움직여서 눈썹 옆에 붙여놓은 포스트잇까지 뗐다.
은우의 얼굴에는 아직도 3장의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은우는 볼 옆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가 오므렸다가를 반복했다.
코도 찡긋찡긋거리며 쉴새 없이 움직였다.
이제 미주의 얼굴에는 한 장의 포스트잇만이 남았다.
퐁퐁이가 외쳤다.
“자, 이제 시간은 삼십 초 남았어요. 삼십 초 후에는 게임이 끝나게 돼요.”
은우는 이마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떼려고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눈을 찡그려도 이마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은우는 목을 움츠린 상태로 아래턱을 내밀어 입으로 바람을 불기 시작했다.
은우의 곁에 서 있던 팬들은 경악했다.
“와, 이거 완전 은우 흑역사인데.”
“우리 은우 보호해야 돼. 아무도 은우 못 보게 가려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도 은우니까 귀엽네. 내가 했어 봐. 사람들이 보다가 토했을 거야.”
퐁퐁이가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10,9,8,7,6,5,4,3,2,1. 끝!”
노력했지만 은우의 턱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은 결국 떨어지지 않았다.
퐁퐁이가 결과를 말해 주었다.
“간미주 누나 포스트잇은 한 장이 남아있네요. 은우는 두 장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은우는 손등에도 두 장이 남아있으니까. 간미주 누나 승.”
퐁퐁이나 미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은우가 미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눈나 정먈 뚜고해떠요. 진짜 재미떠더요. 눈나는 세상에서 젤로 재민는 사라미에요. 체고.”
미주가 은우를 보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고마워. 내가 갑자기 하자고 한 건데 그렇게 열심히 해 줄 거라고는 생각 안 했거든. 못생겨지는 거 신경 안 쓰고 열심히 해 줘서 나도 정말 즐거웠어.”
“눈나 나중에 텔레비저네서 만냐요. 눈나 꼭 재민는 코미디언 대요.”
“응, 은우야. 누나 다시 해 볼게. 용기 내서. 퐁퐁아 우리 같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
은우와 퐁퐁이, 미주가 함께 손을 잡고 나란히 섰다.
옆에서 구경하던 시민 한 명이 미주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꼬먀김뺩. 치즈. 김치.”
사진 촬영이 끝나고 뒤에 서 있던 남자 고등학생 6명이 와서 섰다.
은우가 반갑게 형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횬아. 칭규 하실래여?”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먼저 주먹을 내밀었다.
“힙합식으로 하쟈. 브로.”
은우도 금방 알아듣고 주먹을 내밀었다.
“아라떠요. 횬아.”
“은우야. 이번에 네가 올린 [새로운 도전을 하는 너에게]를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매일 듣고 있거든.”
“거마어요. 횬아.”
은우는 어느새 자신의 노래가 이렇게나 많이 알려진 것에 큰 감동을 느꼈다.
“우리는 제이 고등학교 랩동아리 힙합전사들인데 사실 별스타 보고 네가 여기 있다고 해서 랩 대결을 해 보고 싶어서. 여기로 왔어. 짧게 랩 대결 해 볼 수 있을까?”
“랩 대겨리요?”
순간 경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랩 대결이라니. 아직 은우 음반도 안 나왔는데 이런 상황을 은우 소속사에서 좋아하려나. 역시 리얼리티 방송은 돌발상황이 많아. 그나저나 PD는 지금 이걸 듣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왜 이건 수신기만 있고 송신기는 없지? 나도 급할 땐 상황을 전달해야 할 거 아냐?’
경완이 고민하는 사이 은우가 대답했다.
“조아요. 횬아.”